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4. 독공이라는 것. >
74. 독공이라는 것.
당도백이 자신의 팔뚝을 잡는 순간,
이한은 기시감을 느꼈다.
독공을 일으키면서 팔뚝을 잡다니!
이것은 불과 얼마 전에 겪은 일이었다.
독심흑수 당도군이 서명의 폐광산에서 이한을 제압하려고 할 때와 조금도 다르지 않은 상황이었다.
그때 당도군은 내공에 독기를 실어 보내면서 이한을 중독시키려고 했었다.
무리한 시도는 아니었다.
독공, 즉 독을 내공 수련의 방편으로 삼는 방법에 대한 지식이 없다면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으니까.
대부분의 무림인에게 있어서 독으로 공격을 한다는 것은 독이 묻은 무기로 찌르는 것을 의미한다.
좀 더 창의적인 사람이라면 상대방이 모르게 중독을 시킬 방법을 고민할 것이다.
음식이나 음료에 독을 넣거나, 초를 만드는 밀랍에 독을 섞거나, 아니면 향수에 독을 조합하는 것처럼 말이다.
그러나 당문처럼 독을 내공 운용의 한 방편으로 사용하는 경우는 드물었다.
매우매우 위험하기 때문이다.
무엇인가 실수를 한다면 주화입마로 끝나지 않는다.
반드시 죽는다.
운이 좋아야 시한부다.
그래서 독을 사용하는 경우는 많아도 독공을 실제로 익히고 연구하는 곳은 드물었다.
이를테면 백의문이나 천의문, 오가의방 등 의와 약을 업으로 하는 문파가 있다.
그들은 약뿐만 아니라 독에도 능통했다.
적절하게 쓰면 약, 과다하게 쓰면 독이라는 것이 그들의 생각이었다.
사천의 이웃인 운남으로 가면 독에 관한 한 당문에 못지않다는 오독문이 있다.
살아있는 독물을 이용하는 것은 당문보다 더 낫다고 할 정도였다.
심지어 일개 상인조차 구명절초로 반지 모양의 암기를 갖고 다닐 정도다.
가문 내의 암투에서 독이 사용되는 경우도 드물지 않다.
첩을 죽이기 위해 독이 섞인 염료로 벽을 발랐다는 이야기는 고전적이기까지 하다.
당문처럼 유명하지 않아서 그렇지, 독이나 암기에 대해 일가를 이룬 무림인은 당문 말고도 적지 않게 있다.
그러나 그들 중에서 독공을 연마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모두 독을 연구하고 사용할 뿐, 독공은 관심도 두지 않는다.
그 점이 당문과 다른 점이었다.
당문은 가문의 기본공으로 아예 독공을 연마하도록 지정해 놓기까지 했다.
당도군이나 당도백이 별다른 고민없이 독공을 사용하는 것이 그 때문이었다.
실제로 당문의 사람을 제외한다면 독공을 연마한 사람이 거의 없으니까 말이다.
그러나 이한에게는 무지를 담보로 한 공격이 별로 효과적이지 않았다.
능력 있는 보조자이자 선생인 나노가 언제나 이한과 함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한은 당도군의 독공을 접하자마자 나노의 보조를 받아서 순식간에 당도군의 수준을 뛰어넘었다.
나노가 제공하는 시뮬레이션 실험실과 나노머신을 사용한 신체 강화 시술을 이용해서 수십 년 동안 독에 전념해온 사람의 인생을 불과 몇 분 만에 추월했다.
당도군과 싸우기 전에는 독공에 대해 몰랐지만, 싸우면서 그렇게 드물다는 독공을 연마한 사람이 된 것이다.
이것은 단순히 지식이 많다 적다의 의미가 아니었다.
배움과 적응에 있어서 시간이 더 이상 의미가 없어졌다는 것을 뜻한다.
이한은 몇십 년간에 걸친 독공의 수련으로 도달한 인체의 변화까지도 나노머신을 사용해서 복사를 했다.
독에 적응한 인체를 순식간에 만들어낸 것이다.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나노는 당도군의 내공운용을 분석해서 새로운 삼양심법을 만들어내기까지 했다.
이한은 당문이 가진 삼양심법의 원본을 보지는 못했지만, 나노가 새롭게 만들어낸 이가삼양심법이 훨씬 뛰어나리라고 자신할 수 있었다.
이한은 이곳 사람들과는 전혀 다른 시대, 먼 미래에 살고 있는 셈이다.
