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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림에서 나노머신-22화 (22/78)

22. 강시가 있다.

22. 강시가 있다.

뒤엉켜서 싸울 때 상대방을 이빨로 무는 것은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다.

내공이 없는 삼류 무림인이 손에 쥔 무기조차 잃으면 어쩌겠나.

물기라도 해야지.

그러나 이렇게 여러 명에게 둘러싸여서 제압당하는 와중에 상대방을 문다는 것은 ‘제발 나 좀 죽여달라’는 이야기와 다르지 않다.

목을 물린 낭인이 비명을 지르는 순간 주변 낭인들의 칼날이 병사의 몸을 마구 찌르고 베었다.

옆구리와 등, 심지어 옆에서 목을 관통하듯 찌른 칼날도 있었다.

즉사해도 이상하지 않은 공격이었다.

하지만 병사는 고통을 느끼지 않는 것 같았다.

심지어 움찔하는 반응조차 없었다.

자신이 달라붙은 채 옥죄고 있는 낭인의 목을 더욱 탐욕스럽게 물어뜯고 피를 빨았다.

주변의 낭인들은 그제서야 뭔가 이상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하지만 잡혀있던 낭인은 이미 반쯤 죽은 것이나 다름없는 상태였다.

아직 숨이 붙어있기는 했지만 목을 한 움큼이나 뜯겨나간 사람이 살아날 것이라고는 누구도 생각할 수 없었다.

“이런!”

뒤늦게 끼어든 칼이 병사의 목을 잘랐다.

칼을 휘두른 자는 청륜 도장과 함께 온 무림인 중 하나였다.

그는 머리를 잃은 병사의 목을 살펴보더니 심각한 얼굴이 되었다.

“청륜 사숙. 아무래도 강시인 것 같습니다.”

이곳에 온 낭인들이라면 사람 몇 명 정도는 죽여본 자들이다.

설사 인맥을 따라다니며 어영부영 머릿수만 채우던 자라고 해도 사람이 죽어 나가는 현장에 익숙한 자들이었다.

사람의 목이 잘리면 피가 분수처럼 솟는다.

큰 혈관이 지나는 곳을 잘라도 피가 뿜어져 나온다.

이곳에 있는 사람들이라면 경험으로라도 알고 있는 상식이었다.

그런데 병사의 목을 잘랐는데도 피가 솟지 않았다 .

그저 끈적하고 검붉은 액체가 흘러나왔을 뿐이다.

목이 잘린 병사의 상태가 이상하다는 것을 모를 사람은 이곳에 아무도 없었다.

그래도 강시라니!

그런 것은 이야기로나 듣던 것이다.

실제로 강시를 본 사람은 여기에 아무도 없었다.

강시를 다루는 문파도 이름이나 남아있을 뿐이다.

진주 언가의 강시술은 이미 명맥이 거의 끊겼다고 하고, 모산파는 백성들에게 길흉화복을 점쳐주고 간혹 부적이나 그려주는 문파가 되어 있었다.

아직 강시당이 멀쩡하게 남아있기는 하지만 그들은 모습도 잘 드러내지 않는 자들이었다.

그런데 강시라고?

청륜은 미끄러지듯 달려와서 죽은 자를 살폈다.

하지만 잠시 후 그는 고개를 저었다 .

“글쎄. 내가 아는 바와 달라서 단정하기가 어렵구나. 설사 강시라고 해도 평범한 강시는 아닐 것이다.”

“그렇습니까?”

“갓 죽은 사람의 몸에 내공을 불어넣어 백(魄)을 잡아놓은 상태로 만들어 놓은 것을 일컬어 강시라고 한다. 원래는 외지에서 죽은 자를 썩지 않은 상태로 고향에 돌려보내기 위한 술법이었다고 하지. 강시가 술사의 지시에 따라 움직인다고 해도 어쨌든 죽은 사람과 다르지 않다. 그런데 이것을 봐라.”

청륜은 머리가 잘려 나간 병사의 목을 가리켰다.

“피가 정상이 아니다. 마치 멀겋게 쑨 죽이나 꿀처럼 끈적이고 되직하게 흐른다. 이것은 단순히 내공을 이용해 백을 잡아놓은 것이 아니라 이 사람의 몸에 무엇인가 수작을 부렸다는 것을 의미한다. 어쩌면 죽은 자가 아니라 살아 있는 자를 강시로 만들었는지도 모르지.”

“그렇다면!”

“그래. 북면방어사와 가짜 도사들뿐만 아니라 사이한 믿음을 가진 자들도 끼어든 모양이다.”

백성을 미혹해서 이용하는 사교들 중에도 강시를 만들 수 있는 자들이 여럿 있다.

