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0. 도망치는 자에게는 날개가 있다. >
60. 도망치는 자에게는 날개가 있다.
팽호도는 토론을 빙자한 말다툼을 한바탕하고 와서 그런지 지금까지 감추고 있던 속마음을 그대로 드러냈다.
아니면 이한의 생각을 알고 싶어서 도발을 하고 있는 것인지도 몰랐다.
하북 팽가의 특유의 상남자 기질을 생각하면 전자일 가능성이 높지만, 그래도 거대 세가의 장로씩이나 되는 사람이 함부로 속내를 드러낼 리 없다는 상식을 고려하면 후자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그래도 한 가지 확실한 것은 팽호도가 이한이나 가짜 도사들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이 적지 않다는 점이었다.
황실 내부의 소식을 알려주는 자도 있음이 분명했다.
팽호도는 이한을 처음 만났을 때, 이한에 대해 아는 것이 전혀 없는 것처럼 굴었다.
그런데 지금 보니 그것이 다 연기였던 모양이다.
비록 잘못된 정보도 포함되어 있기는 했지만, 은밀전이 원래 황실의 비밀 기관이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은밀전의 존재를 알아낸 팽가의 정보력을 낮추어 볼 것은 아니었다.
돈과 정보는 권력을 따라가는 법이다 .
그리고 권력은 무력에 종속된다.
그렇게 생각하면 하북의 거대 세가이자 무림의 강력한 문파인 팽가의 장로가 경사의 사정에 대해, 그리고 황실 내부의 소식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한은 팽호도가 돌아가는 사정을 다 안다는 식으로 구는 꼴을 용납할 수 없었다.
이 사람들이 지레짐작으로 엉뚱한 짓이라도 하면 문제가 생기기 때문이다.
혹시 가짜 도사들이 무림 문파의 손에 들어갔다가 ‘우연한’ 사고로 인해 중간에 싹 다 죽어버리기라도 하면 정말 곤란했다.
가짜 도사들이 죽기 전에 한 번 정도는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고, 머릿속도 살펴봐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팽호도가 자신이 들은 정보가 과연 옳은 것인지 의심하도록 만들어야 했다.
아예 거짓을 섞어서 혼란스럽게 만드는 것도 기꺼이 할 생각이었다.
실제로 팽호도의 말에는 오류도 제법 섞여 있었다.
그래서 이한은 팽호도가 가진 정보의 오류부터 지적했다.
“어디서 은밀전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은밀전은 이제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곳에 있던 사람들이 대부분 죽었으니까요. 살림을 맡았던 사람들조차 몇 남지 않았을 정도입니다. 사실상 남은 사람은 저 하나라고 해도 될 정도지요.”
“아!”
팽호도는 예상외의 말을 들었는지 자신도 모르게 탄성을 내뱉고 말았다.
그럴 만도 했다.
지방에서는 경사의 권력 투쟁이 얼마나 격렬했는지 실감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장공주가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유폐를 당할 정도였지만, 멀리서 보기에는 아직은 말로 싸우는 것으로 보였을 가능성이 높았다.
음지에서 죽어가는 사람들이 흘리는 피는 보이지 않았을 테니까.
그런데 알고 보니 황실 직속의 감찰 기관이 전멸했을 정도로 사람들이 죽어 나가고 있었던 것이다.
의외의 일에 충격을 받을 만도 했다.
“그리고 나는 그렇게 중요한 사람이 아닙니다. 무림의 일로 생각하면 자신이 속한 문파가 멸문당해서 인연이 있는 곳에 몸을 의탁한 셈인데, 과연 새로 속한 곳에서 중요한 일을 맡을 수 있을까요? 팽 장로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저는 반역자들에 대한 단서를 찾아보라고 해서 이곳까지 온 것뿐입니다. 반역자들이 이곳에 숨어 있을 가능성이 컸으니까요. 반역자들이 있는 것을 확인하면 주변의 도움을 얻어 토벌할 계획이었지요. 그래서 북양 출신이신 종 대협도 함께 온 것입니다.”
이한의 말에 팽호도는 할 말이 없었다.
이한의 말을 듣고 보니, 일리가 있기는 했다.
어느 조직이든지 텃새가 있기 마련이다
귀찮고 손이 많이 가는 일이라면 모를까, 외부에서 굴러들어온 사람에게 중요한 일을 맡기는 것은 팽호도 역시 하지 않을 일이었다.
팽호도는 자신이 틀렸을 가능성을 생각했다.