불공평한 일이기는 하지만, 애초에 이한은 이 세상에 속한 사람도 아니었다.
어차피 돌아갈 사람이다.
이 세상에 대해서는 그다지 미련도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 당도군과 같은 방식으로 공격해 오는 당도백을 본 것이다.
이한은 감사한 마음으로 독공을 운용하기 시작했다.
당도백은 상대방이 손잡이를 잡고 있는 작두에 목을 들이미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상대방에 대해 아는 것이 전혀 없으니 저지르는 실수였다.
만약 당도군을 제압해서 잡은 사람이 이한이라는 것을 알았다면 당도백은 절대로 이런 식으로 공격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한은 기꺼운 마음으로 당도백의 팔뚝을 마주잡았다.
이미 한 번 가본 길이었다.
이한의 입장에서는 당도군을 제압한 방식으로 당도백도 제압하면 되는 일이었다.
사실 당도백이야 죽든지 살든지 알 바가 아니었다.
다른 사람들, 특히 이곳으로 달려오고 있을 다른 감찰 기관의 관리들이야 당도백을 확보하는 것이 중요하겠지만 이한에게는 아니었다.
이한에게 중요한 자는 저쪽에 쓰러져 있는 가짜 도사였다.
이곳에 있던 가짜 도사 일당 중에서 아직 숨이 붙어 있는 유일한 사람이었다.
이한은 당도백을 어서 치워 버리고 가짜 도사를 조사할 생각뿐이었다.
그러나 당도백은 심드렁할 정도로 평정을 지키는 이한의 반응이 의외였던지 놀란 눈빛이 되었다.
당문을 대하는 일반적인 사람들과는 전혀 달랐기 때문이다.
이자는 왜 두려워하지 않지?
뭘 몰라서 이렇게 용감한 것일까?
이렇게 가까이 붙으면 독에 당하기 쉽다는 것을 모르나?
그래도 설마 당문까지도 모르는 것은 아니겠지?
그런 의문이 섞인 눈빛이었다.
그러나 당도백의 눈빛은 금방 놀라움으로 변했다.
분명 상대방을 잡고 독기를 밀어 넣었는데 자신이 기대한 반응이 나오지 않은 것이다.
마치 마른 모래에 부은 물처럼 그의 내공은 흔적도 남기도 않고 사라졌다.
거대한 호수에 물을 붓는다면 이런 느낌일까?
무엇인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눈치채는 것은 금방이었다.
당도백은 즉시 이한을 밀어내며 뒤로 물러서려고 했다.
하지만 이한은 당도백을 놓아줄 생각이 없었다.
당도군에게 그랬던 것처럼 계속 잡고 늘어져서 당도백의 내공과 독을 자신의 것으로 하려고 했다.
결코 놓아주지 않겠다는듯 당도백의 팔뚝을 강하게 잡았다.
그제서야 당도백은 제대로 알게 되었다.
자신의 앞에 있는 자는 뭘 몰라서 자신과 다투겠다고 달라붙은 것이 아니었다.
노리는 바가 있기 때문에 감히 물러서지 않고 붙어서 기세를 올리고 있었던 것이다.
사천에 있는 무림 문파의 사람들은 대부분 당문에게 양보를 하는 것이 기본이었다.
독을 두려워하고 당문을 두려워했다.
그렇지 않은 자들은 모두 죽었다.
죽지 않고 살아있는 자들은 대부분 당문조차 무시하기 어려운 실력을 갖춘 자뿐이었다.
당도백은 눈 앞의 남자, 이한을 그러한 실력자들과 동급에 두고 상대하기로 했다.
그럴 만한 실력이 있다면 살 것이고, 없다면 죽을 것이다.
당도백의 각오가 기세를 불러일으켰다.
초절정의 고수다운 기세가 유형화되어 이한을 강타했다.
순간 당도백의 팔이 이한의 팔을 엉키는 것처럼 감싸다가 튕겨냈다.
이한이 억지로 팔뚝을 잡은 채 버티려고 했다면 관절이 나갔을지도 모를 정도의 충격이었다.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이미 서로 간에 내공의 흐름이 연결되어 있었으니 이런 식으로 떨어지는 것은 단전에 상당한 충격을 줄 수 밖에 없다.
심하면 주화입마를 일으킬 수도 있는 종류의 충격을 말이다.
이한은 단전에서 느껴지는 갑작스러운 통증 때문에 당도백의 팔뚝을 놓아버렸다.
