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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림에서 나노머신-69화 (69/78)

< 69. 약속을 어김 >

69. 약속을 어김

사천 당문의 가주, 당도백은 청옥 광산을 향해 달려가는 중이었다.

두 명의 호위가 그의 뒤를 따르고 있었지만, 호위 따위는 필요 없다는 듯 주변을 살피지도 않고 맹렬한 기세로 달리고 있었다.

광산 자체는 숲에 숨어서 보이지 않았지만, 위치를 알아내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광산 입구에서 멀지 않은 곳에 번쩍거리는 탑이 세워져 있었기 때문이다.

어쩌면 세워져 있었다는 표현은 정확하지 않을 수도 있겠다.

원래는 다른 곳에 있었던 것이 하룻밤 사이에 나타나서 자리를 잡았으니, 세운 것이 아니라 놓여 있었다는 말이 더 정확할지도 모르겠다.

12층의 탑.

황금과 구리가 섞인 금속판으로 겉면을 둘렀고, 금속판에는 기하학적인 문양이 조화롭게 음각되어 있다.

그것만으로도 특이한데 탑 꼭대기에는 사람 머리통의 3배는 될 법한 옥구슬까지 올라가 있다니!

어떻게 봐도 평범한 탑은 아니었다.

보는 것만으로도 저절로 탐심이 일어나게 하고, 누가 저런 탑을 만들었는지 궁금하게 만들었다.

그래서인지 빛을 반사하며 번쩍거리는 탑의 겉모습에 홀려 가까이 다가갔던 사람들은 귀하게 보이는 금속으로 탑의 겉면을 둘렀을 뿐 아니라 값어치를 예단하기 어려운 커다란 옥구슬까지 탑에 올라가 있는 것을 보고 눈이 돌아가곤 했다.

황금 그리고 옥.

욕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한 번 정도는 목숨을 걸어볼 만한 가치가 있는 것들이다.

그러나 탑에게는 주인이 있었다.

스스로를 대진국에서 왔다고 주장하는 도사들은 허락받지 않은 자들이 함부로 탑에 접근하는 것을 절대로 용납하지 않았다.

경고는 한 번 뿐이었다.

그리고 경고를 무시했던 많은 사람들이 죽었다.

도사들이라고는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잔인한 손속이었다.

탐심을 이기지 못한 자는 가차 없이 죽였고, 호기심을 이기지 못한 자는 옥을 캐는 강제 노동에 밀어 넣었다.

당문의 주의를 끈 것이 바로 그 시점이었다.

산속에서 벌어지는 일이라고 하더라도 사천에서 당문의 이목을 피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산에서 생업에 종사하던 사람들이 연달아 행방불명되고, 행방불명된 사람을 찾으러 간 사람조차 종적이 묘연하니 흉흉한 소문이 돌 수밖에 없었다 .

민심을 다독이기 위해서라도 당문이 나서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그러나 당도백에게까지 보고가 올라간 것은 백옥 광산 때문이었다.

옥은 보석의 한 종류에 불과하다.

욕심을 버리고 보면 그냥 예쁜 돌에 지나지 않는다.

하지만 옥에 대한 제국 사람들의 사랑은 유별난 부분이 있었다.

제국인은 옥이 행운을 가져오고 건강을 지켜준다고 믿었다.

주변에 옥으로 된 물건을 두면 불운을 쫓아낼 수 있다고 생각했다.

돈을 벌고 출세하면 옥으로 된 물건을 갖추는 것을 당연하게 여겼다.

그러나 품질 좋은 옥을 생산할 수 있는 광산은 얼마 되지 않았다.

원하는 사람은 많고 생산되는 양은 적으니 옥광산, 그것도 백옥 광산을 발견했다는 말은 금광을 발견했다는 말과 다르지 않았다.

그것은 당문의 가주가 직접 나설 만한 일이었다.

행방불명된 사람들은 문제가 아니었다.

옥광산을 확보하는 것이 중요했다.

그래서 당문과 도사들은 타협할 수 있었다.

한쪽은 옥광산을 원했고, 다른 한쪽은 다양한 자원을 원했기에 서로 타협할만한 지점이 있었다.

그리고 그때부터 당문의 가주인 당도백과 대진국의 도사임을 자처하는 자들과의 인연이 시작되었다.

그것은 대진국의 도사들이 경사에 등장하기 5년 전 즈음의 일이었다.

그러나 인연이 시작된지 7년이 넘은 지금.

당도백은 분노하고 있었다.

그리고 자신이 얼마나 분노하고 있는지 도사 흉내를 내는 자들에게 보여줄 생각이었다.

