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3. 이한, 당도백과 싸우다. >
73. 이한, 당도백과 싸우다.
더 이상 가주로 인정하지 않는다는 당기의 말은 당도백을 분노로 폭발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화가 난다고 해서 이성을 잃고 마구잡이로 날뛰는 것은 당씨 성을 가진 사람답지 않은 일이다.
은혜는 10배, 복수는 100배로 갚아주려면 사람을 죽일 때도 먼저 죽일 자와 나중에 죽일 자 정도는 구분할 줄 알아야 한다.
게다가 당도백은 당문의 사람이고, 심지어 가주이기까지 했다.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할지 누구보다 잘 아는 사람이었다.
당도백의 왼손이 당기를 가리켰다.
그 순간, 두 줄기 은색의 빛줄기가 당기를 향해 날아갔다.
그것은 쌍룡침통에서 발사된 굵은 바늘처럼 생긴 암기였다.
눈으로는 따라잡을 수 없을 정도로 빠른 속도였다.
아무리 무공의 고수라고 해도 보고 피한다는 것이 가능할 것 같지 않았다.
그러나 당기는 예상이라도 했다는 듯이 당도백의 공격을 피해 버렸다.
당도백의 손이 움직이는 것과 합을 맞추어서 움직인 것이다 .
당기와 당도백은 평생을 당가타에서 부대끼며 살아온 가까운 친척 사이였다.
서로에 대해 잘 알 수밖에 없다.
당도백이 이런 식으로 기습을 즐겨한다는 것도 당기는 진작부터 알고 있었다.
오히려 언제 기습을 하려나 하고 기다리고 있었을 정도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도백의 공격은 위협적이었다.
한 발 옆으로 이동하는 것만으로 은색의 빛줄기는 허공으로 빗나갔다.
하지만 당기가 걸친 장포의 어깨 부위가 살짝 찢어지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그것은 당도백의 공격이 얼마나 아슬아슬하게 빗나갔는지를 알려 주는 것 같았다.
만약 당도백에 대해 잘 몰랐다면 반드시 죽었으리라.
당도백의 실력은 지금까지 당기가 알고 있던 수준이 아니었다.
광산 주변의 상황을 보고 짐작하고는 있었지만 생각보다 더 뛰어난 당도백의 실력에 당기는 심장이 철렁하는 느낌이었다.
“너 같은 겁쟁이들의 인정은 나도 필요 없다. 몇 놈 쳐 죽이면 다들 제정신을 차리겠지.”
“쉽지 않을 거요.”
굳어진 얼굴로 당기가 대꾸했다.
예상과 어긋난 상황에 당기는 바싹 긴장을 끌어올렸다.
“그래? ”
당도백은 말로 상대방을 설득할 수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당기가 가문에서 자신을 쫓아냈다고 선언한 시점에서 이미 늦은 것이다.
그러나 설득의 수단이 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일방적인 폭력.
죽음을 내세운 위협.
당도백이 아는 한 가장 가장 강력한 설득 수단이었다.
물론 누구나 반드시 설득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간혹 신념을 가진 사람을 설득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기는 하다.
하지만 그의 주변 사람까지 설득하지 못하는 경우는 별로 없었다.
일단 주변 사람들이 설득되면 아무리 강한 신념을 가진 자라도 자신의 의견을 꺾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인간은 다수의 주변 사람들과 다른 의견을 오랫동안 홀로 고집할 정도로 심지가 굳지 못하니까.
그리고 아주 드물게,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념을 꺾지 않는 자가 생긴다면 훨씬 더 강력한 폭력을 사용하면 그만이다.
아예 상대방의 입을 막아버릴 만한 폭력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당도백은 자신의 실수를 반성하고 있었다.
진작에 주변 사람들을 미리 제대로 설득해 놓았어야 했다.
만약 엉뚱한 짓을 할 만한 사람을 남겨두지 않았다면 자신이 가문을 비운 사이에 이런 말도 안되는 일이 벌어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설사 문제가 생겼어도 자신을 지지하는 자들이 어떻게든 시간을 끌어주었겠지.
하지만 당도백은 이미 지나간 일에 대해 미련을 가지는 사람이 아니었다.
앞으로의 계획을 고민하는 쪽이었다.
대세에 밀려서 입을 다물었겠지만, 아직 자신을 지지하는 세력이 남아있을 것이라고 믿었다.
그들과 함께 당문을 정상으로 돌려놔야 했다 .
그렇지 않다면 당문은 앞으로도 계속 황제의 간섭이나 받으며 살아야 할 것이다.
