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 다른 세상에서 온 자들
51. 다른 세상에서 온 자들
다시 지하로 돌아간 이한과 종대보는 미로를 그냥 힘으로 부수며 지나간 흔적을 발견할 수 있었다.
벽이고 기둥이고 할 것 없이 그냥 일직선으로 부수면서 지나간 흔적이었다.
무식하기 그지없는 짓이었지만, 할 수만 있다면 미로를 지나가기에는 가장 간단한 방법이기는 하다.
팽가의 고수가 왔다고 하니 그가 앞장섰을 가능성이 컸다.
아니면 무당과 화산에서도 왔다고 하니 화경의 고수라도 있어서 힘을 썼을지도 몰랐다.
미로를 때려 부수고 지나갔을 정도니, 지나가는 길에 있었던 강시와 움직이는 시체들은 방해도 되지 못했다.
미로가 박살 난 것처럼 박살 난 시체들이 새로 난 길을 따라 쭉 쓰러져 있었다.
이한과 종대보는 그렇게 부수어 놓은 흔적을 따라 먼저 간 고수들의 뒤를 쫓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미로가 끝이 나고 넓은 통로가 다시 이어졌다.
통로 중간에는 광장이라고 해야 할 정도로 넓은 공간이 두 번이나 나타났다.
이한은 가짜 도사들을 이해할 수 없었다.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이런 거대한 공간을 지하에 건설했는지 말이다.
무엇인가 의도가 있어서 이런 고생을 했을 텐데, 짐작이 가는 바가 없었다.
게다가 시체들.
이한은 근본부터가 뒤틀리는 역겨움을 느꼈다.
이한은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었다.
이곳에 자리 잡고 있는 자들은 미쳤거나, 아니면 종교와 문화가 근본적으로 다른 자들임이 틀림없다고.
그렇지 않고서야 시체를 이런 방식으로 사용할 수는 없지 않은가 말이다.
이들은 죽은 자들에 대한 최소한의 존중조차 없는 것 같았다.
이한이 미로를 거쳐 통로와 광장을 지나면서 본 광경은 정말 상상 그 이상이었다.
지옥이 땅 위에 모습을 드러내면 이런 모습일까 싶은 정도였다.
종대보 역시 이한과 같은 생각이었다.
“미친놈들이로군. 내가 그동안 강호에서 쌓은 경험이 적지 않다고 자부하는데, 이렇게까지 미친놈들은 일찌기 본 적이 없네.”
종대보가 그런 말을 할 만도 했다.
죽은 자들이 돌아다니고 있었다.
그것도 미쳤다는 소리를 들을 정도로 엄청난 규모로.
죽은 자들은 미로에서부터 통로와 거대한 광장까지 득실득실했다.
어디서 온 자들인지는 뻔했다.
그동안 예친왕이 북양으로 보냈다던 계약노동자들이 분명했다.
북양 쪽에 있는 대규모 탄광 지대는 만성적인 인력난을 겪어 왔다.
그래서 제국 남부 지역에서 계약직 노동자를 조달하는 일을 전문으로 하는 상방이 있을 정도였다.
그중에는 금문상방이나 회영상방처럼 예친왕이 뒷배로 있는 상방도 있었다.
그들은 계약노동자를 보낸다는 핑계로 지금까지 많은 사람을 북양으로 보냈다.
특히, 근래의 몇 년간 보낸 인력과 물자는 엄청난 양이었다.
그들이 얼마나 많은 인력과 물자를 북양으로 올려보냈는지는 아마 그들 자신도 모를 것이다.
그곳에서 일하는 행수들조차 그 규모를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으니까.
그나마 이한이 금문상방의 행수들을 닦달해서 추산해낸 규모가 최소 1만 명이었다.
물자는 어림잡지도 못했다.
거기다 이한이 금문상방의 대방이었던 윤등구를 죽일 당시에 알게 된 것처럼 처음부터 탄광이 아닌, 다른 곳으로 보낸 사람들도 있었다.
그들이 몇 명이나 되는지는 아예 파악도 불가능했다.
그런 식으로 북양으로 보내진 사람들 중 일부는 눈속임을 위해서라도 실제로 탄광에서 일을 했겠지만, 상당수는 다른 곳으로 보내졌음이 분명했다.
그렇게 다른 곳으로 사라진 사람들의 일부가 지금 여기에 있는 것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이 숫자를 설명할 수가 없다.
종대보는 화를 참지 못했다.
그는 계속 화가 난 상태로 미로에서부터 통로와 광장을 지나며 죽은 자들을 마주칠 때마다 다시 죽였다.
