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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림에서 나노머신-71화 (71/78)

< 71. 누가 죽었을까? >

71. 누가 죽었을까?

검은색의 손이라니!

이것은 싸우겠다고 선언하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지금까지 서로 간의 이해를 잘 조정했다고 생각했는데 싸우겠다고?

그것도 당문의 가주가 직접?

커롭토는 당혹스러웠다.

당도백이 원하는 대로 백옥광산을 내어주고, 청옥광산의 지분도 조정했다.

공간이동에 대한 지식을 가지고 자도 알려주었다.

그것으로 불로불사의 비약에 문제가 있었던 것은 양해하기로 합의한 것 아니었던가?

고독은 실패작이었으니 상관없을 테고.

그런데 왜?

이유를 알 수 없었던 커롭토는 대놓고 물어보았다.

“부족한 것이 있었소? 아니면 뭔가 우리가 실수한 것이라도?”

“실수? 글쎄. 세상 사람들이 왜 당문을 두려워하는지 생각해 본 적이 있나? 흔히 말하기를 독 때문이라고들 하는데 정말 그럴까? 내가 보기에 그것은 맞는 말이면서 틀린 말이기도 하다. 독 말고도 사람을 죽일 수 있는 방법은 많다. 칼에 찔려 죽은 자의 숫자와 독에 중독되어 죽은 자의 숫자를 비교하면 어떨 것 같나? 독에 중독되어 죽은 자들의 수를 놓고 구우일모(九牛一毛)라고 해도 과장은 아닐 것 같은데? 하지만 사람들은 무당이나 화산같이 검법이 뛰어난 곳보다 독을 사용하는 당문 같은 곳을 더 두려워하지. 왜 그럴까?”

당도백의 손이 더욱 검게 변하고 있었다.

너무 검어서 모든 빛을 빨아들이는 것처럼 보일 정도였다.

“왜 죽는지도 모르고 죽기 때문이지. 잠을 자다가 죽고, 식사를 하다가 죽고, 사랑을 나누다가 죽는다. 예상할 수 없는 상황에서 예상할 수 없는 방식으로 죽기 때문에 독을 두려워하고 당문을 두려워하는 것이다. 당문은 세상 사람들이 잘 모르는 독에 대한 지식을 아주 많이 갖고 있으니까 가능한 일이지. 그런데 너희들 역시 우리처럼 세상 사람들이 잘 모르는 위험한 지식을 많이 갖고 있는 것 같더군. 큰 문제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당도백이 갑자기 손을 휘둘렀다.

약간의 전조도 없었다.

상대방의 항변은 들어볼 생각도 없는 것 같았다.

검은색의 실선이 공간을 쪼갰다.

공간 내의 모든 것을 잘라버렸다.

다시 나타난 반투명한 붉은색의 방어막도 마찬가지였다.

붉은색의 방어막은 검은색 실선의 움직임에 따라 조각조각 잘리는 듯하다가 풍선처럼 터져 버렸다.

이것은 손가락으로 쏘아내는 지풍에 독을 싣는 정도가 아니었다.

가늘게 뽑아낸 독기운을 채찍처럼 휘두르는 것에 더 가까웠다.

물론 당문의 가주가 시전하는 독을 무시할 수 있다면 별것 아니다.

기껏해야 약간의 상처를 입고 끝날 일이다

하지만 독을 버틸 수 없다면 닿는 것만으로도 위험했다.

커롭토는 당도백이 움직이는 순간 튕기듯이 뒤로 물러섰다.

경공의 달인이 본다면 이상적인 부신약영(浮身躍影)이라고 할 정도로 빠른 속도였다.

그러나 아무리 빨리 움직였어도 검은색의 실선만큼은 아니었다.

검은색의 실선은 잠깐의 지체도 없이 커롭토의 팔을 자르고 지나갔다.

“악! 이게 무슨 짓이냐! ”

바닥에 떨어지는 팔을 보며 커롭토는 비명을 질렀다.

그러나 당도백은 그것으로 멈출 생각이 없는 것 같았다.

그의 손가락 사이로 4개의 암기가 삐죽이 모습을 드러냈다.

당가의 암기에 조예가 있는 사람이라면  비폭정(飛暴丁)을 보았다고 할 것이다.

