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0. 당도백이 원하는 것 >
70. 당도백이 원하는 것
무공을 익힌 사람의 손이 검은색으로 물들었다는 것은 위험한 일이 벌어질 것이라는 신호다.
검은색뿐만이 아니다.
매끄럽게 빛이 나든, 우유색으로 변하든, 핏줄이 보일 정도로 투명해지든 상관없다.
평범했던 손이 무엇인가 평범하지 않은 것으로 변한다면 위험하기는 다 마찬가지다.
평범하지 않은 무공을 익혔다는 의미니까 말이다.
그런데 그 사람이 당씨 성을 가진 사람이다?
그러면 다른 가능성을 생각할 필요조차 없다.
독이다.
그것도 신체의 일부가 변할 정도로 강한 독을 사용한다는 의미다.
청옥 광산의 가짜 도사.
그리고 혼돈을 선택했던 흑마법사.
한때는 부패와 질병, 생명에 대한 근원을 탐구하는 구도자였던 커롭토는 긴장하지 않을 수 없었다.
당문은 절대로 만만하게 상대할 수 있는 곳이 아니기 때문이다.
물론 준비를 안 한 것은 아니다.
당문의 독이라면 지금까지 여러 종류를 경험해 왔고, 경험한 것은 모두 해독에 성공했다.
심지어 고독조차 손에 넣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들 중에서 쉽게 대할 수 있는 독은 하나도 없었다.
해독법을 찾기 위한 실험을 하던 중간에 몇 번이나 죽을 뻔했다.
지금이야 무림의 독에 대해 제법 지식을 쌓았지만, 초기에는 제대로 알지도 못하는 주제에 무리를 해서 겪은 사고였다.
운이 나빴다면 분명 죽었을 것이다
그런데 당문의 가주가 직접 시전하는 독이라니!
손까지 검은색으로 변했다고?
이러면 당문에 있는 8대 금독이 등장해도 이상하지 않다.
과연 그런 독을 해독할 수 있을까?
그것도 처음 경험에서?
아니, 막는 것이라도 가능하기는 할까?
커롭토는 스스로에게 묻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그의 질문에 대한 대답은 금방 얻을 수 있었다.
당도백의 검은 손에서 검은색의 기운이 튀어나왔다.
한 개도 아니었다.
마치 화살을 연사하기라도 하는 것처럼 연달아 쏘아지는 검은 색의 기운이 가짜 도사 커롭토를 노리고 날아왔다.
그것들은 제대로 보이지도 않을 정도로 빠른 속도로 날아와서 커롭토를 타격했다.
그 순간, 위험을 감지하면 스스로 발동되는 방어막이 커롭토를 감쌌다.
칙칙한 붉은 색이 어른거리는 반투명한 방어막이 외부로부터의 위협에 반응하여 모습을 드러냈다.
붉은색의 방어막은 검은색의 기운과 부딪치자 잔잔한 호수에 돌이 떨어진 것처럼 표면이 물결쳤다.
연달아 날아오는 검은 기운에 타격을 당하다가, 마지막에는 당장이라도 사라질 것처럼 깜박거리기까지 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붉은색의 방어막은 버텨냈다.
당도백의 공격이 멈출 때까지 사라지지 않고, 공격을 막아낸 것이다.
그제야 커롭토는 약간의 여유를 되찾을 수 있었다.
덕분에 보이지 않던 것이 보이기 시작했다.
사실 커롭토는 탑 주변에 배치해 놓았던 실혼인들이 한순간에 몰살당하자 놀라움과 두려움으로 인해 시야가 좁아진 상태였다.
그러나 약간의 여유가 생겨서 평소의 그로 돌아가자 지금의 상황이 뭔가 이상하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아무리 화가 난다고 해도 당문의 가주가 직접 와서 날뛰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 일이었다.
게다가 따라온 자들은 호위 두 명이 전부였다.
이것 역시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커롭토는 지난 몇 년간 당문과 거래하면서 사천 지방에서는 당문이 왕과 같은 존재라는 것을 잘 알게 되었다.
사천 지방에서 당문이 가진 영향력을 나타내기 위한 비유가 아니었다.
커롭토가 보기에는 당문의 가주가 실제로 하고 다니는 행동 자체가 왕과 다를 바가 없었다.
당문의 가주가 성도를 떠나 한 번 움직일 때마다 적어도 수십 명, 많게는 수백 명의 수행원을 주렁주렁 매달고 다녔다.
하나하나가 정해져 있는 임무가 있는 자들이었다.
사천 지방의 여러 도시와 촌락에서 당문의 가주에게 청원하기 위해 모여드는 사람들은 왕에게 청원하기 위해 모여드는 신민이나 다름없었다.
옆에서 보고 있으면 절대로 한 문파나 가문의 주인으로는 보이지 않았다.
