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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림에서 나노머신-28화 (28/78)

28. 무당의 도사들.

28. 무당의 도사들.

“무당이라면 도교를 대표할만한 명문대파 아닙니까? 그런 곳에서 황궁에 파견할 정도면 정말 뛰어난 자들일 텐데, 잡스러운 사술 따위에 당하다니요.”

이한은 말을 줄였다.

말을 아낌으로 오히려 여러 가지를 말할 수 있었다.

그렇게까지 무당에 인재가 없나?

어이가 없다.

또는

가짜 도사들의 수단이 정말 뛰어난 모양이네.

어떻게 한 것인지는 알아냈다고 합니까?

뭐, 그런 내용을 말이다.

은밀전주 역시 생략해 버린 말의 의미를 이해하고 고개를 저었다.

“무당에서 황궁에 상주시키는 도사들은 대부분 의례에 밝고 학식이 높은 자들이네. 무공이 뛰어난 외부인이 황궁 내에 기거하는 것을 싫어하는 사람들이 많아서 생긴 관례지. 일이 터지고 난 후에야 무당산에서 몇 명의 도인이 더 내려오기는 했다지만, 이미 늦은 후였네. 증거도 없이 추측으로 몇 마디 거드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지.”

“저는 이해할 수 없습니다.”

이한은 진짜 이해할 수 없었다.

도교는 오랫동안 제국의 공식적인 종교나 다름없었다.

뒤늦게 외국에서 불교가 들어와 강력한 경쟁자로 부상하기는 했지만, 토착 종교인 도교가 선점하고 있는 영향력에는 미치지 못한다.

그래서 불교의 승려는 아직도 개인 자격으로 황궁을 방문한다.

황제에게 자문할 때도 그저 황사니 국사니 하며 대우해주는 명예직을 받는 것이 고작이다.

그러나 도교의 도사들은 제국의 초창기부터 관료조직의 일원으로 편입되어 있었다.

하늘에 제사를 지내고, 황실과 나라의 길흉화복을 점치는 일을 전담하는 관청을 장악하고 있는 것이다.

심지어 황궁 지역에 그들의 거처를 두고 있기까지 하다.

그래서 이한은 무당의 도사들이 밀려난 것을 이해할 수 없었다.

가짜 도사들이 등장한 것이 불과 2년 전이었다.

물론 물밑에서 좀 더 오랜 기간 동안 암약하며 활동을 했겠지.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오랜 시간 동안 관료조직의 일원이었고, 황궁 지역에 상주하기까지 하는 집단을 몰아내고 그들의 자리를 대신 차지한다고?

2년도 안 걸려서?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관청 하나를 옮기거나 없애는 일조차 온갖 사람의 이해관계가 끼어들어서 개판이 되기 십상이다.

하물며 관청의 구성원을 모조리 갈아치우는 일이다.

2년이 아니라 20년이 걸려도 그럴만하다고 할 것이다.

지금처럼 강력한 정치적 권위를 가진 존재가 없는 상황에서는 더욱 그렇다.

“대진국에서 왔다고 주장하는 가짜 도사들이 경사에 무슨 연줄이 있고, 뒷배가 있다고 무당의 도사들을 밀어내고 대신 그들의 자리를 차지한다는 것입니까? 아무리 무능을 명분으로 삼았다고 해도 제 상식으로는 가능한 일이 아닙니다.”

“자네 말이 맞네. 나도 그게 의문이었지. 이상할 정도로 저들을 지지하고 밀어주는 자들이 한둘이 아니었거든. 은밀전의 밀위들이 최근까지 매달렸던 임무 역시 가짜 도사들의 뒷배를 자처했던 자들에 대한 조사였다네. 이제는 다 끝나버린 임무지만.”

은밀전주의 어조는 담담했다.

그러나 심중에 담긴 씁쓸함과 고통을 숨길 정도는 아니었다.

지금 은밀전에서 남은 자는 손가락으로 셀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반역이라는 누명이 벗겨진 것도 아니었다.

그래도 이한은 물어야 했다.

가짜 도사들과 관련된 일은 하나라도 더 알아야 했다.

“도대체 누굽니까? 누가 가장 이상했습니까?”

“중서성의 비서령, 그리고 상서성의 집부령.”

중서성은 황제의 손발이다.

중서성과 비서령은 대통령 비서실과 비서실장을 생각하면 비슷하다.

그리고 상서성은 관료 조직의 정점에 있는 곳이다.

그곳의 집부령은 국무총리라고 생각하면 된다.

그것도 정권에 대한 지분을 가진 실세 국무총리.