“불로불사의 비약이라면서 나에게 먹였던 고독. 그거 위험한 것이더군. 내공을 가진 무림인조차 지배하려고 만든 것이었다지? 경사에 파견해 둔 사람들이 실패작이라고 알려오기는 했지만, 아찔하더군. 역시 너희는 너무 위험해. 이번에는 실패작이었지만 다음에는 성공작이 나올지도 모르지 않나? 그나마 고독은 우리가 잘 아는 것이니까 이상하다는 것을 금방 알 수 있었지. 하지만 만약 우리가 알지 못하는 어떤 것이 튀어나온다면 제대로 손을 쓰지도 못하고 당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더군.”

경사의 멍청한 놈들!

피와 폭력이나 갈구하는 놈들이 머리를 쓰려고 하니 이 사단이 생기지!

커롭토는 경사에서 일을 벌인 자들을 저주했다.

쓸데없는 짓을 벌여서 경계를 사다니!

애초에 당문과 연결을 시켜주지 말았어야 했다.

이런 상황을 만든 것은 모두 그들의 책임이었다.

커롭토는 고통으로 인한 쇼크로 몸을 벌벌 떨면서도 당도백의 말에서 솟아날 구멍을 찾았다.

고독은 당문에서 제공했지만, 그것을 가공하려고 시도했던 것은 경사의 흑마법사들이었다.

그들은 내공심법을 익힌 자라고 하더라도 지배할 수 있는 고독을 원했다.

경사의 정치투쟁에 질려버린 흑마법사들이 떠올릴만한 발상이기는 했다.

실패해서 그렇지.

마법이나 연구하던 자들이 능력에 어울리지 않은 일을 저질렀다가 사고를 친 것이다.

그리고 그 여파가 사천까지 도달했다.

한때의 동맹이 적이 되어 버렸으니 아쉽기만 했다.

커롭토는 억지로 몸을 추스르며 뒤로 물러났다.

한발한발 뒤로 물러설 때마다 실혼인이 땅속에서 일어났다.

만약을 대비해 광산 주변에 심어둔 자들이었다.

그렇게 10여 장을 물러서고, 10명이 넘는 실혼인으로 주변을 두르고 난 다음에서야 쇼크로 인해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는 몸을 돌볼 여유가 생겼다.

지혈을 하고, 진정제를 먹었다.

이제 몇 병 남지 않은 마나 정제수도 들이켰다.

그제야 비로소 몸이 정상으로 돌아왔다.

머리도 제대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일단은 광산 안에 있는 동료들이 올라올 때까지 시간을 벌어야 했다.

경계를 서고, 외부인을 응대하는 일을 하는 자신보다 훨씬 강한 그의 동료들.

그들과 힘을 합친다면 당문의 가주라고 하더라도 상대할 수 있을 것이라고 믿었다.

허세도 좀 떨었다.

초절정의 고수가 별거냐?

절정보다 내공을 좀 더 쌓고, 무공이 좀 더 뛰어난 사람이겠지.

그렇다면 내공에 제약을 걸고, 무공을 제대로 발휘할 수 없도록 해주면 그만 아닐까?

커롭토는 동료들을 위한 환경을 조성하기 시작했다.

그의 의지를 구현한 언령에 따라 살아있는 모든 것이 부패하기 시작했다.

손을 흔들 때마다 바스러지는 그의 옷이 사방으로 곰팡이 포자를 퍼뜨렸다.

그러나 그의 시도는 금방 방해를 받았다.

커롭토를 향해 못을 닮은 암기, 비폭정이 날아온 것이다

커롭토를 보호하기 위해 몸을 날려 암기를 막는 실혼인들이 펑펑 터져나갔다.

화약이 터지는 충격으로 산산조각 난 실혼인들이 사방으로 흩어졌다.

그 모습을 본 커롭토는 아쉬움을 느꼈다.

부패를 위해 좋은 재료가 저렇게 많이 있건만!

시간이 부족하고, 실혼인도 부족했다.

동료들을 위해 스스로가 재료가 되어야 할 판이었다.

그래서 그렇게 했다.

*

이한이 당가타에 있는 토루에서 만났던 장로들은 당문의 현재 행보가 지나치게 위험하다고 생각하는 자들이었다.

독립이라니!

정신 나간 것도 아니고 이게 무슨 미친 소리냐는 것이 그들의 일치된 의견이었다.

당문이 사천 지방의 왕처럼 행세하는 것은 상관없지만, 진짜로 사천 지방의 왕이 되겠다고 나서는 것은 안 된다는 입장이었다.

하지만 당도백은 야망이 넘치는 자였다.

그래서 그들은 당도백의 행동에 대해 많은 걱정을 가지고 지켜보고 있었다고 한다.

물론 당도백을 지지하는 당문의 사람들 역시 적지 않았다.

