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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림에서 나노머신-31화 (31/78)

31. 이한, 명령을 받다.

31. 이한, 명령을 받다.

이한이 이러한 질문을 하는 이유는 간단했다.

무당의 도사들이 황궁에서 밀려나는 과정이 납득을 할 수 없을 정도로 이상했기 때문이다.

무당의 도사들은 너무 무기력했고, 관련된 고위 관리들은 지나칠 정도로 가짜 도사들에게 호의적이었다.

그래서 고독이 머릿속에 박혀있는 명성 도사의 모습을 본 순간 유레카! 하고 외칠 수밖에 없었다.

가짜 도사들이 득세한 이유가 고독 때문은 아닐까라는 생각이 떠올랐던 것이다.

목에 폭탄띠를 두르고 표결에 임하는 국회의원들을 상상해 보았다.

누군가가 가지고 있는 스위치가 눌리는 순간 폭탄띠가 터지고 목이 날아간다고 하자.

그러면 그들은 누구를 위해서 일을 할까?

국가의 이익과 폭탄띠의 스위치를 가지고 있는 쪽의 이익이 충돌할 때 누구의 손을 들어줄까?

너무 자명하지 않을까?

그러나 풍천에게는 ‘너무 자명한’ 결론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먼저 하나 물어보지요. 이한 도우도 고독에 당한 사람은 무조건 술사의 명령에 따라 움직여야 한다고 알고 있습니까”

“그렇지 않을까요? 명령을 듣지 않는다면 죽을 테니까요.”

“그렇다면 목에 칼을 들이밀고 위협하는 것과 다를 것이 없지 않습니까? 암살하겠다면서 협박하는 것은 어떻습니까? 권력으로 죽이겠다고 압박하는 것은? 가족을 인질로 부당한 일을 요구하는 것은? 구태여 고독같이 희귀한 수단을 사용하지 않아도 목적을 이루는 것에는 별문제가 없을 것 같은데요?”

이한은 뭔가 상식이 깨어지는 느낌이었다.

듣고 보니 그런 것 같기도 했다.

“고독을 시전하면 마음대로 사람을 조정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그게 그렇지가 않습니다. 고독은 그냥 특별한 하독 수단에 지나지 않아요. 독을 먹이고 협박하는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그런데 수단이 너무 희귀에서 누가 일을 저질렀는지 알아내기도 쉽습니다. 별로 좋은 방식이 아닙니다. 누군가를 협박해서 말을 듣게 하려면 차라리 그 사람의 잠자리에 개의 목이라도 잘라서 던져두는 것이 더 낫습니다.”

실제로 그렇게 해 본 것 같은 어조였다.

이한은 왜 무당에서 풍천을 내려보낸 것인지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생각해보십시오. 만약 고독이 엄청난 위력을 가지고 있어서 고독에 당한 사람들을 마음대로 쥐고 흔들 수 있다면, 사천당문은 세상에 다시 없는 무능한 자들일 겁니다. 사천같은 촌구석에서 지금 뭐하고 있는 거랍니까? 경사에 올라와서 몇 개 가문만 손에 넣어도 제국을 자기들 마음대로 쥐락펴락 할 수 있을 텐데.”

“그렇다면 풍천 도장은 고독이 별로 위험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겁니까? 내공이 있는 명성 도장이 저렇게 고독에게 당했는데도?”

“명성의 경우는 고독에 당했다기보다는 무엇인가 약점이 잡혀서 스스로 고독이라는 족쇄를 차고 있었을 가능성이 큽니다. 머릿속을 훤하게 들여다볼 수 있을 정도로 육신통을 수련한 사람이 속세에서 활보하고 있으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을 테니 꽤나 그럴듯한 족쇄였을 겁니다.”

풍천은 명성의 머릿속에서 나온 고독을 다탁 위에 올려놓았다.

“하지만 이놈을 이한 도우가 알아차리고 내공으로 명성의 내부를 진탕시켜서 밖으로 몰아냈지요. 조사를 해봐야 확실해지겠지만 아마도 내공이 있는 자에게 고독은 여전히 위협이 되지 않을 겁니다. 지금 한가지 확인해 볼까요?”

풍천은 다탁 위에 있는 고독을 향해 기세를 끌어올렸다.

당장이라도 상대방을 죽일 것 같은 살기가 느껴졌다.

순간 검은색의 쌀알 크기로 웅크리고 있던 고독이 허둥지둥 도망치기 시작했다.

마치 뱀처럼 꿈틀거리며 풍천으로부터 멀어지려고 했다.

“보십시오. 제 예상이 맞는 것 같습니다.”

