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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림에서 나노머신-29화 (29/78)

29. 안식국? 마교?

29. 안식국? 마교?

허공섭물인가?

허공섭물은 손을 대지 않고도 외부의 물건을 움직이는 것을 말한다.

대개는 물건을 공중에 둥둥 띄워서 자신의 내공이 얼마나 많은지 과시하는 수단으로 사용한다.

무공에 대한 지식이 없는 평범한 사람들을 상대로 자신이 얼마나 고강한 무림 고수인지 한눈에 이해시킬 수 있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만약 한 갑자가 넘는 내공이 있다면 종이 한두 장 정도는 움직일 수 있다고 보면 된다.

그러나 이한의 눈에는 이 평범하게 생긴 도사가 절정의 수준에 다다른 무림의 고수로는 보이지 않았다.

허공에 부적 몇 장을 띄워놓은 지금도 눈빛을 제외한다면 특별한 기파가 느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노 역시 이한과 같은 의견이었다.

하지만 내공의 양이 아니라 내공의 흐름과 운용에 대해서는 아니었다.

[처음 보는 내공의 흐름입니다. 머리 쪽으로 내공이 집중되고 있습니다. 저자의 시선이 미치는 공간에 있는 먼지 알갱이가 비정상적인 움직임을 보입니다. 물리적인 영향을 끼치는 것이 분명합니다. 외부에서 관측되는 내공의 흐름이 없는 것으로 보아 별개의 수단을 사용하는 것으로 판단됩니다. 관측 모드를 변경합니다. ······키를리안 관측 모드에서 유용한 정보를 획득하는 데에 성공했습니다. 키를리안 시야를 사용자와 공유합니다.]

이한의 시야에 새로운 정보가 추가되었다.

상대의 내공 흐름이 보이던 시야에 키를리안 관측으로 얻어진 정보까지 덧붙여진 것이다 .

키를리안 관측으로 보는 세상은 적외선 투시 모드와 비슷했다.

살아있는 모든 것으로부터 빛을 볼 수 있었다.

도사들로부터도 마치 후광처럼 은은한 빛이 발산되고 있었다.

부적과 연결된 빛줄기도 볼 수 있었다.

평범해 보이는 도사의 머리로부터 나온 세 개의 빛줄기가 부적과 연결되어 있었다.

머리 쪽으로 집중된 내공의 흐름이 만들어낸 모습임이 분명했다.

순간 이한은 기시감을 느꼈다.

아니, 기시감이라기보다는 익숙한 느낌?

할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었다.

머리에서 보이는 내공의 흐름.

전기다발처럼 연신 변화하며 발산되는 빛줄기.

삼단삼극권을 수련하면서 익혀온 각종 기운의 변화.

지금까지 자신이 쌓아온 경험이 속삭이고 있었다.

저것을 그대로 따라 할 수 있을 것 같다고.

그래서 그렇게 했다.

[경고! 검증되지 않은 내공의 흐름입니다. 잠시만 시간을 주십시오. 안정적인 내공 운용을 위한 자료 수집에 시간이 필요합니다. 아니 쫌! 사고 나면 뇌는 고치기 힘들다고요! 시뮬레이션을 시작합니다.]

다급하게 떠들다가 신경질을 내는 나노는 무시해버렸다.

저렇게 투덜거려도 뭔가 문제가 생긴다면 알아서 고쳐줄 것이다.

단전을 중심으로 끊임없이 일주천을 하고 있던 내공의 흐름에 인위적인 개입이 이루어졌다.

평범한 도사에게서 보이는 내공 흐름을 그대로 따라서 하자 머리에 또 하나의 중심이 생기는 것 같았다.

의지에 따라 움직이는 손이 하나 더 생긴 것 같은 느낌도 들었다.

실제로 이한은 자신의 머리에서 뻗어 나오는 전기다발을 닮은 빛줄기를 볼 수 있었다.

좀 더 수준이 높아진다면 저 빛줄기는 분명 여러 개로 분화하리라.

눈앞에 있는 도사의 그것처럼.

이한의 의지가 빛줄기를 움직이고,

빛줄기는 허공에 떠 있는 부적들 중 하나를 잡았다.

팍!

두 개의 의지가 충돌하는 순간, 허공에 떠 있던 부적이 화르륵 불에 타버렸다.

재도 남기지 못하고 증발하듯 사라진 것이다.

동시에 평범하게 생긴 도사로부터 나온 빛줄기 역시 사라졌다.

이한으로부터 나온 빛줄기 역시 마찬가지였다.

남은 두 개의 부적은 힘을 잃었다는 듯 바닥에 그대로 떨어졌다.

“아니!”

“이럴 수가!”

