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무림에서 나노머신-46화 (46/78)

46. 천문망혼진(天門亡魂陣)이 펼쳐진 산

46. 천문망혼진(天門亡魂陣)이 펼쳐진 산

천영문에서 백초장으로 파견한 제자는 3명이었다.

모두 천영쾌검을 익힌 자들로, 초식만 따진다면 이한에게도 그다지 뒤질 것이 없다고 할 정도로 뛰어났다.

아직은 내공의 뒷받침이 부족해서 이류에서 일류의 어딘가에 머물러 있을 뿐, 결국은 어떻게 해서든지 일류 무림인에는 도달할 만한 자들이었다.

이한이 그들과 함께 백초장에 도착했을 때는 백초장에서 초청한 무림인들까지 모두 함께 모인 참이었다.

백초장의 전대 장주라는 노인은 종대보를 보자 반가워서 어쩔 줄 몰라 했다.

“아니! 대보 아닌가! 경사에 갔다는 말은 들었는데 어떻게 그렇게 소식 하나 없었나? 그동안 어떻게 지냈어?”

“오랜만에 뵙습니다. 노장주님. 외지에서 돌아다니다 보니 마음만 간절할 뿐 고향에 돌아오기가 쉽지 않더군요. 그래도 이렇게 몸 성히 잘 지내고 있습니다.”

“그러면 아예 북양으로 돌아온 건가?”

“그렇지는 않습니다. 지나가다가 오랜만에 사문에 들른 겁니다. 그런데 와서 들으니까 백초장에 일이 있다고 하더군요. 제가 약초꾼을 하던 어린 시절부터 백초장에게 입은 은혜가 적지 않은데 가만히 있을 수가 없지요. 그래서 이렇게 왔습니다.”

“정말 고맙네. 백초장의 일인데도 불구하고 마땅히 내세울 사람이 없지 뭔가. 그래서 천영문에 도움을 요청했는데 자네가 와주다니! 이제야 마음이 놓이는군그래.”

마치 집안 어른이라도 만난 것 같은 분위기였다.

종대보가 북양 토박이라고 하더니 북양에서의 인맥이 보통 아니었다.

“그리고 이쪽은 경사에서부터 저와 함께 온 사람입니다. 무공이 뛰어난 것은 물론이고 견문도 넓고 혜안 역시 대단합니다.”

“어사대에서 작은 벼슬을 하고 있는 이한이라고 합니다. 별호조차 없는 말학후진이니 쌍수쾌검 대협처럼 편하게 대해 주십시오.”

잠깐 공기가 굳었다.

눈치가 빠른 자가 아니라면 알아차리기 어려울 정도로 아주 짧은 시간이었다.

하지만 장내에 있던 무림인들의 시선이 모였다가 흩어지기에는 부족함이 없었다.

노장주 역시 잠깐 생각에 잠기는 듯했지만 금방 모든 판단을 끝냈는지 만면에 웃음을 띠며 이한을 환영했다.

“어려운 시기에 이처럼 도움을 주기 위해서 오셨다니! 백초장은 은혜를 입으면 반드시 갚는 곳입니다. 대협의 도움을 기억하겠습니다.”

“별말씀을. 저는 그저 종대협을 따라왔을 뿐입니다. 반겨주시니 최선을 다할 뿐입니다.”

[내공은 제법 쌓았지만, 근골은 그다지 단련되어 있지 않습니다. 무공이 아니라 치료를 목적으로 내공을 사용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백초장의 전대 장주에 대한 나노의 판단이었다.

그럴 법하다고 생각했다.

의원을 겸하는 거대한 장원과 주변에 딸린 약초밭을 보면, 백초장이 어떤 문파인지 대충은 알 수 있다.

거기다 전대 장주부터가 무공이 아니라 의술에 집중하는 쪽이다.

백초장은 필요에 의해 겉모습만 무림 방파의 모습을 갖췄을 뿐, 규모가 큰 의원이나 다름없다고 봐야 한다.

자체적인 무력은 약하지만, 인맥을 동원해서 끌어모을 수 있는 무력은 만만하지 않은 문파.

이한이 보는 백초장의 모습이었다.

이한은 주변을 둘러보았다.

개방, 하북 팽가, 진주 언가.

백초장의 초청에 응한 자들이었다.

하나같이 무림에서의 이름값을 무시할 수 없는 곳이다 .

개방은 5명의 방도를 보냈다.

허리 매듭이 가장 적은 자가 2개이고 가장 많은 자는 4개였다.

개방에 들어와서 적어도 3년은 밑바닥에서 굴러야 매듭 하나를 얻을 수 있다는데, 2개라면 이미 중견이다.