그러니 자신이 아니라 당문을 위해서라도 자신을 버린 자들을 ‘설득’해야 했다.
우선 자신의 앞에 있는 자들부터 말이다.
당도백은 쥐고 있던 쌍룡침통을 손에서 놓았다.
쌍룡침통이 땅바닥으로 떨어졌다.
어차피 용수철이 두 개 밖에 없는 암기통이었다.
이미 두 개의 암기를 발사해 버린 후이니 남은 것은 쓸모없는 금속 덩어리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나 시선 끌기용으로는 충분했다.
사람들의 시선이 순간적으로 쌍룡침통으로 향했다.
당도백은 쌍룡침통을 떨어뜨리는 순간 팔에 장착하고 있던 철비환에 내공을 불어넣았다.
용수철과 내공의 조합은 화약 못지 않는 위력을 발휘한다.
화약을 터뜨릴 때의 소음도, 불을 미리 준비해야 하는 불편함도 없이 비슷한 위력을 보이는 것이다.
당문이 독으로 유명했음에도 뛰어난 장인을 데릴사위로 삼으면서까지 암기 개발에 노력하는 것이 괜히 그러는 것이 아니다.
사람 죽이는 방법으로는 암기도 독 못지않게 유용했다
그러나 당도백은 철비환에 내장된 화살을 당기에게 발사하지 못했다.
자신을 향해 날아온 격공장부터 파훼해야했기 때문이었다.
“아니!”
당도백은 조금 전 건방지게 자신의 이름을 불러대던 젊은 남자가 보이는 격공장에 놀라고 말았다.
원래 격공장 자체가 쉬운 무공이 아니다.
상당한 거리를 두고 내공으로 상대방을 타격한다는 것은 내공의 양과 운용 모두 뛰어난 수준에 도달해야 가능하다.
대개는 권법으로 일가를 이룬 절정의 고수는 되어야 흉내라도 낼 수 있다.
그런데 저렇게 젊다 못해 어려 보이는 자가 제대로 된 격공장을 구사하다니!
맞지 않아도 느낄 수 있을 정도로 강맹한 기운이었다.
철덩어리가 통째로 날아오면 이런 느낌일까?
제대로 맞으면 어디 한군데 박살나고 말겠다는 예감이 당도백을 움직이게 만들었다.
철비환에 내장된 화살이 격공장을 향해 쏘아졌다.
모두 8발.
한 발 한 발이 철판을 꿰뚫고 바위를 부술만한 위력을 가진 공격이었다.
그리고 그 속력은 쌍룡침통을 통해 보여준 속도와 비길만 했다.
보고 막는 것은 안 된다는 뜻이다.
그러나 이한이 느끼기에 공격이 아니라 방어를 위해 사용된 철비환의 화살은 그리 위협적이지 않았다.
용수철과 내공의 힘을 빌려 발사한 화살로 격공장을 요격하는데 성공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상대를 죽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단 한 발이라도 상대방을 향해 쏘아야 위협이라도 할 수 있다.
그러나 이한은 그럴 만한 틈을 내어주지 않았다.
충돌음과 함께 화살은 힘을 잃고 떨어지고, 격공장은 중간에 기세를 잃고 흩어졌다.
8발의 화살이 모두 그런 식으로 소모되었다.
그러나 준비된 화살을 다 쏘면 끝인 철비환과 달리 격공장은 8번으로 끝나지 않았다.
[장포 안에 걸려 있는 암기의 수효는 22개. 옷의 구조로 봤을 때 최소 300개가 넘는 암기를 보관하고 있었을 겁니다. 암기를 발사하는 기관 역시 2개만 남아 있습니다. 손목보호대에 있던 화살 8개가 모두 발사되었습니다. 주의! 손목보호대 내부에 독약으로 추정되는 물질을 발견했습니다. 칠보단혼산 또는 자오분심일 가능성이 큽니다. 남은 암기 숫자 27! 27!]
이한은 요란하게 떠드는 나노의 보고를 배경음 삼아 연달아 격공장을 날렸다.
사람의 기혈을 뒤흔들고 뼈를 부러뜨릴만한 위력의 격공장이 당도백을 노리고 연달아 시전되었다.
화살을 다 사용한 당도백은 이번에는 암기를 던지며 자신을 향한 공격을 막아갔다.
그러나 나노의 관찰대로라면 암기 역시 곧 떨어질 터였다.
암기든 독이든 모두 소모품이다.
한 번 싸움이 끝나면 다시 보충해야 다음에도 싸울 수 있다.
그러나 당도백은 그렇게 하지 못했다.
