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무림에서 나노머신-68화 (68/78)

< 68. 독지신편(獨指神鞭) 당도백 (수정) >

68. 독지신편(獨指神鞭) 당도백.

당량은 독심흑수 당도군이 당문의 사람이 아니라고 부정할 수는 없었다.

당도군이 이미 오래전부터 당문의 이름을 걸고 강호에서 활동을 해왔기 때문이다.

뒤늦게 꼬리를 잘라봐야 모양새만 우스워질 뿐.

의미 없는 짓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당도군이 당문의 사람임을 인정하는 것 역시 곤란했다.

당도군은 이미 반역을 저질렀다는 혐의를 받고 있었다.

고독과의 직접적인 관련성은 밝혀지지 않았지만, 강시와는 관련이 깊었고, 심지어 사교인 혈교와도 교류가 있었다는 것을 스스로 밝혔다.

게다가 서명에서 그가 저지른 짓은 여러모로 정도를 지나쳤다.

도망치는데 성공했다면 모를까, 관리에게 사로잡혔으니 그가 저지른 일에 대한 대가를 치러야 했다.

분명 사형이다.

참수형이면 운이 좋은 것이고, 거열형이나 능지형으로 죽임을 당해도 이상하지 않다.

혈교와의 교류가 드러난 것만으로도 사형이 될 가능성이 높은데, 함부로 사람을 해하기까지 했으니 사형 이외의 다른 형벌은 생각하기 어려웠다.

접객당을 맡고 있는 당량도 듣는 귀가 있다.

가주에게 따로 첩보망이 있어서 중요한 소식을 빠르게 받아 보고 있다는 것은 알지만, 접객당을 통해 듣는 소식도 그리 늦지 않았다.

더 빠른 경우도 적지 않았다.

심지어 관련된 사람들이나 알 수 있는 깊숙한 이야기를 들을 때도 종종 있었다.

그래서 당량은 경사에서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그리고 당문이 어떤 혐의를 받고 있는지도 잘 알고 있었다.

서명에서 사로잡힌 당도군이 무당의 손을 거쳐 육선문의 뇌옥에 처박히기까지 입밖으로 낸 증언도 대략 들은 바가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모로 조심스러웠다.

아무리 현재의 당문 가주가 마음에 들지 않아도 당도군이 가주의 사람이라고 인정할 수는 없었다.

그랬다가는 가주 개인이 아니라 당문 전체에 문제가 생길 수도 있다.

경사에서 일어난 숙청에 당문이 휘말려 들어가는 사태가 벌어질 수도 있는 것이다.

모난 돌 옆에 있다가 정 맞는 꼴이 되면 얼마나 억울하겠나.

절대로 있어서는 안 될 일이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당도군이 한때는 당문에 속한 자였지만, 지금은 관련이 없으며 최근에 그가 한 행동은 모두 개인적인 일탈이라고 주장해야 했다.

족보에서 당도군의 이름을 지우는 것으로 면피할 수 있으면 최선이었다.

그러나 당량의 바람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변명할 기회 자체가 주어지지 않았다.

이한은 당문의 가주를 놓아줄 생각이 아예 없다는 듯,, 자신의 질문에 스스로 답했다.

“당도군이 이미 당문을 떠난 자라는 소리는 듣고 싶지 않군요. 사실이 그렇지 않다는 것은 서로가 이미 알고 있는 것 아닙니까? 당문에 남은 기회는 많지 않습니다. 특히, 시간은 더욱 그렇지요.”

“어떻게 하기를 원하는 겁니까?”

“이미 결정되어 있는 것 아니었습니까?”

이한은 의식을 잃고 쓰러져 있는 당호진을 가리켰다.

고독에 의해 협박을 받고 있었을 당문 직계였다.

당량은 자신의 질문이 어리석었다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

최소한의 신뢰도 존재하지 않는 곳에서 충성이 유지될 수는 없는 법이다.

그것은 당량 역시 마찬가지였다.

당문의 가주는 자신과 파벌이 다른 당량을 의심했고, 감시했다.

심지어 당량의 사람인 당호진을 협박으로 포섭하기까지 했다.

도저히 용납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당량은 자신이 왜 남들 모르게 이한을 방문했는지를 상기했다.

그것으로 충분했다.

“원로원의 장로 몇 분이 어사판관 대인을 뵙기 원합니다.”

“지금 당장 말입니까?”

“그렇습니다. 빠를수록 좋겠다는 첨언이었습니다.”

“좋습니다. 바로 가도록 하지요.”

이한은 살짝 마음이 놓였다.

드디어 당문 내부에서의 도움을 기대할 수 있게 되었다.

일이 예상보다 수월하게 풀린다고 할까?

어쨌든 당문 전체를 대상으로 싸우는 일은 벌어지지 않을 모양이었다.