이한은 말문이 막혔다.

왜 장공주씩이나 되는 사람이 유폐를 당했는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 사람들, 전대 황제가 임명한 고명대신들 아닙니까?”

“그렇지. 아직 어린 황제를 지키라고 부탁받은 사람들이지.”

“그런 자들이 예친왕과 손을 잡았단 말입니까? 지금 당장 북면방어사가 경사로 밀고 들어오지 않은 것이 이상할 정도군요.”

“역시 자네도 그렇게 생각하는군.”

은밀전주의 어조가 조금 이상했다.

이한의 생각에 동의하지 않는다는 느낌이었다.

이러면 직접 물어보지 않을 수 없다.

“아닙니까?”

“그들이 가짜 도사들을 위해 지나칠 정도로 힘을 써주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대놓고 예친왕을 지지하는 것은 또 아닐세. 이해하기 어려운 행보지. 내 생각에는 명분도 부족하고 자칫하면 다른 친왕들에게 좋은 일을 시켜줄 수도 있어서 그런 것이 아닌가 싶네. 하지만 정말 그런지는 확신할 수 없지. 내가 그 사람들 속에 들어갔다 나온 것도 아니고 말일세.”

“그렇다면 한 번 그 사람들 속내를 털어 보지요.”

“?”

“제가 가서 물어보겠습니다.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인지 탈탈 털어보겠습니다.”

*

물론 그렇게 이야기를 하자마자 비서령이나 집부령 같은 사람에게 곧장 달려간 것은 아니었다.

이한이 먼저 방문한 곳은 황궁 지역에서 쫓겨난 무당의 도사들이 모여 있는 곳이었다.

그들은 풍암관이라는 조그마한 도관에서 지내고 있었다.

그들의 신분과 영향력을 생각하면 어울리지 않을 정도로 소박한 장소였다.

당연하겠지만 그것은 매우 정치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었다.

세력을 모아서 정치투쟁에 나설 생각은 없다는 선언이었다.

대신 무당산에서 여러 명의 도사들이 내려왔다.

갈래는 다르지만 하나같이 무공이 고강한 자들이었다.

그중의 한 명은 사술이라고 할 수 있는 환술과 부적술에도 능했다.

이것이 의미하는 것은 간단했다.

기회가 닿는 대로 대진국에서 왔다는 도사들을 힘으로 밀어내겠다는 의사표시였다.

알만한 사람들은 조만간 경사의 곳곳에서 도사들이 죽어 나갈 것임을 짐작했다.

이한은 그러한 시기에 풍암관을 방문한 것이다.

*

[대진국에서 왔다고 주장하는 도사들은 다른 차원에서 건너온 사람들일 가능성이 매우매우 높습니다. 혹시 모르니까 100%라고는 하지 않겠습니다. 그래도 99%라고는 자신 있게 주장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저들 중 얼마나 많은 자들이 다른 차원에서 건너온 사람일지는 아직 모르겠습니다. 구성원의 일부일 수도 있고, 전부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한 명은 아닐 겁니다. 차원이동 중 변성된 지팡이를 그렇게 막 굴리고 있던 것을 보면 적은 비율도 아닐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이 세상에 없는 무엇인가를 주고 권력자들로부터 지지를 끌어낸 것일까? 무당의 도사들을 쓰러뜨린 것도 이곳에 없는 방식을 사용했겠지?”

[알 수 없습니다. 그들의 문명 수준을 아직 모르니까요. 그러나 만약 그들이 우리와 같은 수준의 문명 수준을 가지고 있다면 약속할 수 있는 것은 많습니다. 특히, 장수와 역노화는 이곳의 권력자들을 미치게 할 겁니다.]

“영생이라고 사기 치기에도 좋지.”

[개인 수련을 통해 신선이 되는 것이 목표인 종교가 이곳의 토착종교입니다. 그만큼 이곳 사람들이 무병장수에 대해 집착한다고 봐야 합니다. 권력자뿐 아니라 이곳을 도청하고 있는 도사들조차 혹할 사람이 적지 않을 겁니다.]

“우리처럼 사고로 표류한 자들이었으면 좋겠어. 되돌아갈 수단을 가졌으면 더욱 좋겠고. “

[이왕이면 문명 수준도 낮았으면 좋겠다고 하시죠.]

나노의 어조가 까칠해졌다.

이한은 가볍게 웃고 말았다.

그래도 한 가지는 확실했다.

“정치권력을 손에 넣으려는 것을 보면 이곳에 떨어질 때  빈손이었을 가능성이 높아. 필요한 것은 많은데 말이지.”