광산에서 가짜 도사들과 싸우면서 암기를 거의 다 소모해 버린 것이다.
독 역시 마찬가지였다.
시간이 충분하다면 숲속에서라도 몇 가지 급하게 구해볼 법하지만, 그럴 만한 시간이 없었다.
암기도 독도 모두 밑바닥을 드러내고 있었다.
이제 믿을 것은 오랜기간동안 독공을 익히며 신체 내부에 쌓아온 독뿐이었다.
그리고 그러한 사실을 나노는 열심히 떠들고 있었다.
심지어 당도백이 가지고 있는 암기의 숫자를 실시간으로 부르기까지 했다.
탄환이 떨어진 총은 그냥 몽둥이나 다름없다.
암기와 독이 떨어진 당문 사람도 비슷하다.
차이가 있다면 그래도 무공을 익혔고, 신체에 쌓아둔 독을 사용할 수 있으니 막대기 대신 총검을 들고 있는 셈이라고 해야 할까?
과연 암기와 독이 없는 당문 사람이 자신의 능력을 어느 정도까지 발휘할 수 있을지 궁금했다.
초절정에서 깨달음을 얻어서 이전과 다른 실력을 갖추게 된 사람의 경우는 어떨까?
이한은 궁금했다.
이한의 궁금증을 풀어주려는 듯 당도백이 이한에게 달라붙었다.
암기가 손가락으로 헤아릴 정도밖에 남지 않았으니 거리를 두고 싸우는 것은 아무래도 곤란했던 모양이었다.
게다가 당기는 물론이고 당윤과 당인걸까지 눈빛을 빛내며 빈틈을 노리고 있으니 조만간에 누가 되었든 치고 들어올 것이 분명했다.
아무리 당도백이 당문 사람들에 대해서 잘 알고, 제압할 자신도 있지만 이대로 그냥 시간을 끌다가는 의외의 한 수에 얻어맞는 경우도 배제할 수 없었다.
그리고 당도백은 무례한 남자가 이상하게 거슬렸다.
벽공장을 계속 사용하는 것에서 이미 보통 실력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었기에 더욱 그랬다.
그래서 당도백은 상대방과 엉켜서 난전을 벌이기로 했다.
지금으로서는 독공을 사용하기에 가장 좋은 방법이었다.
이한은 당도백이 자신을 잡으려고 뻗는 손을 쳐냈다.
당도백은 이한이 쳐내는 손을 다시 잡으려고 팔을 들이 밀었다.
손과 팔뚝이 서로 부딪치고, 정강이로 서로를 가격했다.
그때마다 떡메로 치는 것 같은 소리가 터져나왔다.
불과 두 번 팔뚝이 부딪쳤을 뿐인데도 철비환이 박살이 나 버릴 정도였다.
이미 안에 장전해 놓은 화살은 다 사용해 버렸으니 상관은 없지만, 그 안에 담겨있던 독액은 별개의 문제였다.
철비환이 박살나는 순간 이한과 당도백 모두에게 독액이 튀어버렸다.
당도백은 득의의 미소를 지었다.
독을 상대에게 끼얹었다!
기대했던 대로 일이 이루어진 것이다
광산에서 싸울 때도 독을 보기만 하면 도망쳐 버리는 겁쟁이들 때문에 얼마나 귀찮았던가!
삼양수를 쓰면서도 독공을 사용하지 못하는 것은 팔을 묶고 싸우는 것과 다를 것이 없다.
하지만 삼양수는 금나수의 일종이다.
이렇게 가까이 붙은 이상 상대가 삼양수를 피해 도망치는 것은 불가능했다.
당도백의 손이 검은색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핏줄을 따라 그리고 기맥을 따라 검은색이 피부에 드러나더니 단숨에 손전체가 검은색으로 물들어 버렸다.
이것이 진정한 삼양수였다.
삼양심공에 의해 발현되는 장법이자 금나수다.
호흡이나 약물을 통해 축기한다면 삼양심공도 삼양수도 평범한 무공에 지나지 않는다.
저잣거리에서 사고파는 삼류 무공까지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해서 명문의 무공으로 삼기에는 부족한 점이 적지 않다.
그러나 독이 함께 한다면 어떤 무공보다도 무서운 무공으로 변한다.
단전에는 독정을 형성하고, 손으로는 독을 발산하고 흡수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상대를 잡고 때리는 것만으로도 상대의 입에 독을 잔뜩 퍼먹이는 것과 같은 효과를 가져온다.
당도백은 검은색으로 변한 손으로 이한의 팔뚝을 잡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