이한 역시 그 뒤를 따라 움직이며 길을 막는 것들을 처치했다.
그래도 별로 티도 나지 않았다.
죽은 자들은 여전히 많았다.
사실 죽은 자들까지 수단으로 써먹는 것은 이곳 사람들에게도 낯선 일은 아니다.
살아 있는 사람도 반쯤 죽여서 생강시로 만드는 판인데 죽은 사람을 이용하는 것 정도는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다.
죽은 사람을 강시로 만드는 일을 하면서도 명문 정파에 무림 세가 노릇까지 별문제 없이 잘하고 있는 진주 언가나 모산파 같은 경우도 있고 말이다.
하지만, 그것도 어느 정도이어야 납득을 하지.
이렇게 많은 사람들을 죽여서까지 부리다니!
죽은 자들로 도시를 채우기라도 할 셈인가?
종대보가 화를 내는 부분도, 이한이 거부감을 느끼는 부분도, 시작점은 그 엄청난 규모였다.
게다가 이 많은 사람이 자연사를 했을 리가 없지 않은가 말이다.
인간을 인간으로 보지 않는다는 점이 너무도 명백했다.
이곳의 주인은 죽은 자들에 대한 최소한의 존중은커녕 인간에 대한 최소한의 존중도 없었다.
게다가 시신에 함부로 손을 대서 고인을 모욕하는 것은 저절로 눈살을 찌푸리게 만들었다.
본능적인 거부감이 드는 것은 물론이고, 이런 짓을 저지른 사람에 대한 적대감이 생기지 않을 수 없었다.
무슨 누더기를 기워놓은 것처럼 사람을 만들어 놓았다.
사람을 몇 명 이어 붙인 것 같은 모습을 한 자들이 강시와 시체 무리 사이의 중간에 군데군데 섞여 있었다.
덩치는 사람의 몇 배가 되고 팔은 여러 개였다.
심지어 배나 등에 팔이 붙어있는 놈도 있었다.
다들 제각각의 개성적인 모양새였다.
그런데 힘은 또 엄청나서 가볍게 미는 것만으로도 미로를 구성하고 있는 벽돌벽을 무너뜨린다.
처음에 미로를 박살 내며 이동한 것은 먼저 간 무림인이었겠지만, 이자들의 지분도 적지 않다고 장담할 수 있다.
지금도 돌아다니면서 일부러 미로의 벽을 부수고 있는 놈이 있을 정도니까 말이다.
낯설고 기묘했다.
이것은 사악한 사교도조차 하지 않을 짓이었다.
강시, 강시조차 되지 못한 시체, 시체를 짜깁기라도 한 것 같은 기묘한 모양새의 괴물들.
모두가 죽은 것들이었고, 이한과 종대보의 앞에 계속 모습을 드러냈던 것들이었다.
이미 먼저 지나간 무림인들이 많이 파괴해 놓았지만, 남아 있는 것들이 훨씬 많았다.
사지를 잃거나 가슴이 함몰되었는데도 멀쩡하게 돌아다니는 것들도 있었다.
이한은 그 모습을 보면서 어쩌면 망가진 것들이 저절로 고쳐져서 일어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죽은 것을 부순다면 완전히 죽는 것일까?
아무래도 그것은 아닌 것 같았다.
이한과 종대보는 살아 있는 모든 것에 적개심을 가진 것처럼 달려드는 시체들을 상대하며 길을 뚫었다.
종대보의 쾌검은 죽은 자들의 관절을 노렸고, 이한의 삼단삼극권은 죽은 자들의 머리를 노렸다.
따라올 수 없게 만드는 것으로 충분했다.
그들을 피해 빠져나갈 수 있으면 그냥 지나쳤다.
먼저 지나간 무림인들을 따라잡는 것이 우선이었다.
그렇게 하지 못한 자들은 중간에 낙오되어 죽은 자들에 의해 죽은 듯했다.
이한은 배회하는 시체들 사이에서 불과 얼마 전에 새로 합류한 것으로 보이는 자들을 발견하기도 했다.
입고 있는 옷과 신체의 상태가 비교적 말끔해 보이는 자들이었다.
거지도 있었고, 야행복을 입은 자도 있었다.
병사도 몇 있었다.
심지어 관복을 입고 있는 자도 있었다.
만약 이한이 이곳에서 죽는다면 저들처럼 될지도 모른다.
죽어서도 죽지 못한다니.
끔찍한 일이었다.