그들은 생강시라고 해서 살아있는 자를 강시로 만들곤 했다.

그들 중 하나가 이곳에 끼어들었을 가능성이 컸다.

강시.

그것도 어쩌면 살아있는 사람으로 만들었을지도 모르는 강시.

가짜 도사들의 목을 치기 위해서는 명분이 필요하다고 말하던 자들에게 가져다줄 좋은 증거를 찾은 것이다.

청륜은 주변을 둘러보았다.

어둠을 꿰뚫어 보는 그의 눈에서 빛이 번득였다.

내공을 일으켜 기세를 북돋은 자의 모습이었다.

“앞으로는 횃불이나 들고 다닐 정도로 여유롭지 않을 것이오. 우리는 좀 더 안쪽을 살필 생각이니 밤눈이 어두운 자들은 밖으로 나가시오.”

청륜의 말에 낭인들 대부분이 밖으로 향했다.

남은 자들은 얼마 되지 않았다.

그러나 실제로 싸울 수 있는 전력을 생각하면 별 차이는 아니었다.

삼류 무림인 열 명을 갖다 놓아도 이류 무림인 하나를 당해내기 힘든 것이 보통이다.

그런데 절정고수라면?

그 위력은 상상을 불허한다.

그것은 말로 들어서는 절대 이해할 수 없다.

겪어보아야 비로소 이해할 수 있는 종류의 것이다.

청륜 혼자만으로도 이곳에 있는 자들을 모두 상대할 수 있을 정도랄까.

청륜 역시 그러한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무당 장문인이 괜히 청륜과 사형제들을 꼭 짚어서 속세로 내보낸 것이 아니다.

이한은 폐광에 남은 쪽이었다.

낭인 중에 남은 자는 이한까지 해서 네 명뿐.

나머지는 청륜과 함께 온 무림인들이었다.

그들은 모두 함께 뭉쳐서 폐광 깊숙한 곳을 향해 이동했다.

폐광의 깊이는 상당했다.

하지만 벽이라든가 천장 역시 손을 대서 다듬은 흔적이 적지 않게 보였다.

얼마 들어가지 않아서 마주친 광장처럼 생긴 공간에는 아예 숙소를 지어놓기까지 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노력이 들어갔을지를 생각하면 그저 놀라울 뿐이었다.

그러나 이곳에 온 사람들이 원하는 것은 보이지 않았다.

아무리 안으로 들어가도 강시는커녕 시체조차 남아있지 않았다.

“이상하군. 미끼라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나?”

다시 좁아진 폐광의 통로를 걸어가던 청륜의 혼잣말에 이한 역시 고개를 갸웃할 수밖에 없었다.

이한도 청륜처럼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눈앞에서 미끼를 흔들어서 유인한 후 덮친다.

간단하지만 효과적인 방법이다.

미끼임을 뻔히 예상하는 사람들조차 이렇게 안으로 들어왔을 정도니까.

물론 청륜은 미끼를 흔든 자를 거꾸로 잡아먹을 자신이 있다고 생각했기에 들어온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깊숙이 들어왔는데도 아무런 반응이 없으니 오히려 불안하기까지 했다.

무엇인가 잘못 생각하고 있던 것은 아닐까?

그때였다.

청륜이 갑자기 멈춰섰다.

동시에 나노가 요란하게 경보를 울리기 시작했다.

[종류 미상의 수면가스가 검출되었습니다. 중추신경계에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즉시 호흡을 멈추고 안전한 곳으로 대피하십시오. 해독을 시작합니다.]

“호흡을 멈춰라! 정신을 미혹하게 하는 향이 떠돌아다닌다.”

청륜이 고함을 지르기가 무섭게 어둠 저편에서 인기척이 들리기 시작했다.

신발로 바닥을 끌듯이 걷는 소리였다.

그것도 한두 사람이 아니었다.

[경고! 벽에서 심장소리가 들립니다. 벽에서 떨어지십시오.]

이한은 즉시 칼을 뽑은 후 통로 가운데로 움직였다.

그러나 낭인들은 오히려 통로의 벽에 붙었다.

경험 많은 낭인답게 공격받는 방향을 줄이려는 반응이었지만 그것이 오히려 독이 되었다.

통로의 벽이 무너지며 강시가 낭인을 덮쳤다.

거의 동시에 통로의 전면을 채우며 강시들이 몰려왔다.

청륜은 몰려오는 강시들 앞에서 검을 뽑았다.

무당은 하나의 문파가 아니다.

무당산에 머무르며 선도를 추구하던 여러 갈래의 도맥이 모여서 만든 협의체 비슷한 것이 바로 무당파다.

