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 그들이 사람을 지배하는 법
30. 그들이 사람을 지배하는 법
은밀전은 일종의 첩보기관이었다.
주로 하는 일은 뒷조사, 탐문, 잠입, 도둑질······
그런 종류의 것이었다.
정체를 숨기기 위해 장사도 하고 말이다.
몇 년 전의 황제 계승기에는 일시적으로 암살에 나서기도 했지만, 일반적인 경우는 아니었다.
손은 부족한데, 할 수는 있으니까 거든다는 느낌?
그런 것을 하는 자들은 원래 따로 있다.
어쨌든 은밀전의 기본적인 임무는 경사에 자리잡고 있는 권문 세족에 대한 감찰이라고 보면 된다.
그 과정에서 관리도 협박하고, 상인도 족치고, 필요하다면 사람을 파묻는 것도 서슴지 않았다.
물론 불법이다.
협박, 고문, 살인.
이런 것들은 어떤 식으로 포장해도 문제로 삼기로 한다면 문제가 될 수밖에 없다.
잘못된 행동을 일일이 법률을 따져가며 처벌한다면 은밀전에서 무사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특히, 밀위는 모두 사형을 당할 것이라고 단언할 수 있다.
그러나 혜목장공주가 주장했듯 제국의 안정을 위해서는 황실의 안정이 필요하고, 그것을 위해서라면 어떤 행동이라도 용납된다.
설사 불법이라고 해도 말이다.
그래서 은밀전이 선을 넘을 때는 정말 심하게 선을 넘었다.
수단이 악독하다고 해도 뭐라고 할 수 없을 정도로 말이다.
이한이 떠올린 것은 권문세족에서 일하는 고용인을 포섭하기 위해 독으로 중독시키고, 해독제를 미끼로 삼은 경우였다.
하지만 해독제를 먹는다고 해서 독의 영향이 완전히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후유증이 심하게 남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해독제를 복용하고도 후유증 때문에 죽는 경우도 드물지 않다.
독을 먹는 순간 박살 난 간 때문에 죽는 것이다.
이한은 나노가 공유해준 AR시야를 통해 명성 도장의 머릿속에서 꼼짝도 하지 않고 있는 작은 벌레를 보았다.
그리고 저런 것을 수단으로 삼고 있는 곳들을 떠올려 보았다.
은밀전 같은 곳은 명함도 내밀지 못할 정도로 악명이 높은 곳들이었다.
보이스카웃과 특수부대원의 차이라고 하면 지나칠까?
아! 그 고용인은 결국 죽었다.
해독제를 먹었는데도 후유증을 이기지 못했다.
그렇다면 명성 도장은 어떨까?
과연 살아날 수는 있을까?
머릿속에 저런 것을 박아두고도?
이한은 명성 도사를 빤히 바라보았다.
다른 사람의 말은 신경도 쓰지 않고, 머릿속의 벌레를 노려보며 앞으로의 행동에 대해 고민했다.
저놈의 벌레가 어디까지 퍼져 있을지가 가장 큰 문제였다.
설마 황제의 머릿속에까지 들어가 있는 것은 아니겠지?
사람들은 이한의 이상한 태도를 금방 눈치챘다.
“무엇인가 하실 말씀이 있는 겁니까?”
“명성 도장께서는 오래 살기 힘드시겠군요.”
이한은 결론부터 말했다.
처음에는 무슨 말인지 이해를 하지 못하는 얼굴들이었다.
너무 뜬금없는 말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음 순간에는 막말을 들은 사람답게 불쾌감을 내보였다.
“이한 대협. 설명이 필요합니다. 무슨 의미로 내게 그런 말을 한 겁니까?”
명성의 태도에는 불쾌감뿐 아니라 분노도 서려 있었다.
대놓고 죽을 것이라는 말을 들었으니 화를 낼만도 했다.
명자 돌림의 다른 도사들 역시 말만 하지 않았을 뿐 비슷한 분위기였다.
그러나 풍천과 청법은 달랐다.
오히려 서로 간에 대화를 나눌 때보다 더 고요하고 가라앉은 태도였다.
아무리 막말처럼 들린다고 해도 이한의 신분과 능력을 감안해야 했기 때문이다.
무엇인가 의도한 바가 있으리라고 생각해야 했다.
화를 내는 것은 설명을 들은 이후에라도 늦지 않았다.
그러나 이한은 친절하게 설명이나 하고 있을 생각이 없었다.
말로 하는 설명보다는 벌레를 무당 도사들의 앞에 끄집어내 놓는 것이 그의 방식이었다.
“말로 하는 것은 의미가 없을 것 같고. 그렇다고 머리를 쪼개서 속을 들여다볼 수도 없으니 어떻게 하면 좋을까.”
