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멸망한 세계의 취사병-226화 (226/227)

226화 직업 변경 (2)

악마와 엮인 계약.

저 계약자들이 자유로워지기 위해서는 그 [계약] 스킬을 없애야 한다.

그리고 그러기 위해선.

‘직업을 바꿔야 하지.’

그리고.

직업을 바꾸는 데 성공한 사례를.

난 지금까지.

딱 두 번 볼 수 있었다.

한 번은 아리엘라.

그녀에 의해 권속이 된 이들은 ‘뱀파이어 나이트’ 계열의 스킬과 특성만을 지니게 된다.

그리고 또 한 번은.

“미…… 미친, 짓이에요……!”

차마 내 앞에서 말은 못 하고.

구석에서 저렇게 중얼거리고 있는 백발의 병사.

‘이현진.’

그녀는 괴물을 집어삼킨 끝에 스스로 괴물이 되어 버렸다.

괴물이 되었을 때의 그녀는 종족 자체가 인간이 아니었던바.

당연히 직업도 가지지 못한 상태였다만.

“그나저나, 하나만 묻자.”

“……네?”

“너 원래 직업이 뭐라고 했었지?”

“……그건.”

괴물의 되기 전.

그녀가 가지고 있던 직업은.

“수비대원이라는 직업이었죠.”

꽤나 평범한.

우리 부대원 중에도 종종 있는 직업이었다.

‘주로 헌병 계열의 병사들이 각성한 직업이었지, 아마?’

탱킹이나, 제압.

영역의 수호 등에 특화되어 있는 직업이다.

그녀의 본업은 경찰관이었다고 했으니.

이 대충인 시스템치고는 그럭저럭 합당한 직업 부여라고 볼 수 있겠지.

그런 그녀였지만.

이런저런 많은 우여곡절과…….

아주 약간의 고통스러운 시간을 거친 결과.

[식재료 감별(강화)]

[영장류 - 인간종]

한때 괴물로 변했던 그녀는 다시금 인간이 되었고.

그 과정에서.

[각성자 : 이현진]

[직업 : 이상식욕자 Lv.11]

직업 또한 바뀌었다.

원래 가지고 있던 특성과 스킬은 모조리 사라진 결과.

지금 그녀가 가지고 있는 특성은 하나.

[특성]

[식탐]

먹은 대상의 특성과 스킬을 그대로 활용할 수 있으며.

적을 먹음으로써 일시적인 능력치 상승까지 붙어 오는…….

‘개사기 특성.’

나조차도 혀를 내두를 정도의 사기 특성이다.

내가 가진 스킬들 중에서도 가장 강력한 축에 속하는 [절대미각]과 비슷하지만.

몇몇 부분에서는 그녀의 특성 쪽이 우위에 있을 정도.

뭐, 그런 일을 거친 끝에.

이래저래 바쁘다 보니 특성에 대한 연구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한 상황임에도 불구.

그녀의 직위는 일반병이지만.

전투력은 분대원급 병사들…….

아니, 그걸 넘어.

이민재, 전광일, 서수혁과 같은 조장급의 활약을 보이고 있었다.

그리고.

그 점에서 한 가지 생각한 부분이 있었다.

‘저 직업, 암만 봐도 개사기란 말이지?’

특성이 하나뿐이긴 하지만.

그 특성이 워낙 사기 특성이니까.

실제로 이현진의 경우.

본래 괴물이었을 때의 스탯이 남아 있는 부분도 전투력에 영향이 크긴 하겠지만.

전투에서 활약할 수 있는 것은 저 특성이 9할 이상의 영향력을 차지했다.

‘원래라면 어떤 직업이 사기라는 걸 알아도 의미가 없지.’

애초에 직업이라는 게 랜덤으로 정해지다 보니까.

사기 직업인 걸 안다고 해서 뭐 할 수 있는 게 없잖냐.

어느 정도 경향성이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어디까지나 그뿐.

나만 해도 요리사라는 직업이 상당히 강력하다는 걸 알고 있지만.

실제로 요리를 했던 이들이 상당할 것임에도, 아직까지 만나 본 요리사는 나밖에 없었으니까.

특정 직업을 양성한다는 건 불가능한 일…….

일 테지만.

이 직업은.

조금 다를 수도 있다는 것.

‘만드는 과정이 굉장히 명확하다.’

이상식욕자를 붙잡고.

아주 약간 고통스러운 해부 작업을 거친 뒤.

그 녀석을 인간으로 돌림으로써 얻어진 직업.

그렇다면.

‘의도적으로 늘릴 수도 있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잠깐 했었거든.

물론.