팽호도는 황제가 대진국에서 온 도사들의 술법을 빼앗기 위해 이리저리 수를 쓰고 있다고 보았다.
황제의 권력은 여전히 굳건하고, 지방을 통제하고 싶어 하는 마음도 전대의 황제와 다를 바가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그런데 경사에서 전해 온 소식에 틀린 부분이 있다면, 결론도 당연히 달라질 수밖에 없다.
아무래도 조만간 경사에 직접 가봐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래도 한 가지 문제에 대해서는 이한의 의견을 듣고 싶었다.
바로 공간 이동에 대한 것이었다.
공간 이동은 팽호도가 가장 예민하게 생각하는 주제였다.
그는 만약 진짜로 공간 이동이 존재한다면, 제국에 존재하는 기존의 질서를 완전히 무너뜨리고 새롭게 세워야 할 정도로 폭발성이 큰 문제라고 판단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한의 의견은 팽호도와 달랐다.
공간이동이 가져올 변화에 대해 그렇게까지 크지는 않으리라는 자신의 의견을 팽호도에게 밝힌 것이다.
이한은 약을 팔기로 한 이상 대놓고 약을 팔 참이었다.
“공간 이동이라는 것이 실제로 있다고 한들 그리 유용할 것 같지 않습니다. 그저 파발이 좀 더 빠르게 다니는 정도에 지나지 않겠지요.”
“동의하기 어렵군. 혹자는 무림의 문파들이 지방에서 왕처럼 행세하는 것이 과거에 세운 공 때문이라고 하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네. 그것은 오직 하나, 거리 때문일세. 제국이 너무 넓어서 경사에서 내리는 결정이 제국의 변경에 닿기까지 반년은 족히 걸릴 정도야. 지방은 스스로 알아서 살아갈 수밖에 없는 상황이지. 그런데 공간 이동을 할 수 있다면 황제는 자신의 의지를 곧장 지방에 강요할 수 있네. 그런데도 유용할 것 같지 않다니! 자네의 의견에는 동의하기 어렵네.”
“뭐로 강요합니까?”
“무슨 소리인가?”
“사람 하나 보내서 명령을 하는 것이라면 파발을 보내는 것과 다를 바가 없지 않습니까? 그렇다면 황제의 군대나 황실의 무림인들을 대거 파견해야 할 텐데 그게 가능할까요?”
“사람 한둘을 보내는 것은 의미가 없다는 것에 동의하네. 하지만 그렇다면 군대를 보내면 되는 일 아닌가? 아무리 지방에서 행세하는 가문이라고 해도 황제가 보낸 군대를 상대로 버티는 것은 어려워.”
팽호도는 이한의 말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래서 이한은 근처에 있는 강시를 가리켰다.
스스로 걸어서 모산파로 돌아가도록 대법을 펼쳐 놓은 석뢰의 시체였다.
“강시를 보시지요. 일반적인 강시는 술사가 대법을 펼쳐 죽어 있는 자를 움직이게 하는 것입니다. 대법을 펼치면 대충 1주일은 움직이고, 그 이후에도 움직이려면 술사의 내공이 많이 필요하다고 들었습니다. 죽은 자가 땅으로 돌아간다는 자연의 이치를 거스르기 위해 필요한 것이겠지요. 단순히 죽은 자 하나가 움직이게 하는 것조차 많은 내공과 대법을 필요로 합니다. 미혼진 같은 것은 또 어떻습니까? 만들려면 많은 노력이 필요하고 자연에서 흐르는 기 또한 적지 않게 요구한다고 들었습니다. 그런데 한순간에 멀리 사람을 이동시키는 것이 간단히 되겠습니까? 얼마나 많은 대가를 치러야 할지 혹시 생각해 보셨습니까?”
이한은 자신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는 팽호도를 보며 덧붙였다.
“만약 공간을 건너뛰어 이동하는 것이 그렇게 쉽다면 왜 가짜 도사들이 공간 이동으로 도망치지 않고 비밀 통로로 도망을 쳤겠습니까? 그것은 공간 이동이라는 것이 아예 있지도 않거나 혹시 비슷한 것이 있다고 해도 사용하기가 까다롭다는 의미가 아니겠습니까?
이한은 천문망혼진이 펼쳐졌던 산과 그 주변을 가리켰다.
산과 호수가 한눈에 들어왔다.