[특정한 파장의 음파를 이용해 벌레를 자극하는 방법을 추천합니다. 이미 다양한 종류의 곤충을 통해 검증된 방법입니다. 손뼉을 치시면 제가 내공으로 보조하겠습니다.]
“이렇게 할까?”
짝!
[반응이 있습니다. 조금 더 강하게 치십시오. 내공의 흐름은 제가 조종하겠습니다.]
“이렇게?”
짝!
{조금 더 강하게!]
짝!
보기에는 그냥 손뼉치기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내공이 실렸기에 기파가 발생했다.
가까이에서 듣는다면 살짝 귀가 아플 정도?
그러나 명성 도장에게는 아니었다.
마지막 손뼉소리가 나자마자 명성 도장은 눈을 까뒤집고 뒤로 넘어갔다.
입에서는 거품이 흘러나오고, 팔과 다리는 기괴할 정도로 꼬였다.
그 상태로 온몸을 벌벌 떨면서 펄떡거리며 튕겨서 바닥을 돌아다니는데 귀신이라도 들린 사람처럼 보일 정도였다.
발작하는 벌레가 명성 도장의 뇌를 건드려서 일어나는 반응이었다.
“아니. 사형! 정신 차리십시오!”
“무슨 짓을 한 거냐!”
명자 돌림의 두 도사가 허둥지둥 명성 도장을 잡았다.
수혈을 잡기도 하고 마혈을 잡기도 하면서 명성 도장을 진정시키려고 했지만 점혈법은 아무런 효과를 보지 못했다.
명성은 격렬하게 움직였다.
혈도를 잡히고 의식까지 잃었는데도 그랬다.
대충 어떻게 손뼉을 쳐야 할지 감을 잡은 이한은 계속해서 손뼉을 쳤다.
손뼉치기에서 나오는 기파가 명성 도장의 머리로 집중되었다.
손뼉 소리가 날 때마다 명성 도장은 더욱 격렬하게 발버둥 쳤다.
명진과 명준, 두 사람의 도사는 명성을 잡고 진정시키느라고 정신이 없었다.
점혈법이 소용이 없으니 그저 잡고 누를 뿐이었다.
명준은 고함을 질렀다.
“손뼉을 멈추시오! 지금 당장!”
그러나 이한은 명준의 경고 따위는 귓등으로도 듣지 않았다.
그 모습을 본 청법이 슬그머니 움직여서 이한의 옆에 좌정했다.
풍천 역시 명자 돌림의 도사들과 이한 사이에 몇 개의 부적을 깔아놓았다.
“도우들은 왜 저자를 보호하려는 것이오? 저자가 명성 사형을 공격하는 것을 모른단 말이오?”
지금까지 명성 도사를 잡고 있던 명준은 화를 내며 일어나서 이한을 노려보았다.
당장이라도 출수할 것처럼 보였다.
그러자 바닥에 깔려 있던 부적 세 개가 동시에 허공에 떠올랐다.
풍천 도장은 차가운 눈빛으로 명준을 바라보았다.
아무런 감정도 보이지 않는 눈이었다.
같은 무당의 동도를 보는 눈빛은 절대로 아니었다.
방금 전까지 쾌활하게 웃고 떠들던 사람과 같은 사람이라고 생각할 수 없을 정도였다.
“명준 사제. 흥분했습니다. 일단 진정하시오.”
청법의 말이었다.
그제서야 명준이 억지로 손을 내렸다.
아무래도 청법은 겉으로 보기보다 배분이 높은 모양이다.
그러고 보니 청법은 청륜의 사형이라고 했다.
중년 정도 되어 보이는 도사가 늙어서 수염이 허연 도사의 사형이라니!
서열이 꼬인 것이 아니라면 노화를 되돌릴 정도로 정순한 내공을 가진 자일 것이다.
이한은 그제야 주변의 상황에서 시선을 돌렸다.
오직 명성 도장에게만 집중했다.
명성 도장의 머릿속에서 꿈틀거리던 벌레는 고통을 피해 밖으로 탈출하는 중이었다.
“잠시만 기다리십시오. 거의 다 나왔습니다.”
이한이 말을 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명성 도장의 코에서 벌레 하나가 기어 나왔다.
길이는 손가락 한 마디 정도, 실처럼 가는 벌레였다.
벌레는 밖으로 나오자 몸을 웅크렸다.
쌀알 정도의 크기로 몸을 줄인 후 그대로 딱딱해지기 시작했다.
진짜 검은색의 쌀알처럼 보였다.
흥분과 분노로 가득 차 있던 공간을 당혹감이 대신 채웠다.
