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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림에서 나노머신-27화 (27/78)

27. 가짜 도사들

27. 가짜 도사들

보기만 해도 죽이겠다며 달려드는 자들이 없는 세상이라니!

그는 정체를 드러내는 것만으로도 공포와 혐오가 어린 시선을 받아야 했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무지렁이 촌부조차도 경계하며 도망치려고 했다.

기사는 당연하다는 듯이 칼부터 뽑았고, 마법사는 대화조차 거부한 채 공격해 왔다.

그런데 이곳에서는 귀족이나 받을 수 있는 대우를 받고 있다.

상상도 해본 적이 없는 일이었다.

말론이 이곳에 온 지 벌써 13년이 다 되어 간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조건적인 적의가 없는 자들을 대하는 것은 아직도 익숙하지 않았다.

가끔은 놀랍기까지 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차원을 넘으면서 영혼을 옥죄고 있던 계약의 사슬도 끊어졌다.

자신이 가진 힘의 근원과의 연결이 끊어진 것이다.

그 사실을 느꼈을 때의 당혹스러움과 불안은 패닉, 그 자체였다.

그러나 얼마 가지 않아 이것도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쓸 수 있는 힘은 현격하게 줄어들었다.

그러나 주기적으로 찾아오던 파괴와 흡혈에 대한 욕구 또한 현격하게 줄어들었다.

목이 마른 자가 시원한 물을 마시고 싶다는, 딱 그 정도의 욕구였다.

비록 이곳에 온 것은 사고 때문이었지만, 말론은 이곳에 와서야 다른 방식으로 살아가는 방법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곳에서 살아가는 것이 훨씬 행복했다.

그게 문제였다.

“3년 후. 그러나 반드시 성공한다는 보장은 없겠지. 우리가 이곳에 떨어진 것도 사고였으니까.”

말론의 스승은 바보가 아니었다.

말론의 이야기 속에 있는 이면의 진실을 금방 읽어냈다.

애초에 그 역시 무조건적인 성공 따위는 없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종주님은 실패로부터 많은 것을 배우셨다고 했습니다.”

“그분은 언제나 그런 분이지. 그래도 나는 실패를 대비하지 않을 수 없다. 그게 내가 해야 할 일이니까. 그래서 너를 부른 것이다.”

“가르침을 내려주십시오.”

“나는 오래전에 사천에 있는 당씨 성을 가진 무림의 세가로부터 한 가지 흥미로운 수단을 입수할 수 있었다.”

말론의 눈앞에 쟁반이 놓여졌다.

그 위에 있는 것은 새끼손가락 반마디 정도 되는 크기의 단약이었다.

씹지도 않고 삼킬 수 있는 크기였다.

“이것은 고독이라고 하는 것으로 일종의 독약이다. 일반적인 독약과 차이가 있다면 독약이 발동되는 순간을 술사가 원하는 대로 조정할 수 있다는 점이다. 단순한 독약이 아니라 살아있는 벌레라서 가능한 일이지.”

말론의 스승은 단약을 반으로 갈랐다.

꿈틀거리는 벌레가 그 안에 있었다.

“협박으로는 좋은 수단이다. 죽음을 두려워하는 자라면 시키는 대로 말을 들을 수밖에 없지. 이놈이 일단 신체 안으로 들어가면 밖으로 꺼낼 수단이 없으니까. 코로 집어넣으면 머리 속으로 기어들어 가거든. 하지만 나는 만족할 수 없었다. 두려움이나 욕망을 수단으로 사람을 부리는 것은 한계가 명확하기 때문이다. 진짜 힘 있는 자들을 조정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해야 한다. 반드시 보복당한다.”

벌레는 쟁반 위를 꿈틀거리며 기어 다녔다.

쌀알 정도 되는 길이에 지렁이를 닮은 모습이었다.

머릿속으로 저런 것이 들어간다고 생각하니 구토가 나올 정도였다.

“그러나 나는 오래전부터 나는 이지를 가진 종복을 만들고 싶었다. 황제나 대마법사 같은 자들이 내 앞에 머리를 조아리는 꼴을 보고 싶었다. 그들의 운명이 내 변덕에 따라 흔들리는, 그런 모습을 보고 싶었다.”

뒤틀린 욕망이었다.

그만큼 이루어지기 어려운 욕망이기도 했다.

그러나 말론은 그의 스승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저렇게 말할 정도면 이미 방법을 확보한 것이다.

“나는 패밀리어 마법과 결합하여 부분적인 성공을 거두었다. 마법에 대한 저항력이 없는 평범한 사람이라면 무조건 내 의지에 따르게 할 수 있다.”

