220화 계약자들 (1)
“은인이시여.”
우리 부대의 정령사.
정수아가 내게 말했다.
“곳곳에 숨어 있거나…… 도망치려 한 계약자들 모두 생포하였습니다.”
“잘 했네.”
그녀의 정령은 최고의 정찰병.
어딘가에 숨어 있거나, 도망치려 하던 계약자 중 누구도 정령의 시야를 벗어나지 못했다.
곳곳에 퍼져 있던 이들 모두가 제압된 것.
“크흐…… 흐흐흐…….”
“뭐야, 미쳐 버린 건가?”
그리고, 우리에게 제압된 계약자들.
그들의 수장 격으로 보이는 인물이.
바로 이 녀석.
내가 그 앞에 다가가 총구를 들이밀고 말을 걸자.
녀석은 갑자기 미친 듯이 웃기 시작했다.
“네놈…… 나한테 무슨 짓을 한 거지? 세뇌?”
“엉?”
내가 세뇌를 걸었다니.
난 오히려 너희가 세뇌를 당한 게 아닌가, 하던 참인데?
“크흐흐. 세력을 온전히 보존한 군인들이니. 뭐, 내가 모르는 화학 병기 같은 거라도 사용한 건가?”
아.
그나마 이 부분은 조금 근접했다고 말할 수도 있겠다.
병기라고 하기는 조금 뭐하지만.
“요리인데?”
“……하하. 아주 대놓고 조롱하시는군.”
요리는 기본적으로 화학 작용이니까.
하지만.
그런 내 말을 믿지 않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 녀석.
반대로 우리 부대원들의 경우에는…….
“뭐야. 어떻게 한 건가 했더니,”
“또 요리였어?”
“신 병장님 디버프 요리는 무슨 효과가 저렇게 다양하답니까……? 아니, 애초에 요리는 또 언제 먹이셨답니까.”
“그런 거에 일일이 의문 가지지 좀 말라니까. 머리 아파져.”
“이번엔 스킬 봉인 같은 건가 보네?”
뭐 대충 저런 반응.
‘……너무 날 올려치는 거 아닌가?’
그런 생각도 조금은 들지만 뭐.
그러거나 말거나.
“무슨 수단을 쓴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어차피 제압당하고 말았으니, 나는 여기까지란 거겠지.”
당장 중요한 것은 이쪽이다.
자포자기한 것처럼 보이는 녀석.
하지만.
그 눈만은 나를 맹렬하게 노려보고 있었다.
“지금은 네놈들이 이겼지만…… 언젠가, 후회하게 될 거다.”
“후회?”
“크흐흐…… 네놈들은 자신들이 정의라고 생각하고 있겠지. 우리가 악당이라고 말이야.”
“그럼, 아니란 거냐?”
우리가 정의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 녀석은, 우리 입장에서는 분명 악에 속하는 녀석.
“나중에 가면 알게 될 거다. 결국, 인류를 몰락으로 이끌고 있는 것은 너희였다고. 그때 가서 후회해도 늦겠지……!”
“흐음. 나중에 가서 알게 되는 건 좀 늦지.”
“……뭣?”
어쩌면 세뇌를 당한 것일 수도 있다는 생각에.
굳이 이렇게 귀찮은 방법까지 써 가면서 제압했다만.
녀석의 머리에 총구를 겨눈 채 묻는다.
“목숨이 아깝다면 대답해라.”
그렇기에.
더더욱 궁금해졌다.
“어째서…… 목숨을 아끼지 않으면서까지 악마를 섬긴 거냐.”
* * *
한 사내가 있었다.
계약자들 사이에서는 인도자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사내.
그 명칭의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었다.
일단은.
[악마 인도자]
그 직업이 실제로 인도자라는 것이 첫 번째.
그 외에는.
다른 계약자들과 위대한 존재를 연결해 주고.
그 계약자들을 이끄는 인도자의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게 불리기 전의 사내는 최 대리라는 이름으로 주로 불렸다.
그보다 전에는 최 사원.
