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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겜 속 칼잡이-10화 (10/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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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김창은 늘 하던 버릇대로 칼자루 위에 손을 올렸으나 뽑진 않았다.

“뒈지기 싫으면, 도끼 내려.”

한석구는 허석을 죽이지 말고 데려오라고 했다. 칼을 뽑았다간 저 녀석을 죽여버릴 게 분명하니 굳이 뽑지 않았는데 저쪽에선 무기를 손에 쥐었다.

이쪽은 목숨이라도 건지게 해주려고 무기도 들지 않고 싸우는데 저 새낀 건방지게 무기를 들려고 하나.

그것도 그냥 창칼 따위가 아니라 거대한 전투 도끼다. 저걸 휘두르면 사람 머리 정도야 수박 쪼개듯 쪼개버릴 수 있을 텐데 그걸 생각하면 참으로 괘씸하다.

“기회 주는 거야. 깝치지 말고 얌전히 굴어.”

나름대로 배려한 건데 저쪽에선 그렇게 받아들이지 않은 모양이었다. 허석은 모욕을 당했다고 생각한 듯 붉어진 얼굴로 외쳤다.

“씹새야! 너나 깝치지 말고 칼 뽑아! 죽여버린다!”

“넌 날 죽일 자신이 있는 모양인데, 난 널 안 죽일 자신이 없어서 안 되겠는데.”

“그게 뭔 개소리······.”

허석은 후우 하고 길게 숨을 내뱉더니 등 뒤에서 도끼를 꺼냈다. 도끼날에 얼룩이 덕지덕지 붙어 있는 걸 보면 저걸로 몇 명 정도 죽인 모양이었다.

“망할 새끼, 건방 떠는 것도 거기까지다. 아까 저 자식 하나 이기고 기고만장한 모양인데, 나는 쟤보다 더 강하거든? 깝친 대가는 치러야 할 거다.”

“네가 쟤보다 더 강하다고?”

김창은 안도했다.

“다행이네. 그럼 몇 대 쳤다고 죽진 않겠네.”

“까―불―어!”

머리끝까지 화가 난 허석이 말을 타고 김창을 향해 달려들었다. 본래 보병이 기병을 정면에서 막으려는 건 자살 행위지만 김창은 별로 겁내지 않았다.

그는 그저 달려오는 말의 움직임을 잘 보고 있다가 살짝만 왼쪽으로 움직여 돌격을 피했을 뿐이다. 그와 동시에 도끼를 휘두르는 허석의 팔을 붙잡아 그대로 아래로 내던졌다.

“크악!”

허석은 순간 숨이 쉬어지지 않았다. 바닥에 세게 부딪힌 등은 척추가 부러진 게 아닐까 하는 착각이 들 정도였다.

“씹새가!”

그러나 그는 일어났다. 일반 기병이었다면 그대로 죽거나 움직이지 못 하게 됐어도 이상하지 않지만 허석은 플레이어였다.

말에서 낙마했다고 크게 다칠 만큼 나약하진 않았다. 김창에겐 다행인 일이었다. 아직 저 머리통을 주물러 주진 못했으니까.

“죽어!”

부웅!

공기를 가르는 소리와 함께 도끼가 횡으로 움직였다. 거대한 도끼를 들고 휘두르는데 마치 막대기를 휘두르는 것처럼 가벼운 움직임이었다.

하지만 저기에 맞았다간 그대로 목이 잘려 죽고 말 것이다. 과연 용병 뛸 만한 실력은 있는 놈이었나.

김창은 이번에도 공격을 가뿐히 피한 뒤에 허석과의 거리를 좁혔다.

“윽!”

아무리 도끼를 막대기처럼 휘두를 만한 괴력이 있다고 해도 공격하고 난 뒤에 생긴 빈틈은 어쩔 수 없는 법이다.

김창은 그 틈을 놓치지 않았다. 바짝 거리를 좁힌 뒤에 허석의 턱을 향해 손바닥을 올려 쳤다.

빡! 뼈와 뼈가 부딪쳐 둔탁한 소리가 나고 허석의 고개가 크게 뒤로 젖혀졌다. 당연히 자세가 흐트러졌다.

허석은 억지로 고개를 내리고 어떻게든 균형을 되찾아 도끼를 휘두르려 했다. 하지만 몸이 너무 느렸다.

또 한 번 들려오는 타격음은 얼굴에서 발생한 것이었다. 묵직한 주먹이 오른쪽 뺨을 후려치는 순간 강렬한 발차기가 복부를 타격했다.

그대로 몸이 쭉 밀리려는 걸 억지로 버티는데 이번엔 어깨가 크게 흔들렸다. 그 뒤로 두어 번 더 이어진 발차기도 악으로 버텼다.

이젠 내 차례인가?