“축하드립니다. 스승님.

그러나 말론의 스승은 고개를 저었다.

“아직 축하받을 정도는 아니다. 마법에 대한 저항력이 있는 자들까지 지배할 수 있어야 성공했다고 할 수 있겠지. 이곳에서는 내공이라고 부르는 힘 말이다.”

“곧 해결책을 찾으실 수 있을 겁니다. 스승님께서는 언제나 그러셨으니까요.”

“그래. 어서 완벽한 해결책을 찾아야지. 그래야 당문이 원하는 것도 해 줄 수 있겠지.”

완벽한 해결책이라니!

그러면 불완전한 해결책은 이미 있다는 소리였다.

과연 그의 스승다웠다.

말론은 입을 닫고 고개를 조아렸다.

당문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질문하는 것은 주제를 넘는 일이었다.

말론이 알아야 한다면 그의 스승이 이야기해 줄 것이다.

그러나 말론의 스승은 한참이나 말이 없었다.

복잡한 눈빛으로 고개를 조아리고 있는 말론의 정수리를 바라보기만 했다.

말론이 무엇인가 이상하다는 것을 느끼고 이마에 살짝 땀이 맺힐 때, 갑자기 쟁반 위의 고독에 불에 붙었다.

꿈틀거리면 왕성하게 움직이고 있던 벌레가 불길에 휩싸인 것이다.

마법의 불이 벌레를 태우고 벌레를 둘러싸고 있던 단약도 태웠다.

비릿하고 끈적끈적한 냄새가 머리를 아프게 할 정도였다.

마법의 불로도 다 태울 수 없을 정도로 강력한 독기의 흔적임이 분명했다.

그로서는 도저히 감당해 낼 수 없는 위력이었다.

말론은 고개를 더욱 깊숙이 박았다.

방금 불에 타 버린 고독이 누구의 머리 속에 들어갈 뻔했는지는 말로 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그보다 먼저 제자로 들어왔지만 지금은 사라지고 없는 자들이 갑자기 떠올랐다.

“너는 내 첫 번째 제자이고, 내가 신뢰하는 유일한 제자이기도 하다. 그러니 내가 새롭게 만든 고독과 고독을 부리는 비법을 가지고 종주님께 돌아가도록 해라. 그곳에서 내공을 가진 자들을 대상으로 실험을 해 주었으면 한다. 제법 이름이 높은 자들도 있다고 들었으니 실험 대상으로는 적당할 거다.”

“반드시 기대하시는 결과를 만들어내고 말겠습니다.”

“설사 네가 실패해도 이 땅에 혼란을 불러일으키는 것은 어렵지 않다. 이미 씨는 뿌리고 있으니까. 그러나 네가 괜찮은 결과를 만들어낼 수 있다면 너를 왕으로 하는 나라를 세울 수도 있겠지.”

“예?”

말론은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들고 말았다.

묘한 열기가 엿보이는 눈빛이 그를 노려보고 있었다.

말론은 즉시 고개를 다시 바닥에 처박았다.

“왕후장상의 씨가 따로 있던가? 마음에 드는 말이었다. 왕이 여럿 나와서 각자의 나라를 세운다면 그중에는 도사가 세운 나라도 있을 법하지. 너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스승님의 뜻이라면 충심으로 전력을 다하겠습니다.”

“그래. 전력을 다해야 할 거다. 그렇게 못한다면 이 세상이 너를 잡아먹을 테니까.”

말론은 자신이 본 묘한 열기를 목소리를 통해서도 듣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어쨌든 그의 스승은 진심이었다.

그렇다면 그 역시 전력으로 임해야 했다.

만약 제대로 된 결과를 내지 못한다면 자신보다 늦게 제자가 된 자가 첫 번째 제자가 되는 꼴을 보게 될 것이다.

그리고 자신은 첫 번째 제자였던 것이 되겠지.

각오를 단단히 한 말론은 비로소 고개를 들고 그의 스승을 볼 수 있었다.

*

이한이 경사에 도착한 때는 아직 해가 지기도 전이었다.

새벽에 전투를 치르고 해가 뜨기도 전에 출발해서 해가 지기 전에 도착한 것이다.

예상외로 빠르게 도착한 이한을 본 은밀전주는 무엇인가 일이 터졌음을 직감했다.

과연 서명에서 벌어진 일은 은밀전주의 예상을 뛰어넘는 일이었다.

