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7. 당문에도 고독이 >
67. 당문에도 고독이
“멸문이라니! 상상만 해도 끔찍하군. 가문의 구성원은 모두 목이 베일 것이고, 선대부터 지금까지 이룩한 성과는 산산이 흩어져서 당문의 토벌에 협력한 자들에게 나누어질 거요. 얼마나 참혹한 일이겠소? 하지만 당문처럼 역사가 오래된 가문이라면 주변에 쌓아둔 인덕이 적지 않을 거요. 분명 당문을 위해 변명해 주려는 친구들이 적지 않겠지. 자신의 일처럼 나서줄 경사의 관리들 역시 있을 거라고 생각하오. 하지만 당량 장로, 당신은 어떻게 될 것 같소?”
당문의 멸문에 이어 다음으로 이한이 입에 올린 것은 바로 당량이었다.
이한은 당문의 멸문이라는 막말을 듣고 눈빛이 변한 당량을 향해 대놓고 협박을 하기 시작했다.
“당량 장로의 독단적인 처신으로 인해 당문에 위난이 닥쳤다는 사실까지 덮어지지는 않을 거요. 그것은 사실이니까. 도대체 당량 장로는 자신의 죄를 어떻게 갚을 생각입니까?”
당문의 멸문이라는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한 이한을 향해 화를 내려던 당량은 자신을 향한 공격에 말문이 막혔다.
아예 자신이 잘못을 저질렀다는 것을 기정사실로 하고 공격을 퍼붓고 있으니 이게 뭔지 싶은 것이다.
당량이 이한의 말을 부정하는 것은 당연한 반응이었다.
“무슨 말도 되지 않는 소리를 하는 겁니까? 아무리 어사판관이라고 해도 죄가 없는 자를 죄인으로 만들 수는 없습니다.”
“왜 죄가 없다는 거요?”
이한은 당량의 눈을 노려보며 반문했다.
너무도 당당한 태도여서 당량조차 자신에게 무슨 죄가 있는지 잠시 더듬어 볼 정도였다.
“당량 장로는 내가 당문의 가주를 만나는 것을 막지 않았습니까? 그래서 당문에 위험이 닥쳐오도록 유도한 것이 아닙니까? 도대체 왜 그런 짓을 한 겁니까? 무슨 이익이 있어서? 혹시 당문에 어려움이 닥쳐야 이익을 보는 자들을 위해 일부러 사고를 자초한 것은 아닙니까? 생각해보니 당문이 손해를 보면 반대로 이익을 볼 만한 자들이 적지 않군요. 당문이 움츠러들면 운남 지역으로 향하는 상행에 대한 이권은 운남 지역의 누군가가 집어삼키겠지요? 아니면 사천 지방의 흑도 문파 중 당문과 원한이 있는 곳에 약점이라도 잡혔나? 그렇지 않고서야 당문이 멸문을 당할 수도 있다는 말을 들었는데도 불구하고 이렇게까지 태만한 것이 말이 안 되지 않습니까? 상황 파악을 위해 온 관리를 쫓아내려고 하고, 당문의 가주도 당문 내에 고립시키려고 하다니! 이런 상황이라면 누가 되었든 의심할 수밖에 없지 않겠소? 당량 장로는 자신의 행동이 당문을 위해서였다고 다른 사람을 설득할 수 있습니까?”
당량은 기가 막혔다.
화살을 일제히 쏟아내듯 한꺼번에 날아와 박히는 음해에 대해 뭐라고 반박하기도 어려웠다.
당문의 가주가 시킨대로 했을 뿐이라고 해봐야 가주가 부정하면 그만이다.
이한의 말에 진실은 하나도 없었지만, 당문주의 명령에 따르다가 문제가 생기면 자신이 모든 죄를 뒤집어쓸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 분명이 다 뒤집어쓴다.
자신이라도 그렇게 한다.
할 말을 잃은 당량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말씀이 지나치십니다. 없는 죄를 만드시다니요! 어사판관께서 말씀하신 것들 중에 사실은 하나도 없지 않습니까? 폐관 수련 때문에 외인을 만나지 않겠다고 하신 것은 당가주이십니다. 억지로 누명을 만들어서 무고한 자에게 뒤집어씌우면 어떻게 하십니까? 이런 것이 관리가 양민에게 할 일입니까?”
굳어버린 당량을 대신하듯 당량과 함께 온 젊은이들 중 하나가 나서서 이한에게 항의했다.
그러나 이한은 무심한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더니 질문을 던졌다.
아무런 감정이 느껴지지 않아서 더 섬뜩한 어조였다.
