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이 세상에 와서 불만스러운 점이 하나 있다면 그건 자동차가 없다는 사실이다.
어딜 가려고 해도 몇 날 며칠을 걷거나 말을 타고 달려야 한다. 게다가 길은 또 얼마나 험하고 해는 또 어찌나 일찍 지는지 하루에 얼마 움직이지도 못한다.
원래 게임에선 지도에서 가려는 곳을 몇 번 클릭하는 것만으로 휙휙 이동하고 그랬는데 여기선 그런 게 없다.
어디를 가려면 두 발로 직접 뛰거나 아니면 말을 타고 달려야 한다. 전이 스크롤이라는 게 있기야 하지만 그건 대도시로만 이동할 수 있고 텔레포트 마법은 성공할 확률이 칠 할에 불과하다.
가챠 게임에서 원하는 걸 뽑을 확률이 1%도 안 되니 칠 할이면 거저 아니냐고 할 수 있지만 그건 가챠 중독인 미친놈들이나 하는 소리다.
삼 할의 확률로 실패하면 어딘지도 모르는 곳에서 일생 떠돌아야 하는데 그런 위험을 감수할 수는 없다.
그러한 이유로 김창은 직접 말을 타고 악마를 쫓아다니고 있었다. 벌써 추격을 시작한 지 일주일이 지났다.
칼잡이가 하는 일은 대개 이런 것이다. 무언가를 추격하여 기어코 죽여버리는 일. 상당한 끈기를 요구하며 동시에 몹시 지루한 일이다.
김창은 이 세상에 온 뒤로부터 그런 일을 자주 했다. 끈기라면 남들에게 뒤지지 않았기에 언제나 훌륭하게 일을 완수했다.
그러니 이번에도 그럴 것이다. 어둠 속에 숨어 있는 악마를 찾아내 죽일 것이다.
“마을인가?”
한참 달리다 보니 저 멀리 마을의 불빛이 보였다. 김창은 저도 모르게 슬쩍 미소를 지었다.
요 며칠 간은 야영의 연속이었다. 마땅히 쉴 만한 곳을 찾지 못해 대충 적당한 곳에서 웅크린 채 이슬을 맞으며 휴식을 취했다.
아무리 플레이어가 강철 같은 체력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그건 좀 짜증 나는 일이었다. 하지만 오늘은 마을을 발견했으니 편히 잠을 청할 수 있으리라.
“이럇!”
김창은 기쁜 마음으로 말을 타고 달렸다. 말이 거친 콧김을 뿜어내며 마지막 힘을 짜냈다. 하늘에 점차 어둠이 몰려오고 있었다.
‘잔치라도 하는 건가?’
가까이 다가간 마을은 환한 빛에 감싸져 있었다. 마을 곳곳에 횃불을 세워 불을 밝히고 건물마다 여러 장식을 붙인 끈을 길게 늘어트렸다.
사람들은 바쁘게 돌아다니면서도 그 얼굴에는 웃음이 가득하다. 어디선가 맛있는 음식 냄새가 나고 즐거운 노랫소리가 들려오는 걸 보면 확실히 잔칫날이긴 한 모양이었다.
그런 날에 나타난 칼 든 이방인은 저들 눈에 어떻게 보일 것인가. 김창은 어쩌면 자신이 저들을 겁먹게 할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저거 누구야?”
“못 보던 얼굴인데······.”
김창이 말을 타고 마을 안으로 들어오니 사람들이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불안은 항상 들불처럼 빠르게 번지는 법이라 수군거림은 점차 커지고 있었다.
“칼 찬 걸 보니 용병인가?”
“기사는 아닌 것 같은데.”
“산적 아냐?”
“근데 혼자잖아.”
저들에게 자신이 플레이어임을 밝히면 일은 훨씬 더 수월해질 것이다. 세상에 감히 플레이어에게 대들려 할 사람은 없을 테니까.
하지만 그는 그러지 않았다.