지금까지 태연한 신색으로 둘을 바라보고 있던 도사들은 놀라움을 숨기지 못했다.

거대한 칼을 닮은 도사는 어느새 꺼낸 것인지 칼자루에 손을 댄 상태였다.

이한과 맞상대를 했던 도사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는 어떤 일이 벌어진 것인지 이해했기에 충격을 감출 수 없었다.

단순히 부적을 쓰고 사용하는 것은 재능이 있는 자라면 조금만 공부해도 할 수 있다.

좋은 재료와 내공이 문제이지 사용하는 것 자체는 무리가 없다.

그러나 이렇게 부적을 공중에 띄우려면 부적에 의지를 담을 수 있는 수준이 되어야 한다.

재능이 있는 자가 평생을 정진해도 쉽지 않다.

그런데 부적에 담긴 의지를 힘이 아니라 자신의 의지로 간섭해서 소멸시킨다고?

이것은 자신처럼 부적을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런 수준의 부적술사는 손에 꼽을 정도라서 얼굴까지 서로 알 정도인데 어디서 갑자기 튀어나온 자일까?

풍천은 경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일단 족보를 따지면서 정체를 파악하기로 했다.

“저는 무당 좌도 진선류의 풍천이라고 합니다. 이쪽의 세분은 무당 은사삼봉에서 나오신 분들로 명진, 명성, 명준 이라는 도호를 가지신 분들입니다. 지금까지 황궁에서 하늘에 올리는 제사를 담당하고 계셨습니다. 그리고 이쪽은 청륜 도장의 사형뻘 되시는 분으로 청법이라고 합니다. 도우께서는 어느 방면에서 수련을 하신 분이신지요?”

정중하기 그지없는 태도였다.

상대가 예의로 대하면 똑같이 예의로 상대를 대한다.

그것이 적을 만들지 않기 위한 이한 나름의 원칙이었다.

이한 역시 정중한 태도로 상대를 대했다.

“저는 이한이라는 사람으로 은밀전과 인연이 있어서 그곳의 일을 돕고 있습니다. 오행권에서 갈라져 나온 삼단삼극권을 익혔을 뿐 풍천 도장의 공부와 관련된 것을 수련한 적은 없습니다. 그저 보고 마음이 일어서 그대로 따라 했을 뿐입니다.

이한의 말에 풍천은 잠시 말을 잃었다.

아무리 좌도방문의 공부가 타고난 재능에 의지하는 것이라고 해도 이것은 너무 지나치지 않은가 말이다.

보고 마음이 일어서 그대로 따라 했다니!

풍천이 산속에서 수련으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온 사람이라고 해도 상식이 부족한 사람이 아니다.

방문좌도의 특성상 세속의 일에도 어둡지 않다.

그의 경험상 이렇게 타고난 천재류의 사람과는 잘 지내야 한다.

원한을 사면 목숨이 위험하고, 자존심을 건드리는 것도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위험하기는 마찬가지다.

대신 같은 편이 되면 믿음직하다.

일단 같은 편이 되었다고 생각하면 툴툴거리면서도 퍼주는 경향이 있다.

정확한 이유는 모르겠지만 아마도 타고난 천재류의 특성상 감정까지 교류하는 사람을 만들기 어렵기 때문에 그런 것이 아닐까?

풍천의 스승이 바로 그렇게 타고난 천재류의 사람이었다.

그래서 풍천은 이런 종류의 사람을 대하는 방법을 잘 알고 있다고 자부했다.

칭찬하고 또 칭찬하고, 감탄하고 또 감탄한다.

하지만 쉽게 도움을 요청하지 않고 자존심을 지키며 노력하는 모습을 보인다.

그러다 보면 어느 순간 천재의 울타리 안에 들어가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그가 스승의 문하가 될 수 있었던 방법이었다.

풍천은 만면에 미소를 지으며 이한에게 달라붙었다.

“스승님으로부터 좌도의 공부는 한순간에 이루어지는 것이니, 찰나의 순간을 잡기 위해 평생 정진하라는 말씀을 들어왔습니다. 하지만 저는 지금까지 스승님의 그 말씀은 게으른 제자에 대한 채찍질이라고만 생각해 왔지요. 그러나 선인의 말씀에 헛됨은 없으니 과연 그렇습니다. 이한 도우의 가능성은 정말 놀랍습니다. 저로서는 감히 바라보기도 어렵습니다. 함께 정진하시지요. 경사에서의 일을 마치면 제 스승님을 뵈러 갑시다. 스승님도 이한 도우를 보면 가르침을 아끼지 않으실 겁니다.”

풍천의 말에 명자 돌림의 세 도사는 즉시 추임새를 넣었다.