“당호엽이라고 했던가?”
“그렇습니다. 당량 장로님의 종조카입니다.”
“그래. 당량의 오촌 조카되는 당호엽. 자네는 당량이 외부의 누군가에게 매수당하지 않았다고 확신할 수 있나?”
“물론입니다. 당량 장로께서는 그런 분이 아니십니다!”
“그 확신에 자네와 자네 부모의 목숨을 걸 수 있나?”
“예?”
“확신한다면서? 왜? 목숨을 못 걸겠나?”
“아무리 그렇다고 하지만 어떻게······”
당호엽의 목소리가 작아졌다.
이한은 여전히 별다른 감정이 느껴지지 않는 목소리로 당호엽을 확인사살해 버렸다.
“문제가 생기면 누군가가 책임을 져야 하지. 그런데 당문과 관련된 문제가 생겼어. 아주 심각한 문제가. 그래서 나는 당문의 가주에게 책임을 묻기 위해 온 것이다. 그런데 접객당을 맡고 있는 자가 함부로 나서서 면담을 막았지. 그래서 나는 그 문제에 대한 책임을 접객당을 맡고 있는 자가 질 자격이나 있느냐고 묻고 있는 중이었네.”
이한이 하는 말을 아직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당호엽은 당혹스러운 표정으로 입을 다물고 이한의 말에 집중했다.
“자네와 달리 당량은 내 질문이 의미하는 바를 알기에 대답을 빙빙 돌리다가 결국은 저렇게 입을 다물고 있는 것이지. 그런데 여기서 자네가 당량을 보증하겠다고 나선다고? 그러면 자네는 당량의 배후가 된다는 이야기야. 음······ 배후라고 하기에는 나이나 직책이 어울리지 않으니 연락책 정도로 하세. 그러면 배후는 자네 부친으로 하면 적당할 듯하겠어. 축하하네. 자네는 이제 사천에서 암약하는 비밀 조직의 수장을 아버지로 두게 되었군. 황제 폐하와 당문을 동시에 적대시하는 비밀 조직이라니 정말 대단한걸?”
이한은 손뼉을 치며 말했다.
여전히 아무런 감정이 실리지 않아서 오히려 더 위협적으로 들렸다.
그제서야 이한이 하는 말을 이해한 당호협은 파랗게 질려 버렸다.
마치 죽은 사람이 서 있는 것처럼 보일 정도였다.
그 모습을 본 당량이 앞으로 나섰다.
“너는 물러나라. 아직 어린 녀석이 주제넘게 이게 무슨 짓이냐! 그리고 어사판관께서는 적당히 하시지요. 당문이 어떤 곳인지 모를 분도 아닌데 이런 식으로 어린 애를 놀리는 것은 지나치십니다.”
“지나친 것은 당문이오. 이곳에 어사판관이 왔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모른다는 겁니까? 책임이 있는 자가 나와야지요, 접객당주 홀로 나와서 무엇을 하자는 것입니까? 당문주는 폐관을 핑계로 시간을 끌겠답시고 도망쳐 버렸고, 책임이 있는 자들은 코빼기도 보이지 않아요. 이러면 내가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기분 같아서는 당신이든 저 어리석은 놈이든 일단 목을 매달고 시작하고 싶을 정도라는 것을 알아 두십시오.”
당량은 크게 한숨을 쉬었다.
그는 어쩔 수 없다는 듯 이한의 일행에게 길을 비켜주었다.
“들어와서 머물러 주십시오. 장로회의에 상신하겠습니다. “
“오래 머무를 수는 없습니다. 당량 장로. 이틀 드리지요.”
이한의 어투가 비로소 정상으로 돌아갔다.
하지만 속에 서려있는 단호함은 그대로였다.
이틀 안에 책임자가 오지 않는다면 그냥 두지 않겠다는 의도가 그대로 드러나 보였다.
“알겠습니다. 당호진. 이분들을 모셔라.”
충격을 받아서 제 정신이 아닌 당호엽 대신 당호진이 이한의 일행을 안내했다.
그곳은 당문을 방문하는 손님을 위한 접객당의 건물로 제법 규모가 큰 전각이었다.
위치한 곳은 토루 밖.
손님이기는 하지만 경계해야 할 손님에게 내어주는 전각이었다.
하지만 이한과 그의 일행은 그 전각에서 하루도 머무르지 못했다.
밤이 되자 당량이 다른 사람들의 눈을 피해 몰래 나타난 것이다.
옆에는 당호진도 함께였다.
이한은 예상했다는 듯 그들을 맞아들였다.
