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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림에서 나노머신-43화 (43/78)

43. 공간이동입니다.

43. 공간이동입니다.

12층 탑은 연무결이 등장한 후부터 이상한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탑의 겉면을 둘러싼 구리판의 문양을 따라 간간이 빛이 흐르고, 탑의 꼭대기에 있는 둥근 옥장식에서 불꽃이 튀기도 했다.

그리고 연무결이 탑을 향해 손을 뻗은 후부터는 그러한 이상현상이 더 심해졌다.

빛의 흐름도, 불꽃도 더 강해진 것이다.

그에 호응이라도 하듯 연무결의 모습도 기괴하게 변했다.

산발된 머리카락은 사방으로 뻗어서 꼿꼿하게 서고, 입고 있던 옷은 바람이라도 불어넣은 것처럼 팽팽하게 부풀었다.

주변을 잠식해 들어가는 사이한 기운까지 감안하면 정말로 가까이 가고 싶지 않은 모습이었다.

하지만 연무결에게 접근하던 두 명의 무관은 그런 것에 전혀 영향을 받지 않았다.

금의위의 좌소인 장전상과 육선문의 4품 정장인 심홍기는 연무결에게 잠시의 여유도 줄 수 없다는 듯 지체없이 공격을 시작했다.

연무결의 앞뒤에서 동시에 달려든 것이다.

이화창의 고수인 장전상은 진왕점기세의 기법으로 창을 찔렀다.

한 번에 세 번 찌르고 다시 창두를 흔들며 밀고 들어가는 기법이었다.

장전상이 즐겨쓰는 기법으로 이화창의 기본 초식을 연결해 놓은 것이다.

하지만 기본 초식은 누가 쓰느냐에 따라 위력이 천차만별로 갈리는 법.

형이나 익히고 마는 일반 병사가 쓴다면 한 번에 세 번 찌른다고 해봐야 연달아 세 번 찌르는 것이 한계일 것이고, 창두를 흔들며 밀고 들어간다고 해도 창대를 옆으로 쳐내면 그만이다.

그러나 장전상 같은 무공의 고수가 사용한다면 이것이 과연 같은 초식인 걸까 싶을 정도로 달라진다.

말 그대로 한 번에 세 번을 찌른다.

동시에 찔러오는 세 개의 창촉을 동시에 막을 수 없다면 반드시 찔린다.

흔들거리면서 밀고 들어오는 창두 역시 마찬가지다.

이것은 내공을 싣고 뻗어오는 주먹과도 같다.

단지 주먹이 창의 길이만큼 길게 뻗어 나왔다는 차이가 있을 뿐이다.

내공이 실린 주먹을 쳐낼 수 없다면 창대를 쳐내는 것도 불가능하다.

무공을 익힌 자가 아니면 절대로 막을 수 없는 공격이다.

그러나 연무결은 장천상을 상대해 줄 생각조차 없는 것 같았다.

그는 바로 공중으로 몸을 날렸다.

솟구치듯 하늘로 몸을 띄운 것이다.

장천상의 창끝이 아슬아슬하게 연무결의 발밑을 스치고 지나갔다.

연무결의 뒤를 노렸던 심홍기의 검 역시 목표를 잃고 허공을 찌르고 말았다.

해소되지 않은 기파가 공기를 찢었다.

사람 하나쯤은 간단하게 찢어버릴 것만 같은 충격파였다.

그러나 아쉽게도 연무결에게는 닿지 않았다.

심홍기는 자신의 검이 빗나가고, 목표는 공중으로 솟아오르자 지체하지 않고 비도를 던지기 시작했다.

연달아 날아가는 비도가 연무결을 따라갔다.

실려있는 기세는 철판이라도 뚫을 것 같은 느낌이었지만, 연무결을 뚫지는 못했다.

비도는 연무결의 근처에서 크게 휘어지며 엉뚱한 곳으로 날아가고 말았다.

막는 것이 아니라 근처만 가도 휜다고?

이해할 수 없는 장면이었다.

게다가 연무결이 허공에 그대로 떠 있는 것도 이해할 수 없기는 마찬가지였다.

경공에 능한 자라면 몸을 단숨에 솟구쳐서 몇 길이나 되는 높이만큼 뛰어오르는 것이 가능하다.

그 정도는 심홍기도 할 수 있다.

발을 한 번 굴러서 황궁을 둘러싸고 있는 3장이 넘는 담벽을 넘는 것 따위는 일도 아니다.

그러나 저렇게 허공에 둥둥 떠 있는 것은 불가능했다.

저런 것을 허공답보라고 하는데, 심홍기 같은 사람도 말이나 들어본 것이지 실제로 본 적은 없었다

아마 화경에 다다른 무림인 중에서도 특별히 경공에 조예가 있는 자이여야 가능하지 않을까?

