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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겜 속 칼잡이-14화 (14/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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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방진 새끼!”

먼저 달려든 건 허블이었다. 그가 힘차게 도끼를 휘두르자 김창은 뒤로 한 발자국 물러났다.

도끼가 허공을 가르는 것과 동시에 빠르게 거리를 좁힌 김창의 칼이 허블의 배를 찔렀다.

“크엑!”

칼침을 박을 땐 칼을 한 바퀴 돌려줘야 한다. 그래야 내장이 다 찢겨서 죽을 테니까. 그건 칼잡이로서 몇 년간 활동하면서 알아낸 사실이었다.

“끄으윽··· 씹새가······.”

“노려보면 뭐 어쩔 건데.”

“끄으읍, 큭! 아버지!”

아버지? 네 아버지는 이미 목 잘려서 저기 뒈져있는데······,

“허블! 꽉 잡아라!”

등 뒤에서 들려오는 외침과 함께 허블이 김창에게 달려들었다. 아직 배에 칼이 박혀 있어서 이쪽으로 오면 더 고통스럽기만 할 텐데 그런 걸 겁내는 기색이 전혀 없었다.

뭐지? 김창은 눈썹을 까닥거리면서도 당황하진 않았다. 뒤쪽에서 느껴지는 인기척이 있었다.

부웅!

등 뒤에까지 눈이 달리진 않았지만 뭐가 날아온다는 건 알았다. 이번에도 도끼였을까? 김창은 고개를 숙여 공격을 피한 뒤, 허블의 배를 발로 세게 걷어찼다.

“켁!”

칼이 뽑히고 허블은 저 멀리 날아가 벽에 등을 부딪쳤다. 김창은 바로 몸을 돌려 자신을 공격한 놈을 향해 칼을 휘둘렀다.

“끄억!”

“···뭐야?”

얼굴을 보니 발러였다. 이 새끼, 아까 나한테 목 잘려 죽지 않았나? 그런데 왜 머리도 없는 놈이 도끼나 휘두르고 있지?

“끄윽!”

크게 칼을 휘둘러 발러의 몸에 대각선으로 길게 상처를 남겼다. 그런데도 움직이는 걸 보니 어이가 없었다.

그리고 더 어이가 없는 건 아까 날려버린 허블도 다시 움직이고 있다는 것이다.

“너희들 뭐야?”

김창은 산전수전 다 경험한 베테랑이다. 목 잘려도 안 죽는 괴물이야 몇 번 본 적 있다. 하지만 걔넨 진짜 괴물이었고 여기 있는 놈들은 그냥 사람 잡아먹는 식인종일 뿐이다.

이 새끼들은 왜 칼 맞았는데 죽질 않나? 자기들이 뭐 불사신이라도 되나?

설마 그러려고······.

“왜, 칼 맞고 안 죽으니까 무서운 모양이지? 씹새, 아까도 말했지? 우린 플레이어도 죽여본 적 있다고.”

이깟 놈들이 뭔 재주로 플레이어를 죽였나 했더니 이런 것 때문이었나. 확실히 어중간한 실력의 플레이어라면 당황하다가 숫자에 밀려 죽을 수도 있겠다.

“세상에 칼 맞고 안 죽는 놈이 어디 있냐.”

하지만 김창은 어중간한 플레이어 따위가 아니었다. 칼잡이지.

“뭐든 심장 찌르면 다 뒈져. 내가 많이 죽여봐서 알아.”

괴물이든 뭐든 그랬다. 단칼에 죽지 않는 상대는 많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심장을 찔리고도 무사할 수는 없었다.

용이든 반신이든 심장 찔리면 죽는다. 그건 변하지 않는 진리다.

“까불어!”

허블과 발러가 동시에 달려들었다. 김창은 슬쩍 바깥을 보았다. 사람들이 많다.

“어딜 보는 거냐, 건방진 놈!”

부웅!

두 자루의 도끼가 동시에 김창을 노렸다. 하지만 어느 것도 그에게 닿진 않았다.

도끼는 서로 부딪치더니 날카로운 금속음을 냈다. 김창은 사라졌고 다시 순식간에 나타났다. 처음으로 죽은 것은 허블이었다.

그의 심장에 칼이 꽂혔다가 빠졌다.

“욱······.”

자연스레 입이 열리고 그 안에서 희끄무레한 연기가 흘러나왔다. 영혼이라도 뱉는 건가? 김창은 오래 생각하지 않았다.

아들만 죽이면 아버지가 섭섭하지 않겠나. 그는 얼른 발러의 심장에도 칼을 꽂아주었다.

“으음······? 초, 촌장님?”