그전에는 최원준.
그보다 훨씬 전에는…….
‘쓰레기가.’
쓰레기.
차라리 길거리의 취객이 그렇게 부른 것이라면 억울하지도 않았을 텐데.
그를 그렇게 부른 것은 다름 아닌 그의 아버지였다.
‘…….’
부모는 그를 낳았으나, 기르지는 않았다.
원치 않는 결혼에, 원치 않는 자식.
누구도 원하지 않았던 결과물.
쓰레기라 불릴 만한 이유는 그것뿐이었다.
농담으로도 화목하다고 하기는 어려운 가정이었다.
부모는 매일같이 서로를 향해 욕지거리를 하느라 바빴으며.
그 싸움이 흐지부지되었을 때.
그들은 해소하지 못한 분노를 하나뿐인 아들에게 돌렸다.
‘죽고 싶다.’
운이 좋았다고 해야 할지, 나빴다고 해야 할지.
그 소원이 이루어지는 일은 없었다.
서로를 원치 않던 부부.
그 둘이 이혼 관련 소송으로 분쟁을 벌이고.
그 소송 끝에 한쪽이 칼을 들고 나선 나머지.
한쪽은 감방.
한쪽은 하늘나라로 가 버리는 흐름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것이었다.
원준은 고아였다.
처음부터는 아니고, 중간부터.
하지만.
남들이 멸시할 만한 칭호를 공식적으로 부여받았음에도.
‘하핫.’
원준은 그리 슬프지 않았다.
오히려 기쁘기까지 했다.
‘드디어 해방이다……!’
자신을 쓰레기라 부르던 존재들.
그들로부터 해방된 셈이니까.
그로서는 이해할 수도 없는.
뭔가 복잡한 여러 가지 법적 공방이 오가고.
친척 중에서도 그를 받아들일 이가 없다는 결론이 도출되었다.
원준은 보육원에 들어가게 되었다.
매일같이 죽고 싶다는 생각만 하고 살던 원준이었으나.
그런 생각은 금방 사그라들게 되었다.
보육원에서의 삶은.
이전의 것에 비하면 꽤나 만족스러운 것이었다.
물질적으로는 조금, 아니 상당히 모자랄지언정.
그를 돌봐 주는 수녀님은 자상했다.
과거의 상처는 도무지 씻겨 나갈 생각을 하지 않았지만.
그 상처를 공유하고, 서로 어루만져 줄 수 있는 형제들이 생겼다.
남들이 뭐라고 할지언정.
원준에게는 이전까지의 삶과는 비교되지 않을 정도로 행복한 환경.
한 가지 신경 쓰이는 점이 있다면.
-다들, 밥 먹기 전에 기도하자꾸나…….
그의 새로운 어머니.
수녀의 가르침이었다.
‘신이라.’
수녀의 가르침에 따르면.
인간을 대가 없이 사랑하며.
전능하고, 전지하신 존재라던가.
그 말이 맞다고 한다면.
한 가지 의문이 생긴다.
‘그런 존재가 있으면…… 나는 왜?’
자신은 뭘 잘못 했길래.
그런 삶을 살아야만 했던 것일까.
의문이 머리를 뒤덮었으나.
어린 소년은 그 의문을 그러려니 하고 넘겼다.
‘수녀님이 하시는 말이니까. 맞겠지, 뭐~’
잘 이해할 수는 없지만.
아무튼, 지금 행복하면 된 것 아니겠나.
‘지금의 행복은 그 신이라는 양반이 만들어 준 것일 테니까.’
순순히 감사하면,
그걸로 그만일 뿐.
그, 시련인가 뭔가.
아무튼, 자신이 고통받았던 시간 역시 나름의 이유가 있을 것이라고.
그리 믿고 넘기며.
수녀의 말에 따라.
그는 언제나 진심으로 신에게 기도했다.
그 신앙이 크게 흔들린 것은.
그가 중학교를 졸업하게 될 무렵이었다.
-미안하다, 얘들아…… 정말로 미안해…….
