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 강시와의 일전
50. 강시와의 일전
이한은 안쪽 통로를 엿보는 구멍에서 눈을 뗐다.
그는 굳은 표정으로 종대보에게 말했다.
“종 대협. 아무래도 저것들 움직일 것 같습니다.”
“왜 그렇게 생각했나?”
“심장이 뛰는 속도가 점점 빨라지고 있습니다. 일각에 몇 번 뛰지도 않던 것이 지금은 사람의 절반 정도 수준까지 빨라졌습니다.”
이한의 말을 들은 사람들은 두 가지 점에서 놀랐다.
하나는 안쪽 통로에 있는 것들이 생강시일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이한의 무공이 생각보다 훨씬 높다는 점이었다.
금의위에 있는 종대보는 이미 오래전에 쌍수쾌검이라는 별호를 얻었을 정도로 무림에서도 알려진 사람이다.
당연히 그의 무위에 대해서도 다들 어느 정도는 짐작할 수 있다.
절정급의 고수.
대문파를 가더라도 장로로 대우받을 만한 실력이다.
이곳에 있는 사람들에게 종대보는 금의위의 객장이라기보다는 북양 출신의 무림인이라는 느낌이 더 강했다.
그러나 이한의 경우는 아니었다.
지금까지의 행동을 보면 보통 실력은 아닌 것 같았지만, 그래도 관리는 관리다.
게다가 외모는 젊고, 직위도 어사대부.
여러모로 애매했다.
관부 소속의 무림인은 무공이 약하다는 편견이 있다.
특히, 지방의 거대 무림 세가에서는 관부의 무공을 얕잡아 보는 경향까지 있다.
그것은 두 번째 한제국 말기에 도교 계열의 사교였던 태평도의 반란을 진압하고, 경사의 권문세족을 숙청하는 과정에서의 경험 때문이었다.
일부 유문(儒門)의 제자들 정도나 예외였을 뿐, 당시 군부에 있던 무관은 물론이고, 황실 직속의 장수들조차 거대 무림 문파의 장로들에게 일방적이라고 할 정도로 쓸려나갔었다.
그때의 경험이 수백 년이 지난 아직까지도 남아 있는 것이다.
그런데 두꺼운 돌벽을 사이에 두고 멀리서 심장소리까지 듣는다니!
설사 감각을 강화하는 특이한 무공을 익혔다고 하더라도 쉬운 일이 아니다.
사람들은 이한에 대한 평가를 확 끌어올렸다.
언가의 소녀가 다급한 태도로 이한의 말에 덧붙였다.
“가사 상태에 있었다가 갑자기 심장 뛰는 속도가 빨라졌다면, 실혼인이기보다는 생강시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리고 생강시라면 이곳에 있는 분들 중 상대할 수 있는 분이 몇 없을 겁니다.”
육체적인 면에서는 평범한 시체와 별로 다를 것이 없는 일반 강시가 아니라 생강시라면 언가의 소녀가 이런 태도를 보이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한 세대에 한 번 등장하기도 어려울 정도로 드물어서 그렇지, 어떤 방식으로 제련한 생강시냐에 따라 절정의 고수조차 상대하기 까다롭다고 하는 생강시도 있으니까 말이다.
그러니 이곳에 보이는 것들이 생강시라면 상대하지 않는 것이 최선이었다.
“빠르게 움직여야겠군.”
종대보는 일행을 채근했다.
덕분에 큰 탈 없이 상당한 거리를 이동할 수 있었다.
이동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소음 때문인지 배회하는 생강시들의 시선이 종종 이면 통로 쪽을 향하곤 했다.
하지만 실제 공격까지는 이어지지 않았다.
아무래도 무엇인가 금제가 걸려 있는 것은 아닐까 싶었다.
그렇게 이동하던 이한의 일행이 부딪친 것은 무너진 통로였다.
계속 이어져 있어야 할 이면 통로가 무너진 토사로 인해 완전히 막혀 있었다.
이곳에서 흙을 파내거나 뒤돌아서 갈 것이 아니라면 길은 하나뿐이었다 안쪽 통로로 나가야 했다.
마침 안쪽 통로와 연결되는 문도 옆에 있었다.
이한은 안쪽 통로를 엿보는 구멍에 다시 눈을 갖다 댔다.
“안쪽 통로에 생강시가 몇 돌아다닙니다. 이제는 전과 달리 움직임도 어색하지 않군요. 그리고.”
“그리고?”
“빛이 보입니다. 멀지 않은 곳에 외부와 연결된 곳이 있는 모양입니다.”
