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2화 사기 계약 (1)
병사들의 시선이.
나를 향해 꽂히는 게 느껴진다.
“신 병장님 하시는 말만 그대로 따라가면 대체로 잘 풀리거든.”
“지금까지 계속 그래 왔으니까, 뭐.”
그제서야.
나는 깨달을 수 있었다.
‘여기서…… 저 계약자들의 절망감에 공감한 건.’
언젠가 세상이 멸망했을 때.
인류는 보호해 줄 이도 없이 그대로 멸망할 뿐일 것이라고.
그렇게 절망했는데.
‘나뿐인 거냐?’
아무래도.
군단 내에서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는 건…….
나뿐인 것 같았다.
‘어떻게 그럴 수가.’
딱히 다른 병사들이 공감 능력이 없는 사이코패스라든가.
그런 이유는 아니겠지.
요리를 통한 멘탈 관리에 신경 썼다고는 하나.
그럼에도 저 명확한 사실을 부정할 수 있을 정도는 아닐 거다.
다른 병사들과 나의 차이.
그게 무엇인지는…….
금방 추측할 수 있었다.
원준이 절망한 이유는 간단했다.
세상에 신이라는 건 없다는 걸 깨닫고.
마음을 기댈 대상을 잃었기 때문.
하지만, 저들은.
‘내가 있으니까…….’
그동안.
능력에 비해 너무 과대평가를 많이 받아 버렸다.
리더가 강하단 것은 그 집단원들의 입장에서는 나쁘지 않은 일.
헛소문이 돈다는 것을 어느 정도 알고는 있었으나.
일부러 방치해 왔다.
거기에 더해 얼마 전부터는…….
태준이 녀석의 조언으로 인해.
내가 하지 않은 일까지 내가 한 일처럼 만들어 버렸지.
그 결과.
나에 대한 저들의 평가와 믿음이…….
너무 올라가 버린 거다.
‘내가 예상한 수준을 아득히 넘어설 정도로.’
신이 없다는 사실에 절망한 계약자들.
병사들이 그 절망감에 공감하지 않은 이유는 뻔했다.
‘신이 없을지언정…… 신만큼의 믿음을 주는 대상이 근처에 있으니까.’
거기까지 생각하게 되자.
한 가지 의심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태준이가 얘기한 게…… 이거 때문인가?’
녀석은 내가 좀 더 많은 업적을 쌓아야만 한다고 했다.
그게 내가 직접 한 업적이 아니라, 남의 공을 가로채는 것이라 하더라도.
내 평가를 한없이 부풀려야 한다고.
‘저들이 믿음을 가질 수 있게?’
녀석이 그 말을 한 이유가 정말 이것 때문이었는지.
아니면, 그 외에 다른 이유가 있는 것인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적어도 당장 보이는 효과는 확실히 알 수 있었다.
‘혼란한 세상이니까.’
평범한 인간들끼리 뭉친다고 해서 살아남을 수 있으리라고는.
누구도 믿을 수 없을 정도로 혼란한 세상.
거기서 기댈 만한 존재가 없다는 걸 깨달은 인간들은 자연스럽게 절망할 수밖에 없다.
저 계약자들이 그 사실에 절망하고.
불온한 존재에게 기대고자 하는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라는 것.
그렇게 사람들이 절망에 빠질 때.
그 절망을 막아서기 위해선…….
믿고 기댈 수 있는 대상이 필요한 법.
‘내가…… 그 역할을 해야 한단 건가.’
애초에 나에 대한 헛소문을 막지 않은 이유가 그거 때문이기도 했지만.
이건 그 규모가 너무 커져 버린 거 아닌가?
온 세상이 멸망하고.
신에게 기댈 수 있었던 다른 종족들과 달리.
인류에게는 도망칠 곳조차 주어지지 않았다고 한들.
“신 병장님 말만 잘 들으면 어떻게든 되겠지 뭐!”
“맞는 말씀이지 말입니다.”
끝끝내 이겨 낼 수 있을 것이라는.