지원금으로 유지되던 보육원.
아이의 숫자만 수십이었고, 연간 운영비는 억 단위였다.
복잡한 어른들의 사정이 개입되어, 그 지원금이 끊기게 되자.
운영에 필요한 자금이 사라진 보육원은 문을 닫게 되었다.
중학교를 졸업함으로써, 의무 교육을 마친 원준.
그는 다른 보육원으로 전입할 수도 없었다.
그로서는 알지 못하는 복잡한 사정으로 인해.
그로서는 알 수 없는, 복잡한 사회로 쫓겨나게 되어 버렸다.
‘신…… 있는 거 맞나?’
수녀의 말이기에 따랐고, 믿었다.
하지만.
그 믿음에 의심이 자리 잡기 시작했다.
‘신이라는 게 정말로 실존하는지 안 하는지, 그것까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단 하나만큼은 확실히 존재한다고 말할 수 있었다.
‘인간의 선의.’
갑작스럽게 사회로 쫓겨나게 됐음에도.
그의 새 부모와 같았던 수녀는 그를 버리지 않았다.
계속해서 연락을 주고받으며, 꾸준히 도움의 손길을 내밀어 주었다.
‘수녀님의 선의는 분명히 존재하는 것.’
원준은 신의 존재는 반신반의했으나.
인간의 선의를 믿게 되었다.
더 이상 기도를 올리지는 않게 되었으나.
수녀의 가르침대로.
인간을 사랑하기로 결정했다.
그는 삶에 대한 애착이 크지는 않았다.
어렸을 때부터 즐거움이라곤 없었던 삶.
계속해서 살아가야 할 이유랄 것을 딱히 찾지 못했으니까.
그럼에도 살아갔던 것은.
‘내가 죽으면 수녀님이 슬퍼하실 테니까.’
중졸에 고아 출신.
좋지 않은 칭호를 주렁주렁 달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그를 키워 준 수녀에게 누가 되지 않도록.
매사에 성실하고 진지하게 임했다.
그 덕분인지.
아니면 주변의 사람들이 선의를 가지고 도와준 덕분인지.
그를 아는 사람들은 대부분이 그를 신뢰하게 되었으며.
어린 시절 불우한 환경을 보냈음에도.
나름대로 안정적인 삶을 손에 넣을 수 있었다.
-엄마!
한 사람의 사회인으로서 자리 잡은 원준.
그는 자신이 자리 잡을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
수녀를 찾아갔다.
그녀에게 자리 잡은 자신의 모습을 보여 줌으로써.
그녀가 조금이라도 기분이 좋아지길 바라면서.
-……엄마? 아니, 수녀님?
그리고.
그때가 되어서야 원준은 깨달을 수 있었다.
-……그륵.
수녀가 사는 작은 집.
그 한구석에서 들려오는 짐승의 울음소리.
아니.
짐승을 연상시키는 인간의 울음소리.
그날.
원준은 비로소 확신을 가지게 되었다.
‘신은…… 없다.’
신이 있다면.
이딴 식의 촌극을 벌이도록 만들지는 않았으리라.
-서걱.
원준은 자신이 부모라 생각했던 유일한 인간의 목을 베었다.
주방을 굴러다니던 식칼을 쥐고.
어미라 생각했던 존재의 척추 부근을 거칠게 찢어발겼을 때.
[각성을 축하드립니다!]
[직업 : 신입 전사 Lv.1]
그는 각성했고.
……세계는 멸망했다.
그 후의 일은 하루하루가 전쟁이었다.
수녀를 죽이게 된 원준은 자살까지 생각했으나.
끝내 검을 들고 일어났다.
‘다른 사람들을 구해야 한다.’
신은 없다.
신이 있다면 세상이 이 꼴이 날 때까지 방치할 리가 없으니까.
하지만.
‘사람들의 선의는…… 실존하는 것.’
수녀의 가르침대로.
그는 인간을 사랑했다.
다른 사람들의 죽음을 원치 않았다.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원준 씨. 정말 고마워……!