자기 앞가림 정도는 충분히 할 수 있는 자들이다.

그리고 허리 매듭이 4개면 한 도시의 분타주를 할 자격이 생긴다.

어떻게 보아도 체면치레를 하기에는 넘치는 전력이었다.

그리고 하북과 섬서의 중간 지대에 위치하는 북양의 위치상, 하북의 중요 문파라고 할 수 있는 하북 팽가에서 끼어든 것은 충분히 있을 법한 일이었다.

하지만 팽가의 직계임이 분명한 자들이 3명이나 온 것은 아무래도 좀 지나쳐 보였다.

거기다 그들은 하나같이 굳은 얼굴이었다.

그야말로 육체나 성향이나 한결같이 마초 그 자체인 사람들답게 속마음을 전혀 감추지 못하고 있었다.

단순히 도와주러 온 사람들이라고 하기에는 생각이 너무 많아 보였다.

가장 의외인 곳은 진주 언가였다.

하북 팽가처럼 하북에 위치한 곳이기는 하지만, 상당히 폐쇄적인 곳이다.

그런데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그것도 창백한 낯빛을 한 소녀와 노파, 얼굴에 금색칠을 한 8명의 건장한 젊은 남자라는 이상한 조합이었다.

백초장이 그만큼 강한 인맥을 가지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이곳에 진주 언가에서 관심을 가질 만한 것이 있는지 의문이었다.

이한은 알 수 없는 불안감을 느꼈다.

아무래도 단순한 조사로 끝날 것 같지가 않았다.

자신이 모르는 무엇인가가 있는 것이 분명했다.

“우리는 곽가상방에서 운영하고 있는 광산 주변에서 행방불명된 사람들을 찾기 위해 모였습니다. 광산 주변의 산을 둘러보는 것은 물론이고 필요하다면 광산까지도 들어갈 겁니다. 그 과정에서 우리를 방해하는 자가 있다면 단호하게 물리칠 겁니다. 만약 죽여야 할 자가 있다면 죽이십시오. 책임은 백초장에서 지겠습니다.”

뒤늦게 모습을 드러낸 백초장의 장주는 제법 단호한 어조로 이번 모임의 목적을 밝혔다.

행방불명된 자들을 찾기 위한 조사.

물론 저것은 명분이다.

백초장은 간절하겠지만, 북양의 다른 문파들에게는 모양새가 좋은 명분일 뿐이다.

종대보를 통해 듣기로는 북양의 문파들은 곽가상방을 갈라먹기로 합의했다고 한다.

백초장에서 행방불명된 사람들을 찾는 과정에서 이미 희생자가 나온 이상 그대로 두어서는 안 된다는 의견이 대세였던 것이다.

행방불명된 자들을 찾는다면 곽가상방에게 책임을 물을 수 있고, 설사 찾지 못한다고 해도 이미 희생자가 나온 이상 명분은 충분했다.

그리고 곽가상방을 공격하는 것은 빠를수록 좋았다.

천영문주가 직접 이곳에 오지 않은 것은 그래서였다.

백초장에서 초청한 문파에서 조사를 하는 동안 북양의 여러 무림 문파와 함께 곽가상방을 들이칠 작정이었다.

천영문주가 일선에서 여러 문파를 거느리고 지휘해야 할 곳은 광산 근처가 아니라 북양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아무래도 천영문주는 우물 안의 뱀이었던 모양이다.

우물 안의 뱀이 아무리 강하다고 해도, 볼 수 있는 세상은 우물 안에 국한된다.

경험도, 돌아다니는 곳도 우물 안이 전부일 수밖에 없다.

북양에서의 인맥이나 문파의 강성함과는 별개로 천영문주가 바라보는 세상은 너무 좁았다.

기껏해야 뒷배의 끈이 끊어진 곽가상방을 갈라먹는 정도가 그의 한계였다.

우물 밖의 사람들이 천영문주를 대하는 태도 역시 다르지 않았다.

북양 내부의 일이라면 모를까 그 외의 문제에 대해서는 천영문주를 무시해도 된다고 생각한 모양이다.

사람들이 행방불명된다는 광산 근처로 갔을 때 진주 언가의 소녀가 한 말에서 그것이 그대로 드러났다.

“왕 파파. 천문망혼진(天門亡魂陣)이에요. 산 전체에 펼쳐져 있어서 알아보기 힘들겠지만, 저쪽 3개의 봉우리와 산 중턱에 일부러 세워놓은 바위들을 보니 확실하군요. 산에 가까이 가면 방위를 구분하는 것조차 힘들어 질 거예요.”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작은 주인. 지남철을 준비하기는 했기만, 광산에서는 제대로 작동하지 않을 수도 있다고 들었습니다.”