터무니없을 정도로 낙천적인 믿음.
나는 부대원들에게 그런 믿음을 줘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정말 신이나 다름없는 위업을 쌓아야 할 터.
솔직히 속이 쓰릴 정도로 부담스럽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전역하면 식당에 인턴으로 들어가 볼까 하는 생각이나 하고 있던 녀석이다.
내가 그 정도의 위업을 쌓을 수 있을 리가 없다.
그렇게 능력이 부족함에도 불구.
저들에게 믿음을 주기 위해서라면.
‘동기의 업적도 뺏어 가면서 최대한 허세를 부려야 한다?’
없던 일도 있던 일로 만들어 가면서.
나만 믿고 따라오라고 외쳐야 한다는 것.
‘아니, 개 빡세잖아. 이거.’
내가 정말 그렇게 대단한 인간이라면 모를까.
난 실제로는 부족한 부분이 넘쳐 나는 녀석이니까.
전투 능력은 아주 짧은 시간은 자신이 있지만.
전력을 발휘하고 난 뒤에는 [절대미각]의 부작용으로 환자 신세.
머리가 특출나게 좋은 것도 아니고, 리더십이 넘쳐 난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그나마 요리는 자신이 있기는 하다만, 어디까지나 그뿐.
그딴 대단한 일을 하는 게.
가능할 리가 없다고…….
생각했는데.
“물론, 언젠가 패배할 수도 있겠지.”
전광일 상병이 나서며.
저들을 향해 입을 열었다.
“신 병장님은 대단하신 분이지만, 괴물들도 평범한 녀석들은 아닐 테니까.”
“그걸 아는 녀석이, 왜.”
“그야. 해 보기 전까지는 모르는 것 아뇨.”
그 말에
나는 조금 충격받을 수밖에 없었다.
“언젠가 패배하더라도, 그날이 오기 전까지는 개같이 발버둥 친다.”
“…….”
“그게 병장님의 가르침이다. 그러니까 안 되는 게 있으면 될 때까지.”
나는 계약자들을 바라보고 있던 시선을 돌려.
내 등 뒤에 서 있던 병사들을 바라보았다.
“악으로 깡으로 도전할 뿐.”
그리고.
그 병사들의 모습을 보며 조금 놀랐다.
‘허…….’
지평선 너머까지 눈이 수북이 쌓인 세상.
그 위에 반파된 건물들이 쓰러져 있다.
그리고 그런 파괴된 도시에.
예전이라면 손도 못 댔을 강력한 괴물들.
그 시체들이 끝없이 펼쳐져 있었으며.
그것들을 짓밟고 서 있는 것이 바로…….
‘군단의 병사들.’
수없이 많은 전투를 겪은 끝에.
하나하나가 정예로 거듭난 군단의 병사들.
그들은 잿빛의 군복을 입은 채.
굳건하게 서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지금까지 의식한 적이 없었지만.
이렇게 보니.
‘……참 많이도 강해지긴 했네.’
뭐라고 해야 하나.
말도 안 되게 듬직해 보였다.
‘악으로 깡으로.’
‘안 되면 되게 하라.’
그래.
막상 평범한 군 복무 시절에는 끔찍하기 그지없던 말이다만.
멸망해 버린 세상에서.
우리가 살아남을 수 있게 해 준 것은 바로 저 말들이기도 했다.
‘신영준, 이 병X같은 새끼…… 내가 가르쳐 놓고 뭐 하는 거냐?’
저런 대단한 병사들이.
내 가르침을 믿고 따라오고 있다.
저런 강력한 군대가…….
내 뒤를 지지해 주고 있었다.
‘하.’
그렇다면.
“왜 해 볼 만한 것 같냐, 이거.”
“예?”
언젠가 패배할 수 있다고?
그때 도망칠 수단이 없다고?
그딴 생각을 하고 있던 나 자신에게 어이가 없어진다.
‘그걸 왜 지금 생각해.’
객관적으로 따지면.
앞으로 나타날 강대한 적들을 상대로 이겨 낸다든가.