당시에는 어디까지나 구상으로 끝났던 상상이다.

이상식욕자가 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걸 인간으로 돌리는 과정 역시.

덜덜덜덜덜…….

“그, 그런 짓을…… 또 저지를 생각이시라니…….”

“…….”

“차, 차라리 죽이는 게 나을 거예요. 그 꼴을 당할 걸 생각하면, 우욱…….”

……조금은?

고통스러운 것 같으니.

‘머리가 하얗게 새 버릴 정도라고 했으니까, 뭐.’

사실 지금도 그렇다.

지나가다 나와 눈이 마주치면 다리에 힘이 풀려서 넘어지는 경우가 왕왕 있거든.

나만 보면 PTSD에 시달리는 그녀가 용기를 내서 이렇게 반대표를 던질 정도라는 것.

‘평범한 병사들한테 실험하기에는 조금 그렇지.’

하지만.

저 계약자들의 경우에는 조금 다르다.

‘평범한 병사들도 아니고 마침 직업도 바꾸고 싶어 한다고 본인들 입으로 그랬고.’

그렇다면야!

얌전히 폐기될 뻔한 사기 직업 복사 프로젝트.

재기동할 만도 하잖냐.

정작 그 프로젝트의 프로토타입.

이현진의 경우에는 결사반대하는 모양새였지만.

그녀의 직위는 어디까지나 일개 병사.

그리고 난 군단장이다.

‘응~ 어쩌라고.’

그녀의 의견 따위는.

쿨하게 무시하고 진행할 수 있다는 거다.

“딱 기다려라.”

네 후배들.

금방 만들어 줄 테니까.

* * *

안색이 파리해진 이현진.

그녀를 어떻게든 진정시킨 뒤.

“이야. 식당도 있었네.”

나는 이들이 사용하던 건물들.

그중에서도 식당이 있는 곳을 찾아갔다.

‘나름대로 요리를 해 먹고 있긴 했나 보구만.’

저들도 결국은 인간이니까.

뭘 해 먹긴 해야 했던 것인지, 사용한 흔적이 꽤나 남아 있는 식당.

나는 그곳에 도착한 뒤.

……뭐.

요리사가 이런 곳에서 할 게 뭐가 있겠냐.

화르륵…….

곧바로.

요리를 시작했다.

“저 녀석들 입맛이 어떤지는 아직 모르겠다만.”

나름대로 전력을 다해 만들어 줄 생각이다.

조금 빠르게 기절시켜 버린 탓에 뭘 좋아하는지도 모르는 녀석들.

그렇다면.

그런 녀석들에게 해 줄 만한 음식은.

‘보통은 다 좋아할 만한 요리겠지?’

그리고.

군부대에서의 오랜 요리 경험을 쌓은 결과.

한 가지 알게 된 사실이 있다.

[요리가 완성되었습니다!]

[전쟁 요리사의 전력을 다한 지독한 공복의 돈가스]

돈가스 싫어하는 사람은.

어지간하면 없다는 것.

“이걸 가둬 둔 사람들 입에다가 하나씩 물려 주고 와라.”

“예.”

기절해 있는 이들인 만큼.

맛을 보지는 못하겠지만.

입에 물려 두면 잠결에라도 씹으면서 목 너머로 넘어가긴 하겠지.

그러면 효과는 적용될 터.

“혹시나 해서 말해 두는데, 절대 너희가 먹으면 안 되니까 주의하고.”

“예? 그건 왜 그렇습니까.”

“왜냐니, 그야.”

그 요리는.

내가 전력을 다해서 만든.

[지독한 공복의-]

“식욕 증진제거든.”

* * *

[지독한 공복]

그 효과에 대해서는 대충 예상할 수 있었다.

과거, 아리엘라의 토벌에 임할 때.

나는 [지독한 갈증]의 효과를 맛본 적이 있었으니까.

그때 느낀 바로는.

‘……이성조차 얼마 버티지 못한다.’

저 요리를 먹으면.

너무나도 배고픈 나머지.

주변에 먹을 수 있는 게 있다면 뭐든 가리지 않게 되겠지.

저들을 각방에 가둔 이유도 그것 때문이다.

만약 한 방에 가둬 뒀다면.

……서로가.

서로를 잡아먹게 될 테니까.

“전원, 명령 하나 한다.”

“예!”

“다 나가 있어.”

“……예?”

내 명령에.

병사들이 의아한 태도를 보인다.

“나가 있으라니.”

“무슨 의미십니까?”

“말 그대로야.”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원래 생각했던 명령을 내리기로 했다.

“이 근처에는 임시 거점을 마련할 만한 분대 둘 정도만 잔류한다. 나머지는 전원 비마나로 복귀하도록.”