“저곳에 들어간 인력과 재물이 얼마나 될 것 같습니까? 어사대에서 저곳을 발견할 수 있었던 것은 너무도 많은 인력과 재물이 저곳으로 향했기 때문입니다. 석탄을 나르는 일에 숨기려고 했는데도 숨길 수 없을 정도로 규모가 컸습니다. 그런데도 몇 명의 사람을 공간 이동으로 도망치게 하지 못했습니다.”
이한은 자신 있게 선언했다.
“공간 이동 같은 것은 별것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어서 역적을 잡아서 경사로 끌고 가는 것입니다. 황제 폐하의 권위를 세우기 위해 역적은 반드시 처벌해야 합니다.”
이한의 선언에 호응이라고 하는 것처럼 다급하게 달려오는 사람이 있었다.
저쪽에 모여있던 사람들이 웅성거리더니 개방의 삼결개가 팽호도에게 달려왔다.
“팽 장로님! 도망친 도사들의 흔적을 발견했습니다. 지금 천영문의 검수들이 추격 중이라고 합니다.”
“그놈들부터 잡고 나중에 더 논의하도록 하세.”
“알겠습니다.”
팽호도는 근처에 있던 무림인들을 끌고 달려갔다.
이한과 종대보 역시 함께였다.
팽호도를 비롯한 무림인들이 가짜 도사들의 진법으로 들어갈 때, 만약을 대비해서 여러 문파의 제자들로 진법 주변을 둘러싸듯 막아놓고 있었다.
곳곳의 길목은 물론이고, 몰래 도망칠 만한 장소에는 반드시 매복을 두었다.
그 때문에 도망치는 입장에서는 힘들고 까다로웠다.
그래서 그렇게 시간이 지났음에도 멀리 가지 못하고 숨어 있다가 발견된 것이다.
길목을 지키던 자들은 가짜 도사들을 발견할 때마다 불화살을 쏘아댔다.
천라지망이라고 해도 과장이 아닐 정도였다.
가짜 도사들은 호숫가에서 멀리 가지도 못했다.
쫓기던 그들은 호수 옆의 산으로 도망칠 수밖에 없었다.
산으로 올라간다는 것은 포위된다는 이야기와 다를 바가 없다.
가짜 도사들이 아무리 날뛰어봐야 추격하는 무림인들을 건너뛸 수는 없었다.
결국 그들은 산 중턱의 절벽으로 몰렸다.
그 아래까지는 백 장이 넘었다.
게다가 절벽 아래가 바로 호수도 아니었다.
큰 바위가 널려 있는 땅이 10여 장 넓이로 있었다.
이러면 물로 뛰어내릴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뛰어내리면 바위 위에 떨어질 판이니 어떻게 방법이 없었다.
그러나 죽는 줄 알면서도 어쩔 수 없이 뛰어야 할 때가 있는 법이다.
잡혀가면 어차피 고생하다 죽을 테니 깔끔하게 지금 죽자고 생각하는 경우 말이다.
가짜 도사들이 절벽에서 뛰어내릴 때는 다들 그렇게 생각했다.
모두가 다급하게 절벽 가장자리로 다가갔지만, 가짜 도사들이 살아서 도망가리라고는 아무도 생각하지 않았다.
“저것이 뭐야!”
“새인가?”
“변신술이라도 하는 자였나?”
사람들은 자신의 눈을 믿지 못했다.
절벽에서 뛰어내린 가짜 도사들은 옷을 날개처럼 펼친 채 하늘을 활강하고 있었다.
마치 매나 독수리 같은 모습이었다.
[저것 윙슈트 아닙니까? 생긴 것이 좀 웃기기는 하지만 원리는 윙슈트를 활용한 것이 분명합니다.]
가짜 도사들은 호수를 가로질러 날아가고 있었다.
중간에 둘 정도가 삐끗해서 호수에 빠져버렸지만, 나머지는 떨어지는 속도를 보아하니 호수를 완전히 건널 수 있을 것 같았다.
이한은 그중 가장 앞에 있는 자를 주목했다.
지하에서 한 줌의 진기로 천 리를 갈 수 있다고 떠들다가 도망친 자였다.
그게 이것을 의미하는 것이었던가?
이한은 절벽에서 뒤로 물러서서 옷을 단단히 여미고 달리기 시작했다.
[어! 뭐 하시는 겁니까?]
“나 죽지 않게 보조 잘해라.”
그대로 멈추지 않고 내달려서 절벽에서 뛰었다.
이한은 포물선을 그리며 아래로 떨어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