최소한 일부는 중립이었고, 어쩌면 가주에게 반기를 들 생각까지 있을지도 몰랐다.

그렇다면 그들의 기대에 부응해줘야 했다.

이한은 어사대의 관리들과 함께 당량을 따라 안으로 행했다.

당가타 내부에 세워져 있는 거대한 토루의 입구가 그의 눈앞에 드러났다.

거대한 토루와는 어울리지 않을 정도로 작은 입구였다.

그리고 굳게 닫혀있었다.

물론 밤에는 안전을 위해 토루의 입구를 닫는 것이 원칙이다.

그리고 그것뿐만이 아니다.

입구를 지키는 사람을 두는 것은 물론이고, 문을 열고 닫을 때마다 출입문의 연결부에서 삐걱거리는 큰 소음이 나도록 해놓은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래서 이런 조용한 밤중에 주변 사람들 몰래 토루의 문을 연다는 것은 불가능했다.

당량이 안내한 길은 토루의 입구가 아니라 조금 떨어져 있는 외벽이었다.

토루의 외벽에서 3장쯤 위에 작은 창문 하나가 열려 있었고, 창문 아래쪽에서 바닥까지는 주먹 정도 되는 크기의 돌출부 몇 개가 차례대로 불규칙적으로 튀어나와 있었다.

“이것을 밟고 올라가면 됩니다. 따라오시지요.”

당량은 돌출부를 차례로 밟고 뛰어올라서 열려 있는 창문을 통해 안으로 들어갔다.

사람 하나를 짊어지고 저렇게 올라가다니 상당한 수준의 경공이었다.

이한 역시 돌출부를 밟고 몸을 위로 솟구쳤다.

여러 개의 돌출부를 밟을 것도 없었다.

단 하나면 되었다.

마치 어기충소(馭氣沖宵)로 몸을 띄우는 것 같았다.

이한의 뒤를 따라 나머지 사람도 돌출부를 밟고 올라왔다.

그런데 냉광철보다 소대건이 좀 더 적은 숫자의 돌출부를 밟고 올라왔다.

창문을 통과하는 몸놀림도 소대건이 좀 더 부드러웠다.

아무래도 무공 실력은 관직의 품계와 달리 냉광철 보다 소대건이 더 나은 모양이었다.

그렇다면 냉광철에게 소대건을 압도할 만한 무엇인가 있다는 소리였다.

이한은 슬쩍 냉광철을 살펴보았지만 특별히 이상한 것은 보이지 않았다.

창문이 열려 있던 작은 방에서는 당량이 기다리고 있었다.

어느새 당호진을 데려갔는지 방에는 당량 혼자뿐이었다.

“아무리 성벽을 높게 올려도 안에서 내응하면 아무 소용이 없다고 하던데 실제로 경험하는 것은 처음입니다.”

“이 길을 아는 사람은 몇 명 되지 않습니다. 이 방의 주인과 장로 몇 명이 전부입니다.”

당문의 가주와는 다른 파벌에 속한 자들이 만들어 놓은 암도라는 의미다.

하지만 그래도 외벽의 방어조차 무력화시킬 정도로 치명적인 비밀길을 만들어 놓을 정도라니!

이한은 당문에 놓여 있는 파벌 간의 거리가 상당히 멀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이한이 안내받은 곳은 토루의 한쪽 구석에 있는 작은 방이었다. 생활감은 없었지만, 화려하게 꾸며져 있는 것이 황궁 못지않은 곳이었다.

당문이 가진 부와 여유를 엿볼 수 있는 공간이었다.

그곳에서는 3명의 노인이 기다리고 있었다.

하나같이 마른 몸매에 날카로운 눈매를 가진 것이 모두 성마른 성격으로 보였다.

그러나 이한을 대하는 태도는 조심스러웠다.

평소의 성질대로 굴기에는 이한의 품계와 직무가 마음에 걸렸기 때문임이 분명했다.

부드러운 어조 속에서도 가끔 신경질적으로 움직이는 손을 보면 확실했다.

“이렇게 늦은 밤에 오시라고 해서 죄송합니다. 어사판관 대인.”

“당문의 여러 원로들을 만나게 되어서 반갑습니다. 그런데 당문의 가주는 만나지 못하는 겁니까?”

여기 있는 장로들과 가주가 서로 다른 파벌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한번 찔러봤다.

대화의 주도권을 쥐기 위한 작은 수단이었지만, 돌아온 대답은 예상과 달랐다.

대화의 주도권 따위는 전혀 중요하지 않게 되었다.

“가주는 지금 이곳에 없습니다.”

“가주가 없다니! 무슨 일이 있었습니까?”

대외적으로는 폐관수련을 한다고 하고 다른 짓을 하는 경우가 종종 있는 것은 사실이다.