“그게 갑자기 무슨……!”

“잔류하게 되는 병사들 역시 마찬가지야. 임시 거점을 마련하되, 최대한 이 건물에서 떨어져라.”

그 말에.

병사들이 말도 안 된다는 듯 고개를 내젓는다.

“군단장님 혼자 남겠다는 뜻이십니까?”

“뭘 하시려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어디서 괴물이 나타날지도 모르는데 혼자 남는다니.”

“……그거 때문에 혼자 남으려는 건데.”

“예?”

“아무튼.”

내 위치가 위치다 보니.

병사들은 내 개인 행동을 달가워하지 않는다만.

“나를 제외한 병사들은 모두 이 건물이 시야에서 보이지 않을 때까지 멀어지도록.”

“그, 그렇게 말씀하셔도.”

“이건 명령이다.”

“……!”

솔직히 말하면.

개인 행동 정도는 이미 많이 해 봤거든.

“선임이 말하는데 대답 안 하냐?”

“……충성.”

“큭큭. 좋아.”

조금 강압적이라 미안하긴 하지만.

그래야만 하는 이유도 있거든.

내가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아리엘라의 피를 신나게 빨아 재꼈던 것처럼.

저들은 괴물을 먹으면 괴물이 된다는 사실을 알고 있더라도.

괴물의 사체를 먹게 될 테지.

그리고.

그렇게 된다면…….

‘뭐, 조금 난리 나는 거지.’

모든 병사들을 내보낸 뒤.

나는 계약자들을 가둬 둔 건물에 혼자 남았다.

복도형 아파트의 형태를 한 건물.

그 한 가운데는 다른 아파트의 입구들을 모두 볼 수 있는 작은 놀이터 같은 곳이 있었다.

“읏차.”

나는 그곳에 간이 텐트를 하나 설치한 뒤.

그곳 앞에 의자 하나를 두고.

하염없이 시간을 때우기로 했다.

‘심심한데 미뤄 뒀던 재료 손질이나 하면서 기다리지 뭐.’

겸사겸사 [그림자 장막] 속에 넣어 놨던 재료들을 손질하거나.

전투식량을 만드는 등의 소일거리를 하며, 시간을 보내고.

그렇게.

3일쯤 지났을까.

-……그르륵.

“오? 슬슬 시작인가.”

조용하기만 했던 주변 일대에서.

괴물의 울음소리 같은 것이 들리기 시작했다.

* * *

-크뤄어어억…….

-꾸에에엑

“3일 정도 걸렸나. 생각보다 빠르네.”

이현진이 괴물이 되는 데에는 상당한 시간이 걸렸다.

괴물이 되기 위해 먹어야 하는 괴물의 양은 꽤나 많다는 것.

그럼에도 이 정도로 빠르게 반응이 나온다는 건.

……피식.

“내 요리가 꽤 맛있었나 보지?”

내가 저들에게 먹인 [특별 소스]

[지독한 공복]의 효과겠지.

저들은 말 그대로.

배가 터지기 직전까지 괴물의 사체들을 먹어 댔을 터.

한 번 그렇게 괴물을 집어삼키기 시작하면.

그걸로 충분하다.

[지독한 공복]의 효과가 사라진다고 한들.

그만한 괴물을 섭취해 버린 이상.

‘이미 괴물 고기를 먹으면 안 된다는 생각도 남아 있지 못할 테니까.’

괴물들의 소리가 들려오자.

나는 의자에서 몸을 일으키며, 스트레칭을 시작했다.

“자, 그럼…….”

저들이 언제 완벽한 괴물이 될지.

그 시기를 확인하는 건 어렵지 않은 일이다.

이상식욕자들은 모두 엄청난 힘을 지닌 괴물들인바.

그렇게 괴물이 된다면.

아마, 곧.

콰아아아아아앙!

“오!’

1번 타자.

등장이다.

“머, 머글 거……!”

내 예상대로.

[맥]의 마력으로 강화된 철들로 봉인해 둔 건물들.

그 건물의 벽을 박살 내 버리며 나타나는 거구의 괴물.

“머글 거, 내나……! 아니면……!”

“이것도 오랜만이네. 저 멍청한 말투.”

기괴할 정도로 부풀어 오른 살점.

괴물과 인간의 것이 뒤섞인 추한 모습.

인간이 아니게 되어 버린 괴물이.

나를 향해 덤벼들며 소리친다.

“너라도…… 내나!”

쿠웅!!!

엄청난 속도로 내게 쇄도해 오는 괴물.

‘이 이상식욕자들은…… 엄청나게 강하단 말이지.’

