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무림에서 나노머신-53화 (53/78)

53. 해골 병진 돌파 그리고 미혼진.

53. 해골 병진 돌파 그리고 미혼진.

이한은 지구에서 보았던 영화와 소설이 떠올랐다.

즐겨했던 몇몇 게임도 마찬가지였다.

거기에서 해골 병사는 보잘것없는 존재였다.

산적1과 다를 바가 없는 경험치 셔틀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나 지금 이한의 앞에 있는 해골 병사는 인간이 상상으로 빚어낸 창조물과는 달랐다.

생긴 것만 해골을 닮았을 뿐 사람의 뼈를 일으켜 세운 것이 아니었다.

전혀 다른 존재임이 분명했다.

이미 존재하는 어떤 원형을 흉내내어 만들어낸 복제품이라고나 할까.

심지어 뼈로 된 몸이며, 뼈로 된 칼과 창까지도 진짜 뼈는 아닌 것 같았다.

무림인의 칼을 맞받아치는 뼈칼이라니!

그런 것이 사람의 뼈 같이 형편없는 강도를 가진 재료로 만들어졌을 리가 없지 않은가 말이다.

무림인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해골 병사들을 향해 공격을 하고 있었다.

이한 역시 진형을 짠 채 앞을 막고 있는 해골 병사들을 향해 칼을 내질렀다.

삼단삼극권의 묘리를 이용해 격발한 금기를 칼로 떨쳐냈다.

강맹한 기운이 칼을 통해 뻗어나갔다.

속도는 느리지만 대신 더 강력한, 둔기로 내리치는 것 같은 충격이 해골 병사를 강타했다.

한 손에는 뼈방패, 다른 손에는 뼈칼을  든 해골 병사였다.

해골 병사의 뼈방패가 이한의 칼을 정직하게 막았다.

흘려내지 못한 충격이 그대로 누적되고, 내공의 기운이 해골 병사를 잠식했다.

이어서 이한의 칼과 해골 병사의 뼈칼이 몇 차례 충돌했다.

만약 해골 병사의 칼이 평범한 강철검이었다면 어느 쪽의 칼이 박살이 나도 금방 박살이 났을 법한 충격이었다.

진짜로 뼈가 재료였다면 일격도 버티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해골 병사는 살짝 밀리는 감이 있을지언정 일방적으로 박살이 나지는 않았다.

방패로 막고 뼈칼로 반격하고, 다시 방패로 밀어치고 뼈칼로 찌르고.

잘 훈련된 정예 병사 또는 능숙하게 초식을 구사하는 무림인일까 싶은 수준이었다.

그리고 해골 병사는 혼자가 아니었다.

군대를 방불케하는 조직력으로 여럿이 함께 방진을 짜고 공격을 막았다.

빈틈을 보고 공격을 하려고 해도, 옆에서 금방 빈틈을 막고 오히려 반격을 하기도 했다.

마치 하나의 머리를 가진 여러 개의 몸처럼 일사불란한 움직임이었다.

이한 정도의 수준으로도 쉽게 격파하기 힘들었다.

이래서 일방적으로 부수지 못하고 있었구나 싶을 정도였다 .

게다가 계속 다시 살아났다고 하니 공격 자체가 무의미했을 것 같기도 했다.

그러나 절정이나 그보다 더 높은 수준의 고수는 확실히 다른 모습을 보였다

그들은 일방적으로 해골 병사들을 박살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뼈 색깔이 좀 더 하얗거나, 왕관을 쓰고 있거나, 눈에서 불꽃이 일렁이는 것처럼 일반적인 해골 병사와 다른 모양새를 한 것들이라고 해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의 손 아래에서는 별 차이가 없이 박살났다.

보통의 해골 병사보다 좀 더 단단하고 빨랐지만, 그 정도 차이는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해골 병사의 수준으로 막을 수 있는 임계점은 진작에 넘어가 버렸다는 느낌이었다.

방금도 팽호도의 주먹 아래에서 해골 병사 하나가 무너졌다.

머리를 때리면 머리가 터져 나갔고, 가슴을 때리면 가슴이 박살났다.

해골 병사는 그대로 무너져서 뼈가 조각조각 흩어졌다.

보이지도 않을 정도로 빠른 속력으로 움직이는 주먹과 주먹 하나하나에 담긴 강력한 위력을 보니 벽력일수라는 별호가 어떻게 해서 나왔는지 바로 이해가 되었다.

모산파의 석뢰라는 도사 역시 인상적이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는 무당 좌도의 도사인 풍천처럼 부적을 무기로 썼다.