이한의 말을 들은 종대보는 지체하지 않고 이면 통로에서 안쪽 통로로 들어가는 출구를 열었다.
안쪽 통로에서 느껴지는 분위기는 이면 통로와 달랐다.
좀 더 메마르고, 날카로운 느낌이었다.
숨을 쉬는 것만으로도 체력이 떨어지는 것 같았다.
이한은 키를리안 시야을 켜고 주변을 둘러보았다.
사람들의 몸에서 아지랑이 같은 것이 일렁이며 밖으로 빠져나와서 허공으로 녹아들고 있었다.
체력이 떨어진다고 느낀 것이 괜히 그런 것이 아니었다.
천문망혼진이 산에 있는 자연의 기운 뿐 아니라 이곳에 있는 사람들의 기운까지 휩쓸어 가는 것이 분명했다.
이상을 알아챈 것은 이한만이 아니었다.
다른 사람들 역시 이한처럼 구체적으로 알 수는 없지만, 무엇인가 이상하다는 것을 금방 알아차렸다.
종대보가 내공을 싣고 말했다.
“집중력을 높여라. 내공을 장악해라. 정기신(精氣神)의 주인이 자신임을 마음에 새겨라.”
내공은 인간의 의지에 강한 영향을 받는다.
그래서 가끔은 무엇인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닫는 것만으로도 어설픈 미혼진 정도는 무시할 수 있게 되기도 한다.
천문망혼진이 보기 힘든 절진이라고 하지만, 이곳에 있는 사람들은 내공을 다루는 것에는 다들 전문가였다.
이한은 키를리안 시야에서 보이던 아지랑이의 상당 부분이 사라지는 것을 볼 수 있었다.
하지만, 사람들을 위협하는 것은 천문망혼진의 영향만이 아니었다.
종대보의 말에 반응이라도 하는 것처럼 주변에 있던 생강시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생강시의 안색은 죽은 자의 그것처럼 창백했다.
겉으로 드러난 손발의 피부는 잘익은 밤처럼 짙은 갈색이었고, 손톱은 아예 검은색이었다.
이한은 이곳의 절진을 만든 자들이 살아있던 사람에게 무슨 짓을 해놓았는지 보는 것만으로도 금방 알 수 있었다.
검은색이라니.
저것은 분명 생강시 중에서도 위험하기 짝이 없다는 독강시였다 .
독에 대한 대처법이 없다면 아무리 무공의 고수라고 해도 손을 쓰기 어려운 종류다.
그러나 나노가 있는 한 이한에게 독은 의미가 없는 무기였다.
가장 가까이 있던 독강시가 입을 벌리고 기묘한 소음을 냈다.
비명 같기도 하고, 삐걱거리는 수레의 마지막 단말마 같기도 했다.
그러자 동시에 주변 독강시들의 시선이 한꺼번에 일행에게 향했다. 그리고 일제히 일행을 향해 달려들었다.
모두 열이나 되는 숫자였다.
그들은 검은색의 손톱을 내밀고, 당장이라도 상대를 물어뜯을 것처럼 이빨을 드러냈다.
이빨 역시 검은색이었다.
독에 대한 두려움이 없던 이한이 일행의 가장 앞에 나섰다.
가장 무공이 뛰어난 종대보 역시 이한의 옆에 섰다.
일행 중에서 가장 강한 두사람의 시선이 잠시 얽혔다.
“저것들은 생강시 중에서도 독강시인듯 하니까 주의하게”
“종 대협께서도 조심하십시오.”
둘의 대화가 끝나기가 무섭게 독강시가 덮쳐들었다.
단숨에 상대를 뭉개고 물어뜯을 것처럼 격렬한 기세였다.
그런 독강시를 향해 이한의 주먹이 허공을 때렸다.
쾅! 하는 소리와 함께 독강시의 돌진이 저지되었다.
허공을 격하고 상대를 때리는 격공장이었다.
오행권의 금기가 독강시를 체내를 흔들었다.
그리고 이한의 칼이 주먹을 따라 갔다.
독강시의 몸에 이한의 칼이 꽂혔다가 다시 빠져나갔다.
물론 아무 곳이나 찌른 것은 아니다.
인간도 검에 찔릴 때 즉사하는 곳이 있고, 피나 조금 흘리고 마는 곳이 있는 것처럼 독강시 역시 그랬다.
총회혈, 천주혈, 제문혈의 세 개 혈도가 그랬고, 척추와 심장이 또 그랬다.
나노는 독강시의 움직임과 기의 흐름을 분석하면서 계속 독강시의 약점을 제시했다.
이한은 나노가 제시하는 독강시의 약점을 반복해서 찔러댔다.
