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무림에서 나노머신-36화 (36/78)

36. 위지산, 머리를 박다.

36. 위지산, 머리를 박다.

이한의 질문에 나이를 알 수 없는 남자는 가볍게 혀를 찼다.

방금까지 허탈한 표정으로 현이 끊어진 금을 어루만지던 사람답지 않은 반응이었다.

“쯧. 은밀전의 밀위가 목표의 얼굴도 미리 확인을 안 했다니 말이 되나? 아무리 은밀전에 사람이 없다고 해도 이렇게까지 기본이 안 된 자를 내세우다니 여문기답지 않군.”

30대에서 50대?

절대 아니었다.

이 남자는 겉으로 보기보다 나이가 많은 자가 분명했다.

훈계하고 참견하는 태도가 너무 자연스러웠다.

은밀전주와 친분이 있는 것을 과시할 정도면 최소한 70대 이상?

80대 후반의 은밀전주도 내공을 잃기 전까지는 중년인의 외양을 하고 있었으니 충분히 그럴 법한 일이었다.

“본래 밀위도 아닌 자에게 무슨 말을 하는 거요? 기본이 있든 없든 무슨 상관이라고. 기본이 안 되어 있는 자의 칼에 베이면 상처가 안 날 것 같소?”

이한은 칼을 들어 눈앞의 남자에게 겨눴다.

쓸데없는 말은 치우라는 협박이었다.

“위지산이 무공을 익혔다는 말을 듣지는 못했지. 다만 당신이 금을 타고 있는 모습을 보고 혹시나 해서 물어봤을 뿐이오. 본래 악(樂)은 사대부가 갖추어야 할 여섯 가지 소양 중의 하나니까. 그러나 당신이 하는 말을 들어보니 위지산은 확실히 아니군. 당신에게서는 관리의 냄새가 나지 않아.”

“무공 말고는 아무것도 모르는 무림의 멍텅구리는 아니었군. 여문기가 환관답지 않게 학문도 능통한 사람이기는 했지. 어디서 데려와도 자신과 같은 사람을 데려왔어.”

남자는 입가에 묻은 피를 닦아내며 고개를 저었다.

묘한 여유가 보이는 태도였다. .

네가 감히 나를 해할 수 있을까라는 물음이 그냥 들리는 것 같았다.

그래서 너는 누군데?

이한의 손에 살짝 힘이 들어갔다.

“내가 누군지 물었던가? 나는 위지산의 숙부로 위자안이라고 한다. 무림의 동도들은 나를 음률에 미쳤다고 해서 음광이라고 부르지.”

음광.

이한도 들어본 적이 있는 별호였다.

3괴 4광 중 하나다.

하나같이 무림에서 괴짜로 명성이 높은 자들이었다.

차이가 있다면 3괴에 비해 4광이 훨씬 더 멋대로이고, 자기중심적이며 위험한 자들이라는 정도?

이한은 이미 3괴 중 하나인 무벽 황보상과 교류한 적이 있다.

습관이나 집착을 의미하는 벽(癖)이라는 단어가 무림명에 붙어있던 황보상만해도 평범한 사람은 아니었다.

그런데 미쳤다는 단어인 광(狂)이라는 단어가 무림명에 붙을 정도면 얼마나 정상과 동떨어진 사람일지 모른다.

이한은 쓸데없이 말을 섞지 않기로 했다.

지금 해야 할 일은 이곳에서 최대한 소란을 피우고 빠져나가는 것이었다.

하지만 위자안은 그런 이한의 사정은 신경도 쓰지 않았다.

심지어 자신의 조카이며 조정의 중신이고 고명대신이기까지 한 위지산에게 해를 끼치러 왔다는 것도 아무 상관이 없다는 식이었다.

그에게 중요한 것은 이한이 자신의 음공을 파훼한 방식이었다.

음광이라는 별호가 붙은 사람다웠다.

“신기하군. 신기해. 자네와 같은 방식으로 음공을 사용하는 사람은 본 적이 없어. 노래로 내 탄음광소를 상쇄하여 없애다니! 이론으로는 가능한 일이지만 실제로 가능하리라고는 생각도 못 했어. 어떻게 한 것이지?”

“지금 뭐 하자는 거요?”

“그것 뿐만이 아니야. 아무리 봐도 절정에는 미치지 못했어. 그런데 어떻게 내 탄음광소를 버틴 걸까? 처음에 비틀거린 것을 보면 분명히 타격을 입기는 했는데 말이지. 저기 쓰러져 있는 식충이들 보이나? 무관직을 희망하고 있는 자들이지. 둘 다 일류급의 무림인이고 추천장을 써줄 만한 자들이야. 조카 녀석도 조만간 적당한 자리에 추천하려고 했지. 그런데도 내 탄음광소를 버티지 못하고 저렇게 쓰러져 있거든. 그게 정상이야. 절정급의 무림인은 되어야 내 음공에서 버틸 수 있다고!”