식칼을 들고 제 아내를 찌른 아비.
그에게서 살해의 재능만을 받아 온 것일까.
원준은 각성자들 중에서도 퍽 잘 싸우는 편에 속했다.
처음에는 식칼을 들고 괴물을 죽였으며.
포인트가 쌓인 후에는 철검과 방패를 구매했다.
조금 위험한 전투라고 한들.
누군가가 위험에 처해 있다면, 가리지 않고 끼어들었다.
잦은 전투와, 잦은 경험치 획득.
레벨은 빠르게 올랐고.
조금 늦었지만, 각성법도 깨달을 수 있었다.
-우리도 같이하겠소.
그에게 감화된 이들은 그를 따르기 시작했다.
그룹이 점차 덩치를 불리고.
함께 싸우는 각성자의 숫자도 열 명이 넘어갈 때쯤.
-케, 케륵…… 너희 인간, 밉다.
그는.
말을 할 줄 아는 괴물과 조우하게 되었다.
-너…… 말을 할 줄 아는 건가?
-케케륵…… 인간들 자기중심적이다. 우리 동족 모두 말할 줄 안다. 인간 말을 못 할 뿐.
사마귀를 닮은 괴물.
그 입에서 나온 어눌한 한국어에 원준은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했다.
콰직!
-케르르르르르륵!!!
-죽이지 않겠다는 말은 하지 않으마. 어차피 죽이긴 할 테니까. 대신, 고통스럽지 않게 죽여 줄 수는 있어.
사마귀의 다리에 거칠게 칼을 쑤셔 박으며.
원준은 말했다.
-케……케렉……. 뭐, 뭐냐. 뭘 바라는 거냐.
-너희들은…… 왜 지구를 침공한 거지? 뭘 바라고?
전지전능하고 인간을 대가 없이 사랑하는 신.
그런 게 없다는 것은 확실히 알겠다.
하지만 그렇다면.
이 세상을 이렇게 만든 존재는 대체 뭐란 말인가.
-케, 케케케…… 침공은 무슨.
그날.
사마귀 모양을 한 괴물에게서 원준은 이계의 역사를 들었다.
침공당한 세계.
멸망한 세계.
그리고…….
-우리의 신, 케케륵케케렉께서 우리를 탈출시켜 주셨지.
그들이 어떻게.
멸망한 세계에서 도망쳐, 지구에 도착했는지도.
-서걱.
모든 답을 해 준 사마귀 괴물.
원준은 약속대로, 그에게 고통 없는 죽음을 선물해 주었다.
그리고.
피 묻은 검을 내려다보며, 멍하니 중얼거렸다.
-……신이 탈출시켜 주었다니.
오랜 시간 가지고 있던 궁금증.
그 일부분이 해소되는 순간이었으나.
원준은 속이 시원하기는커녕.
오히려 갑갑해지는 것을 느꼈다.
지구는 멸망했다.
당장 살아 있는 사람들이 있다고 하나.
노련한 각성자였던 원준은 알고 있었다.
‘세상에 나타나는 괴물들은 점차 강해지고 있다.’
문명이 완전히 박살이 난 지금.
그 살아 있는 사람들도 오래 버티지 못하리란 것은 명확했다.
괴물과 인간의 전쟁에서…….
인간은 절대 승리할 수 없다.
패배는 확정된 것이나 다름없다.
그렇다면.
‘패배한 후에는?’
사마귀 괴물의 세계가 멸망했을 때.
저들은 신의 도움으로 탈출할 수 있었다.
그렇다면.
* * *
“우리는?”
“…….”
내게 제압당한 채.
쓴웃음을 지으며 말을 잇는 남자.
“신이 없는 우리는…… 인간들은, 어찌해야 하는가?”
그 말에….
나는 뭐라 대답해야 할지 몰라, 가만히 입을 벌리고 있을 뿐이었으나.
“그 고민을 하고 있을 때.”
누군가는 그렇지 않았나 보다.
“악마가 말을 걸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