그 모습을 본 이한은 풍천의 의견에 동의할 수밖에 없었다.

내공을 가진 자에게 고독은 간단히 쫓아낼 수 있는 벌레에 지나지 않았다.

사실 내공을 수련할 필요까지도 없다.

이렇게 살기를 뿜어낼 정도로 내공을 수련한 자의 도움을 받을 수만 있어도 고독을 몰아내는 것은 간단하다.

비서령이나 집부령 같은 고위 관리에게 그런 사람이 없을 리가 없다.

고독으로 그런 고위 관리를 조정했다는 가정은 아무래도 아닌 것 같았다.

내공을 가진 자들까지도 위협할 수 있는 새로운 종류의 고독이 나타났다는 가정 역시 아닌 것 같았다.

결국 이한은 애초의 계획대로 대진국에서 왔다고 주장하는 가짜 도사들에 대해 무당의 도사들만이 알고 있는 여러 사실을 얻어듣고 명월루로 돌아왔다.

여러 가지로 도움이 되는 정보였다.

그런데 대화의 말미에 풍천은 고독의 위험성에 대해 나름대로의 가능성을 언급하기는 했다.

“만약 고독이 진정으로 위협이 되려면 고독에 당한 자의 혼백이 술사에게 지배당하는 경우를 생각할 수 있겠습니다. 그러나 인간은 천신이나 부처가 될 수 있는 씨앗을 가진 존재입니다. 그렇게 쉽게 일어날 일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풍천이 종교인으로서 그런 관점을 가지는 것은 당연했다.

그러나 이한은 인간이 얼마나 연약한 존재인지, 그리고 인간의 정신이 얼마나 쉽게 망가지는지 알고 있었다.

사천당문과 가짜 도사들이 손을 잡고 무엇인가 일을 꾸미고 있는 것이 분명한 지금, 고독의 위험성에 대해 아예 경시할 것은 또 아닌 것 같았다.

이한은 좀 더 조심하기로 했다.

“나노, 사람을 만날 때는 고독이 있는지 확인을 해 줘.”

[알겠습니다. 대신 식사의 양을 지금의 두 배로 늘려주십시오. 에너지의 소비가 급격하게 늘어날 수 있습니다.]

“지금도 많이 먹고 있는데?”

[칼로리 기준이니까 지방의 비율을 늘리면 됩니다. 한 끼 정도는 기름을 마시는 것으로 대체하는 것은 어떻습니까?]

“네가 먹는 것이 아니라고 너무 쉽게 말한다? 식사 대신 기름을 마시라고? 그런 것은 식사가 아니야. 급유지.”

둘은 투덕거리며 명월루로 복귀했다.

*

명월루에 돌아온 이한을 기다리는 것은 황궁으로부터 온 명령이었다.

정확히는 보모상궁을 통한 명령이었다.

상서성의 집부령을 암살하라.

미친!

국무총리 그것도 실세 국무총리를 암살하라는 명령인 셈이다.

“하하하. 이 인간들이 은밀전을 정말 알뜰하게 발라먹으려고 하는구만.”

이한은 수령한 명령서를 읽고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하지만 눈이 차갑게 가라앉은 것을 보면 지금 웃고 있는 모습이 진짜로 웃는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화를 내고 있는 쪽이었다.

기껏 좋은 기분으로 거처로 돌아왔는데 기다리는 것은 노골적인 토사구팽이었다.

아니, 이미 한 번 토사구팽을 했으니 뼈까지 고아서 사골국물을 우려내려는 것인가?

그 점에 대해서는 여문기와 설향 역시 이한과 같은 의견이었다.

“은밀전은 밀위를 모두 잃었네. 살아남은 사람은 은밀전의 살림을 맡았던 대주 몇이 전부일세. 그런데 우리의 의향을 묻는 것도 아니고 대놓고 명령이라니! 암살은 불가능해. 설사 명령에 따르고 싶어도 지금 우리에게는 능력이 없네.”

“그렇습니다. 명월루에 쓸만한 사람이 몇 명 있기는 하지만, 집 지키는 일이라면 모를까 암살 같은 일에는 어울리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런 사정을 모를 사람들이 아닌데도 은밀전에 명령을 내렸지요. 누구에게 내린 것이겠습니까?”

이한의 말에 벌써 노인의 모습이 군데군데 보이는 여문기는 이를 악물었다.

평생을 바쳐서 만든 조직이 박살 난 것이 불과 얼마 전이었다.

반역죄라는 얼토당토않은 죄목을 쓰고 일방적으로 사냥당했다.

동료들은 길거리에서 죽어갔고, 은밀전의 드러난 재산은 모조리 빼앗겼다.