당도백은 탑을 발견하자마자 나무를 박차고 허공으로 뛰어올랐다.

나무에서 나무로 건너뛰는 모습이 마치 날아가는 새처럼 보였다.

열심히 따라오던 당도백의 호위들은 그 모습을 흉내도 낼 수 없었다.

나무에서 나무로 건너뛰기는 커녕 나무 사이로 달리는 것도 힘들어했다.

덕분에 호위들이 뒤로 확 쳐졌지만, 당도백은 신경도 쓰지 않았다.

당도백이 땅으로 내려온 것은 탑 가까이에 접근하고 난 다음이었다.

탑 주변의 나무를 다 베어 버려서 더 이상 디딤대로 사용할 만한 나무가 없었기 때문이다

거의 50장은 넘는 거리를 그렇게 나무 한그루 남기지 않았다.

당도백은 더 이상 나무에서 나무로 건너뛰지 못하고 내려와야 했다.

당도백이 땅으로 내려오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매복하고 있던 자들이 튀어나왔다.

심지어 그 중 하나는 당도백의 바로 발밑에서 당도군을 향해 달려들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이미 당도백이 지나친 곳에서도 몇 명이 몸을 일으켰다.

모두 부드러운 흙으로 가득 찬 구덩이에서 몸을 일으킨 자들이었다.

비록 눈빛은 탁하고 몸에는 진흙이 잔뜩 묻어서 더러워져 있는 것이 별 볼 일 없는 소모품처럼 보였지만, 팔과 다리에 드러난 탄탄한 근골은 아름다울 정도로 단련된 자들이었다.

나름 많은 공을 들인 자들임이 분명했다.

그들은 당도백을 잡아서 쓰러뜨리려는 듯 한꺼번에 몸으로 밀고 들어왔다.

그러나 당도백은 절정을 넘어 초절정의 경지에 다다른 자였다.

인연이 닿아 깨달음을 얻는다면 다음 단계로 나아갈 수 있다고 스스로 믿고 있었다.

그런 사람에게 몸으로 밀고 들어오는 것은 죽여달라는 소리와 다르지 않았다.

당도백의 손이 달려드는 자들을 향하는 순간, 검붉은 기운이 손가락에서 발사되었다.

독기운이 실린 경력이 수 장의 거리를 사이에 두고 사람들을 꿰뚫었다.

순식간에 여럿이 앞으로 고꾸라졌다.

그들은 모두 무릎에 상처를 입었다.

무릎에 있는 뼈가 박살이 나고 박살 난 뼈와 근육이 녹아내렸다.

지풍 한 발에 걷는 것조차 불가능하게 만들어 버린 것이다.

심지어 그들 중 하나는 아예 다리가 떨어져 나가기까지 했다.

그러나 그것으로 다가 아니었다.

멀리 있는 자들에게는 다른 방식의 공격이 가해졌다.

당도백의 허리에 둘둘 말려있던 채찍이 풀려나더니 단숨에 2장 넘게 쭉 뻗었다.

뱀처럼 꿈틀거리며 춤을 추던 채찍이 멀리서 달려오는 자들을 찔렀다.

마치 창으로 찌르는 것 같았다.

순식간에 머리가 꿰뚫리고, 목이 꿰뚫린 자들이 무너져 내렸다.

독에 녹아버린 구멍이 더 크게 벌어지면서 검게 변색된 피가 흘러나왔다.

이들은 즉사였다.

어떻게 손을 쓸 겨를도 없었다.

하지만 그것으로 전부가 아니었다.

채찍은 몇 개의 크고 작은 원을 그리며 다가오는 사람들을 견제했다.

그리고 빈틈을 발견할 때마다 상대방을 후려치고 원으로 상대방을 휘감아서 죄었다.

일반적인 채찍이었다면 그냥 부상을 입고 말 공격이겠지만, 당도백이 휘두르는 채찍에는 독이 섞여 있었다.

당도백을 잡으려고 달려들던 자들은 자신의 피부가 채찍에 맞아 찢어졌음에도 독에 중독되어서 아픔을 느끼지 못했다.

뼈가 박살나고 근육이 찢어졌지만 통증을 전혀 느끼지 못한 것이다.

그것은 팔다리가 잘려나갈 때도 마찬가지였다.

채찍이 작은 원을 그리며 신체의 한 부분을 휘감을 때마다 철편이 톱처럼 작용하여 그대로 잘라버렸다.

하지만 이때도 독에 마비되어 아픔을 느끼지 못했다.

자신의 팔이 잘려서 흙바닥에서 펄떡펄떡 뛰는대도 저건 누구것이지 하면서 멍청하게 보는 것이다.