그런 게 가능할 리가 없기는 하다.
몇 분 전까지만 해도.
나 역시 저 악마 쪽에게 빌붙어야 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조금은 했었으니까.
하지만.
우리 부대원들은 달랐다.
계약자들의 절망감에 공감한 나와.
거기에 공감하지 못한 부대원들.
그 차이의 이유는 명확했다.
‘나도 결국 믿고 기댈 만한 대상은 없었으니까.’
계약자들이 신이 없다는 사실에 절망해, 악마에게 기대고.
군단병들은 나에게 기댔다면.
나는 내 한계를 잘 알고 있다.
나를 믿을 수도 없고.
그렇다고 저 꺼림칙하기 그지없는 존재.
악마를 믿을 수도 없는 일.
다른 이들과 달리.
나는 누구에게 의존할 수도, 기댈 수도 없다고.
‘그렇게…… 생각했었는데.’
앞으로 나타날 괴물들.
그 녀석들이 얼마나 강하다고 한들.
워낙 훌륭하게 성장해 버린 부대를 보니.
조금은 비벼 볼 만할 것 같다는 느낌도 든단 말이지.
‘내가 먹여 살린…… 나의 군단.’
아무리 강대한 괴물들이라고 한들.
저 군단이라면 어떻게든 쓰러트릴 수 있을 터.
그렇게 된다면.
나는 그 괴물을 [요리]할 수 있다.
그 강력한 적조차.
우리를 더 강하게 만들어 줄 맛있는 식재료에 불과하게 될 테지.
‘뭐야. 진짜 꽤 할 만할 것 같은데.’
저 부대원 중 몇몇은.
자신들이 내 덕분에 살아남았다고 생각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나에게 과분할 정도의 믿음을 보내 주고 있는 것도 그 이유겠지.
하지만.
사실 그건 큰 착각이거든.
‘내가 저 녀석들 덕에 살아남을 수 있던 거다.’
애초에 부대를 키우기로 한 이유가 뭐냐.
누가 봐도 서포터 직업인 내가 살아남기 위해선.
이 부대를 어떻게든 키워야 했기 때문.
실제로 정말 개같이 힘들게 키워 왔다만.
그렇게 키운 부대원들 덕분에.
나는 아직까지 살아 있을 수 있었다.
‘그래. 너희가 날 믿고 싶다면 얼마든지 믿어라.’
조금 부담스럽긴 하지만.
얼마든지 받아 주도록 하지.
대신.
‘세상만사는 다 주고받는 것 아니겠냐.’
계약자들이 악마를 믿고.
부대원들이 나를 믿는다면.
나 역시.
뭐 하나는 믿어야지 좀 견딜 수 있는 법.
그리고…….
내가 믿을 수 있는 대상은 이 세상에선 하나뿐.
‘나는 너희를 믿고 간다.’
내 뒤를 밀어주고 있는.
이 군단을 믿으면 될 뿐.
마음속에서.
한 가지 감정이 피어오르는 것이 느껴진다.
어떤 개같이 강한 적들이 몰려온들.
설령 더러운 진흙탕을 뒹굴게 되는 한이 있더라도.
어떻게든 살아남을 수 있을 것 같다는.
‘터무니없이 낙관적이고 근거 따위는 없는 자신감.’
내가 믿고 있는 부대.
그 부대원들이 나를 믿고 있다면.
“까짓거, 해 보지 뭐.”
나 역시.
부대원들이 믿어 주고 있는…….
나를 믿을 수 있다.
[스탯 – 신력이 자연스럽게 융화됩니다.]
[신력의 효율이 소폭 상승합니다.]
[신력의 상승 효율이 대폭 증가합니다.]
* * *
“……대체 어떤 일을 겪었길래, 멸망을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다는 거냐.”
우리 부대원들이 보이는 태도에.
어이없다는 듯 중얼거리고 있는 원준.
방금 전까지만 해도.
녀석이 하는 말에 꽤나 공감하고 있던 처지였지만.