이한은 더 이상 상대의 말을 들어줄 기분이 아니었다.

원래 미친 사람과는 말을 섞는 것이 아니다.

이한은 오행심법을 끌어올렸다.

순간 위자안의 눈빛이 달라졌다.

“역시 내공인가? 무공 수준에 어울리지 않는 많은 내공이라. 무슨 기연이라도 있었던 거겠지? 그러면 설명이 가능하기는 해. 여전히 의문이 많기는 하지만.”

이한의 검이 오행권의 투로를 따라 움직이려는 순간이었다.

위자안은 손뼉을 치기 시작했다.

금을 타는 것보다 더 위협적인 기파가 손뼉에서 퍼져 나갔다.

“내상을 입은 자는 제대로 무공을 쓸 수 없다. 음공처럼 내공에 전적으로 의존해야 하는 무공은 더욱 그렇지. 하지만 나는 최근에 내공뿐 아니라 소리에도 의지를 실을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네. 내공을 아예 사용할 수 없는 사람이라면 모를까 한 줌의 내공이라도 사용할 수 있다면 그것을 마중물 삼아 외부의 기를 끌어오는 것이 가능해. 이런 식으로 말이지.”

손뼉 치는 간격이 늦어졌다.

그러나 소리는 더 높아지고 소리에 실린 살기는 더 강해졌다.

분명 나노가 실시간으로 대응하고 있을 텐데도 현기증을 느낄 정도였다.

이한은 위자안을 중심으로 기가 회전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손뼉 소리에 맞추어 맥동치며 회오리치듯 회전하고 있었다.

공기를 매질로 삼아 이동하던 파장이 눈에 보였던 것처럼 이번에는 기의 흐름이 눈에 보였다.

[위자안의 단전과 경맥에서 관찰되는 내공의 흐름이 정상이 아닙니다. 내상을 입은 것이 분명합니다.]

“내상을 입은 사람이 이렇게 기를 운용할 수 있나?”

“내공은 많은 것을 가능하게 하지.”

[음파가 외부의 기에 영향을 미치는 것 같습니다. 노래를 불러 주십시오! 손뼉 소리를 상쇄하겠습니다. 소리를 없애면 회전하는 외기 역시 통제가 불가능할 것이라고 봅니다.]

이한은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여전히 엉망인 노래였다.

*

개가 상대에게 배를 드러내면서 눕는 것은 상대에 대한 복종을 의미한다고 한다.

나는 당신보다 서열이 아래고, 당신의 명령에 따르겠다는 표시다.

개처럼 서열을 따지는 인간에게도 비슷한 것이 있다.

머리를 숙이고 허리를 구부리는 몸짓이 그것이다.

나는 당신의 아랫사람이고 싸울 생각도 없다는 것을 표시한다.

좀 더 많이 숙일수록 좀 더 아랫사람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행동은 대부분 예의라는 명칭으로 포장되어 있기는 하지만 본질은 개의 그것과 같았다.

서열을 확실시하고, 그것을 상대에게 보이는 것이다 .

그리고 지금,

위지산이 하는 행위도 본질은 개의 그것과 다르지 않았다.

좀 더 적극적이고, 좀 더 필사적일 뿐.

위지산은 이마를 바닥에 대고 엎드려 있었다.

두 손과 두 무릎 역시 바닥에 댄 상태였다.

벌써 세 시진이었다.

어느새 해가 떴는지, 햇볕은 뜨겁기만 했다.

땀은 계속 흐르고 목도 말랐다.

하지만 위지산은 미동도 하지 않았다.

60이 넘은 육체는 더 이상 버티기 힘들다고 고통을 호소했지만, 고통은 위지산의 정신을 더욱 날카롭게 벼렸다.

여기서 황제의 반응을 끌어내지 못한다면 반드시 죽는다.

어떻게 해서든 황제의 얼굴을 보아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앞으로 다시는 황제의 얼굴을 보지 못하리라는 확신이 그를 사로잡고 있었다.

그 혼자 죽는 것은 문제도 아니었다.

그가 이끄는 학맥과 파벌이 한꺼번에 날아가는 대참사가 벌어질 수도 있다

도찰원과 어사대가 탄핵을 위해 날뛰고 있는 것은 진작에 알고 있었다.

상시적인 관리의 감찰과 탄핵을 담당하는 도찰원.

