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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림에서 나노머신-63화 (63/78)

< 63. 판어사시중(判御史侍中)이 사천 당문에 사람을 보냄. >

63. 판어사시중(判御史侍中)이 사천 당문에 사람을 보냄.

어사대의 수장을 판어사시중(判御史侍中)이라고 부른다.

판어사시중이라니!

어사대의 수장은 자신의 관직명에서부터 자신이 누구이고 어떤 일을 하는지를 노골적으로 과시하고 있었다.

우선 가장 중심이 되는 단어인 어사는 황제의 명령에 따른 감찰을 의미한다.

그래서 어사대는 감찰 과정에서 불법을 저질러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

황제의 명령에 따른 것이라서 법을 초월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앞에 판(判)이 붙어 있는 것은, 자체적으로 판결과 집행까지도 가능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현장에서 죄인을 즉참해도 아무 문제가 없다는 소리다.

불법이 아니다라고 주장하거나,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주장하며 상황을 모면하는 것이 아니다.

판결만 따른다면 모든 행동이 합법, 그 자체가 된다.

이것만으로도 판어사시중이 가진 권한이 말도 안 되게 강하다는 생각이 드는데, 마지막으로 시중(侍中)이 붙는다.

원래 시중은 황제의 명령을 출납하고, 근접 경호를 담당하던 관직이었다.

황제의 손발로 궂은일까지 맡기던 최측근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니 시중이라는 관직명이 붙는 것은 황제가 이 사람은 내 측근이라고 선언해 주는 것이나 다름없다.

그래서 판어사시중은 아무나 맡는 자리가 아니었다.

충성심과 능력이 증명된 자들 중에서도 명령에 따라 기꺼이 손에 피를 묻힐 수 있는 자만이 임명되는 자리였다.

그리고 판어사시중은 황제 대신 공격 당하는 자이기도 했다.

신하들이 황제에게 직접 뭐라고 할 수 없으니 판어사시중을 대신 공격하는 것으로 자신들이 가진 불만을 황제에게 알리곤 했기 때문이다.

겉으로 보기에 묵향이 물씬 풍기는 점잖은 문사처럼 보인다고 하더라도 판어사시중이라는 관직을 차지하고 있다면, 본질은 황제의 칼이자 방패다.

인간 백정.

황제의 사냥개.

역대의 판어사시중에게 붙는 별명이었다.

그리고 이번의 판어사시중 역시 그 별명에 어울리는 자였다.

이한은 자신의 앞에 놓인 차를 흠향한 후 다탁에 내려놓았다.

판어사시중의 앞에도 같은 차가 놓여 있었다.

그러나 그는 차에 손도 대지 않았다.

대신 이한을 계속 살펴보고 있었다.

[눈길이 끈적끈적합니다. 아무래도 이한님을 노리는 눈빛인데요? 조심하셔야겠습니다.]

나노의 경고는 이한도 동의하는 바였다.

아무래도 판어사시중은 이한에게 바라는 것이 있는 모양이었다.

그것도 아주 간절하게 말이다.

“자네가 북양에서 보낸 보고는 받았네. 경사에서의 일이 우선이라서 제대로 지원도 못 해줬는데 생각보다 일을 잘 해결했더군.”

“북양 지역의 여러 무림 문파에서 도와준 덕분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가짜 도사들 중 일부가 도망쳐 버려서 놓친 자가 나온 것은 유감입니다. 도망친 자들은 금의위에서 추격 중입니다.”

“아무래도 어렵겠지?’

판어사시중의 질문이 의미하는 것은 명백했다.

도망친 가짜 도사들을 잡을 수 있을지에 대한 질문이었다.

이한은 일말의 여지도 남기지 않고 단호하게 대답했다.

“예. 어렵습니다. 그자들은 처음 보는 도구를 사용해서 순식간에 호수를 건넜습니다. 미리 준비한 것이 분명합니다. 낙오한 자를 잡을 수 있었던 것이 그나마 다행이라고 해야 할 것입니다.”

“역시 그렇군. 예친왕도 그렇고, 역적놈들이 도망치는 것 하나는 다들 잘하는군그래.”

“목숨이 달렸으니 어쩌겠습니까? 죽어라 뛰어야지. 하지만 명분도 세력도 없으니 조만간 다 말라 죽을 자들입니다.”

이한은 판어사시중의 말에 맞장구를 치며 장단을 맞춰주었다.

