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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림에서 나노머신-20화 (20/78)

20. 폐성으로 가는 길

20. 폐성으로 가는 길

이한의 말에 문사는 인명록을 훑어 보았다.

그러나 이한의 이름을 찾을 수 없었다.

“이한? 그런 사람은 낭인방에서 보낸 적이 없는데?”

문사의 말에 대번에 분위기가 긴장되었다. .

안에 모여있던 사람들 중 몇은 슬그머니 자신의 무기에 손을 댔다.

그러나 이한의 태도는 당당하기만 했다

“나는 돌산에 있는 폐성에서 많은 사람들이 행방불명되었다는 말을 들었소. 그런데 마침 그곳으로 조사를 하러 간다는 사람들이 있다고 해서 한 손 거들러 온 것뿐이오. 만약 내가 미덥지 않으면 나가라고 하시오. 협을 행하는 것은 혼자서도 가능한 일이니까.”

“무공을 익힌 자가 의협심을 발휘하는 것은 칭송받아 마땅한 일이지. 그런데 자네는 그런 말을 어디서 들은 건가?”

“돌산에 있는 폐성 근처를 지나가는데 노인 하나가 울고 있더이다. 근처에서 살고 있는 감나무집 염씨인데 병사들이 그의 큰아들을 폐성으로 끌고 간 지 벌써 보름이 지났는데도 아직 돌아오지 않고 있다고 내게 호소했소. 근방에 그런 사람이 적지 않다는 말도 들었소.”

“자네들 중에 폐성 근처에 살고 있는 감나무집 염씨를 알고 있는 사람 있나?”

문사의 질문에 모여 있던 낭인들 중 몇 명이 실제로 그런 성씨를 가진 사람이 폐성 근처에 살고 있고, 그에게 아들이 여럿 있는 것도 맞다고 확인해 주었다.

심지어 그 집에는 오래된 감나무가 세 그루 있다는 것까지 함께 말이다 .

그 말을 듣자 이한은 지금 모여있는 낭인들의 상당수가 이곳 토박이임을 알 수 있었다.

아무래도 지역 내에서 주먹 좀 쓰고, 무기 좀 휘둘러 본 사람들까지 끌어모은 모양이었다.

“그런데 이한, 자네는 어떻게 호가장에서 사람들을 모으고 있는 것을 알았나? 자네는 이곳 사람도 아니지 않은가?”

“이미 소문이 파다하오. 내가 염씨 노인의 말을 듣고 폐성으로 가려고 하니까 그 사람이 이곳을 알려 주었소. 그런데 이렇게 오늘 출발하려고 모여있으리라는 것까지는 몰랐지.”

“사람을 모을 때 그렇게 입조심을 부탁했는데······”

문사는 난처한 표정으로 한숨을 쉬었다.

사람을 모으려고 나선 지 불과 이틀만이었다.

그런데 이렇게 빠르게 소문이 퍼지다니!

사람을 모으다 보면 어느 정도 소문이 도는 것은 어쩔 수 없는 법이다.

그 정도는 그도 감안하고 있었다.

하지만 지나가던 외지인이 소문을 듣고 찾아올 정도로 널리 퍼질 줄은 그도 예상하지 못했다.

그는 한숨을 쉬면서도 그가 해야 할 일을 처리했다.

이한의 이름을 인명록에 추가로 기록하고, 보수에 대한 일을 알려주었다.

“선금은 은 한 냥. 일을 마치면 은 두 냥을 추가로 받을 걸세. 혹시 문제가 생겨서 잔금을 본인이 직접 받지 못할 경우 대신 받아줄 사람이 있나?”

문사의 질문에 이한은 은밀전의 사람들이 떠올랐다.

설향, 은밀전주, 마 대주.

“없소.”

“그렇다면 잔금은 직접 받는 것으로 하지. 일단 선금부터 받게.”

은화를 받은 이한은 모여있는 사람들에게 갔다.

한패로 공인받은 터라 방금 전의 불온한 분위기는 사라진 후였다.

오히려 슬쩍 말을 걸며 친분을 만들려는 자가 있을 정도였다.

“나는 이곳 서명 출신으로 동료들은 나를 거봉이라고 부르지. 형장은 별호가 어떻게 되시나?”

“무공을 익힌 지 얼마되지 않아서 별호라고 할 만한 것도 없소. 그런데 거봉이라는 별호를 보니 무기를 몽둥이로 쓰시는 모양이오?”

이한의 말에 거봉은 자신의 무기를 들어 보였다.

중간중간 못을 박아넣어서 흉악하게 생긴 커다란 몽둥이였다.