주변에서 감시하는 눈이 없으니 몰래 빠져나가서 술과 여자를 즐기다가 들통이 나는 경우도 없지 않다.

대개는 자제력이 부족한 어린 사람들의 경우다.

하지만 당문의 가주씩이나 되는 사람이 지금처럼 위험한 시국에 자리를 비웠다니 이해할 수 없었다.

무슨 생각인지 짐작도 가지 않았다.

이한은 대답을 기다렸다.

“가주는 불로불사의 묘약을 가지러 간다는 편지를 남긴 채, 며칠 전 당가타를 떠났습니다.”

“그게 무슨 허황된 이야기입니까? 진 시황제의 어리석은 행동이 사서에 그대로 기록되어 있는데 불로장생의 묘약은 또 무슨 소리입니까? 누가 사기를 친 겁니까?”

이한은 어이가 없었다.

이곳의 무림인들이 영약에 환장을 하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도 당문이나 되는 곳의 수장까지 이러는 것은 믿기 어려웠다.

당문이 독과 암기로 유명하다지만, 약 또한 만만치 않다.

독과 약이 다르지 않다는 것이 이곳 의학의 기본 원칙이기도 하다.

그래선지 당문은 대대로 뛰어난 명의를 배출해 왔다.

그런데 불로불사?

물리학자가 무한동력을 믿고 실험에 나선 격이다.

“아마 대진국에서 온 도사들에게서 온 편지일 겁니다. 오래전부터 계속 교류를 해왔고, 최근에는 더 빈번하게 편지를 주고 받았으니까요.”

이한은 어사대에서 본 보고서를 떠올렸다.

흰색의 둥근 옥이 올라가 있는 탑.

사천 지방에도 있다는 첩보에 자청해서 달려왔다.

분명 가짜 도사들도 그곳에 있을 것이다.

당문의 가주 역시 그곳을 갔을 것이고.

“가주를 물러나게 할 생각입니다.”

탑에 정신이 팔려 있던 이한의 귀에 뭔가 이상한 소리가 들렸다.

이한은 눈을 치켜떴다.

*

당문은 규모가 크다.

물론 당가타에 근거지를 두고 있는 당문 직계만 따진다면 무림의 다른 세가와 다를 것이 없기는 하다.

하지만 당문의 방계와 당문의 일을 맡아서 하는 여러 세력까지 포함한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일반적인 가문과 규모를 비교하는 것이 의미가 없을 정도로 급격하게 규모가 불어난다.

이것은 당문이 사천 지방의 지주이자 독점적인 상방, 그리고 지방 정부 역할까지 겸하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당문의 가주는 사천 지방의 이권을 두고 충돌하는 여러 세력을 조율해야 했다.

가문 내에서 자잘한 이익을 두고 서로를 견제하는 파벌이 아니라 문파 하나가 왔다갔다 할 정도로 커다란 이권을 두고 다투는 자들을 다뤄야 하는 것이다.

그들은 이권을 지키기 위해서라면 기꺼이 상대의 목을 잘라 줄 수도 있는 자들이었다.

물론 ‘상대의 목’에는 가주의 목도 포함된다.

이러니 가주가 구성원의 생사여탈권까지 쥐고 흔드는 여타의 가문과는 다른 면이 있을 수밖에 없다.

어떻게 보면 권력이 약한 왕이 여러 세력을 조율해가며 나라를 운영하는 것과 비슷했다.

그런데 권력이 약한 왕에게 믿을 만한 무기가 생기면 어떻게 될까?

사천 당문의 가주, 독지신편(獨指神鞭) 당도백.

그는 손가락 하나로 10장 밖의 사람도 중독시킬 수 있다는 독공의 고수였다.

채찍질도 잘했다.

당문은 물론이고 무림에서도 보기 힘든 무기가 채찍이지만, 별호에 신편이 들어갈 정도로 다들 알아주는 실력이었다.

그러나 그 정도로는 강한 자들 중 하나가 될 수는 있지만 특별히 강한 자가 되는 것은 불가능했다.

그래서 그는 지금 사천과 운남의 경계를 지나고 있었다.

최근에 청색의 옥이 발견된 광산 근처였다.

원래는 당문과 상관이 없는 곳이었지만, 상관있게 만든 곳이다.

대진국의 도사들이 너무도 간절히 원했기 때문이었다.

언제는 흰색의 옥 광산에 집착하듯 파고들더니 이번에는 청색의 옥광산이었다.

그들은 청색의 옥 광산을 차지하기 위해서라면 무엇이든지 대가로 치를 수 있다는 태도였다.

무엇이든지?

당도백은 알고 싶었다.

그들이 진짜로 ‘무엇이든지’ 대가로 치를 수 있는지를.

그래서 이곳에 온 것이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