“음. 사천당문이라니. 그렇게 외진 곳에 있는 자들이 갑자기 왜? 이해할 수 없는 노릇이군. 그곳 사람들은 경사쪽으로는 거의 오지도 않네. 사천 지방에서 평생을 지내지. 게다가 혈교? 들어본 적도 없는 자들일세. 마교야 유명한 곳이지만 그곳 역시 쉽게 가기 어려울 정도로 외진 곳이니, 실제로 그쪽 사람들을 볼 일은 거의 없지. 하물며 그곳에서 갈라져 나온 혈교라니. 이름조차 사이하기 짝이 없군. 아주 불길한 이름이야.”

“하지만 서명은 경사에서 하룻길밖에 되지 않은 곳입니다.”

“그렇기는 한데. 하지만 은밀전은 경사에 국한된 조직이고, 관리들을 감찰하는 데 특화되어 있기에 경사 밖의 소식은 의외로 어둡네. 그리고 이제는 그런 일을 할 만한 사람도 없다는 것을 자네도 알지 않나.”

“대충 그러리라고 생각은 하고 있었습니다. 제가 치부책을 잡고 있었을 때도 경사 밖으로는 돈이 흘러 나간 적이 거의 없었으니까요. 그러니 이 일은 장공주 전하의 옆에 있는 상궁에게 넘기도록 하지요.”

이한은 은밀전주의 반응을 이해할 수 있었다.

사실상 은밀전이 해체된 것이나 다름없는 지금, 할 수 있는 일은 이렇게 수집한 정보를 황궁에 넘기는 것이 다였다.

“보모상궁일세. 장공주 전하를 키운 유모지.”

“장공주 전하를 절대로 배신하지 않을 사람이군요.”

“그래서 믿을 수 있는 사람이지. 내가 환관을 통해 안으로 소식을 넣도록 하겠네.”

일단 거기까지는 이한도 예상하던 바였다.

사천당문이니 혈교니 하는 것에 직접 손을 대고 싶은 마음도 없었다.

그러나 가짜 도사들에게는 많은 관심이 있었다.

“그런데 그 도사들을 어떻게 한다는 말은 없습니까? 아주 사방에 안 엮이고 다니는 곳이 없는 것 같던데 말입니다. 심지어 장공주 전하가 계신 곳에서도 함부로 무기를 사용할 정도니 내버려 둘 수 없는 자들입니다.”

이한의 말에 은밀전주는 골치가 아프다는 얼굴로 저간의 사정을 설명해 주었다.

“원래 황실에 상주하며 하늘에 제를 올리고 길흉화복을 점치는 일은 무당파의 도사들이 맡아서 해왔네. 대대로 어의 못지않게 의술이 뛰어난 도사들도 적지 않아서 황실 사람들은 물론이고 조정의 중신들 역시 무당의 도사들에게 신세를 지곤 했다는 것은 자네도 알 걸세.”

“예. 그렇다고 들었습니다.”

“그런데도 대진국에서 온 도사들에게 무당파의 도사들이 밀려난 것은 실력의 차이가 너무도 명백했기 때문일세. 무능한 도사들을 황실에 둘 수 없다는 명분에 밀린 것이지.”

“아니, 도대체 어느 정도로 차이가 나길래 무능하다는 말이 나올 정도였던 겁니까?”

“일단 병을 진단하고 고치는 실력부터가 너무 차이가 심했네. 아무리 중병이 들었다고 해도 대진국에서 온 도사들의 손을 거치면 환자가 멀쩡하게 자리를 털고 일어났거든. 심지어 죽은 자도 살려냈다는 소문이 돌 정도였으니 사람들의 시선이 어떻겠나. 지금도 대진국의 도사들을 초빙하기 위해 기다리고 있는 자가 한둘이 아니야.”

이한은 가짜 도사들을 상대하는 것이 쉽지 않겠다고 생각했다.

무엇보다 가짜 도사들을 둘러싸고 있을 사람들이 문제였다.

가족 중에 한둘 정도는 아픈 사람이 있을 수 있으니까.

“명확한 근거가 없으면 공격하기 어렵겠군요. 병이 나은 사람도, 치료를 기다리고 있는 사람도 모두 대진국의 도사들을 옹호하려고 할 테니까요.”

“그렇지. 그런데 그것뿐만이 아닐세.”

“또 뭐가 있습니까?”

“황실에 도사를 두는 것은 원래 하늘에 제를 올리고 길흉화복을 점치는 일을 하기 위해서지. 그런데 하늘에 제를 올릴 때마다 무당의 도사들이 입에 거품을 물고 쓰러졌다네.”

아이고 저런.

무당답지 않게 개수작에 당한 모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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