빡!

주먹에 맞은 머리가 흔들렸다. 아직 아니었던 모양이다······.

“끄으윽, 씹새······. 나도 한 대만······.”

하도 얻어맞았더니 시야도 불분명하다. 머리는 어지럽고 다리는 후들거리는데 허석은 억지로 도끼를 휘둘렀다.

물론 맞을 리가 없었다. 대신 더 처맞기만 했다.

“하, 항복······.”

더 당해낼 재간이 없다. 허석은 솔직하게 인정했다. 제대로 된 공격은 한 번 해보지도 못하고 맞기만 맞았다.

심지어 저쪽은 칼조차 뽑지 않았으니 진짜 무기 들고 싸웠으면 어땠을지 끔찍하기만 하다.

“내가 졌어, 그러니······.”

가끔 플레이어끼리 다툼이 있더라도 서로 죽이지 않는 게 암묵적인 규칙이다. 그러니 항복하면 목숨 잃을 일은 없다.

더군다나 김창은 애초부터 허석에게 그러다 뒈진다고 경고까지 해주지 않았나? 그런 걸 보면 정말 죽일 맘은 없는 모양이지.

그런 것치고 좀 많이 때린 것 같긴 하지만······.

“크악!”

얼굴을 날아온 주먹에 맞고서 허석은 아연했다. 아니, 방금 내가 항복이라고 안 했나?

“컥! 크억!”

공격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주먹은 연달아 날아왔고 그럴 때마다 비명이 절로 터져 나왔다.

“씹새야! 항복한다고 했잖아!”

“그랬지.”

“그런데 왜 때려! 저항 의지 없는 사람 때리는 거 범죄야! 내가 원탁 가서 일러바치면 걔네가 가만히 있을 것 같아!”

김창은 또 한 번 허석의 얼굴에 주먹을 꽂으며 말했다.

“아마 가만히 있을걸. 난 원탁이 보냈거든.”

허석은 코뼈가 부러져서 피를 줄줄 흘렸다. 그는 코피를 막을 생각도 하지 못하고 말했다.

“워, 원탁이 널 보냈다고? 날 두들겨 패라고? 갑자기 왜······.”

“두들겨 패라고 보낸 건 아니고, 설득 좀 하라고 보냈지.”

“뭔 설득?”

“저기 저 얼간이랑 같이 여기서 돈 뜯어먹고 있다며. 적당히 하고 돌아오라더라.”

허석은 어이가 없어졌다. 그러니까 원탁에서 영주들 돈 그만 뜯어먹고 돌아오라는 말을 전하기 위해 김창을 보냈단 말인가?

“설득하라고 보냈다며? 근데 왜 두들겨 패?”

“어차피 말로 해서 들을 놈들도 아니니 가서 머리통 좀 주물러 주라던데. 난 시키는 대로 했을 뿐이야.”

허석은 이물감이 느껴지는 입을 우물거리다가 핏물을 뱉어냈다. 그래서 지금까지 두들겨 팼다고?

어이가 없긴 한데 스스로 생각해도 말로 했으면 안 들어먹었을 것 같긴 하다······.

“씹······. 그래, 알겠어. 그러니까 이제 전쟁 끝내고 돌아가면 되는 거냐? 그럼 더 안 때릴 거고?”

“그래.”

퉤. 부러진 이와 함께 핏물을 뱉어낸 허석은 슬쩍 뒤쪽을 쳐다봤다. 거기엔 영주 허스칼이 있었다. 왠지 모르게 비웃고 있는 것 같은데 기분 참 개 같았다.

“네 친구 데리고 따라 와. 가는 길에 쓸데없는 짓 하면 뒈지기 전까지 맞는다.”

“그래······.”

저건 농담으로 하는 말이 아니었다. 허석은 본능적으로 알고 있었다. 김창은 정말 뒈지기 직전까지 때릴 게 분명했다.

“가자. 저 친구 일으켜.”

굴욕적이지만 명령에 따르지 않을 수 없었다. 허석은 하도 처맞아서 후들거리는 몸을 억지로 움직여 용병을 향해 걸어갔다.

“야, 정신 드냐? 야?”

김창은 칼자루 위에 손을 올린 채로 허석이 용병을 깨우는 모습을 보고 있었다. 둘 다 죽진 않았으니 한석구한테 뭔 소리 들을 일은 없겠군.

이대로 저 두 놈을 감시하며 원탁까지 감시하며 데리고 가야 하는 게 좀 귀찮기 하겠지만 어쩔 수 없었다. 괜히 다른 사람에게 맡겼다간 일이 더 귀찮아질 수도 있었으니까.

“으, 으음······.”

허석이 뺨을 툭툭 두드린 게 효과가 있었는지 기절했던 용병이 천천히 두 눈을 떴다. 그는 아직 머리가 어지러운지 눈을 찡그리며 말했다.