어떤 경우에는 황족인 친왕보다 더 왕같이 보일 때도 있었다.
그런데 이런 산속에 단 두 명의 수행원과 함께 모습을 드러내다니!
이것은 가문의 구성원들에게도 이곳에 오는 것을 비밀로 했다는 의미였다.
왜 그런 걸까?
그의 지위에 어울리지 않게.
더구나 당도백이 들고 온 문제는 고독이었다.
고독은 사람을 협박으로 얽어맨 후 지배하려는 수단이다.
내공을 익히지 못한 자라면 정신까지 지배하는 것도 가능하다.
그리고 고독의 출처는 당문.
이러면 당문에서 기겁하고 튀어나와야 정상이다.
그런데 가주만 온 것이다.
말은 무척 강하게 하고 있지만, 아무리 봐도 행동은 아니었다.
나름대로의 꿍꿍이가 숨어있다고 봐야 했다.
의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하지만 의문만으로 해답을 구할 수는 없다.
대화가 필요했다.
그래서 커롭토는 당도백의 공격이 멈추자 곧장 대화를 시도했다.
“적당히 하시오. 당도백. 어차피 고독에 대한 문제는 다 파악했다면서? 그렇다면 너무 예민하게 이러지 맙시다. 어차피 고독은 당신에게 별 영향도 끼치지 못하는 것 아니오?”
“역시 너희는 우리와 생각하는 방식이 달라. 도둑질에 암수까지 쓰고도 떳떳하다는 듯이 굴다니. 너희가 당문의 독을 입수하려고 온갖 수작을 부린 것을 내가 모를 줄 알았나? 그런데 고독까지 빼돌려? 만약 중간에 내가 알아채지 못했다면 계속 이런 짓을 했을 것 아닌가! 그 열의와 노력에 대해서는 칭찬해 주지. 그러나 너희가 대가를 치러야 하는 것은 변함없다.”
“내 밑에 있던 자들 중 하나가 공명심이 지나쳤을 뿐이오. 그자는 이미 자신의 행동에 대한 책임을 졌다는 것은 말해두고 싶소.”
“책임을 졌다고?”
당도백의 반문에 커롭토는 굴러다니고 있는 시체를 가리켰다.
당도백을 잡으려다가 죽어간 실혼인들 중 하나였다.
다른 실혼인들은 모두 검은색의 머리카락을 하고 있었지만 그자는 홀로 잿빛의 머리카락을 가지고 있었다.
물론 임기응변으로 갖다 댄 것이다 .
잿빛의 머리카락은 책임 따위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자였다.
그는 경사에서의 일이 실패했다는 소식을 듣고, 도망치다가 잡혀서 혼이 빼앗긴 자에 지나지 않았다.
“믿기 어려운 이야기로군. 하지만 감히 내게 고독을 먹인 죄가 이 정도로 덮어지리라고 믿는 것은 아니겠지? 성의를 보여라. 그동안 쌓아온 우리의 관계가 그렇게 얕은 것이 아니라는 것을 배상으로 증명해라. 그렇다면 우리의 관계가 이전으로 되돌아갈 수도 있겠지.”
“배상?”
“그래. 배상.”
당도백의 얼굴에 언뜻 탐욕이 스치듯 지나가는 것 같았다.
커롭토는 의문에 대한 해답을 얻었다고 생각했다.
당도백이 개인적으로 원하는 무엇인가가 있는 것이 분명했다.
만약 당도백에게 고독을 먹였다는 것이 공론화되면 청옥광산에 있는 자들은 무조건 죽는다.
설사 당도백이 살리고 싶어도 불가능하다.
언제나 충성심을 증명하고 싶어하는 당문의 구성원들이 가만 있지 않을 테니까.
그러니 당도백이 부하들을 수십 명씩 대동해서 오지 않은 점이 이해가 되기는 했다.
그러나 아직 한 가지는 알 수 없었다.
커롭토가 가진 것 중에서 당도백이 저렇게 행동할 정도로 특별한 것.
그것이 무엇일지 생각해 보아도 딱히 짚이는 것이 없었다.
옥광산 정도가 떠올랐지만, 글쎄? 라는 의문이 먼저였다.
백옥광산과 청옥광산이 큰 가치를 가진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곁가지로 다룬다면 모를까 그것만으로는 당문의 주인까지 스스로 오게 만들 가치는 없었다.
커롭토는 일단 당도백의 말을 기다렸다.
당도백의 말에 맞추어 대응하기로 한 것이다.
“먼저 청옥광산에 대한 비율을 조정하지. 5:5의 비율을 7:3으로 변경하겠네. 물론 당신들이 3이야.”
“그렇다면 백옥광산은 어떻게 되는 거요?”
“백옥광산? 그것은 당신들이 버린 것이 아니었나?”
