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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림에서 나노머신-41화 (41/78)

41. 혼천감에서의 전투

41. 혼천감에서의 전투

“예술작품이네.”

이한이 혼천감의 건물로 쓰이고 있는 12층 탑을 보고 느낀 감상이었다.

구리판으로 외부를 마감한 탑의 외부에는 프렉탈 문양이 끝없이 이어져 있었고, 탑의 최상부에는 구형의 흰색 옥이 올라가 있었다.

중간중간 박혀있는 보석과 유리 역시 기하학적 문양의 일부로 녹아들어 가서 전위적인 느낌을 더욱 강화했다.

구리판이 햇빛을 반사하며 번쩍거리는 모습에서는 유리로 외관을 마무리한 건물이 연상되기도 했다.

나무로 기둥을 세우고, 흙이나 벽돌로 벽을 만들고, 기와로 지붕을 덮는 이곳의 건축양식과는 비슷한 점이 하나도 없는 이질적인 건축물이었다.

가짜 도사들이 혼천감과 제단소를 장악한 시기를 생각해보면 이 정도의 건물을 짓는 데 2년도 걸리지 않았다는 이야기다.

너무 대단해서 믿기 어려운 정도였다.

그러나 지금은 탑의 독특함과 아름다움을 감상하고 있을 상황이 아니었다.

이한은 이미 탑을 둘러싸고 있는 일단의 위사들을 볼 수 있었다.

백 명에서 살짝 부족한 숫자.

그렇다면 3개 위가 동원된 것이다.

일반적인 경우라면 관청 하나를 점거하기에는 충분하다 못해 넘치는 숫자다.

하지만 혼천감을 차지하고 있는 도사들의 실력이 어떤지 이미 경험해 본 이한에게는 애매하게 보였다.

그나마 위사들 중 몇 명이 상당한 수준의 무공을 익힌 자들이라서 다행이었다.

심지어 그들 중 한둘은 이한이라고 해도 쉽게 상대하기 어려운 수준이었다.

“어사대부 이한이다.”

이한은 무공각에서 머무는 동안 받은 명패를 꺼내서 들어 보였다.

검은색으로 물들인 상아에 소속과 이름을 음각한 명패였다.

원래 관직에 있는 사람은 품계가 곧 인격이 되는 법이지만, 감찰 기관만은 예외다.

아무리 직위가 낮다고 해도 감찰기관 소속이라면 조심스럽게 대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게다가 어사대부라니!

높은 분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낮은 직위도 아니었다.

괜히 찍힐 필요는 없는 것이다.

금의위의 위사들 역시 마찬가지 생각이었다.

악공의 옷을 입고 갑자기 나타나서 끼어든 이한을 경원시하기는 했지만 막지는 않았다.

시국이 시국이라서 그런 면도 있었다.

1개 위, 30명의 금의위 위사와 그들을 지휘하는 3명의 별장이 혼천감의 입구로 향했다.

나머지는 도주하는 자를 막기 위해 주변을 둘러싸고 있었다.

이한 역시 그들과 함께 움직였다.

“저항하는 자는 죽여라. 항복하는 묶어서 끌어내라.”

명령은 단순했다.

죽이라는 말이 앞서는 것을 보면 딱히 포로로 사로잡을 생각도 없는 것 같았다.

탑의 입구에는 혼천감의 관원들, 그러니까 대진국 출신이라고 사기치고 있는 자칭 도사들이 몰려 있었다.

그들은 탑 내부로 진입해 들어오는 위사들을 향해 열렬한 환영인사를 보내주었다.

얼핏 눈으로도 볼 수 있을 정도로 유형화된 기운을 위사들을 노리고 쏘아댄 것이다.

“격공장인가?”

“위력은 별것 없다. 밀어버려!”

보통 사람이 맞으면 뼈가 부러질 정도로 강한 위력이었지만, 그 정도에 당할 위사는 아무도 없었다.

그들은 탑의 입구를 막아선 가짜 도사들을 향해 쇄도해 들어갔다.

[격공장이 아닙니다. 내공을 이용한 공격도 아닌 것 같습니다.]

“내가 보기에도 격공장은 아닌 것 같은데. 지팡이는 주먹이 아니잖아?”

검은 연기 덩어리 같은 무엇인가가 지팡이에서 발사되고 있었다.

어떻게 보아도 저것은 격공장이 아니었다.

차라리 소설에서나 보던 마법이라면 모를까.

매직미사일 같은?

그런데 그것은 희뿌연 것 아니었던가?

얼마 지나지 않아 탑의 입구에서 난전이 시작됐다.

위사들의 칼이 도사들을 노리고 휘둘러졌고, 도사들의 지팡이 역시 위사들을 찔러댔다.

중간중간 불길한 느낌의 기운 덩어리가 날아다니는 것은 덤이었다.