하명에 의한 관리의 감찰과 탄핵을 담당하는 어사대.

둘 다 미친개처럼 이곳저곳을 들쑤시고 있었다.

장공주가 유폐된 이후로는 더욱 공공연하게 움직였다.

그러나 그때까지는 크게 걱정하지 않았다.

말로 떠드는 것은 위험하지 않다.

도찰원과 어사대는 입만 있을 뿐 손은 없는 곳이었다.

아무리 시끄럽게 떠든다고 해도 실제로 누군가를 잡아넣을 수 있는 곳은 아니었다.

황제의 권위가 명확했던 시기라면 도찰원과 어사대의 고발이 황제의 권위를 빌어서 실행되었을 것이다 .

그러나 지금은 아니었다.

저 두 기관이 아무리 날뛴다고 해도 한계는 명확하다고 생각했다.

목표로 하는 관리를 실각시키고 유배시키는 정도?

하나의 파벌을 완전히 날려버리는 일 따위는 불가능했다.

분명 당시에는 그것이 맞는 판단이었다.

어린 황제 역시 조용했기 때문이다

자신을 비롯한 고명대신들의 말을 들으며 별다른 의문을 제기하지도 않았다.

그래서 안심하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금의위가 움직인다는 소리가 귀에 들어온 것이다.

금의위는 황궁을 지키는 무력집단이다.

그리고 오직 황제의 명령만을 따른다.

도찰원이나 어사대와 달리 황제의 명령만 있다면 누구든 목을 날려버릴 수 있다.

거기까지는 그래도 그럴 수 있다고 생각했다.

황제의 권위가 약해지고 친왕이 슬슬 고개를 들기 시작하니까 금의위가 나서서 균형을 맞추는 것이리라.

실제로 금의위에 있던 자신의 학맥에 속하는 자들 역시 크게 다르지 않은 소리를 했다

아직 황제께서 어리신데 황실에 풍파가 이는 것은 바라지 않는다는 말이 흘러나왔다.

언젠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지금 당장은 아니라는 의미였다.

그러나 거기까지였다.

위지산은 남면방어사가 움직인다는 소리를 듣자마자 지체없이 황궁으로 달려갔다.

남면방어사는 북면방어사와 달리 황족이 지휘하는 부대가 아니었다.

예친왕의 지분이 제법 되고, 다른 친왕이나 고위 관리의 지분도 적지 않은 북면방어사와 달리 남면방어사는 황제가 직접 임명한 무관의 지휘를 받았다.

병력의 숫자는 많지 않았지만, 그곳에는 황궁의 고수의 나머지가 몰려 있다.

황제가 직접 임명하는 무관이 황궁의 고수들을 지휘하는 것이다.

이 정도가 되었는데도 무슨 일이 벌어지는 것인지 모르면 병신이다.

숙청이었다.

모든 관리의 정점인 집부령이 마지막 순간이 되어서야 세상 돌아가는 상황을 파악한 것이다.

숙청은 짜고 치는 노름과 비슷하다.

누가 어떤 카드를 내고, 얼마만큼 돈을 걸고,

누가 이기고 판돈은 얼마나 가져가고,

개평은 누가 먹고, 정리는 누가 하는지 모두 정해져 있다.

그런데 상서성의 집부령인 자신이 숙청에 대해 전혀 모르는 상황이었다.

그러면 결론은 간단하다.

타짜로 도박판에 앉아있는 것이 아니라 판돈으로 도박판에 올라가 있는 것이다.

위지산은 제발 너무 늦지 않기만을 바랐다.

그런 위지산의 간절함에 응답을 하는 것인지 일단의 사람들이 몰려왔다.

위지산은 필사적인 마음으로 이마를 바닥에 붙였다.

멀지 않은 곳에서 발걸음이 멈췄다.

그리고 아직 어린 티가 남아있는 목소리가 정적을 깼다.

“황사. 집부령은 어떻습니까? 정상인 것입니까?”

“그렇습니다. 집부령의 머릿속은 깨끗합니다. 걱정하실 일은 없겠습니다.”

위지산의 기억에 있는 목소리였다.

분명 소림사의 승려로 최근에 갑자기 황실에 드나들던 자였다.

소림 방장의 사형이라고 했던가?

“그래요? 그러면 왜 그런 짓을 한 걸까요? 진짜 반역이라고 할 생각이었나?”

“직접 물어보시지요. 정신이 멀쩡한 것 같으니까 말입니다.”

“그래야겠습니다. 집부령은 고개를 들라.”

위지산은 조심스럽게 고개를 들고 앞을 바라보았다.

황제가 그를 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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