대놓고 강탈이었다.
그러나 광산을 넘기는 것으로 서로 간의 관계를 개선한다면 나쁘지 않았다.
어차피 백옥광산의 쓰임새는 다한 참이었다.
당도백의 말대로 버린 것이나 다름없다.
청옥광산에서 적절한 양의 청옥을 캘 수 있으면 그것으로 충분했다.
“좋소. 그것이면 되겠소? 그것이면 우리 사이의 문제를 종결짓기에 충분한 거요?”
“아니. 충분하지 않다. 설마 금전 몇 푼으로 당문의 가주에게 엉터리 약과 고독을 먹인 것이 무마될 거라고 생각했나?”
옥광산이 금전 몇 푼이라고!
하지만 당문의 가주가 그렇다면 그런 것이다.
커롭토는 이제부터가 진짜임을 알았다.
“나는 얼마 전에 믿기 어려운 소식을 들을 수가 있었다. 경사에서 벌어진 대규모 숙청에 휘말린 도사들이 공간을 뛰어넘어 멀리 도망가 버렸다고 한다. 그것을 공간이동이라고 부른다지? 그들이 숙청당한 이유가 바로 그 공간이동의 술법을 황제가 아닌 다른 사람들에게 팔려고 해서 그렇다는 소문이 있었다. 공간 이동이라니! 엄청난 일 아닌가? 거리가 의미가 없어지는 것이지. 제국은 이전보다 더 단단하게 뭉칠 수 있겠지. 아무리 멀리 있는 자라도 바로 옆에 있는 것이나 다름없게 될 테니까. 황제가 간절히 원할 만한 것이기는 해. 그런 점에서 당신은 내게 할 말 없나?”
커롭토는 잠시 생각을 했다.
어디까지 말해야 할까?
설사 말을 해도 이해를 할까?
“젠장! 당신은 그런 소문을 믿는 거요?”
커롭토의 반문에 당도백은 고개를 끄덕이며 탑을 가리켰다.
“당신들이 처음 모습을 드러냈을 때는 백옥광산에 자리잡고 있었지. 저 탑 역시 그곳에 있었던 것을 기억한다. 그런데 이곳에도 같은 탑이 있군. 얼마 전까지만 해도 백옥광산에 있던 탑 아니었던가? 설마 탑을 분해해서 여기까지 끌고 와서 재조립했다고 주장하지는 않겠지?”
사천에서 당문의 눈을 피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미 한바탕 충돌이 있었던 사이라면 더욱 그렇다.
언제 탑이 이동했는지 시간까지 알고 있을 가능성이 컸다.
커롭토는 속이지 않기로 결정했다.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렇겠지. 그래서 묻고 있지 않나? 당신들도 할 수 있는 거냐고. 전에 듣기로는 경사에 있는 자들과는 갈래가 다르다면서? 하지만 그래도 다 같은 대진국 출신이니 아는 것이 조금이라도 있겠지. 명심하게. 공간이동은 당문에 반드시 필요해. 황제가 차지하도록 내버려 둘 수는 없어.”
단순히 재물이라든가 불로불사의 비약이라든가 그것도 아니라면 특별히 만들어낸 독이라도 요구하면 얼마나 좋아.
공간이동이라니!
그것은 같은 마법사라고 하더라도 이해하기 어려워하는 사람이 대부분이다.
커롭토는 멀미라도 하는 사람처럼 이마에 손을 올렸다.
실제로 두통이 이는 것 같기도 했다.
“당도백 가주. 공간 이동은 어려워. 너무 어려워서 우리 같은 사람들이라고 해도 이해하는 자는 얼마 안 돼. 그래서 이곳으로 온 사람들 중에 공간 이동에 대한 지식을 가지고 있는 자는 몇 명 되지도 않아.”
“말이 길군. 그렇다면 경사에서 몸을 감췄다는 자들을 추적해야 하나?”
“그자들이나 우리나 다들 마찬가지야. 선원이라면 배를 수리할 수 있지. 하지만 만들지는 못 해. 배에 망치질을 하는 모습이 같아 보여도 선원과 조선공은 전혀 다른 존재라고. 대장간에서 일하는 놈이 도면의 숫자를 읽고 쓸 수 있다고 해서 회계까지 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 않나?”
“그래서 안 된다는 것인가?”
“제국식 이름은 모르겠지만 우리 쪽 이름으로 말론이라는 자가 있어. 그자가 방법을 알지. 만약 공간이동에 대해 알고 싶다면 그자부터 확보해.”
“알겠다. 그렇다면 결국 너희는 쓸모가 없다는 이야기로군.”
커롭토는 자신도 모르게 당도백을 바라보았다.
당도백의 손이 여전히 검은색이라는 것이 그의 눈에 들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