이한은 이미 가짜 도사와 겨뤄본 적이 있었다.

혜목장공주가 유폐된 곳에서 맞부딪쳤던 가짜 도사는 비정상적으로 보일 정도로 빠르게 움직였고, 조금 불완전한 느낌은 있었지만 그래도 제법 쓸만한 호신공으로 몸을 보호하고 있었다.

지금 탑의 입구에서 위사들을 막고 있는 가짜 도사들 역시 비슷했다.

차이가 있다면 그 당시의 이한보다 위사들의 실력이 좀 쳐진다는 정도?

지팡이에 찔려서 쓰러지는 위사가 속출하는 모습을 보니 좀이 아니라 많이 쳐지는 것 같기도 했다.

“멍청한 놈들! 물러서지 마라!”

뒤에서 위사들을 지휘하고 있던 별장 하나가 더 이상 그런 꼬락서니를 참을 수 없었던지 고함을 지르며 몸을 날렸다.

4장이 넘는 거리를 한걸음에 뛰어넘은 그는 그대로 가짜 도사를 덮쳤다.

가장 두드러지게 나서서 날뛰던 자였다.

위에서 아래로 내려친 칼은 바위라도 일격에 쪼게 버릴 것 같았다.

하물며 인간 따위야.

만약 가짜 도사의 지팡이가 평범하게 나무로 만든 것이었다면 분명히 절반으로 쪼개졌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 가짜 도사들이 사용하는 지팡이는 금속으로 만든 것이었다.

흠집은 날망정 일격에 잘릴 정도로 약한 물건은 아니었다.

가짜 도사의 팔은 내공이 실린 일격을 버티지 못하고 어깨가 탈구되었지만, 지팡이는 일격을 견뎌냈다.

부상을 입은 가짜 도사는 쓰러지듯 구르며 뒤로 물러섰다.

그리고 그를 대신해 다른 자가 별장의 앞을 가로막았다.

하지만 그 역시 두 번의 강격을 막는 것이 고작이었다.

관절이 빠지기까지 했지만 어쨌든 공격을 막았던 먼젓번 도사와 달리 이 자는 두 번째 강격에 팔이 하나 날아가기까지 했다.

땅바닥에서 떨어진 팔은 별개의 생명이라도 가진 것처럼 퍼덕였다.

뒤에 있던 별장 하나가 더 탑의 입구로 뛰어들었다.

두 명의 별장이 날뛰기 시작하자 분위기 자체가 완전히 변했다.

지금까지는 부상은 입었을망정 가짜 도사들 중 죽은 자는 아무도 없었다.

그러나 두 명의 별장이 동시에 무기를 휘둘러대자 사망자가 속출하기 시작했다.

마치 합을 맞추기라도 하는 것처럼 동료의 공격을 도와주는데, 가짜 도사들의 입장에서는 생각하지도 못하고 있던 사각에서 자꾸 공격이 들어오니 그대로 당하는 것이다.

이한의 눈에는 이곳에 있는 가짜 도사 모두가 조만간 죽거나 아니면 부상을 입고 묶여서 끌려갈 것이 뻔히 보였다.

별다른 변수가 없다면 말이다.

이한이 그렇게 생각한 순간이었다.

이곳에 있던 가짜 도사들 중에서도 가장 나이가 들어 보이는 자가 외치기 시작했다.

“이대로라면 탑을 지킬 수 없다! 마스터가 오실때까지 버텨야 한다! 수인화를 하자!”

“안 됩니다. 수인화를 하게 되면 더 이상 이곳에 있을 수 없게 됩니다.”

“저들을 봐라. 이곳은 이미 끝났다. 그냥 수인화를 해! 책임은 내가 질테니까!”

“젠장. 자일스! 책임은 확실히 지시오! Mallumo, akceptu min kiel unu el viaj. Mi proponas mian racion kaj homan korpon kiel oferon.”

수인화라는 것을 반대하던 자가 결국 찬성으로 돌아선 모양이었다.

그는 이해할 수 없는 말을 지껄이기 시작했다.

그러자 더 이해할 수 없는 일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그자의 몸에서 털이 솟기 시작했다.

몸은 커지고, 얼굴은 앞으로 길어졌다.

보통 인간의 몇 배나 되는 크기로 커진 손에는 단검보다 더 날카롭고 단단해 보이는 발톱이 자라났다.

모든 변화가 마쳤을 때 그 자리에 더 이상 인간은 존재하지 않았다.

짐승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도 이질적인, 차라리 괴물이라고 할 만한 것이 대신 그 자리에 서 있었다.

[늑대 인간인데요.]

“늑대 인간이군.”

[미쳤어! 저런 것이 가능하다니! 이한님 저놈을 잡아서 샘플조직을 확보해 주십시오.]

“설마 먹으라는 말은 아니겠지?”

[안될까요?]

“......머리털만.”