“너무 걱정 마세요. 우리뿐 아니라 다른 곳에서도 이미 들어갔을 겁니다.”

“하아! 정말이지. 너무 멋대로 하십니다. 가주와의 맹세가 아니었다면 작은 주인이 이런 위험한 곳에 들어가는 것은 절대로 허락하지 않았을 겁니다.”

“부탁드려요. 왕 파파. 너무 늦으면 곤란합니다. 그리고 백초장과 천영문의 고수분들께서는 같이 가시려면 따라오시고, 그렇지 않다면 그냥 따로 가셔도 됩니다. 경사에서 오신 분들과 함께 가는 것이 불편하신 분들이 있어서 이러니 것이니 양해 부탁드립니다.”

갑작스러운 이야기에 어리둥절해진 백초장주가 뭐라고 하기도 전에 언가의 노파가 명령했다.

“금동철인은 작은 주인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챙겨라. 특히, 교자를 맡은 너희 둘은 더욱 주의하라. 가자.”

언가의 소녀를 태운 교자가 얼굴에 금칠을 한 젊은이들을 앞뒤로 세우고 출발했다.

미리 이야기가 되어 있었던지, 개방과 팽가의 사람들도 그 뒤를 따랐다.

백초장과 천영문 사람들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뒤에 남아 버렸다.

“아니! 이게 무슨 일이오? 왜 이러는 거요?”

백초장주가 다급하게 외쳤지만 대답해 주는 사람은 없었다.

그러나 이한과 종대보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이런! 아무래도 우리가 문제였던 것 같군.”

“경사에서 끼어드는 것이 싫다는 거겠지요. 다들 지방에서는 왕처럼 행세하는 자들 아닙니까.”

“아니,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어사대부 한 명 때문에 저런 식으로 군다는 것은 심하지 않은가? 자네 체면은 뭐가 돼!”

“종 대협도 있지 않습니까?”

“나?”

“북양의 무림 문파에 대해 조사를 하면 종 대협의 이름이 나오는 것이 당연할 텐데, 지금 어디에서 무엇을 하는지 알아내는 것은 일도 아니지요. 금의위 객장에 어사대 어사대부라니. 가까이 하기에는 좀 그렇지 않겠습니까?”

국정원 수사관과 민정수석 조사관이 함께 돌아다니고 있으면, 죄가 없어도 자리를 피하고 싶어지지 않을까?

“끙. 젠장. 어떻게 할 텐가?”

“가시지요. 아무래도 우리 말고도 온 자들이 적지 않은 것 같지만, 행방불명된 사람들을 찾으러 온 사람들은 우리뿐인 것 같으니까요. 우리라도 가서 조사를 해야겠지요.”

[주변을 한 번 더 둘러봐 주십시오. 천문망혼진이 펼쳐져 있다는 정보에 따라 주변의 지형을 입체적으로 재구성 중입니다.]

이한은 주변의 산세를 다시 눈에 담았다.

기나 내공의 흐름에 따라 지형지물을 인식하는 것에 영향을 준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혹시 무엇인가 특이한 점이 있을까 싶었지만, 아무리 봐도 이상한 점을 찾아볼 수 없었다.

“기의 흐름을 볼 수 있다면?”

[키를리안 시야로 전환합니다.]

산을 타고 흐르는 기의 흐름이 보였다.

세 개의 산봉우리에서 시작된 기의 흐름이 산을 타고 흐르고 있었다.

기의 흐름은 산 중턱에 모여 있는 바위들에 의해 막혀서, 갑자기 회오리치며 산을 감싸면서 돌았다.

그리고 그 끝은 광산의 입구였다.

산을 타고 내려온 기의 흐름은 광산 입구로 쏟아붓듯 흘러 들어갔다.

“뭐하나? 어서 가세. 저 사람들은 벌써 광산 입구로 들어가는 모양이군.”

이한은 남아있는 사람들과 함께 광산입구로 향했다.

거대한 기의 흐름에 쓸려가듯 광산 내부로 들어갔다.

하지만 무엇인가 이상했다.

잠깐 아래로 내려가는 것 같았던 통로는 얼마 지나지 않아서 오르막으로 변했다.

아무래도 과거 광산을 뚫을 때 판 통로 같지가 않았다.

산 아래가 아니라 산 내부를, 그것도 위쪽으로 파고 들었음이 분명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이한은 확신할 수 있었다.

이곳은 폐광이 아니었다.

산을 기본으로 건설한 거대한 건축물이라고 하는 것이 더 정확했다.

통로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