“내가 왜······?”

“너 아까 저 사람한테 처맞고 뻗었잖아. 기억 안 나?”

허석의 설명에 용병은 바보처럼 눈만 끔뻑였다. 그는 기억을 떠올리려는 것처럼 미간에 주름을 잡았다.

“그래, 말을 타고 돌격하다가······.”

“기억났으면 이제 일어나. 저 새끼 원탁에서 보낸 놈이란다. 뒈지기 직전까지 처맞기 싫으면 얌전히 원탁까지 돌아가야 해.”

“······내가 왜?”

“왜긴 왜야?”

허석은 한심하다는 얼굴로 용병을 쳐다봤다. 하긴 이 새낀 제대로 처맞지도 않았으니 사리 분별도 안 되겠지.

“저 새끼 저거 존나 세. 내 얼굴 보이지? 엄청나게 맞았다. 너도 나처럼 되기 싫으면 그냥 얌전히 가자.”

용병은 몸을 부들부들 떨면서 말했다.

“······내가 왜.”

“아니, 너 안 가면 쟤한테 맞는다니까? 내 얼굴 안 보여? 내가 먼저 맞아봐서 아는데, 진짜 아프니까 그냥 조용히······.”

“내―가―왜!”

미친 새끼. 무슨 분노조절장애라도 있나? 졌으면 진 거지 왜 소리나 빽빽 지르고 난리야? 하기야 새벽에 게임 하다 끌려온 놈이니 정상적인 성격이 아닐 수도 있겠다.

원래 게임 하다가 화가 나서 키보드고 뭐고 다 때려 부수는 놈들이 제법 있지 않나? 저 용병도 대충 그런 성격이라고 이해하면 이상할 건 없다.

허석은 쯧쯧 하고 작게 혀를 차며 용병을 쳐다봤지만 그는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 용병은 김창을 향해 성큼성큼 다가갔다.

김창도 그 모습을 보며 말했다.

“왜, 용건 있나?”

“용건? 있지! 다시 붙어, 이 씹새야!”

“다시 붙으면 이길 것 같나 보지?”

“그래! 넌 뒈졌다! 덤벼!”

용병은 기어코 김창에게 덤벼들었다. 물론 이미 한 대 맞고 뻗었던 놈이 오기로 다시 덤빈다고 결과가 달라지는 건 아니었다.

허석은 용병이 자신과 똑같이 김창에게 두들겨 맞는 걸 보고 측은함을 느꼈다. 그러니까 그냥 조용히 따라갈 것이지 왜 굳이 매를 버나.

“더 때리면 죽을 것 같은데 여기까지 하지 그러냐.”

김창은 용병을 정말 때려죽일 수도 있었지만 그러지 않았다. 이것도 다 돈 벌자고 하는 일인데 한 명을 죽여서 데려가면 받을 돈도 절반이 되지 않겠나.

그래서 김창은 용병을 더 때리지 않았다. 이미 많이 때려서 만신창이가 되긴 했지만 저 정도야 뭐 플레이어인데 침 바르면 낫지 않겠나.

“으아아악! 악! 악!”

자신을 무시하는 듯한 김창의 태도에 용병은 분노에 차서 짐승 같은 소리를 냈다. 하지만 화가 난다고 갑작스레 더 세지는 건 아니라서 별 의미 없는 행동이었다.

허석은 물론이고 김창도 똑같이 생각했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던 모양이다.

“케샤 케일라!”

용병이 갑옷 안쪽에서 목걸이를 꺼내더니 손으로 줄을 뚝 끊었다. 그리곤 목걸이를 꽉 움켜쥐고서 중앙의 검은색 수정을 깨트렸다.

김창은 싸우다 말고 그게 뭔 개짓거리냐고 묻지 않았다. 용병이 뭔 짓을 했는지 바로 보였기 때문이다.

“케샤······ 케···일···라!”

웬 이름을 외치더니 용병의 몸이 커지기 시작했다. 덩치가 커지고 근육이 단단해지면서 입고 있던 가죽 갑옷이 찢어져 맨살이 드러날 지경이었다.

마치 거대화 마법이라도 쓴 것처럼 키와 덩치가 각각 두 배씩은 늘어난 용병은 그 얼굴이 괴물처럼 뒤틀리더니 곧 짐승의 울음 외에는 낼 수 없게 됐다.

“저 새끼 저거!”

허석이 당황해서 입을 쩍 벌리고 있는 걸 보며 김창이 물었다.

“쟤 뭔 짓거리 한 거냐.”

“저 새끼 악마한테 영혼 갖다 바쳤어! 악마숭배자야, 저거!”

염병. 질 것 같으니까 별 짓거리를 다 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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