“누가 안 무섭댔냐? 그냥, 그때까지 개같이 버텨 보겠다. 이거지.”
마음속에서 근거 없는 자신감이 뿜뿜 피어오르고 있는 지금.
머릿속을 사로잡고 있던 불안감이 사라진다.
내가 살아남는 것만 생각해 온 나.
그게 좀 이기적인 걸 수는 있다.
하지만.
‘이런 세상에서 좀 이기적일 수도 있지.’
조금 이기적인 게 뭐가 나쁘냐.
남한테 피해만 안 주면 되는 거지.
‘이 녀석들은 나랑은 반대다.’
그 동기는 이타적이었다고 한들.
그 행위는 다른 인간들을 적대하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우리가 할 일은 정해져 있는 일.
‘우리는 군인이니까.’
동기가 어떻다고 한들.
우리 군과 다른 인간들을 적대한 녀석들.
그 상대로 동정을 품을 이유 따윈 없다는 거다.
“그보다, 한 가지만 묻자.”
불안감이 사라지고, 정신이 맑아져서일까.
녀석이 한 말 중에서 한 가지.
“인류를 보존시켜 주겠다고 말했다고?”
“……그게 뭐가 어쨌다는 거냐.”
“뭐, 조금 신경 쓰이는 부분이 있어서.”
확인하고 싶은 게 생겼다.
“얘들아.”
“예. 신 병장님.”
“밖에 있는 괴물들 시체 좀 챙겨 와라. 종류 별로 한 마리씩만.”
내 명령에.
당당하게 서 있던 병사들이 곧바로 고개를 끄덕이며 몸을 움직이기 시작한다.
“알겠습니다. 근데, 괴물들의 사체는 왜?”
“해 보고 싶은 게 있거든.
내 직업은 요리사.
그리고.
요리사가 괴물의 사체에 대고 할 일이 뭐가 있겠냐.
“손질을 좀 해 봐야겠어.”
그 악마라는 녀석이.
계약자들을 꼬드기면서 한 말.
그게 정상적인 제안이었을지.
알아봐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거든.
* * *
터억…….
턱.
“가져왔습니다!”
“일단 보이는 괴물들은 종류별로 다 가져온 것 같습니다.”
명령을 내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제압된 계약자들과 우리 군단병들 사이에.
‘악마의 하수인’이라 불리던 괴물들의 시체가 산더미같이 쌓이기 시작한다.
“뭘…… 할 셈이지?”
“뭐. 기다려 보셔.”
계약자들이 불안한 눈빛으로 중얼거리거나 말거나.
나는 부대원들이 가져온 괴물들을 보았다.
‘거 참…… 비주얼 하고는.’
악마의 하수인들.
그 모두가 끔찍할 정도로 불온한 생김새를 하고 있었다.
시체가 되어서도 그림자가 일렁이는 괴물.
끈적한 기름 같은 게 피부 표면을 덮은 괴물.
내장을 밖에 꺼낸 채 덜렁거리며 돌아다니던 괴물이나.
눈알이 있어야 할 곳에 기괴한 불꽃만이 일렁거리던 괴물 등.
하나같이 정상적으로 보이지는 않는 모습.
강하긴 엄청나게 강한 놈들이었지만.
그 외견은 끔찍하기 짝이 없었다.
“애초에 조금 이상했단 말이지.”
“뭐?”
“그렇게 순순히 인간을 보호해 줄 만한 녀석이라면 시스템이 악마라는 이름을 붙였을 리가 없거든.”
이 시스템이 좀 대충인 면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아리엘라의 종족인 뱀파이어는 본래는 뱀파이어라 불릴 만한 발음이 아니었으나.
대충 비슷하다는 이유로 뱀파이어라고 번역되어 버렸으니까.
다만.
‘일단은 비슷하긴 하거든.’
그 근본이 지구냐, 아니냐 하는 점을 제외하면.
아리엘라와 지구에 전승되는 괴물인 뱀파이어의 특징은 대부분이 일치했다.