그래서 무당파의 도사라면서도 무공을 모르는 경우도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

심지어 사교도 못지않게 사술에 능통하고 모산파 못지 않게 점복술에 능한 도사까지 있을 정도니 무당의 포용력은 종교에 기반을 둔 문파들 중에서는 으뜸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게 무당산에 머무르는 도맥 중에 검에 미친 자들이 있다.

검과 하나 되어 검선으로 우화등선하는 것이 목표인 자들이었다.

검선이 사용하는 검법.

태극혜검.

태극혜검을 완성하기 위한 과정에 있는 검법.

태청검.

태청검을 익히기 위한 바탕을 만드는 검법.

유운검.

청륜의 검은 태청검이었다.

청륜의 검에서 빛이 나기 시작했다.

부드럽게 움직이는 검이 너울치는 빛의 흔적을 남겼다.

파도가 치고 물보라가 흩날리는 것 같이 난무하는 빛 사이에서 강시들이 접근도 하지 못하고 우르르 무너졌다.

목이 날아가고 팔이 잘렸다.

가까이 접근하는 것은 다리가 뚝 떨어지기도 했다.

그것은 일방적인 폭력이었고, 항거할 수 없는 재앙과도 같았다.

청륜이 무리의 가장 앞에 서서 몰려오는 강시들을 처리하고 있을 때 다른 사람들은 벽을 무너뜨리며 튀어나온 강시들을 상대하고 있었다.

청륜과 함께 온 무림인들은 별 어려움없이 강시들을 베어 넘겼다.

이한 역시 저항하지 않는 자를 베는 느낌이었다.

익히고 있는 모든 것을 여유있게 풀어놓을 수 있었다.

삼단삼극권을 행하는 손에 검을 들려놓으면 그것이 곧 검법이다.

이한의 검은 강맹했다.

궤적은 유려했지만 풍기는 기세는 흉흉했다. .

근처에 접근하는 강시들이 순식간에 조각이 나며 쓰러졌다.

그러나 다른 이들과 달리 낭인들은 낭패를 겪고 있었다.

벽에 붙었다가 갑자기 기습을 당했기 때문에 강시들이 달라붙는 것을 피하지 못한 것이다.

낭인들은 비명을 지르며 강시를 떨구려고 했지만 아까 당한 낭인처럼 주변의 도움이 있지 않고서는 강시를 떼어내는 것이 불가능했다.

낭인들의 비명이 조금씩 잦아들었다.

주변의 강시들을 모두 처리한 후에야 낭인들에게 달라붙어 있던 강시까지 처리했지만 이미 늦은 후였다.

강시들이 달라붙어 있던 낭인들은 모두 잠이 들어 있었다.

공기 중에 퍼진 미혼향이 낭인들을 재워버린 것이다.

한사코 피와 살을 탐하던 아까의 병사와는 다른 종류의 강시였던 것이다.

벽에서 나온 강시들이 한 일은 그저 눈앞의 사람을 잡고 늘어지는 것이 전부였다.

[생포를 목적으로 한 것이 아니었을까 생각하는 중이네.]

이한에게 귓가에 낯선 소리가 들려왔다.

청륜의 전음이었다.

청륜을 향해 고개를 돌린 이한에게 계속 전음이 날아왔다.

[그런데 자네는 황보세가와 어떤 관계가 있나?]

과연 검을 수련의 방편으로 삼은 자다웠다

이한이 검을 휘두르는 모습을 본 것만으로도 검법이 어디에서 비롯되었는지 알아챈 것이다.

“인연이 있어서 삼극권을 익혔을 뿐 황보세가와는 직접적인 관련이 없습니다.”

[호흡을 멈추게. 쓰러져 있는 낭인들이 보이지 않은가?]

“제게 작은 재주가 있어서 잠깐 정도는 괜찮습니다.”

청륜은 이한이 신기하게 느껴졌다.

나름 쓸만하다고 생각해서 데리고 다니던 무당 속가의 제자들조차 호흡을 조절하며 버티고 있을 뿐인데, 일개 낭인이 미혼약이 퍼진 곳에서 멀쩡하게 있다니.

겉으로 보이는 것보다 재주가 많은 사람임이 분명했다.

[자네의 검에서 오행권이 보여서 궁금했을 뿐이네.]

“그저 조금 익혔을 뿐입니다.’

충분한 증거를 확보했으니 더 이상 안으로 들어갈 필요는 없었다.

일행은 의식을 잃은 낭인들을 데리고 밖으로 향했다.

그러나 아직 진짜는 시작도 하지 않은 모양이었다.

[외부에서 전투소음이 들립니다.]

나노의 알림과 거의 동시에 청륜 도장의 고개가 들렸다.

“준비해라. 밖에서 싸우는 소리가 난다!”

청륜은 엄청난 속도로 달려나갔다.

이한 역시 그를 따라 달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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