“동네 무관에서 주먹질도 좀 배웠지만, 이리저리 구르다 보니 내게는 역시 몽둥이가 손에 맞더라고. 그래서 원래 내 별명이었던 거봉이 그대로 별호가 되어 버렸네. 사실 이것은 내 친구들만 아는 것인데 내가 좀 크거든. 그래서 별명이 거봉이었는데 그게 별호까지 될 줄은 나도 몰랐지. 크하하하.”

[뒷부분은 거짓입니다.]

저런!

이한은 동정하는 눈빛으로 거봉이라는 사람을 바라보았다.

거봉은 여러가지 면에서 전형적인 삼류 무림인이었다.

근력과 무기에 전적으로 의존하고 하체는 형편없었다.

그냥 힘 좋은 일반인이 외공을 익힌 것에 지나지 않았다.

게다가 별호라니!

별호는 다른 사람이 불러주는 것이다.

일류 무림인조차 별호가 없는 경우가 많은데 스스로 별호를 만들어서 부르고 있으니 허풍이 심한 사람이었다.

하지만 조금 천박하고 말이 많았을 뿐, 심성이 나쁜 사람은 아니었다.

오히려 그의 수다 속에서 얻어듣는 정보가 적지 않았다.

이한은 그의 수다에 적당히 호응하면서 이곳에서 벌어진 일에 대한 전말을 정리했다.

그런 이한의 태도를 오해했는지 거봉은 이한을 좀 더 친근하게 대했다.

즉, 좀 더 말이 많아졌다는 의미다.

“이 친구가 무공을 익힌 지 얼마되지 않았다고 하더니 긴장을 했구만. 걱정할 것 없네. 여기 모여 있는 사람들은 나름 칼밥을 먹던 가락이 있어서 자기 몫을 충분히 하고도 남을 사람들일세. 게다가 호대인이 초청한 무림인도 대단하신 분들이라고 하니 우리 같은 사람은 그분들 뒤만 잘 따라가면 돼.”

“폐성에는 병사가 있다고 들었소만?”

“원래 그곳에 있던 병사의 수가 오백 명은 됐지만 얼마 전 대부분의 병력을 뺐다네. 지금은 백 명도 남지 않았을걸? 오십이나 될까? 잘은 모르지만 경사로 돌아갔다는 소문이 돌았지. 그곳에 있었던 기분 나쁜 도사들 역시 보이지 않더군. 사실 그래서 이렇게 우리가 몰려갈 수도 있는 걸세. 아무리 호대인의 인맥이 대단하다고 해도 이렇게 경사에서 가까운 곳에서 대놓고 병사들과 충돌할 수는 없지 않은가.”

전근대의 향촌 사회에서는 비밀이 없다.

워낙에 혈맥으로 밀접하게 연결이 되어 있는 데다가 태어난 곳을 떠나는 일이 거의 없다 보니 동네 사람이 모두 한 가족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 명이 아는 일은 얼마 지나지 않아 동네 사람이 다 알게 된다.

심지어 폐성에 주둔하고 있던 병사들에 대한 일은 군문의 기밀일 텐데도 그렇다.

어떻게든 소문이 밖으로 새어버리자 이렇게 허접한 삼류 무림인에게까지도 내부 사정이 다 퍼질 정도다.

단지 이곳, 서명 출신이라는 것만으로 말이다

이한은 이미 감나무집 염노인의 사례를 경험해서 대충 그럴 것이라고 생각하고는 있었지만, 현실은 그의 예상보다 더했다.

그렇다면 호장주 역시 폐성에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대충은 짐작하고 있다고 봐야 한다.

호장주는 이곳 서명의 유력자들 중에서 가장 명성이 높은 자였다

평범한 사람들이 알고 있는 것보다 더 많은 것을 알고 있을 것이다.

이한은 주변을 둘러보았다.

30명 남짓한 낭인들이 흩어져서 각자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모두 무기를 쓰는 일에 능숙하고 사람을 죽이는 일도 마다하지 않는 거친 자들이었다

대부분 완력으로 무기를 사용하는 삼류 무림인에 지나지 않겠지만, 이들 중 몇 명은 내공을 익히고 있다.

그런데 이런 자들만으로 적어도 수십의 병사들이 지키고 있을 폐성에 몰려가서 조사를 한다고?

아무래도 불가능해 보였다 .

병사들이라고 해서 이런 삼류 무림인들보다 못할 것은 없다

무리지어 부딪친다면 이런 삼류 무림인들보다 병사들이 더 우월할 수도 있다.

병사들은 집단으로 싸우는 법에 익숙한 자들이니까.

이한은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말이 떠올랐다.

아마 호장주가 믿는 것은 여기 있는 낭인들이 아니라 외부에서 초빙해왔다는 무림인들일 것이다.