이한의 주먹은 독장시의 돌진을 저지했고,
이한의 검은 독강시의 약점을 찔렀다.
그때마다 독강시는 고장난 것처럼 몸을 뒤틀며 쓰러졌다가 일어서기를 반복했다.
기분 같아서는 시원하게 독강시를 토막치고 싶었다.
하지만, 아직 강기발현이 되지 않는 이한로서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독강시의 뼈가 이한의 칼을 견뎌냈다.
약점을 찌르는 사이사이에 몇 차례 몸통과 사지를 후려쳤지만, 독강시는 토막 쳐지지 않았다.
어떤 수단을 썼든지 뼈를 강철처럼 제련해 놓은 것이다.
[어떻게 뼈를 약물로만 이렇게 강화할 수 있지? 이한님. 나중에 독강시의 뼈를 약간만 확보해 주십시오. 근골격계의 강화를 위한 자료로 참고해야 합니다.]
그 강도는 나노까지 감탄하면서 재료 획득을 요청할 정도였다.
이한은 인상을 쓰며 불편한 마음을 담아서 독강시를 찔러댔다.
머리카락까지는 괜찮았지만, 뼈는 한도를 넘는 느낌이었다.
아무래도 나노가 정상인지 윤리 테스트를 해야 할 것 같았다.
[먹기가 어려우시면 그냥 손바닥위에 1분 정도만 올려놓으시면 됩니다. 제가 알아서 흡수해 가겠습니다.]
이한의 기분을 눈치챘는지 나노가 금방 대안을 제시해 왔다.
그 정도라면.
이한은 조금 마음이 풀렸다.
그러나 상황은 이한의 마음처럼 풀리지 않았다.
독강시는 그냥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주변에 독기를 뿌렸다.
그게 문제였다.
이한은 별문제가 없었지만, 종대보는 독에 견디지 못했다.
이한보다 뛰어난 무공을 가졌음에도 독에 대한 내성이 그다지 뛰어나지 못한 것이다.
그저 버티는 것이 한계였다.
절정의 고수답지 않은 모습이었다.
그래도 둘이 독강시를 막으며 시간을 끌어준 덕분에 언가의 소녀가 자신의 실력을 발휘할 수 있는 여유를 만들 수 있었다.
언가의 소녀는 비전의 단약을 먹고, 정신을 한없이 고양시킨 후에야 경문을 외우기 시작했다.
죽은 사람을 강시로 만들고, 강시를 다시 죽은 사람으로 돌리는 언가 비전의 진언이었다.
생강시도 강시의 일종이라서 그런지 진언이 먹혀들어갔다.
날뛰던 독강시들의 움직임이 느려지더니 멈추기 시작했다.
처음에 그들이 보았던 것처럼 벽에 기대고 서서 죽은 것처럼 심장의 박동이 느려졌다.
그제서야 언가의 소녀는 진언을 멈추고 기절해 버렸다.
부족한 능력을 단약으로 메웠으니 반동이 세게 온 것이다.
왕 파파가 다급하게 소녀를 챙겼지만, 코에서 피까지 흘리는 것이 상세가 심각한 것 같았다.
일행은 다급하게 빛이 보이는 곳으로 향했다.
중간의 벽이 완전히 무너져서 밖이 훤하게 보이는 곳이었다.
그곳을 통해 밖으로 나가니 멀리 호수가 보이고, 가까이에는 일행이 들어갔던 산이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무림인들.
몇 개의 무리로 나뉜 무림인들이 대치하고 있었다.
“어! 사람이 나왔다.”
“처음 보는 사람들인데? 아니 쌍수쾌검 대협 아니십니까?”
무당과 소림의 사람들이 입구를 틀어막고 잡인이 들어오는 것을 막고 있었다.
무림의 거대 세가에 속한 사람도 보였다.
종대보는 그들을 보자 안심할 수 있었다.
언가 사람들은 물론이고 백초장주에게도 남을 것을 권유했다.
“백초장주. 이제 행방불명된 사람을 찾는 것이 문제가 아닙니다. 저 안을 보지 않았습니까? 아무리 광산을 개조한 것이라고 해도 이런 규모의 건축물을 만드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겠지요? 뒤에 붙은 세력이 얼마나 거대할지 상상이 가지 않습니다. 위험해도 너무 위험합니다. 장주와 다른 사람들은 이곳에 남으시오. 안에는 나와 이 대협만 들어갈거요.”
백초장주는 억지로 납득을 하고 물러섰다.
그리고 잠시 후 다시 안으로 들어간 이한은 사라진 일꾼들이 어떻게 되었는지 알게 되었다.
그곳에는 지옥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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