“당호진 소협을 후인으로 생각하는 모양이군요.”
“성품이 부드럽고, 입도 무겁습니다. 접객당 뿐 아니라 대외적인 일을 맡기에 적합한 인재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저런. 당량 장로가 불쌍합니다. 믿는 자에게 배신을 당하다니! 당호진의 머릿속에 고독이 있습니다.]
“아! 나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제가 골상학에 약간의 조예가 있는데 당호진 소협과 같은 머리 모양을 가진 사람은 대개의 경우 믿을만 하다고 하더군요.”
“골상학은 처음 듣는 것입니다만?”
“관상과 비슷한 것입니다. 얼굴 대신 머리뼈를 위주로 보는 관상이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한때 남만에서 유행했던 것이지요. 관상과 비교하면 별것 아니긴 합니다.”
“어사판관께서는 정말 견문이 넓으시군요! 기회가 되면 자세히 듣고 싶습니다. 지금은 만나보겠다는 분이 있어서 가셔야 합니다.”
“별말씀을. 사람들이 하는 말의 참과 거짓을 가려내려고 하다보니 이것저것 손을 댈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이런 재주도 부릴 줄 압니다.”
당량의 말을 무시하고 떠들던 이한은 갑자기 손뼉을 쳤다.
특정한 파장을 가진 기파가 손을 중심으로 퍼져나갔다.
동시에 당량은 미끄러지듯이 뒤로 물러섰다.
기분에 거슬리는 손뼉소리가 단순한 손뼉소리가 아니라는 것을 느끼는 순간, 설마 자신을 향한 공격인 것인가 하는 생각에 일단 물러선 것이다.
그러나 손뼉소리가 자신을 향한 것이 아니라는 것은 금방 알 수 있었다.
목표는 당호진이었다.
당호진은 찌르는 것 같은 두통에 머리를 부여잡고 한쪽 무릎을 꿇으며 앉아버렸다.
얼마나 심한 고통인지 제대로 신음도 내지 못하고 있었는데, 다시 한번 손뼉소리가 들려왔다.
당호진은 그 이후로 아무것도 기억할 수 없었다.
그러나 옆에 있는 사람들은 당호진이 눈을 뒤집고 기절한 후 코에서 작은 벌레가 꿈틀거리며 기어나오는 것까지 볼 수 있었다.
모습을 본 당량은 이를 악물고 중얼거렸다.
“가문의 일원에게 고독을 사용하다니!”
분노가 서린 독백이었다.
그의 기운이 불안할 정도로 흔들리는 것이 당장이라도 주화입마에 빠질 것만 같았다.
하지만 당량은 한참 동안 호흡을 고르더니 크게 한숨을 쉬고 옆에 있는 의자에 앉아버렸다.
며칠은 밤을 새운 사람처럼 초라해 보였다 .
이한은 고독을 잡아서 장난치듯 눌러죽였다.
고독에서 나온 노란진물에 나무로 된 탁자가 타들어갔다.
검게 변색된 나무가 짓물러져서 반죽처럼 변해버렸다.
그러나 이한에게는 아무런 영향을 끼치지 않았다.
당량은 굳은 표정으로 이한이 하는 것을 보고 있었다.
믿을 수 없다는 눈빛이었다.
그런 당량을 향해 이한은 질문을 던졌다.
경사에서 벌어진 일에 대한 것이었다.
“고독이 조정의 고관들에게도 사용되었습니다. 심지어 무당의 도사에게까지 사용했더군요. 직접 보면서도 믿어지지 않을 정도였습니다. 고독으로 관리들을 손에 넣을 생각을 하다니! 미친 것 아닙니까?”
“설마 당문의 고독이었습니까?”
“고독이 제법 명성이 있는 독물이기는 하지만, 막상 제대로 사용할 수 있는 자들은 몇 되지 않는다고 하더군요. 원체 예민한 독물이기도 하고, 고독을 사용하는 것이 들키면 대번에 척살당하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역설적이기는 한데 누군가가 고독을 사용한다면 정체를 들키기 쉽습니다. 마치 독문병기를 사용하는 것처럼 어느 곳의 고독인지 금방 알 수 있다고 하더군요. 그런데 당문의 사람이 주변에 돌아다닌다면 더욱 알기 쉽겠지요. 그래서 묻고 싶습니다. 독심흑수 당도군은 어디에 속한 사람입니까? 혹시 당문 가주의 계파에 속한 사람입니까?”
이한의 질문이 가진 함의는 간단했다.
그러나 그속에 담긴 폭발력은 작지 않았다.
당량은 갈등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