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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림에서 나노머신-44화 (44/78)

44. 북쪽 어딘가에 있는 자들.

44. 북쪽 어딘가에 있는 자들.

남아있는 가짜 도사들 중 아직 살아있는 자는 불과 둘 뿐이었다.

그나마 그중 하나는 늑대 인간이었다.

나머지는 전투의 와중에 모두 죽고 말았다.

게다가 남아있는 가짜 도사들에게 관심을 가진 것은 이한뿐만이 아니었다.

피해가 컸던 금의위는 물론이고, 나중에 끼어든 육선문과 황궁의 고수들까지 모두 가짜 도사들을 원했다.

연무결이 탑과 함께 사라지는 장면을 본 이후로는 약간의 양보도 할 없다는 태도가 역력했다.

말을 할 수 있는 입은 하나고 원하는 사람은 많으니, 과연 이한에게 가짜 도사들을 조사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질지조차 의문일 정도였다.

그래서 이한은 죽어버린 자들에게 시선을 돌렸다.

[두뇌가 필요합니다. 살아 있는 사람에게서 발생하는 미세 전류를 이용하면 두뇌에 남아있는 기억 중 일부를 읽어낼 수 있습니다.]

“설마 직접 손을 대야 한다든가 하는 것은 아니겠지?”

[머리뼈를 열고 뇌에 직접 손을 대는 것이 가장 효율이 높습니다.]

“절대 안 돼. 죽은 자의 몸을 훼손하는 것은 문화적인 금기야. 다들 보는 곳에서 그런 짓을 했다가는 사람 취급도 받지 못한다고.”

[그렇다면 그냥 머리에 손을 대 주십시오. 효율이 많이 떨어지기는 하지만 뇌세포가 완전히 파괴되기 전이라면 어느 정도 정보를 뽑아낼 수 있습니다.]

이한은 죽은 자들을 수습하는 일을 도우면서 가짜 도사는 물론이고, 늑대 인간까지 가리지 않고 머리에 손을 댔다.

금의위의 위사들은 어사대부씩이나 하는 분께서 직접 죽은 시체를 나르고 정리하는 것에 불편함을 느꼈다.

감찰 기관에 속한 사람이니 더욱 꺼려지는 면도 있었다.

하지만 전사한 동료 위사들은 물론이고 적이라고 할 수 있는 자들에게까지 머리에 손을 얹고 명복을 빌어주는 것에는 감탄하고 말았다.

어사대에 속한 사람답지 않은 인격자라는 평판이 뒤따랐다.

그러나 이한은 자신을 향한 칭찬보다 새롭게 발견한 사실에 더 집중하고 있었다.

그것은 8개의 기둥 근처에서 땅을 헤치고 나와서 연무결을 위해 날뛰다가 제압된 8명의 무림인에 대한 일이었다.

[방금 이한 님께서 처리하신 자의 신체 정보를 측정한 결과 폐광에서 도망쳤던 광대가면과의 일치율이 89%입니다.]

“같은 사람일까?”

[고독이 뇌에서 날뛴 덕분에 제대로 된 정보를 확보할 수 없어서 단언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무작위로 선택된 일반인도 아니고 상대적으로 소수일 수밖에 없는 무림인의 숫자를 감안하면 동일인으로 판단됩니다.]

“다 같은 패거리인 줄 알았는데 그게 또 그렇지는 않았나 봐?”

[아무래도 가짜 도사 일당은 이곳 사람조차 아니었을 테니까요.]

“그건 그렇지.”

죽어 있는 늑대 인간에게서 뽑아낸 정보는 아예 없었다.

나노가 이미 구축해 놓은 데이터베이스와는 다른 방식으로 뇌세포가 반응했기 때문이다.

나노는 이들이 인간이 아닐 가능성이 높다고 보았다.

유전자 분석까지 끝내야 확실히 단언을 할 수 있겠지만, 인간의 아종일 가능성이 크다는 주장이었다.

그리고 가짜 도사들의 시체에서 뽑아낸 정보도 예상보다 적었다.

전투로 인한 흥분과 죽음으로 인한 뇌세포의 충격을 감안하더라도 정상적인 패턴을 벗어난 반응이 많아서 신뢰부족으로 폐기된 데이터가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로부터 뽑아낸 정보는 이한과 나노를 놀라게 하기에 충분했다.

가짜 도사들은 이곳 사람이 아니었다.

그들의 언어와 문자 그리고 문화는 이한은 물론이고 나노조차 처음 보는 것이었다.

가짜 도사들이 이한처럼 차원이동으로 이 세계에 떨어졌다는 가설을 뒷받침하는 직접적인 증거를 처음으로 확보한 것이다.