자신이 태어난 땅에서 자라고 죽는 사람이 절대다수인 시대.

멀리 경사에 있어서 한평생 얼굴도 본 적이 없는 황제가 도대체 뭔데 우리에게 명령을 하느냐고 뻗대는 것도 이상하지는 않다.

그러나 그런 사람들조차 얼마 전 경사에서 벌어진 일련의 사태에 대한 정보를 얻은 후에는 입을 다물었다.

반역이라니!

당문에서 나온 고독으로 관리들을 협박했다니!

그것 말고도 헛소문으로밖에 들리지 않는 이야기도 여럿 있었지만, 그들의 귀에 틀어박힌 것은 단 하나, 고독에 대한 것이었다.

당문에서 아무리 우리와 관련이 없다고 주장해도 고독의 출처까지 부정할 수는 없었다.

생긴 것이나 사용하는 법을 보면 분명히 당문의 고독이니 어떻게 변명의 여지가 없는 것이다.

더구나 강호에서 활동하던 당문의 인물 몇 명이 반란과 연루되어 죽거나 사로잡혔고, 그중에는 가주와 가까운 친척인 당도군도 있으니 점점 문제가 심각해지고 있었다.

결국 당문의 장로들은 결정을 내렸다

당도백을 축출하는 것으로 당문의 진심을 천하에 과시하기로 한 것이다.

원래부터 당도백을 지지하던 파벌은 뒤로 물러났고, 대신 반대편 파벌이 전권을 휘두르기 시작했다.

마침 당도백도 폐관수련을 한 답시고 골방에 들어가서 연락을 끊고 있었으니 시기적으로도 적절했다.

만약 당도백이 멀쩡하게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면 이렇게 충돌없이 당문의 태도를 바꾸기는 힘들었을 것이다.

그런데 아무래도 결정이 좀 늦었던 모양이었다.

미처 당도백을 제거하기도 전에 어사판관이 난입을 했고, 육선문이나 도찰원 소속의 관리들도 근처에서 발견되었다.

이런 식이면 전대의 무림고수가 황궁 소속으로 모습을 드러낼지도 모른다.

그래서 어사판관인 이한에게 당도백이 사실상 당문의 가주에서 밀려났음을 알려주었다.

이 정도라면 분명히 경사의 높은 분들에게 만족스러운 상황이었다.

그러나 어사판관은 만족하지 않았다.

실적에 눈이 어두운 어사판관은 당도백은 물론이고, 가짜 도사들까지 ‘조사’하기를 원했다.

당문의 장로들 역시 ‘조사’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작지 않은 일행이 꾸려지는 것은 순식간이었다.

*

이한은 무시무시한 속력으로 달리고 있었다.

이미 길이 나 있는 곳은 말을 타고 달렸고, 밀림과 산을 통과할 때부터는 두 발로 뛰었다.

길이 없는 밀림에서는 아예 원숭이처럼 나무에서 나무로 뛰기도 했다.

너무 늦기 전에 탑이 있다는 청옥광산에 도착해야 했다.

가짜 도사들이 다시 모습을 감추기 전에 도착하려는 마음뿐이었다.

그런 마음을 가진 이한과 함께 달리는 자들도 있었다.

두 명의 장로와 한 명의 당주.

모두 당문에서도 무공이 고강하기로 이름난 자들이었다.

독과 암기의 고수들이었고, 사천 지방의 독립에 대해 회의적인 입장에 있던 자들이었다.

그들의 임무는 당도백이 당문으로 돌아오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었다.

수단은 가리지 않았다.

설득을 해도 되고, 협박을 해도 된다.

죽이는 것도 상관없었다.

모두 당문을 위해서라는 명분으로 허용되었다.

이한은 가짜 도사들을, 당문의 일행은 당도백을 노리고 달리는 중이었다.

원래는 이들을 수행하기 위한 인원도 적지 않게 있었는데 이한이 잠시의 휴식도 취하지 않고 내리 달리는 통에 다 낙오하고 말았다.

달리는 말 위에서 잠을 자고, 뛰면서 먹고 마시니 원래부터 이런 종류의 일에 익숙하지 않은 자들이 모조리 낙오한 것이다.

그러나 이한은 낙오한 자들을 돌보지 않았다.

혹시나 경사에서처럼 탑이 사라지는 사태가 벌어지지 않을까 싶어서 잠시도 여유를 가질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다행히 그렇게 서두른 보람이 있었다.

그들이 청옥광산 근처에 도달했을 때, 이한은 멀리서 탑이 번쩍이는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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