“그래야지. 그런데 역적들이 호수를 건널 때 사용한 도구 때문에 금의위에서 난리가 났다네. 하늘을 날아서 습격해오는 것도 고려를 해야하니 황궁을 지키는 자들이 골머리를 썩이더군.”

“실제로 그 물건을 보시면 걱정할 것 없다고 생각할 겁니다. 산처럼 아주 높은 곳에서 뛰어내려야 하는데 황궁 근처에 높은 산이 없지 않습니까? 게다가 나는 것도 매우 불안정합니다. 몇 명 되지 않던 가짜 도사들조차 중간에 둘이나 떨어지기까지 했으니까요. 호수가 아니라 땅으로 떨어졌다면 다 죽었을 겁니다.”

“직접 본 사람이 그렇게 말을 한다면······ 그거 며칠 후면 도착하지?”

“예. 금의위에서 나르는 중이니까 하늘을 나는 도구와 사로잡은 가짜 도사 모두 며칠 안으로 도착할 겁니다.”

“그래. 도착하면 금의위와 다시 이야기를 해 봐야겠군. 그 도구를 입고 날아보면 확실히 알 수 있겠지. 혹시 아나? 우리도 사용할 수 있을지?”

위험한 것보다 낯선 것이 더 두려움을 불러일으키는 법이다.

이를테면 하늘을 나는 옷 같은 도구 같은 것 말이다.

반면에 강시나 고독 같은 것은 이들에게 익숙했다.

죽은 자를 강시로 만들어서 부리고, 살아있는 자를 제련해서 생강시로 만들어서 공격하고, 고독을 이용해서 사람을 위협하고 지배하는 것은 이들에게 낯선 것이 아니었다.

어떻게 하는지 방법을 알고 있고, 어떻게 해야 막을 수 있는지도 안다.

어쩌면 그런 것들은 이웃 산에 살고 있는 맹수와 다르지 않다.

운이 없으면 내가 당할 수 있지만, 반대로 사냥할 수도 있는 것이다.

하지만, 옷처럼 생긴 도구를 입고 호수를 넘어갈 정도로 긴 거리를 단숨에 날아가는 것은 듣지도 보지도 못한 일이었다.

금의위에서 예상 밖의 습격을 두려워할 만도 했다.

그러나 그러한 도구를 목격하고 수습하기까지 한 이한이 걱정할 일이 없다고 자신있게 주장하자 판어사시중은 안도감을 느꼈다.

이한은 말을 지어내는 종류의 사람이 아니었다.

판어사시중이 아는 한 이한의 판단은 믿을만했다.

그래서 판어사시중은 이한의 의견을 하나 더 알고 싶었다.

그것은 지방의 여러 무림 문파와 가짜 도사들 사이의 연계에 관한 것이었다.

그에 대한 이한의 의견은 부정적이었다.

“일단 북양에서 함께 움직였던 무림인들은 모두 가짜 도사들에게 적대적이었습니다. 강시나 거대한 진법을 만들 때 사람을 이용하는 것을 보고 혐오감을 표시할 정도였습니다. 특히 모산파의 장로에게 가짜 도사들이 혈교와 연관이 있다는 증거를 이야기하자 질겁을 하더군요. 여러 사람에게 이야기할 만한 내용은 아닌 것 같아서 다른 사람에게까지는 이야기하지 않았지만, 가짜 도사들이 사교와 연관이 된 이상 그자들과 함께 할 만한 무림 세력은 없을 것 같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하필 모산파라니. 모산파라면 그럴 만도 하지.”

판어사시중의 반응이 묘했다.

이한은 자신이 모르는 뒷사정이 있다는 것을 눈치챘다.

“모산파에 무슨 일이 있었습니까?”

“누런 세상이 온다고 날뛰던 태평도라는 사교가 무림의 여러 세력에 의해 토벌당하고 흩어진 것은 자네도 알지? 그때 살아남은 태평도의 세력 중 일부가 모산파로 흡수되었네. 그래서 모산파의 조직이나 명칭 중에는 태평도에서 온 것이 적지 않아. 지역을 36개의 방으로 나눈다거나 방의 우두머리를 여수라고 부르는 것 따위가 태평도에서 유래된 것이지. 그래서 모산파는 사교와 조금이라도 연관되는 것을 매우 싫어하네. 오해받고 싶지 않거든.”

“그런 일이 있었군요.”

방주민 때문에 살짝 긴장했던 이한은 안도의 한숨을 내쉴 수 있었다.

그 정도는 별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사실 우리도 오랫동안 모산파를 지켜보기는 했네. 하지만 결국은 문제가 없다는 결론을 내렸지. 그러니까 모산파를 기준으로 생각하면 안 되네. 다른 문파의 반응도 살펴야 해.”