[감사합니다. 가능하면 내장 쪽이나 성세포도 부탁드리겠습니다.]

“머리털만!”

[......알겠습니다.]

이한이 나노와 합의를 보는 사이에 가짜 도사들 중 늑대인간으로 변한 자가 4명이나 더 나왔다.

본래 입구를 막고 있던 자가 10명 정도였던 것을 생각하면 절반이나 되는 자가 늑대인간으로 변한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위사들을 압도했다.

“억!”

“너무 빨라!”

“물러서지 말라고! 자리를 지켜!”

그 짧은 순간에 30명의 위사들 중 벌써 10명에 달하는 위사들이 죽거나 부상을 입고 쓰러졌다.

평수를 이루며 견제한 것은 두 명의 별장뿐이었다.

뒤에 아직 남아있던 별장과 이한은 그 장면을 보자 즉시 그들 사이로 뛰어들었다.

이한은 경사에 온 후로 많은 발전을 이루었다.

한 갑자에 달하는 내공을 갈무리했고, 삼단삼극권도 익힐 만큼 익혔다.

심지어 오행권 역시 기초는 떼었다고 스스로 평가할 정도였다 .

음공이나 독공은 덤이었다.

하지만 무림에서 말하는 절정의 수준은 아니었다.

그 초입에 발을 살짝 들였을지는 몰라도 진정한 무림고수의 출발점에는 아직 도달하지 못했다.

일류의 끝자락, 절정의 초입.

그것이 이한 스스로가 평가한 자신의 현재 상태였다.

위자안 역시 그러한 평가에 동의해 주었다.

그렇다면 이 늑대인간들의 수준은 어떨까?

이한은 자신의 머리카락을 스치듯 지나가는 손톱을 보며 검을 흔들었다.

낭창낭창 휘어지는 검이 늑대인간의 코앞에서 춤을 췄다.

내공이 실린 검 끝이 화려하게 움직였다 .

마치 꽃이라도 그리는 것 같은 움직임이었다.

하지만 그 속에 담긴 파괴력은 육체가 감당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인간의 육체가 아니라 늑대인간의 육체라고 하더라도 마찬가지다.

검을 막으려던 손톱이 한꺼번에 잘려나가는 순간 늑대인간 역시 그러한 사실을 깨달았다.

제대로 내공이 실린 공격은 일반적인 방법으로 막을 수 없다.

막는 자 역시 내공이 필요하다.

아니면 내공을 대체할 만한 무엇인가 있어야 한다.

그것도 아니라면 더 빠르고 강한 공격으로 상대를 압도하거나.

늑대 인간의 움직임이 인간의 눈으로는 따라잡기도 어려울 정도로 빨라졌다.

손은 눈보다 빠른 법이다.

늑대인간의 손은 더욱 그렇고.

검을 피해 몸을 낮추고, 이한에게 가까이 접근해서, 다리부터 머리까지 단숨에 찔러대는 발톱은 눈으로 보고 막을만한 것이 아니었다.

하지만 늑대인간은 빠른 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했다.

이한은 청경을 익히고 있었다.

아직 완전히 체화시켰다고 할 수는 없지만, 단순히 빠르고 강하게 움직이는 것이라면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보지 않아도 공격을 알아 수 있는 것이다 .

종아리, 무릎, 허벅지, 고간, 아랫배.

이한은 연달아 찔러오는 손톱을 하나하나 쳐냈다.

검을 쓰기에는 좁은 공간이라서 왼손으로 일일이 밀어낸 것이다.

늑대인간의 노란색 눈을 계속 노려보면서 말이다.

처음 종아리를 향해 찔러오는 손톱을 밀어낼 때는 감정을 읽기 어려웠던 눈빛이었지만 허벅지를 막을 때는 놀라는 감정을 읽어낼 수 있었다.

그리고 아랫배에 찔러오는 손톱을 막을 때는 흔들리는 기색이 역력했다.

이한은 가슴을 향해 찔러오는 손톱을 밀어내며 상대에게 바싹 붙었다.

자신의 손톱을 한꺼번에 날려버린 검에 계속 신경을 쓰고 있던 늑대인간은 갑자기 붙어오는 이한의 움직임을 잠깐 놓치고 말았다.

뒤로 물러서지도 못하고 제때 반격하지도 못했다.

그 대가는 처참했다.

이한의 무릎과 발꿈치가 연달아 상대의 몸을 두드렸다.

수십 번에 달하는 타격이 리듬감 있게 몰아쳤다.

하나하나가 내공이 실린 타격이었다.

늑대인간은 고통과 충격으로 몸이 마비되는 것 같았다.

그리고 바로 순간 이한의 주먹이 늑대인간의 관자놀이를 후려쳤다.

그것으로 끝이었다.

이한은 끈이 끊어진 마리오네트처럼 널브러진 늑대 인간을 일별한 후 장내의 상황을 살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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