한참 공격을 당할 때는 목숨을 구하느라고 정신이 없었지만, 폭풍우가 지나가고 난 다음에는 황궁에 남은 연줄을 이용하여 어떤 일이 벌어진 것인지 파악할 수 있었다.

타초경사를 역으로 이용한 계략에 은밀전이 말려든 것이다.

황제에게 위협이 되는 자들이 어디까지 손을 잡고 있는지 알아보기 위해 장공주가 직접 미끼가 되었고, 은밀전은 장공주의 휘하 세력으로 간주되어 함께 미끼로 내밀어졌다.

은밀전주인 여문기에게는 미리 귀띔도 없이 말이다.

그 결과가 장공주의 유폐와 은밀전의 말살이었다.

그래서 더욱 화가 났다.

여문기는 어려서부터 환관이었다.

황실에 충성심을 가지고 있고, 평생을 황실의 그늘에서 살아온 사람이었다.

황실에서 죽으라면 기꺼이 죽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가 거느린 사람들까지 함께 죽으라고 한다면 고개를 저을 수밖에 없다.

그것은 지나친 요구였다.

적어도 한 번 물어보기라도 해야 했다.

그게 부리는 사람에 대한 예의다.

충성심을 가진 자가 계속 충성심을 발휘하게 하려면 어울리는 대우를 해줘야 한다.

그런데 한 번 쓰고 버리는 도구처럼 취급을 해버렸으니 여문기는 황실에 대해 크게 실망을 한 상태였다.

여문기가 은밀전의 일에서 손을 떼고 은거를 하다시피 한 것은 그래서였다.

먼저 죽은 동료들을 볼 면목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다시 한번 이런 취급이라니!

내 사람을 또 멋대로 휘둘러!

이번에는 모욕감을 느낄 정도였다.

“왜 이런 명령이 내려왔는지는 뻔하네. 장공주를 미끼로 내세운 타초경사의 계가 실패한 것이 분명해. 적어도 기대한 만큼 성공하지는 못했겠지.”

도지감의 태감까지 했을 정도로 황궁의 일에 밝은 여문기였다.

일단 돌아가는 상황을 파악하자 어째서 이런 명령이 내려왔는지 여문기의 눈에도 뻔히 보였다.

황제에게 위협이 될 만한 자들을 다 파악해내지 못한 것이다.

예친왕과 가짜 도사들, 관리들 중 일부, 경사에 주둔하고 있는 군대.

그들 중 누가 적이고 아군인지 아직 파악이 다 안 된 것이다.

그래서 다시 한번 풀을 때려볼 생각임에 틀림없었다.

상서성의 집부령.

적절한 목표다.

저 정도 되는 거물은 때려줘야 모두들 불난 집에서 튀어나오는 사람들처럼 반응할 테니까.

그리고 다른 사람도 아니고 관료조직의 정점이라고 할 수 있는 집부령을 목표로 삼은 것을 보면 아직도 회색분자로 버티고 있는 관리들이 적지 않은 모양이었다.

이한은 명령서를 바닥에 집어 던졌다.

“황제에게는 충분한 세력이 있습니다. 피아가 구분되면 한순간에 적을 쓸어버릴 자신이 있을 정도로 말입니다. 그렇지 않고서야 타초경사의 계를 쓸 수는 없지요. 힘이 부족하면 놀라서 튀어나온 뱀에게 물려 죽을 테니까요.”

“그렇지. 나도 그렇게 생각하네. 예친왕은 어리석은 짓을 하고 있어. 그것을 알기에 관리들 역시 엎드려 있는 것이지. 장공주 전하께서 유폐될 정도인데도 관리들은 꿈쩍도 안 하고 있지 않은가.”

복지부동하는 관리들이라니.

뭔가 터져버린 이한은 자신의 감정을 숨기지 않았다.

화를 내고 욕을 했다.

복지부동하는 관리와 태도가 애매한 군대.

욕심 많은 황족과 음흉한 사기꾼들.

요구하는 것이 많은 황실까지.

대상을 가리지 않았다.

그래서 냉정하게 말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래서 이 명령은 거부할 수 없습니다. 거부한다면 황실의 적을 쓸어버릴 때 은밀전의 남은 사람도 같이 쓸려나갈 겁니다.”

“음······”

여문기는 뭐라고 말을 할 수가 없었다.

명령을 따라야 한다면 나설 사람은 한 명뿐이었다.

발언권은 오직 이한에게만 있어야 했다.

“대신 챙길 것은 좀 챙기도록 하지요. 황실에서 기겁할 정도로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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