그런데 자신들에게 쫓겨서 겨우겨우 도망친 연무결 따위가 허공답보를 할 수 있다고?

납득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것에 의문을 가지고 탐구할 때가 아니었다.

사람들의 손을 피한 연무결이 탑의 꼭대기까지 올라간 것이다.

그는 탑의 꼭대기에 있는 흰색의 옥 위에 올라서서 외치기 시작했다.

“내가 너희 놈들을 모두 죽이고야 말 것이다. 너희들은 모두 어둠 속에서 고통을 받을 것이다. 살아 있을 때도, 죽어서도 내 손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그 소리에 호응이라도 하듯 하늘에서 우레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구형의 옥에서 간간이 발생하던 불꽃은 끊임없이 번쩍이고, 구리판을 타고 흐르던 빛 역시 전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빈번해졌다.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이 보더라도 무엇인가 일어나려고 하겠다 싶을 정도였다.

그때, 연무결이 탑에서 뛰어내렸다.

미끄러지듯 탑의 벽을 타고 아래로 쭉 내려온 것이다.

그것이 신호라도 되는 것처럼 하늘에서 벼락이 내리꽂혔다.

동시에 탑의 밑부분이 터져나갔다.

1층뿐 아니라 2층과 3층까지 한꺼번에 벽을 이루고 있던 구리판이 폭발하듯 밖으로 터져나간 것이다.

탑에 가까이 있던 위사들 중 상당수가 피할 틈도 없이 그대로 구리판을 얻어맞았다.

하지만 탑의 8방향에서 땅을 헤치고 나온 자들에게는 아무런 피해를 주지 못했다.

그들은 날아오는 구리판을 모두 쳐내거나 피하면서 그나마 화를 피한 금의위의 위사들을 덮쳤다.

연무결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는 자신의 말을 자신의 손으로 이루려는 것 같았다.

“공격해! 저것들을 죽여!”

도주를 막기 위해 혼천감의 주변을 둘러싸고 있던 위사들 중 절반이 혼전에 뛰어들었다.

지금까지 상황을 지켜보고 있던 금의위의 고수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이한이 벽이 터져나간 탑의 1층 내부에서 본 것이 바로 이 상황이었다.

*

“이게 무슨 난리야?”

[외부를 관측하지 못하는 사이에 많은 일이 벌어진 모양입니다. 그리고 저기에서 날뛰고 있는 산발한 도인은 혼천감의 제조인 연무결입니다.]

“에클린 뮤레스라고 자신의 이름을 밝혔다던 놈?”

[예. 대진국 방식의 이름은 분명히 아닙니다.]

“혼천감의 제조라면 거물이겠군. 알고 있는 것이 많겠지?”

[우리에게까지 순서가 돌아올지 확신할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공을 세워서 우리쪽 순서를 앞당겨야지.”

이한은 난전이 벌어지고 있는 곳으로 뛰어들었다.

목적지는 혼천감의 제조인 연무결이 있는 곳이었다.

하지만 그곳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흙으로 범벅이 되어 있는 이상한 사람부터 하나 쓰러뜨려야 했다.

이한은 삼단삼극심법을 극성으로 운용하면서 이상한 사람을 향해 달려들었다.

단숨에 5장이 넘는 거리를 건너뛰면서 단숨에 상대의 뒤편을 차지했다.

두 명의 위사를 몰아치고 있던 그자는 자신이 포위되었음을 알아챘는지 즉시 옆으로 빠지면서 연무결에게 합류하려고 했다.

연무결의 주위에는 이미 4명의 괴인들이 모여서 몰려오는 위사들과 난투를 벌이는 중이었다.

하지만 이한은 연무결의 무리에 한 명을 더 추가해 줄 생각이 없었다.

자신을 피해 옆으로 빠져서 물러서는 괴인을 향해 더욱 빠르게 달려들었다.

당장이라도 끌어안을 것처럼 가깝게 붙어서 괴인의 팔을 잡으려고 했다.

너무 빠르게 접근해오는 이한에게서 더 이상 피할 수 없게 된 괴인은 쓰러지듯 몸을 낮추며 뒤로 굴러버렸다.

이것은 나려타곤도 아니었다.

그냥 마구잡이로 하는 임기응변에 지나지 않았다.

그것도 누가 옆에서 도와주어야 비로소 효과가 있는 그런 종류의 임기응변 말이다.

언제나 호위를 달고 다니며 도움을 받았다면 이래도 되지만 혼자서 이런 식으로 움직이면 단숨에 짓밟힌다.

아무래도 땅을 구르는 것보다는 달리는 것이 더 빠를 수밖에 없으니까 말이다.