단순히 팔을 뒤트는 금나수뿐이었다면 관절이야 망가지든 말든 나노를 믿고 버텼을 것이다.
상대방의 관절도 무사하지 않게 만들어 줄 자신이 있었다.
그러나 단전에서 느껴지는 통증에는 어쩔 수 없었다.
이한의 아랫배에 자리잡고 있는 단전은 원래 태어났을 때부터 이한의 몸에 붙어 있던 몸의 일부가 아니었다.
불과 얼마 전에 나노가 만들어서 붙여놓은 신체 기관이다.
어딘지 모르게 불안하고 어색한 마음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게다가 아무리 나노가 완벽하게 관리를 한다고 해도, 의학은 100%의 학문이 아니다.
단전에 대해서만큼은 조심하고 싶었다.
그리고 통증을 느끼는 곳이 단전만은 아니었다.
내공을 운기하던 중이라서 경맥에도 타격이 적지 않았다.
나노는 비명을 지르며 미세하게 찢어진 신체 기관을 수리하기 시작했다.
과연 당문의 가주였던 자답다고나 할까.
절정을 넘어선 자답게 독공 일변도가 아니라 내공의 운용이나 금나술도 보통이 아니었다.
당도군은 제대로 저항도 하지 못하고 이한에게 질질 끌려다니다가 모든 것을 잃었지만, 당도백은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광산을 뒤엎어놓은 것을 보면 암기술도 만만치 않을 것이 분명했다.
그나마 암기를 거의 다 소모한 것이 다행이었다.
그러나 이한은 당도백을 올려 보지만은 않았다.
자신이 느낀 충격을 상대방도 느끼고 있으리라고 생각했다.
아무리 당문의 가주였던 자답게 뛰어난 실력을 가지고 있다고 하더라도 부상까지 피해가는 것은 아니다.
이한이 가벼운 내상을 입은 것처럼 당도백 역시 마찬가지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렇다면 당도백에게 여유를 주면 안 되었다.
조금이라도 회복할 수 있는 여유를 주지 말고, 밀어붙여야 했다.
뒤로 튕겨지듯 물러서던 이한은 삼양심법을 돌리기 시작했다.
독기운이 경맥을 따라 흐르기 시작하자 나노가 기겁을 하고 다시 떠들기 시작했다.
[단전과 경맥의 세포가 미세하게 찢어졌습니다. 복구하려면 아직 시간이 더 필요합니다. 지금 독공을 운기하면 나노머신의 효율이 떨어집니다. 자연 치유는 아예 불가능합니다.]
“같은 조건이라면 내가 좀 더 유리하지 않을까?”
[아! 그렇기는 하겠습니다. 이한님은 제가 치료하면 되지만 당도백은 그게 안되니까 상처가 계속 악화되겠습니다. 이왕이면 내상의 회복을 막기 위한 활동을 해주십시오. 저는 나노머신으로 당도백을 오염시켜서 잡아보겠습니다. 외부에서 활동이 가능한 나노머신을 생산중입니다. 앞으로 30초 후 외부 방출을 시작합니다.]
“독은 위험해. 독공을 운용하는 자에게는 더욱 그렇지.”
이한은 나노가 만들어낸 이가삼양심법을 운용하기 시작했다.
이한의 손이 검게 변했다.
이한의 눈도 검게 변했다.
삼양심법을 최고로 운용하면 일어나는 신체의 변화가 이한에게도 나타난 것이다.
“너는 누구냐! 어떻게 당문의 심법을 네가 알고 있는 것이지?”
자신과 같은 모습으로 변화한 이한을 본 당도백은 충격을 감추지 못했다.
삼양심법은 당문의 독문 심법이고 외부로 반출이 금지된 무공이었다.
그런데 당문 사람들이 있는 곳에서 태연하게 삼양심법 특유의 모습을 보이다니 이게 무슨 일인가 싶었다.
그러나 이한은 시치미를 뚝 떼고 태연하게 반문했다.
“당문의 심법이라니! 무슨 헛소리냐! 이것은 내가 오랜 연구 끝에 만들어낸 이가진독심법이다. 극양의 독물을 혼합해서 만들어낸 비전의 독약을 먹어가며 오랜 시간동안 수련해야 입문이라도 할 수 있는 독공이란 말이다!”
이한의 말에 당도백은 분노를 참을 수 없었다.
겉으로 드러나는 모습이 삼양심법을 극도로 운용할 때의 모습과 같은데 이런 같잖은 도발을 하다니!
당도백의 두 눈이 검게 변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