낭인들은 방패 아니면 뒷정리용일 것이고.

어쩌면 병사들과의 싸움도 없을지 모른다.

이미 높으신 분들끼리 양해가 되어서 서로 체면만 차리는 선에서 투덕거리다가 행방불명되었다는 사람을 몇 명 구해서 돌아오는 것으로 끝날 수도 있다.

아니면 두 가지 모두일 수도 있고.

이한은 호장주의 초청객들이 궁금해졌다.

그들의 수준을 알게 되면 어느 쪽이 맞는 가정인지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이한의 궁금증은 오래지 않아서 풀렸다.

초청되었다던 무림인들이 호장주 함께 나타난 것이다.

모두 7명이었다.

그리고 이한은 그들을 본 순간 병사들과의 싸움이 없을지도 모르겠다는 가정을 지워버렸다.

체면만 차리는 선에서 투덕거리다가 끝내기에는 너무 강한 자들이 등장했기 때문이다

모습을 드러낸 무림인들 중 셋은 일류급의 무림인은 충분히 될법한 자들이었다.

심지어 절정급은 아닐까 싶은 자까지 하나 섞여 있었다.

이한의 수준이 아직 낮아서 확신할 수는 없었지만, 나노는 그들 중 하나는 황보상 못지않은 기파를 가지고 있다고 단언했다.

나노가 지적한 자는 늙은 도사였다.

그런데 새로 등장한 무림인들과는 말을 섞어볼 틈도 없었다.

어딘지 모르게 화가 난 것처럼 보이는 늙은 도사가 곧장 정문을 박차고 폐성으로 향했기 때문이다.

나머지 무림인들 역시 그 뒤를 따라 움직였다.

“뭣들 하나! 어서 움직이게.”

낭인들 중 우두머리를 맡고 있던 이의 고함이 뒤늦게 터져 나왔다.

아무 명령이 없어서 어리둥절하고 있던 낭인들이 허겁지겁 그들의 뒤를 따라 달려갔다.

가장 마지막으로 움직인 자들은 호장주와 문사복의 남자였다.

“시간이 부족했을 텐데도 끌어모은 낭인들의 수준이 괜찮아 보입니다. 총관.”

“이곳 낭인방주의 실력이 나쁘지 않습니다. 충분한 돈만 쥐여준다면 어떻게든 요구를 맞추어 내고야 마는 사람이지요. 하지만 그래봐야 삼류입니다. 조금이라도 내공을 수련한 자는 몇 명 되지도 않습니다.”

“그거라도 어디입니까. 총관이 청륜 도장의 억지를 맞춰주었기에 그나마 체면을 차릴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청륜 도장도 참 너무합니다. 아무리 내가 무당의 속가 제자라고 하더라도 갑자기 나타나서 폐성을 조사하게 사람을 내놓으라니! 청륜 도장은 무당파와 같은 곳이 세상에는 많지 않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무당파가 아니에요. 고수가 필요하다고 해서 은거하고 있던 고수가 떡하니 나타나고 하는 그런 곳이 아니란 말입니다.”

호장주의 어투는 못마땅한 기색이 역력했다.

[아무래도 소문이 좀 잘못된 것 같습니다.]

“그러게.”

초청을 한 것이 아니라 요청을 받은 거였다.

아마 지역사회에 대한 영향력을 유지하기 위한 호장주가 자신의 역할을 좀 부풀린 것이리라.

주변에 활짝 귀를 열어놓고 있던 나노는 호장주와 총관 사이의 대화를 이한에게 중계해 주었다.

이한은 새삼스러운 눈으로 앞에서 달려가는 무림인들을 주목했다.

무당파라니!

저들은 대진국에서 왔다고 사기치던 가짜 도사들에게 밀려난 진짜 도사들이었다.

황궁에서 나온 첩보를 추적해서 도착한 곳에, 황궁에서 밀려난 도사 역시 이미 도착해 있었다.

이한은 자신이 발견하게 될 것이 무엇인지 진심으로 궁금해졌다.

나지막한 돌산 위에 자리잡고 폐성은 이미 오래전에 제 기능을 상실한 성채였다.

하지만 그래도 아직 남아 있는 성벽 덕분에 안으로 들어갈 수 있는 곳이 몇 곳으로 제한되어 있었다.

그러나 사람들은 폐성 안으로 몰래 들어갈 생각이 없었다.

그들은 서슴없이 가장 큰 입구로 향했다.

그곳에는 오래전에 망가져 버린 성문을 대신하는 목책이 있었다.

높이는 2장 정도.

그러나 그 정도의 높이는 무공을 익힌 무림인에게는 없는 것이나 다름없다.

목책의 입구가 순식간에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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