그래서 이한은 괴인을 짓밟았다.

한달음에 괴인을 따라잡은 그대로 상대의 무릎을 짓밟은 것이다.

뼈가 부러지는 소리가 났다.

그리고 동시에 사커킥을 차는 것처럼 머리를 걷어찼다.

다시 한번 뼈가 부러지는 소리가 났다.

괴인 하나를 완전히 무력화 시키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이한처럼 쉽게 괴인을 처리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서로 간에 안면이 있다면 더욱 그럴 것이다.

“정신 차리십시오! 정위 영감! 감찰 나갔다던 사람이 여기서 무엇을 하고 있는 겁니까!”

“혼천감을 공격하다니! 이것은 반역이다. 심홍기 네 놈이 육선문의 정장이라고 하지만 이것은 인정으로 덮을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도대체 무슨 소리를 하고 있는 겁니까? 미쳤습니까?”

“혼천감을 공격하다니! 이것은 반역이다. 검을 버려라.”

“젠장! 금의위의 형제들은 손속에 사정을 두어서 죽이지는 말아주시오! 아무래도 오 정위가 정신이 이상해진 것 같으니까!”

촌극이라도 벌이는 것처럼 떠들고 있었지만 서로 간에 오가는 검초는 살벌하기만 했다.

당장이라도 누가 죽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전력을 다한 공방이었다.

그러나 상대를 죽일 생각이 없는 검초는 아무리 강한 위력을 가지고 있어도 약점을 보일 수밖에 없다.

심홍기라는 육선문의 정장은 연신 뒤로 몰리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본 이한은 며칠간 자신의 음공 덕분에 고독의 위협에서 벗어난 자들이 떠올랐다.

대부분 단순히 생명의 위협을 받은 것에 지나지 않았지만 그들 중 몇은 세뇌라도 당한 것처럼 보였다.

물론 고독을 쫓아낸 뒤로는 모두 제정신을 차렸지만.

그들 중에 내공을 쌓은 자는 없었다.

모두 무공과 관련이 없는 자들뿐이었다.

그래서 무공을 익힌 자는 고독의 영향을 받지 않는다고 결론을 냈었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면?

여기에 있는 자들도 고독에 의해 세뇌를 당한 것이라면?

이한은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내공을 담아서 의지를 실어 보냈다.

고독이 도망을 칠 정도로 강한 의지였다.

“어억!!”

반응은 금방이었다.

연무결과 한패거리가 되어서 날뛰던 괴인들이 모두 동시에 머리에 손을 올리며 쓰러졌다.

두통과 어지러움이 그들을 강타했다.

그들이 정신을 완전히 잃기까지 걸린 시간은 그리 길지도 않았다.

심력과 내공을 소모한 이한이 노래를 멈추자 장내에는 정적이 흘렀다.

가장 먼저 움직인 자는 연무결이었다.

연무결은 주변의 조력자들이 모두 쓰러지자 다시 탑으로 뛰어들었다.

이번에는 이미 벽이 박살 난 3층으로 뛰어들어서 곧장 계단을 통해 사라졌다.

몇 명의 황궁 고수들이 그 뒤를 따랐지만, 그들은 입구에서 막혔다.

가짜 도사들이 4층으로 올라가는 입구에서 진을 치고 저항한 것이다.

아주 짧은 시간이었지만 그들의 저항은 성공적이었다.

누구도 4층으로 올라갈 수 없었다.

그리고 4층으로 올라가는 길이 열렸을 때,

탑에서 번개가 하늘로 솟았다.

거의 동시에 상단의 6개층이 사라졌다.

그냥 지워버린 것처럼.

모두가 이해할 수 없는 일을 보고 굳어버렸다.

하지만 나노는 그 모습을 보자마자 떠들기 시작했다.

[공간이동을 했습니다! 공간이동이 확실합니다. 공간이동라니!!]

“진짜 공간이동 기술을 가지고 있는 모양이었구나.”

[말도 안 돼! 3나노 이하의 반도체와 100만kw급 원전은 있어야 실험이라도 가능한 최소 조건인데! 반도체는 커녕 강철도 제대로 못 만드는 이따위 문명에서 공간이동이라니!]

나노는 흥분해서 정신이 없었다.

유사 인격이라서 그런지 반응하는 모습이 인간과 다를 바가 없는 것 같았다.

“네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완전히 이해하는 것은 아니지만 내가 뭘 해야 할지는 알겠군.”

[살아있는 도사가 필요합니다. 아니! 죽어도 괜찮습니다. 24시간 이내에 접근할 수만 있다면 전부는 아니겠지만 상당 부분 정보를 추출할 수 있습니다.]

이한의 눈이 아직 남아있는 가짜 도사들에게 향했다.

버려진 자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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