“여행자다. 선량하진 않지. 다만 하룻밤 잠자리를 내주겠다면 조용히 머물다가 떠나겠다.”
자기 입으로 선량하지 않다고 말하니 오히려 믿음이 갔다. 마을 사람들은 저들끼리 얼굴을 마주 보다가 곧 좌우로 갈라섰다.
갈라진 사람들 틈 사이로 노인 하나가 나타났다.
“이 마을의 촌장인 발러요. 여행자라고 하셨소?”
“그래.”
“선량하지 않다고도 하셨고.”
“칼을 멋으로 찬 건 아니라서.”
“하룻밤 머물게 해주면 조용히 떠나시겠소?”
“맹세하지.”
발러가 조용히 웃으며 말했다.
“환영하오. 모든 만남에는 숨겨진 뜻이 있다던데 우리의 만남에도 그러한 뜻이 있길 빌겠소. 이쪽으로 오시오.”
발러가 손짓하자 김창도 말에서 내려 그 뒤를 따랐다. 웬 소년 하나가 말을 마구간에 데려가겠다고 하자 그러라고 했다.
심부름하는 값으로 동전 몇 개를 주자 소년이 히히 웃으며 말 고삐를 잡고 떠났다.
“마을에서 잔치라도 하는 모양이지?”
김창이 묻자 발러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런 작은 마을에서 즐길 거리가 뭐 있겠소? 사람들끼리 모여 춤추고 노래하며 삶의 고단함을 잊는 것이지. 또 맛있는 음식과 술을 즐기기도 하고.”
“내가 마침 좋을 때 왔군. 맛있는 음식과 술이라.”
발러가 웃으며 말했다.
“아직 식사를 안 했다면 같이 들겠소? 우리 마을은 부유하진 않지만 그래도 손님 하나에게 식사를 내주지 못할 정도는 아니오.”
김창은 대답하는 대신에 주머니에서 은화 몇 개를 꺼냈다. 발러는 사양하지 않고 받았다.
“이쪽으로.”
발러는 자신의 집으로 김창을 안내했다. 그래도 촌장의 집이라고 마을에서 제일 크기에 여러 사람들이 들어올 수 있었다.
집 안에는 벌써 술이 제법 들어간 사람들이 많이 있었다. 눈으로 대충 세보니 다섯 명 정도 될까.
발러는 그들에게 김창을 소개했다.
“하룻밤 머물게 된 손님이다. 다들 너무 무례하게 굴지 말도록. 접대의 관습을 잊지 말란 소리야.”
코가 붉은 남자가 킁 소리를 내며 말했다.
“손님요? 이런 마을에 웬 손님? 어쨌거나 반갑수다. 이쪽으로 오쇼. 술 드시나?”
“없어서 못 먹지.”
“으하하, 재밌는 손님이로군. 자자, 이쪽으로.”
김창은 사람들 사이에 껴서 음식을 먹고 술을 마셨다. 작은 마을답게 잔칫날이라고 해도 음식은 소박했다.
찐 감자와 뭔지 모를 스튜, 삶은 옥수수, 약간 잡내가 나는 닭고기 요리, 풋콩 몇 개.
잔칫날에 그딴 걸 먹고 있자니 현실에서 먹던 치킨이며 햄버거 따위의 온갖 요리들이 생각났다. 기름지고 짭짤하며 먹는 순간 건강이 나빠질 것 같은 그런 요리들.
‘씨발.’
김창은 이 세상이 썩 마음에 들었지만 완전히 불만이 없을 수는 없었다. 이곳에 처음 떨어졌을 때는 먹고 살아야 하니까 아무거나 잘 먹고 그랬는데 요즘은 아니었다.
나름 이 세상에 적응하니 이젠 배가 부른 모양이지. 스스로 생각해도 헛웃음이 나는 일이었다.
“건배!”
그래도 술은 괜찮았다. 제법 독한 게 몇 잔만 마셔도 취할 것 같았다.
“그래서 형씨는 이름이 뭐요? 어디서 왔어?”