[그 점에 대해서는 동의합니다. 이곳에서 필요한 물자를 구하는 가장 빠른 길이 정치권력을 장악하는 것이지요.]

이한은 지금 풍암관의 손님맞이방에서 주인을 기다리고 있었다.

잠시 기다려달라는 말을 남긴 젊은 도사가 방을 떠난 지도 한참이었는데, 아직까지 아무런 소식이 없었다.

대신 옆방에서 자신을 관찰하는 사람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래서 기다리는 동안 이한은 입속으로 웅얼거리고, 나노는 머릿속에서 떠들었다.

바로 옆에서 들어도 뭐라고 하는지 알아들을 수 없을 정도니 옆방에서 작은 구멍을 통해 보기에는 그저 조용히 앉아있는 것으로만 보일 것이다.

이한은 열을 발산하는 덩어리가 벽에서 떨어져서 옆방을 나가는 모습을 보면서 곧 무당의 도사들이 들어오리라는 것을 짐작했다.

과연 얼마 지나지 않아서 일단의 도사들이 들어왔다.

모두 3명.

그리고 뒤늦게 2명이 더 들어왔다.

처음에 들어온 3명의 도사들은 하나같이 도사답게 생긴 사람들이었다.

길게 늘어뜨린 허연 수염과 단정하게 묶어서 상투를 틀고 있는 검은 머리카락.

얼굴은 주름살 하나 없이 탱탱하고 붉었다.

목 주위와 손을 보면 약간 주름이 지기는 했지만 그래도 허연 수염을 생각하면 나이와 어울리지 않게 젊어 보이는 자들이었다.

풍기는 분위기 역시 예의 바른 문사와 다르지 않았다.

그러나 나중에 들어온 2명의 도사는 3명의 도사와는 전혀 다른 분위기를 가진 자였다.

그중 한 명에게서는 정중하고 무거운 기세가 엄중하게 느껴졌다.

거대한 칼이 하나 앞에 앉아 있는 것 같았다.

기세뿐만이 아니었다.

생긴 것도 남달랐다.

마르고 단단한 근육은 한줄한줄이 꿈틀거리는 것 같았고, 피부는 검게 탄 것이 대부분의 시간을 밖에서 보내는 사람이라는 티가 났다.

그리고 무엇보다 손.

손가락이 길었다.

분명 오랜 시간 동안 수련하면서 무수한 상처를 입고 굳은살이 배겼을 텐데, 아무런 상처가 없었다.

어린아이의 손처럼 매끈한 손이었다.

이것은 책으로만 보았던 경지였다.

극도로 단련했을 때 그리고 그 수련이 내공과 어우러질 때, 신체의 일부가 무공에 걸맞게 변형되면서 재생된다고 한다.

주로 검이나 장을 쓰는 사람에게 일어나는 현상이다.

이런 것을 실제로 볼 줄이야.

그리고 마지막 한 명.

이 사람은 겉으로 보기에는 평범해 보였다.

낡은 의복과 살짝 망가진 관에서 보이는 모습은 가난한 도사, 그 자체였다.

만약 그의 눈에서 어쩌다가 보이는 정광이 아니었다면 비범함을 알아채지 못했을 것이다.

무엇인가 특별한 공력을 익힌 자가 분명했다.

이한은 무당파에서 작정을 하고 사람들을 내보냈음을 알게 되었다.

[마지막에 들어온 사람이 옆방에 있던 사람입니다. 신체 신호가 모두 동일합니다.]

먼저 입을 연 사람은 가장 처음에 들어온 도사였다.

“지금 저희는 외부인과 만나지 않고 있습니다. 하지만 도우께서 청륜과의 인연을 언급하시고, 또한 은밀전의 일을 말씀하시니 나와 보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윗전에서 무슨 말씀이라도 있으신 겁니까?”

“윗전이 아니라 은밀전의 일입니다.”

“은밀전은 반역죄로 모두 도륙되었다고 들었습니다. 혹시 도우께서는 그런 사실을 아시는지요.”

“물론입니다. 저 역시 죽다 살아났으니까요.”

“그렇다면 황제 폐하께 대한 충성심을 증명하기 위해서라도 저희가 도우를 잡아서 북면방어사에게 넘길 수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으십니까?”

“그렇게 하실 거였으면 이분께서 옆방에서 저를 살피고 난 후, 저를 잡으러 다른 분들이 들어왔겠지요.”

평범한 모습을 보이고 있던 도사의 눈빛이 변했다.

어느새 그의 앞에는 석 장의 부적이 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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