평범한 인간이 이상식욕자가 되었을 때.

당시 약탈자들의 리더 역할을 하고 있던 광진은.

광일이를 포함한 부대원들의 협공을 무난하게 이겨 냈다.

‘각성자였던 이현진은 그보다 더했지.’

백여 명에 가까운 뱀파이어들이 전력을 다해 전투를 벌였음에도 불구.

뱀파이어 전력의 상당수가 먼지로 돌아가 버렸으니까.

‘이곳에 있던 100명이 넘는 계약자들은…… 레벨과 스탯만큼은 준수했지.’

그들 모두가 이상식욕자가 되었다면.

아무리 그래도 이현진보다는 훨씬 약하겠지만.

처음 만났던 이상식욕자.

광진보다는 훨씬 더 강할 터.

‘그런 괴물이 무려 100마리가 넘는다, 라…….’

그게 부대원들을 뒤로 물린 첫 번째 이유다.

저 정도 괴물들을 상대로 싸운다면.

아무리 우리 부대원들이라도 피해가 생길 수밖에 없을 테니까.

그러니.

탁탁.

“뭐하냐, 빨리 안 나오고.”

토벌하려면 아군도 큰 피해가 날 게 뻔한 강력한 괴물들.

악마 하수인들을 토벌할 때보다도 더 위험한 작전.

이런 작전에는…….

-휴, 이럴 때만 저희 차례로군요.

잃어도 상관없는.

그런 전력을 투입해야 하는 법.

“그래서 불만이냐?”

-아니라고 하면 거짓말이 되잖아요? 권속이 주인님한테 거짓말을 할 수는 없는 법이랍니다.

그림자 속에서 기어 나와.

어느새 내 옆에 선 흡혈귀.

-대신…… 불만의 방향은 조금 다르지 않을까 싶군요.

“응?”

뱀파이어 남작이.

시린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저희를 조금 더, 자주 불러 주셨으면 하던 참이라.

“하하. 그건 서운할 만하네.”

지난번.

이현진을 제압하기 위한 전투에서는 상당히 많은 권속을 잃어야만 했던 그녀다.

꽤나 분해하는 모습이었지.

“부디 기대하시길.”

“응?”

“이번에 전투는. 저번과는 조금 다를 테니까요.”

하지만, 그녀의 말대로.

이번엔 조금 양상이 달라질 거다.

[뱀파이어 남작]

귀족이라 부르기도 애매한 작위, 준남작이었던 그녀.

하지만 그 전투 이후.

그녀는 진정한 귀족이라 부를 수 있는 초입…… 남작으로 승작하는 데 성공했다.

그 후에도 마찬가지.

녹색갈기 부족과 싸우며 그 피를 대량으로 흡수한바.

이전과는 격이 다른.

강력한 마력이 느껴지고 있었다.

이 정도면…….

흠.

“다음 승작까지 얼마 남지 않았을 것 같은데?”

“정확하십니다.”

그렇다면.

내게 달려드는 괴물.

그 거리가 가까워지는 것을 보며.

태연하게 묻는다.

“저 녀석들 피 정도면 어떠냐.”

“후후…….”

그녀가 피 냄새나는 웃음을 짓자.

변화가 시작되었다.

“차고 넘칠 정도가 아닐까 싶습니다.”

어느덧 해가 진 시간.

대충 만든 간이 텐트의 램프 하나에 의존해 있던 내 그림자가.

길게 늘어지기 시작하고.

“……주인님의, 주인님께.”

“충성을.”

일대를 모두 덮을 정도로 늘어진 거대한 그림자.

그 속에서.

붉게 타오르는 눈동자가 하나둘씩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크르륵…….

늘어진 그림자 속에서 모습을 드러낸 형체들.

과거에는 갱생 불가능하다 판정된 범죄자들뿐이었으나.

-주인님의 주인님께, 충성을!

-쿠워어어어억!!!

녹색갈기 부족은 물론.

인간형에 가까운 수많은 종류의 괴물들.

한때는 인류의 적이었을 괴물들이.

내게 충성을 다짐하며 전투 태세를 갖춘다.

“자…….”

나는 양손에 두 자루의 식칼.

[독고구식]과, [검정중식]을 대충 꼬나 쥔 채.

한 걸음 앞서 나가며 말했다.

“요리, 시작하자.”

그 말과 함께.

-승리가 아니면, 죽음을!

-크뤄어어어어억!

“주인님의 주인님께, 영광을!”

“끼요오오옷!”

괴물과 인간의 형체를 가리지 않는.

붉은 눈동자의 군대.

그들이 괴물들의 토벌…….

아니.

요리에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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