술은 용기의 물약이다. 원래 같았으면 감히 말도 걸지 못했을 사람들이 친근하게 말을 걸게 해주니까.
“칼라드.”
“칼라드? 칼라드면 그 왜 원탁 있는 곳 아닌가? 그럼 형씨 혹시···?”
김창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플레이어다.”
김창이 정체를 밝히자 사람들 사이에서 약간의 침묵이 감돌았다. 그들은 서로의 눈치를 보다가 곧 한 명이 중얼거렸다.
“선량하지 않다더니 진짜였네······.”
확실히 술은 용기의 물약이었다. 감히 플레이어를 상대로 저딴 말을 지껄이게 해주니까.
“형씨, 그럼 이름이 뭐요? 플레이어들은 이름이 다 특이하던데.”
“김창.”
“이름 간단하네. 나는 허블이요. 우리 촌장님 아들이지.”
김창이 슬쩍 발러의 얼굴을 보니 허블과 조금 닮긴 했다.
“형씨는 플레이어치고 제법 괜찮은 놈 같소. 내가 플레이어를 많이 만나 본 건 아니지만 듣기로는 다들 성격이 개차반이라고 하던데?”
“틀린 말은 아니지.”
김창은 박대호의 얼굴을 떠올렸다. 확실히 틀린 말은 아니다.
“그리고 나도 별로 괜찮은 인간은 아니야.”
“아니, 형씨 정도면 괜찮지. 다른 플레이어 같았으면 다짜고짜 칼 들이밀면서 술이며 여자 내오라고 했을 텐데 형씨는 안 그랬잖아. 게다가 그런 놈들은 우리랑 이렇게 같이 앉아서 술 마시려고도 안 할걸? 어딜 감히 천한 것들이 겸상하려고 드냐면서 말이야.”
세상엔 플레이어가 뭔 귀족이라도 되는 줄 아는 놈들이 너무 많다. 원래 세상에선 매일 똥 만드는 백수였다는 걸 잊어버린 걸까.
하기야 플레이어를 상대로는 진짜 귀족도 벌벌 떠니 그런 착각을 하는 것도 이상하진 않지만.
“자, 새 안주 나왔습니다!”
한참 먹고 마시고 있으니 남자 하나가 또 다른 안주를 들고 나타났다. 그건 김이 모락모락 나는 고기 요리였는데 뭔 고기인지는 알 수 없었다.
“오, 다 구워졌나 보지?”
“네, 통째로 굽느라고 고생 좀 했죠. 맛있게 익었습니다. 식기 전에 드세요. 여행자님도 얼른 드셔 보시죠. 껍질은 바삭하고 속은 촉촉할 겁니다.”
그 소리 들으니 또 치킨 생각이 나는데. 김창은 뭔지 모를 고기 요리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돼지라도 한 마리 잡은 걸까? 그런 것치고 돼지 요리처럼 보이진 않는다. 남자가 썰어서 가져온 고기 요리는 어디 부위인지조차 짐작하기 쉽지 않았다.
돼지가 맞긴 하나? 김창은 가만히 요리를 쳐다봤다.
“자자, 다들 먹자고! 이야, 이거 맛있겠는데!”
허블이 제일 먼저 고기를 가져와 한 입 먹었다. 그 입에서 김이 모락모락 나왔다. 곧 다른 사람들도 달려들어 고기를 먹기 시작했다.
김창은 그 모습을 가만히 보다가 술만 홀짝였다. 역시 독해서 안주 없이 마시긴 좀 힘들 것 같았다.
“형씨는 안 먹나?”
“난 배불러서.”
“그래? 그래도 좀 먹어두지. 다른 데서는 먹기 힘든 진미인데.”
고기 요리가 더 거기서 거기지 뭔 진미 타령이야. 김창은 그 말을 속으로 삼켰다.
그러는 사이에 사람들은 고기와 술을 먹고 마시면서 왁자지껄하게 떠들었다. 다들 김창이 오기 전부터 먹고 마셨을 텐데 아직도 먹는 걸 보면 먹성이 대단했다.