황궁에서 오랫동안 지내서 사람을 대하는 눈치가 웬만한 궁인 못지않은 세 도사들이었다.

그들은 연신 이한을 치켜세우며 무당과의 인연을 강조했다.

“오호라! 천제의 가호로다.”

“상승의 좌도 공부는 오직 타고나는 사람만이 할 수 있는 법. 한 번 보고 깨우치다니 풍천의 공부가 도우와 인연이 깊은 듯합니다.”

“어쩌면 전생에 풍천과 같은 문하에서 정진했을지도 모르지요. 그렇지 않습니까? 하하하하.”

이한은 조금 전까지도 경계와 의심이 섞인 시선을 받다가 한순간에 동문의 사형제처럼 구는 도사들을 보니 이게 뭔가 싶었다.

이 사람들이 내게 무엇인가 원하는 것이 있는 걸까라는 의심이 들 정도였다.

어쨌든 정보를 구하기 위해서 왔는데 이렇게 우호적인 분위기라면 나쁠 것이 없다.

그래서 이한도 미소를 지으며 예의를 차렸다.

“그래서 이한 도우가 원하는 것이 대진국에서 온 도사들에 대한 정보라고요?”

“그렇습니다. 그런데 그 전에 한가지 바로잡을 일이 있습니다. 제가 아는 한 그자들은 대진국에서 온 자들이 아닙니다. 어디서 왔는지는 모르겠지만 절대로 대진국에서 왔을 리가 없습니다. 대진국에는 도교가 없습니다.”

그러나 이한의 말에도 무당의 도사들은 별로 놀란 기색이 아니었다.

그 정도의 사실은 이미 알고 있다는 분위기였다.

“아마도 그럴 것이라고 생각은 하고 있었습니다. 대진국이 아무리 멀다고 해도 제국에 있는 수많은 사람들 중에 그곳을 갔다 온 자가 없는 것은 아니니까요. 대진국에 도교가 없는 것은 물론이고 그자들이 자신들끼리 쓰는 말 역시 대진국에서 사용하는 말이 아니라는 것까지 알고 있습니다.”

무당 도사들의 반응에 이한은 의문을 표시했다.

“그렇다면 그자들은 어디서 온 것일까요?”

“우리는 그자들이 안식국에서 온 것으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오래전에 맥이 끊어진 배화교의 잔당이 아닐까 의심하는 중이지요.”

배화교?

그거 마교의 전신 아니었나?

사교라면 질겁을 하는 제국의 황실이나 무림의 문파들이었다.

사교도로 의심되는 자들이 경사로 들어와서 황궁에 자리 잡았는데 이렇게까지 아무런 반응이 없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

이한은 당연한 질문을 할 수밖에 없었다.

“아니, 그렇다면 마교가 경사까지 진출했다는 말입니까?”

“그런 것은 아닙니다. 마교는 배화교의 이단에 지나지 않습니다. 배화교에서는 마교를 인정하지 않지요. 그리고 그자들이 배화교의 잔당이라는 추측에는 아직 어떤 증거도 없습니다. 아직은 우리끼리 오가는 말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래도 그렇게 생각하신 이유가 있을 것 아닙니까? 혹시 비밀로 할 이유가 아니라면 알려 주실 수 있겠습니까? 제가 이래 봬도 제법 견문이 넓다고 자부합니다.”

“그러지요. 딱히 비밀로 할 이야기도 아니니까요.”

그때였다.

나노가 중간에 끼어들었다.

[이한님. 대화 중에 죄송합니다만 아무래도 이상한 점이 있어서 알려드려야 할 것 같습니다.]

이한은 고개를 끄덕였다.

대화를 이어가기 위한 몸짓처럼 보이지만 이것은 나노에 대한 답변이었다.

[명성 도장의 머리에 이물질이 보입니다. 정보 획득을 위해 다양한 모드로 도사들의 신체와 평상시의 내공의 흐름에 대해 조사하고 있었는데 명성 도장의 머릿속에 쌀알 정도 크기의 생물체가 있습니다. 기생충이 아닌지 의심했습니다만, 뇌 이외의 다른 부분에는 기생충이 보이지 않습니다. 뇌에 기생충이 있을 정도면 다른 곳에서도 많은 기생충이 발견되어야 합니다.]

이한의 얼굴이 굳어졌다.

[아직 충분한 데이터가 쌓이지는 않아서 확정적으로 주장할 수는 없지만 아직까지는 내공을 익힌 사람에게서 기생충 감염을 발견한 적이 없습니다. 명성 도장의 경우가 첫 번째 케이스입니다.]

그의 머리에 은밀전의 악독한 수단 중 하나가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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