명준도 명진도 말을 잃고 벌레를 보고만 있었다.
정신을 잃은 명성은 방치된 상태였다.
그는 언제 그렇게 날뛰었냐는 듯이 숨만 쉬고 있었다.
“어!”
벌레를 노려보던 풍천이었다.
“아시는 겁니까?”
“어디서 보았나 싶었는데 기억났습니다. 이것은 사천당가에서 사용하는 고독입니다. 내공을 가진 사람에게는 별 위험이 되지 않는 종류지요. 생각을 집중하는 것만으로도 쫓아낼 수 있으니까요.”
내공이 있으면 위험이 안 된다고?
그럴 리가?
모두의 시선이 명성에게 향했다.
연단파의 도사로 경전에 밝은 사람이라지만 무공도 나쁘지 않은 수준이다.
어디 가서 자기 한 몸은 건사할 정도는 된다.
그런데도 이런 꼴을 당했는데?
이한은 고개를 저었다.
“지금까지는 그랬을지도 모릅니다만, 이제부터는 아니겠지요. 게다가 이 벌레가 풍천 도장이 알고 있는 고독과 동일한 것이라는 보장도 없지 않습니까? 명성 도장이 내공이 없는 분은 아니지요.”
“그것은 그렇습니다. 그런데 명성 도장을 어떻게 해야 할지······”
말은 그렇게 했지만 풍천의 눈빛은 살벌할 정도였다.
같은 무당의 동도를 보는 것이 아니라 배반자 또는 적을 보는 눈빛이었다.
그것은 청법도 마찬가지였다.
“무당의 도사가 위협에 굴복하다니!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아직은 모르는 일입니다. 시시비비를 가릴 기회를 주십시오.”
청법의 말에 명준과 명진은 고개를 바닥에 박았다.
무림 문파의 내규는 혹독 하다.
특히 배반자에 대해서는 가차없다.
대부분의 경우 죽인다.
단전을 폐하고 사지의 근맥을 자르는 형벌을 받았다면 피치 못할 사정을 감안하여 자비를 베풀었다고 봐도 된다.
이를테면 가족이 인질로 잡혔다거나 하는 것 말이다.
그러니 만약 명성 도사가 협박에 굴복해 무당에 해를 끼쳤다면 반드시 죽을 것이다.
무당이 황궁에서 밀려나는 데에 조금이라도 협조한 일이 있다면 자비는 기대도 할 수 없다.
“사람은 환경의 영향을 강하게 받습니다. 두 분 도장께서는 무당산에 계속 있었으니 여전히 무당의 도사겠지만, 다른 분들은 황궁에 너무 오랫동안 있었던 모양입니다. 자신이 도사인지 궁인인지 헷갈릴 정도로 말입니다. 그 점을 감안해야 할 겁니다. 어쩌면 궁인답게 목줄이 잡혀서 그냥 끌려다닌 것이 아니라 다른 굴을 파놓았을 수도 있겠지요. 시시비비를 가릴 필요는 분명 있습니다.”
이한은 명성 도사에게 구명줄을 내려주었다.
일단 변명할 기회라도 준 것이다.
청법은 이한의 권고를 감안하여 결정을 내렸다.
“명준과 명진은 근신하라. 따로 부를 때까지 면벽하며 반성하라. 명성은 사지를 묶고, 점혈해서 경맥을 폐하라. 시시비비를 가릴 때까지 독방에 홀로 가두고 외인의 접근을 막아라.”
정리가 끝난 후 남은 사람은 셋이었다.
“어떻게 알아본 겁니까? 혹시 은밀전에서 무엇인가 입수한 정보라도 있은 겁니까?”
“그런 것은 아닙니다. 풍천 도장께서 부적에 대해 특별한 공부가 있듯이 나 역시 특별한 공부가 있습니다. 덕분에 간혹 사람을 꿰뚫어 볼 때가 있는데 이번이 그런 경우였습니다. 명성의 머릿속에 벌레가 보이더군요. 그래서 몰아냈을 뿐입니다.”
이한은 나노를 밝힐 수는 없으니 그냥 이것저것 특이한 무공을 익힌 사람이 되기로 했다.
“불가의 공부를 수련하시는 모양이군요.”
불교 쪽에 비슷한 무공이 있는 모양이었다.
하지만 알지도 못하는 일에 함부로 입을 놀릴 수는 없었다.
이한은 궁금증을 풀 겸 말을 돌렸다.
“그런데 조금 전에 하신 말을 들어보니 내공이 없는 사람에게는 고독이 큰 위협이 될 것 같습니다. 혹시 고위 관리에게 고독을 심으면 어떻게 되는 겁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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