시간이 흐르면서 술통은 바닥을 드러내고 접시 위에는 앙상한 뼈만 남았다. 아까까지 먹고 떠들던 사람들은 하나둘씩 잠에 빠져들기 시작했다.
하늘은 어두컴컴했고 달빛은 흐렸다. 실컷 먹고 즐겼으니 이젠 잠들어야 할 시간이었다. 그런데도 아직 두 눈을 뜨고서 남아있는 사람들이 있었다.
김창과 발러, 그리고 허블. 세 사람은 서로를 쳐다보며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선득한 침묵이었다.
하지만 침묵이 영영 이어질 수는 없었다.
“동물의 몸에 대해서 제일 잘 아는 사람이 누구인지 아나?”
뜬금없는 소리로 침묵을 깬 것은 김창이었다.
발러는 핏발 선 눈으로 그를 쳐다봤고 허블은 조용히 입술을 짓씹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김창은 자기 할 말을 했다.
“백정이야. 왜냐면 동물을 많이 썰어봤거든. 찢고 가르고 이것저것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동물 몸에 대해 알게 돼.”
허블이 말했다.
“···형씨는 백정이 아니잖아.”
“맞아. 난 백정이 아니지. 그래서 동물에 대해선 잘 모르지만 대신 사람에 대해선 잘 알아. 왜냐고?”
김창이 칼자루 위에 손을 올렸다.
“난 사람을 제법 썰어봤거든. 그러니 잘 알지.”
그가 고개를 돌려 빈 접시를 쳐다봤다.
“내가 사람 잡아다 가죽 벗기는 놈은 봤는데, 사람 잡아다 요리하는 마을은 또 처음이군. 하여튼 개 같은 세상이야. 저런 걸 주면 내가 먹으리라 생각했나?”
발러가 홱 하고 고개를 돌렸다. 노인의 눈은 잔뜩 핏발이 서서 마치 성난 것처럼 보였다.
뭘 야려. 김창이 시선을 피하지 않자 발러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왜 멀쩡하지?”
“왜, 독한 술을 그만큼 먹였는데 내가 멀쩡하면 안 될 이유라도 있나 보지?”
“당연하지······. 씹, 술을 그만큼 마셨는데 왜 멀쩡한 거요? 오히려 우리 마을 사람들이 먹다 지쳐 잠들었잖소.”
김창이 어깨를 으쓱했다.
“내가 좀 말술이라. 술에 독이라도 타지 그랬어.”
확실히 그건 실수였다고 발러는 생각했다. 설마 그 독한 술을 그만큼 마시고서 멀쩡한 사람이 있으리라 생각지도 못했기에.
“아무래도 상관없소······.”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김창은 집 바깥에서 다가오는 인기척을 느끼고 있었다. 한두 명이 아니다.
수십 명에 가까운 사람들이 집에 바짝 달라붙어 이쪽을 쳐다보고 있다. 그들에 눈에는 기이한 열기로 가득하다.
그럼에도 김창은 당황하지 않았다. 그저 싸늘하게 웃으며 말할 뿐이었다.
“하긴 이런 작은 마을에서 뭔 돈이 있어서 잔치를 열겠나. 그저 지나가던 사람들에게 술 먹여서 잠들게 하고 잡아먹는 걸 잔치랍시고 지껄이는 거지. 역겨운 새끼들. 하여튼 정상인 새끼들이 없어.”
플레이어고 NPC고 할 것 없이 죄다 쓰레기 같은 놈들뿐이다. 김창이 쯧 하고 혀를 차자 허블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벽에 숨겨뒀던 도끼를 꺼냈다.
“···씹, 우린 플레이어도 죽여본 적 있어. 이 많은 인원을 상대로 무사할 수 있을 것 같아?”
“글쎄, 내가 해줄 말은 하나뿐인데.”
김창이 칼자루를 뽑았다. 억 소리와 함께 발러의 목이 날아갔다.
“잔치 끝났다, 씹새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