악마란 녀석이 정말 순순히 인간을 보호해 줄 정도의 선의를 베풀 수 있다면.
시스템이 악마라는 이름을 붙일 리가 없다.
“그렇게 생각하니까…… 한 가지 짐작 가는 게 있더라고.”
내가 가장 먼저 식칼을 들이민 대상은.
[어둠의 정령]이었다.
“네가 사마귀 괴물을 만난 것처럼 우리도 다른 괴물과 대화를 해 본 적이 있다.”
“그게 뭐가 어쨌다는 거냐.”
“우리가 만난 녀석은 악마에 대해서도 알고 있었지. 어떻게 보면 네 선배격이려나?”
“……?”
“그리고 그 녀석이 한 말에 의하면…….”
육포를 베어 물고.
[항마의 빛] 버프를 받은 뒤.
어둠의 정령을 덮고 있는 거대하고 불온한 그림자.
그것을 차근차근 손질해 나간다.
“악마의 힘을 받아들이다 보니 어느 순간부터 외형이 바뀌기 시작했다고 하더라고.”
“……?”
“그 변화가 너무 두려워서…… 변화하기 전의 아이들을 봉인시켜 둘 정도로 뚜렷한 변화가.”
보르진이 숨기고 있던 알.
그 안을 기어 다니던 태아들.
내가 잘못 본 게 아니라면.
그 투명한 알 속의 태아들은…….
‘녹색 피부가 아닌, 갈색 피부를 가지고 있었다.’
악마의 힘으로.
그 피부색부터, 외형, 성격까지.
많은 부분이 변화했다는 것.
서걱-
[어둠의 정령]을 뒤덮은 그림자가.
한 꺼풀씩 베어져 나간다.
곧 손질이 끝나고.
그곳에는…….
자그마한 구체 하나만이 남아 있었다.
“정수아.”
“……? 네. 은인이시여.”
손질이 끝난 순간.
나는 그 자그마한 구체를 쥔 채.
우리 부대의 정령사를 불렀다.
“저는 무슨 일로 부르셨는지.”
“방울이를 소환해라. 다른 사람들도 볼 수 있게.”
“예. 명령대로.”
내 명령에.
군말 없이 물의 정령을 소환하는 정수아.
[식재료 감별(강화)]
[중급 물의 정령 - 방울이]
물의 정령은 허공에 떠 있는 물방울처럼 생겼다.
평범한 물방울이 아니라는 걸 깨달을 수 있는 부분이 있다면.
그 물방울의 중심부.
[물의 정령의 정령핵]
그곳에 있는 작은 구체.
내가 손에 쥐고 있는 것과 아주 비슷하게 생긴…….
정령들의 핵이었다.
“……은인이시여. 이건, 설마.”
“그 설마가 맞을 거다.”
가장 먼저 눈치챈 것은 역시 정령사인 정수아였다.
방울이의 정령핵을 본 나는.
이번에는 내가 손에 쥐고 있는 구체로 시선을 돌렸다.
[식재료 감별(강화)]
[추하게 모욕당한 채 일그러진 정령핵]
“너희는 인류가 이대로 멸망하면 안 된다고 했지.”
“……그, 그게 무슨 상관이 있다고.”
“그럼 하나만 더 묻자. 그 녀석이 말한 대로 인류가 보존된다고 쳐.”
[한때는 순수했던 정령의 핵이 외부의 힘으로 타락하고 더럽혀진 모습입니다.]
[자연과의 조화를 이루는 정령의 특성이 죽음과 마기에 반응하도록 강제로 개조되었습니다.]
[그 구조 자체는 정령의 잔재가 남아 있어 정령이라 불리기는 하나, 사실상 다른 종족이라고 봐도 될 정도로 타락한 것으로써…….]
“보존되긴 하는데.”
내 손에 쥐어진 것은.
한때는 평범한 정령이었으나, 이제는 아니게 된.
“아예 다른 종족 수준으로 개조당하는 건…… 괜찮은 거냐?”
그래.
저 계약자들의 선배격 되는 존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