풍천이 그랬던 것처럼 그의 주변에도 부적이 둥둥 떠다녔다.

그가 손짓을 할 때마다 부적이 날아가서 해골 병사의 머리에 붙었다.

그리고 불길이 치솟았다.

해골 병사의 머리를 완전히 감쌀 정도의 불길이었다.

불길이 솟으면 해골 병사는 그대로 무너졌다.

유리가 바닥에 떨어지면 깨지면서 흩어지듯, 머리색이 검게 변한 해골 병사도 그렇게 바닥에 흩어졌다.

이곳까지 온 무림인들의 상당수는 이한처럼 일류급의 실력을 갖춘 자들이었다.

지금까지는 해골 병사들을 상대로 그렇게까지 유리한 상황은 아니었다.

하지만 절정의 무림 고수들이 활약을 하고, 해골 병사들의 숫자가 꾸준히 줄어드니 승기를 잡는 것은 금방이었다.

“이놈들이 다시 일어나지 못하는군! 생각대로요!”

석뢰가 다행이라는 듯 외쳤다.

그의 외침에 호응하듯 무림인들의 공격이 더욱 거세어졌다.

그 흐름을 타고 이한 역시 몇 개의 해골 병사를 부술 수 있었다.

일정한 수준을 넘어서는 충격을 받으면 해골 병사들은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무너지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이한은 박살 난 뼈 한 조각을 집어 들었다.

방금 전까지 다리뼈의 일부였던 것이다.

나노는 이것이 진짜 뼈인지 궁금해했다.

이한 역시 마찬가지였다.

[너무 큽니다. 더 잘게 부숴주십시오.]

이한은 나노의 요구대로 뼈를 움켜쥐고 부숴버렸다.

그러자 그중 일부가 손을 통해 흡수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역시 순수한 뼈는 아니었습니다. 구성 성분 중 뼈는 대략 3할을 넘는 수준이고, 나머지는 대부분이 세라믹입니다. 뼈 역시 변성된 것이라서 강도가 상당합니다.]

“세라믹?”

[도자기나 유리 같은 것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아주 단단합니다. 꽤나 고품질의 칼도 만들 수 있을 정도입니다.]

도자기나 유리 같은 것이라면 단단한만큼 박살도 잘 나겠다.

이한은 부서진 채 바닥에 흩어져 있는 뼛조각에 잠깐 시선을 두었다.

그리고 자신을 향해 밀어치는 뼈방패를 향해 일권을 내질렀다.

뼈방패에 금이 갔다.

[해골 병사들은 인간의 뼈를 매개체로 해서 만들어 냈을 가능성이 큽니다.]

“일일이 강시로 제련하는 것보다는 엄청나게 효율적이겠군. 어쩌면 대량 생산이 가능할지도 모르겠는데.”

[확언할 수는 없습니다. 우리가 알지 못하는 기술입니다. 의외의 제약이 있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이한은 금이 간 뼈방패를 향해 일권을 더 내질렀다.

뼈방패가 박살이 나서 바닥에 떨어졌고, 어두운 공간만 보이는 해골 병사의 눈구멍이 드러났다.

눈에서는 차가운 기운이 흘렀다.

죽은 자의 눈이었다.

“그럴 수도 있겠지.”

그리고 그런 종류의 기술이 있다고 한들 별로 알고 싶지도 않았다.

죽은 자가 뼈만 남아서 움직이고 심지어 공격까지 하는 꼴을 보니 마음이 불편하기만 했다.

나노와의 대화는 거기서 멈췄다.

팽호도가 지금 당장 움직일 것을 명령했기 때문이었다.

“그냥 가시오. 이것들을 다 부술 필요 없소. 이것들은 자기 자리에서 멀리 벗어나지 못해!”

팽호도의 말에 따라서 사람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가장 선두에 선 것은 팽호도였다.

과연 팽호도의 말대로 해골 병사들은 지나간 사람들을 멀리 따라오지 않았다.

5~6장 정도 지나면 본래의 자리로 돌아가서 방진을 다시 형성한 후 앞을 경계할 뿐이었다.

이미 상당수의 해골 병사들을 처리했기에 지나가려고 하면 해골 병사들의 공격을 떨치고 그냥 지나갈 수 있었다.

사람들은 별다른 피해없이 해골 병사들 사이를 돌파할 수 있었다.

얼마 가지 않아서 바닥이 돌로 포장된 길이 나왔다.

더 이상은 해골 병사들의 지역이 아니라는 표시같았다.

실제로도 더 이상 길을 막는 해골 병사들의 무리는 보이지 않았다.