“그래도 가짜 도사들과 협력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는 어렵습니다. 당문을 제외한다면 말입니다.”

“그렇지. 사천 당문. 그자들이 의심스럽기는 하지.”

판어사시중은 이한의 의견에 동의했다.

당문에서 즐겨쓰는 고독이 등장한 시점에서 당문은 이미 요주의 대상이 된 상태였다.

어사대에서는 물론이고, 금의위와 육선문에서도 관리들이 파견된 후였다.

대놓고 보낸 사람도 있고, 정체를 숨기고 보낸 사람도 있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연줄이 있는 무림인 몇 명도 이미 사천으로 떠나보냈다.

하지만 묘한 불안감이 그를 괴롭히고 있었다.

실력있는 자들을 여럿 사천으로 파견했지만 그래도 부족함을 느꼈다.

사천 당문은 사천 지방의 왕이나 다름없었다.

몇 명의 관리와 몇 명의 무림인으로 어떻게 할 수 있는 곳이 아니었다.

그가 선택할 수 있는 방법은 사천 당문에서 자체적으로 반역자들을 숙청하는 것뿐이었다.

그렇지 않다면 군대나 여러 무림 문파를 동원해야 할 텐데, 아무리 생각해도 그것은 무리한 일이었다.

무엇보다 황제의 권위를 손상시킬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일단은 충분한 정보를 수집할 목적으로 사람들을 파견한 것이다.

그런데 음지에 숨은 자들이 정보를 수집하는 동안 누군가가 양지에서 주목을 끌어준다면?

판어사시중은 예의 그 끈적거리는 눈빛으로 이한을 바라보았다.

이한은 능력을 입증한 관리였다.

사천으로 보내면 잘하지 싶었다.

“하실 말씀이 있습니까?”

“자네는 은밀전 출신이지?”

“그렇습니다. 은밀전 출신으로 남아있는 유일한 사람이기도 하지요.”

“자네나 나나 모두 황제 폐하의 줄을 잡고 있다는 것은 알고 있겠지? 황제 폐하께 문제가 생기면 우리는 모두 위험해지지. 아마 죽지 않을까 싶어.”

“무슨 그런 불경한 말씀을······”

“은밀전 출신인 자네는 실감했을 것 아닌가. 황제 폐하의 힘이 약해졌다고 사람들이 생각하니 은밀전에 어떤 일이 벌어졌었지? 북면방어사 같은 곳에서조차 은밀전을 향해 대놓고 이를 드러내지 않았나?”

이한은 남부 해변까지 왕밀위를 추격해 왔던 검은 옷의 관리들을 기억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들 중 일부는 북면방어사 사람들이었다.

다른 일부는 예친왕부의 사람들이었고.

“내가 알기로는 은밀전의 역사가 200년이 넘네. 은밀전주는 대대로 환관이나 궁녀가 맡았고, 은밀전의 밀위들 중 절반은 환관이나 궁녀같은 궁인들이었지. 나머지 절반은 은밀전주가 발탁한 무림인이었다고 들었네.”

엄밀하게 따져서 은밀전은 내명부 소속이었다.

황후가 있었다면 황후가 관리했을 조직이다.

하지만 그래도 황제와 관련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황제의 권력이 약해졌다고 생각되자 은밀전은 대번에 권력다툼의 희생양으로 던져졌다.

그런데 만약 진짜로 황제의 권력이 약해진다면?

그리고 다들 그런 사실을 알게 된다면?

금의위는 마지막 순간까지 버티겠지만, 어사대는 비교적 일찍 박살 날 것이다.

어사대에 몸 담고 있는 이한 역시 어사대와 함께 쓸려나갈 것이 뻔했다.

은밀전에 몸담고 있던 이한이 은밀전과 함께 쓸려나갈 뻔한 것처럼.

“황제 폐하의 힘이 약하다는 오해를 받자 찔러보는 자들이 적지 않았어. 그래서 은밀전 같은 곳은 문을 닫아야 했지. 그런데 아직도 그렇게 생각하는 자들이 좀 있네. 그자들에게 경고할 필요가 있어. 사천 당문으로 가 주게. 그곳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확인을 부탁하네.”

“알겠습니다. 그렇게 하지요.”

이한은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사천에는 가볼 생각이었다.

사천 당문이 가짜 도사들과 협력한다는 것은 명백했다.

가짜 도사들에 대한 정보가 그곳에 얼마나 있을지 궁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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