그렇게 두 개의 광장을 지난 후에야 이한과 종대보는 먼저 갔다는 무림인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들은 지금까지와는 다른 종류의 적들과 대치 중이었다.
그 모습을 본 이한은 지금 자신이 있는 곳이 어딘지 잘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협 소설 속의 세상 같은 곳에 떨어졌었다.
무공을 익히지 못해서 10년을 넘게 고생하며 구르다가 간신히 무공을 익히고 돌아왔다.
그런데 그동안 세상에는 무공 말고 새로운 것이 등장했던 모양이다.
이를테면 마법 같은?
나노 역시 이한과 비슷한 감정을 드러냈다.
누더기같이 이어붙인 시체들이 움직이는 것을 본 뒤로는 이한처럼 좀 더 격렬한 반응을 보였다.
[도대체 어디서 에너지를 얻는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움직이려면 분명히 동력원이 있어야 하는데 찾을 수가 없습니다. 심장이 뛰는 소리가 들리지 않았습니다. 피가 흐르는 소리도 들리지 않았습니다. 어떤 식으로 다시 재조립을 해 놓았든지 상관없이 그것들은 그냥 시체였습니다. 움직이지 못해야 정상이란 말입니다.]
“시체는 움직이지 못하지. 그게 상식이기는 해. 강시 같은 것이 있기는 하지만.”
[강시는 살아생전에 비축했던 열량을 소모해서 움직입니다. 강시가 움직이면 근육이 마르는 것을 관찰할 수 있습니다. 생강시는 말이 강시지 따지고 보면 아직 살아있는 사람입니다. 보관시에 특별한 액체에 담가둔다고 들었습니다. 아마 그것을 먹어서 에너지을 보급하겠지요. 그런데 그것은 시체였습니다. 그것도 얼기설기 엮어서 바느질로 이어놓은 것처럼 생겨먹은 시체였습니다. 심장도 뛰지 않고 피도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움직이고 있었습니다. 그것도 엄청난 힘으로 말입니다. 무엇인가 있습니다. 아직 우리가 측정하지 못하는 무엇인가가 말입니다.]
전적으로 동의하는 바였다.
무엇인가 있다.
이한의 세상에는 전파로 전기를 보급하는 기술이 있다.
모르는 사람이 본다면 무한동력이라도 달고 있는 것처럼 보일 것이다.
그렇다면 저런 시체들을 움직이게 하는 전파 같은 것이 있어도 이상하지 않을 것 같았다.
그렇지 않고서야 시체가 움직이는 것을 설명할 수 없지 않은가 말이다.
이한은 앞쪽의 적을 보았다.
이번에는 해골이었다.
걸어 다니는 해골들.
시체가 아니라 뼈만 남은 해골들이 움직이고 있었다.
해골이 움직이려면 더욱 그럴 것 같았다.
외부에서 에너지를 공급해줘야 한다.
[저것! 저 해골들! 저것은 또 뭡니까? 저런 것은 판타지 소설 속에서나 있던 것이 아닙니까? 상상 속의 산물이 아니었습니까? 그런데 실제로 저런 것이 있다니! 대격변 이후로 분기된 저희 쪽 지구에도 저런 것은 없었단 말입니다!]
“스켈레톤이 상상의 산물이 아니었던 모양이군.”
과거의 누군가가 실제로 스켈레톤을 보고 지구에 퍼뜨렸던 것일까?
그렇다면 다른 것들도 그럴까?
이한은 자신이 읽거나 본 판타지의 온갖 괴물들을 떠올렸다.
별로 마주치고 싶지 않은 존재들이었다.
만약 그런 괴물들이 실제로 존재한다면 무공으로 상대할 수 있을지 의문이었다.
그리고 진짜 문제는 이 길의 끝에 저런 것을 만들어낸 누군가가 웅크리고 있을 것이 뻔하다는 점이었다.
황궁 지역에 자리를 잡았던 가짜 도사들 역시 대진국이나 안식국이 아니라 전혀 다른 곳에서 온 것이 분명했다.
다른 차원.
다른 문명.
눈앞의 해골병사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방금 지나쳐온 시체로 만든 괴물 역시 마찬가지였다.
앞으로 등장할 것이 문제였다.
무엇이 튀어나올까?
어쩌면 무림인들로는 감당할 수 없는 괴물이 등장할지도 모른다.
이한은 종대보와 함께 무림인들을 향해 다가갔다.
거의 일개 소대는 될 법한 숫자였다.
그중 가장 약한 자라고 하더라도 이한의 아래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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