이한이 광대가면으로 추정되는 시체를 뒤적거리며 나노와 대화를 나누고 있을 때, 금의위의 복장을 한 사람이 다가왔다.

50대 초반 정도?

내공을 익힌 사람은 노화가 늦어지는 경우가 많으니 훨씬 더 많은 나이일 것이다 .

“그래, 어사대부는 알아낸 것이 있는가?”

그는 나노가 무위를 측정할 수 없다고 판단했던 황궁의 고수들 중 하나였다.

최소 절정.

그 이상일 가능성도 높았다.

“이한이라고 합니다.”

이한은 정중하게 고개를 숙였다.

실력으로나 관직으로나 한참 위인 사람이다.

이곳에 자리를 잡을 생각은 없지만 사회적인 예의를 지킬 필요는 있었다.

쓸데없이 적을 만들어서 앞으로 해야 할 일에 방해꾼을 만들고 싶지 않다면 말이다.

“나는 금의위에서 객장으로 머물고 있는 종대보라고 하네. 강호의 형제들은 나를 쌍수쾌검이라고 불러주고 있지. 하지만 쾌검이라는 별호를 버려야 할 것 같아. 빠르기는 무슨. 둔해 빠져서 반역자나 놓치고 말이지.”

종대보는 혼천감의 외곽을 포위한 위사들과 함께 있었다.

그리고 연무결이 혼천감으로 도망쳐와서 공간이동으로 사라질 때까지 움직이지 않았다.

아마 마지막 순간까지 기다렸다가 연무결을 생포할 생각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의도는 어떻든 결론은 반역자를 놓쳤다는 것으로 끝나고 말았다.

혼천감을 담당했던 황궁 고수들이 난처한 입장에 빠진 것이다.

이런 때에 공을 세우고 황제의 눈에 들어야 하는데, 생포해야 할 반역자들 중에서도 거물이라고 할 수 있는 자를 놓치다니!

심지어 혼천감은 건물째 사라지기까지 했으니 그때 너희들은 무엇을 하고 있었느냐는 말이 나올 수밖에 없다.

그 질문에 대답하기도 곤란하다.

가만히 있었다고 말할 수밖에 없으니 말이다.

무엇이든 성과가 있어야 했다.

그래서 이한에게 다가온 모양이었다.

다행히도 이한은 그에게 할 말이 있었다.

이한은 나노가 광대가면과 동일인이라고 판정한 시체를 가리켰다.

“이자 말입니다. 본 적이 있습니다.”

“음? 어디서 보았는가?”

“북면방어사와 관련된 곳에서 보았습니다.”

이한은 종대보에게 자신이 서명의 폐성에서 겪은 일을 들려주었다.

종대보는 이한이 해 준 말이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인지 금방 이해했다.

“사교와 연관되었다니! 북면방어사를 제압할 수 있는 명분을 하나 더 내세울 수 있겠군.”

“이미 보고한 내용이니 위에서도 알고 있을 겁니다.”

“하지만 북면방어사와 한통속이었던 자가 사교도라고는 하지만 같은 편에 의해 이런 꼴을 당했다는 사실은 아직 모르겠지. 예친왕의 세가 기울었다는 것을 북면방어사의 무관들에게 강조할 수 있겠어. 고맙네. 내가 이 은혜는 잊지 않지.”

종대보는 몇 명의 위사를 거느리고 곧장 현장을 떠났다.

[아무리 절정을 넘어선 무림의 고수라고 하더라도 관직에 몸을 담고 있으니 어쩔 수 없는 모양이군요. 천하를 오시하는 절대고수의 풍모가 아니지 않습니까? 실적에 연연해하는 관리지.]

“관직을 버리고 떠날 수 있다면 달라지겠지만, 관직에 남아 있으려면 독불장군처럼 날뛰는 것은 불가능해. 실력이 문제가 아니야. 얽히는 사람이 문제지.”

[그래서 이한님은 은밀전을 떠난 거로군요.]

“그래. 그리고 어차피 이곳에 남을 생각도 없었어. 너무 불편해.”

[어쨌든 이번에는 혼천감의 남은 건물을 살펴주십시오. 아무래도 구리판에 새겨져 있던 문양은 회로도였을 가능성이 클 것 같습니다. 제대로 된 고민을 하려면 좀 더 데이터를 확보할 필요가 있습니다.]

나노가 고민을 해보겠다는 것은 인공지능만이 가능한 학습법을 시작하겠다는 말이었다.

그것은 수없이 반복되는 학습과 추론을 통해 새로운 지식을 만들어내는 인공지능 특유의 방식을 의미했다.