철편과 가죽, 그리고 이런저런 독물을 엮어서 만든 채찍은 겉으로 보기보다 훨씬 위험한 무기였다.

가까이 있던 자들이 독지(獨指)에 무릎이 박살 나고 녹아내려서 끝이 났다면, 멀리 있는 자들은 신편(神鞭)에 손발이 절단되는 것으로 끝이 났다.

당도백을 잡겠다고 모습을 드러냈던 자들이 모두 무력화되기까지 걸린 시간은 몇 차례 호흡을 하는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그제서야 뒤늦게 고함소리가 들려왔다.

“이게 무슨 짓인가? 독지신편! 왜 우리 애들을 공격하는 거냐? 아무리 당신이 당문의 가주라고 해도 이것은 지나친 일이 아닌가! 우리 사이의 협약을 무엇이라고 생각하는 것인가?”

“감히 나를 속여!”

주절주절 떠드는 소리를 압도하는 고함이었다.

연이어 퍼붓는 욕설과 비난 역시 상대방의 항의를 단숨에 묻어버릴 정도였다.

당도백이 보이는 기세에는 분노가 섞여 있었다.

“가짜 도사놈이 감히 당문의 가주에게 거짓말을 했을 때는 각오한 것 아니었나? 나는 만만한 사람이 아냐! 너는 오늘 죽을 것이고, 네 장난감 역시 오늘 다 박살이 날 거다! 머리 속에 든 것을 햇빛에 꺼내서 말리다 보면 다시는 거짓말 따위는 하고 싶지 않을 거다.  네 놈의 가짜 도사 동료들 역시 다시 한 번 고민을 하게 되겠지. 옥을 계속 얻고 싶다면 무엇을 가져다 주어야 할지 말이다.”

“내가 무슨 거짓말을 했다는 거냐? 나는 옥을 받는 대가로 너에게 죽지도 않고 늙지도 않는 비약을 약속했다. 비록 지금은 재료가 부족해서 완벽한 불노불사의 비약을 만들지 못했지만, 적어도 불노가 가능함을 보여 주지 않았던가? 그런데 감히 내게 거짓말을 했다고 누명을 씌워? 도대체 무슨 거짓말을 했다는 거냐? 납득이 갈만한 변명을 하지 못한다면 오늘 죽는 자는 내가 아니라 네가 될 거다. 방금 죽은 내 부하들처럼 만들어 주겠다. 병신이 된 내 부하들 사이에서 병신이 된 당문의 가주도 함께 뒹굴게 해 주마.”

당도백의 욕설을 들은 도사는 더욱 격렬하게 반발했다.

세상에 다시 없는 억울한 일을 당한 것 같았다.

그 모습을 본 당도백은 더욱 열이 올랐다.

자신을 바보로 생각하는 것 같아서 모욕적인 느낌이 들 정도였다.

“무슨 거짓말? 내게 약속한 불노불사가 거짓말이 아니었던가? 그렇지 않다면 내게 맹세해 봐라. 네가 믿는다는 혼돈에게 너의 존재를 걸고 한 번 맹세해 봐라. 못 하겠지? 할 수가 있을 리가 없지. 네가 약속한 불노불사는 거짓이니까!”

당도백의 조롱을 들은 도사는 입술을 깨물고  눈을 치켜떴다.

더 이상 참을 수 없다는 기색이 역력했다.

그러나 당도백의 말을 부정하지는 못했다.

실제로 그가 당도백에게 제공한 것은 불노불사와는 거리가 먼 것이었다.

“너희는 내게 불노불사를 약속했지만 나는 애초에 그런 것을 믿은 적도 없었다. 신선이 되어 등선하는 자조차 불노불사를 이루었는지 의심스러운데 약 하나를 먹는다고 해서 불노불사를 이룬다니 웃기지도 않는 소리지. 그런 것은 이상할 정도로 옥에 집착하는 너희가 더 많은 옥을 얻어내기 위해 떠드는 헛소리에 지나지 않았다고 생각했다.”

당도백의 채찍이 바닥에서 꿈틀거렸다.

살아있는 뱀처럼 상대를 노리고 이를 드러내는 것 같았다.

“그런데 내게 고독을 먹여? 너희가 뭔가 착각을 한 것 같은데 너희에게 제공한 고독은 모두 내 손을 거친 것이다. 아무리 너희가 고독을 가지고 이상한 짓을 했다고 해도 그것은 원래 내 거야. 내 명령에 따르는 것이라고!”

당도백의 손이 검게 물들었다.

그 손은 가짜 도사를 가리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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