대신 저 멀리에, 어둡고 불길한 느낌을 주는 공간이 보였다.

끝이 보이지 않는 어두운 공간이었다.

보는 것만으로도 사람의 정신을 갉아먹는 것 같았다.

악의를 가지고 약점을 살펴보는 자가 그 안에서 노려보는 느낌이었다.

“저곳까지 50장은 넘을 것 같군. 그런데 저기는 뭐지? 이상한 느낌이 드는데?”

예민한 사람들은 이한이 느낀 것과 비슷하게 느낀 모양이었다.

특히, 모산파의 석뢰는 연달아 새로운 부적을 허공에 띄웠다.

벌써 10개나 되는 부적이 그의 주변을 맴돌고 있었다.

“무슨 문제라도 있는 것이오? 석뢰 도장.”

“문제라······ 잘 모르겠습니다. 오늘의 점괘는 길했는데 느낌은 영 아니니 혼란스럽기만 합니다.”

“아직까지 별다른 희생자가 나오지도 않았으니 석뢰 도장의 점괘가 맞는 것 아니오? 그렇다면 걱정할 것도 없겠지.”

팽호도의 말에도 석뢰는 얼굴을 펴지 못했다.

그렇다고 다시 점을 치는 것은 곤란했다.

하루에 같은 일을 가지고 여러 번 점을 치는 것은 금기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팽호도는 더 이상 지체할 생각이 없는 모양이었다.

“대진국에서 왔다는 도사들은 경사뿐 아니라 이곳에도 적지 않게 있는 것으로 알고 있소. 아직까지 하나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으니 아마도 저 안쪽에 모여 있을 거요. 밖으로 빠져나갈 만한 곳은 모두 막아 놓았으니 어서 가서 잡도록 합시다.”

팽호도의 말에 결국 석뢰는 어쩔 수 없다는 듯 새로운 부적을 하나 더 꺼내 들었다.

그는 부적을 허공에 띄운 후 사람들에게 말했다.

“이제 진법의 중심까지 얼마 안 남았습니다. 아마 하나 아니면 두 개 정도의 관문을 지나면 진법의 중심에 도달하겠지요. 그곳에 도달하면 대진국에서 왔다는 가짜 도사들이 어떤 짓을 하고 있었는지 확인할 수 있을 겁니다. 마지막에 어떤 발악을 할지 모르니 조심하시기 바랍니다. 제가 먼저 안쪽을 살펴보지요. 만약 부적이 불에 타면 부정하거나 위험한 것이 있으니 조심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석뢰의 손짓에 부적이 안쪽으로 날아갔다.

어딘지 모르게 불길한 느낌이 드는 공간까지도 별문제 없이 쭉 들어갔다.

부적은 50장을 넘게 날아가고 나서야 힘없이 바닥에 떨어졌다.

무엇이든 위협적인 기운이 있다면 반응해야 하는데 전혀 반응하지 않았으니 별문제가 없는 모양이었다.

석뢰의 걱정 때문에 사람들도 경계하며 안으로 들어갔다.

그러나 경계가 충분하지 않았던 모양이었다.

부적이 떨어진 장소에 도착하기도 전에 나노가 시끄럽게 경고를 외치기 시작했다.

[경고! 산소 농도가 낮아지고 있습니다. 성분 미상의 기체가 증가하고 있습니다. 호흡하는 공기를 필터링합니다.]

“조심하십시오! 미혼분이 퍼져 있는 것 같습니다!”

나노의 경고를 들은 이한이 다급하게 소리쳤지만 이미 늦은 것 같았다.

이한보다 뛰어난 실력을 갖춘 무림인 몇몇을 제외하고는 모두 발걸음을 멈추었다.

그들은 가만히 서서 멍한 눈빛으로 앞을 바라보기만 했다.

옆에서 몸을 건드려도 반응하지 않았다.

심지어 그들 중 일부는 자리에 앉거나 누워버리기도 했다.

무엇인가 그들만의 세상에 빠진 것 같은 모습이었다.

아직 정상적인 의식을 유지하고 있는 사람들은 다급하게 뒤로 물러섰다.

이한 역시 뒤로 물러서려고 했지만, 어느 순간 허공으로 붕 뜨는 느낌을 받았다.

당했구나!

나노가 필터링을 한다고 했지만 부족했던 모양이다.

성분을 알 수 없는 기체라고 했으니 필터링이 안 됐을 수도 있었다.

이한은 잔뜩 긴장한 채 계속 뒤로 물러서려고 했다.

그러나 등에 닿은 것은 담이었다.

이한은 자신이 경사의 외진 골목에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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