이한은 나노의 요청에 따라 혼천감의 남아 있는 건물을 샅샅이 뒤지고 눈에 담았다.

어떤 것이 중요한 단서가 될지 몰랐기 때문에 단 한 가지도 놓치지 않았다.

*

북면방어사가 완전히 붕괴한 것은 황궁이 정리되고 3일이 지난 후였다.

이한이 경사를 떠나 북쪽으로 향한 것은 그로부터 다시 열흘이 더 지난 후였다.

빠르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살아남은 가짜 도사와의 면담은 물론이고, 은밀전의 일까지 모두 처리하고 난 다음이었다.

가짜 도사와의 면담에서 얻은 것은 그리 많지 않았다.

나노가 아직 살아있는 뇌를 한 번 읽어보겠다고 무리를 해서 면담을 성사시킨 것이었지만, 기대에는 한참 미치지 못했다.

이미 금의위와 어사대, 도찰원, 육선문, 특기대, 남면방어사까지 온갖 곳을 거치며 너덜너덜해진 그는 반쯤 죽어 있는 상태였다.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양쪽으로 모두 다 그랬다.

고문은 물론이고 약물에 최면까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던 사람들 덕분에 완전히 맛이 가버린 것이다.

그래서 이한은 그와 제대로 된 대화조차 나누지 못했다.

그자는 일방적인 저주만 웅얼거릴 뿐 이한의 말에 반응하지 않았다.

나노 역시 이해할 수 없는 데이터가 대부분이라면서 툴툴거렸다.

하지만 가짜 도사의 저주와 나노의 데이터 수집을 통해 한가지는 확신할 수 있었다.

혼천감에 있는 자들이 전부는 아니다.

얼마나 되는 숫자인지는 모르겠지만, 더 많은 자들이 다른 곳에 있다.

그리고 그들 중에는 종주니 마스터니 하는 자들이 있는 것이 분명했다.

좀 더 높은 직위와 정보를 가진 자들 말이다.

어쩌면 혼천감에 있던 자들은 빙산의 일각일지도 몰랐다.

이한의 개인 경험으로도 그런 추론을 뒷받침할만한 증거가 있다.

혜목장공주의 유폐 장소에서 충돌했던 가짜 도사.

혼천감에서 죽거나 사로잡힌 가짜 도사들 중에서 그자를 발견할 수 없었다.

그것은 어딘가 다른 곳에 그자가 있다는 뜻이다.

이한은 그들이 있을 법한 후보지도 금방 떠올릴 수 있었다.

서명의 폐성을 들러서 더 북쪽으로 향했다던 상단의 행렬.

그것을 조사하면 무엇인가 나와도 나올 것 같았다.

이한이 북쪽으로 떠난 것은 그래서였다.

물론 그냥 출발한 것은 아니다.

어쨌든 이한은 어사대의 어사대부이고, 이용할 수 있는 것은 다 이용하자는 것이 이한의 방식이었다.

그래서 정식으로 어사대의 명령까지 받아냈다.

만약 병력을 동원할 일이나 현지 유력자들의 도움을 받을 일이 생기면 어사대라는 간판을 제대로 써먹을 생각에서였다.

그리고 혼자도 아니었다.

금의위의 객장이라는 종대보가 함께였다.

“하하하. 사교의 뿌리를 뽑아 버리는 일인데, 내가 어떻게 수고를 마다하겠나? 이번에는 도망치기 전에 목을 찔러줄 걸세. 겸사겸사 그 탑도 확보하도록 하세.”

혼천감으로 사용하던 12층 탑이 감쪽같이 사라지는 것을 본 자는 적지 않았다.

공간이동.

다들 그것이 어떤 것인지 이해했다.

적어도 이해했다고 생각했다.

어떤 가능성이 있는지도 함께 말이다.

그래서 황실 직속이라고 할 수 있는 금의위에서 절정을 뛰어넘었다는 평가를 받는 객장까지 보내는 것이다.

그러나 이한은 자신 이외에는 아직 그 가능성을 제대로 이해한 사람이 없다고 확신했다.

만약 공간이동에 어떤 가능성이 있는지 조금이라도 이해했다면, 어사대의 어사대부와 금의위의 객장이 아니라 황군이 쏟아져 나와야 정상이다.

그리고 지방의 유력자들, 무림의 문파와 지주들은 공간이동과 관련된 자들을 모두 죽이고 지식을 말살하기 위해 날뛰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제국 전체가 경사처럼 될 테니까.

이한이 서명을 지나 석탄 산지에 도달한 것은 거의 한 달 가까운 시간이 지나서였다.

지나가는 강아지조차 동전을 물고 다닌다는 곳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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