술에 취해 기절해 있던 사람들도 시끄러운 소리에 하나둘씩 일어났다. 하지만 일어나는 순서대로 심장을 찔려 죽고 말았다.

과연 심장을 찌르니 어떤 놈도 다시 일어나지 않았다. 김창은 시체 위에 퉤 하고 침을 뱉으며 말했다.

“내가 말했지, 심장 찌르면 다 뒈진다고.”

쿵쿵!

바깥에서 문이 부서질 듯 두드리고 있다. 발러가 멍청하게도 문을 잠가버린 모양인데 아마 김창이 도망치는 걸 막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오히려 그게 자기 목숨을 단축하는 일이 될 거라곤 생각지도 못했겠지. 김창은 잠깐 문을 보다가 바닥에 떨어진 도끼를 주워 들었다.

그리고는 바깥을 향해 힘껏 던졌다.

쩌적!

낡은 나무 문이 부서지고 도끼는 힘차게 날아갔다. 도끼는 그대로 한 남자의 머리에 꽂히다 못해 완전히 부서버리고 말았다.

“뭐, 뭐야?”

“저 새끼 잡아!”

“죽여! 죽여서 요리해서 먹어!”

미친놈들. 김창은 욕설을 내뱉으며 집 입구에 섰다.

“빨리 뒈지려는 놈들부터 덤벼.”

이런 말을 하면 주춤할 법도 한데 전부 다 달려들었다. 그 많은 사람들이 낫이며 괭이 따위를 들고 달려드니 상당한 박력이 있었다.

“염병, 공짜 일 하게 생겼군.”

김창은 아무나 죽이는 칼잡이지만 딱히 그걸 즐기는 건 아니다. 돈을 받으면 일한다. 하지만 돈을 못 받으면? 그럼 왜 사람을 죽이나?

“죽여! 죽여!”

“요리해서 먹어!”

김창은 제일 먼저 달려드는 놈의 머리를 잘랐다. 그런다고 죽진 않지만 대신 시야를 차단하는 효과는 있었다.

머리를 잃고 당황하는 놈의 심장에 칼을 찌른 뒤에 다른 놈의 얼굴을 주먹으로 후려쳤다. 원래라면 저거 맞고 목이 돌아가서 죽거나 기절이라도 해야 하는데 그런 게 없으니 일이 영 귀찮아졌다.

무조건 심장을 찔러서 죽여야 하니 일을 끝내는데 시간이 많이 걸렸다. 그래도 한 명씩 착실하게 숫자를 줄여나갔다.

“끄악!”

“꺽!”

“크헥!”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비명, 사방으로 튀는 피, 간혹 들리는 금속음. 그리고 칼잡이.

김창이 마을 사람들을 정리하는데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상처 하나 입지 않고 그저 묵묵히 사람을 죽이는 모습은 마을 사람들을 겁먹게 하기에 충분했다.

아무리 플레이어라도 저럴 수가 있나? 사람 죽이는 걸 무슨 벌레 찍어누르듯 하고 있다. 칼 쓰는 솜씨도 물론 놀랍긴 하지만 더 놀라운 건 저 무감정한 태도다.

저런 건 사람을 너무 많이 죽여서 머리가 망가진 게 아니고서야······.

“크엑!”

김창은 또 한 명의 마을 사람을 죽였다. 칼로 다리를 베어 쓰러트린 후에 등 뒤에서부터 심장을 찔렀다.

이제 남은 것은 한 명뿐이었다.

“마을 사람들은 이게 전부냐?”

워낙 작은 마을이니 그 숫자가 스물이 넘지 않았다. 죄다 어른이었는데 아이가 없어서 다행이었다.

아무리 칼잡이라도 애까지 죽인다면 뒷맛이 씁쓸할 테니까.

“너 뭐야, 씹!”

마지막 남은 남자는 낫을 든 손을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아까 말했잖아. 여행자라고. 선량하진 않은.”

“닥쳐! 누가 그딴 거 물어봤어? 씹, 아무리 플레이어라도 이건 말이 안 되잖아! 어떻게, 어떻게 상처 하나 입지 않고 이 많은 사람들을 다 죽일 수 있지?”

김창은 휙 하고 칼을 휘둘러 핏물을 털어냈다.

“게임 해봤나?”

뜬금없는 질문이라 남자가 말을 더듬었다.

“뭐, 뭘 해봐?”

“게임 말이야.”

“카드 게임 정도라면······.”

“아니, 그런 거 말고. 컴퓨터 게임. 키보드랑 마우스로 하는 거 있잖아. 안 해봤나? 하기야 해봤을 리가 없지.”

자기가 말했지만 어이없는 소리긴 했다. 김창은 픽 웃더니 말했다.

“거긴 랭킹이라는 게 있어. 누가 얼마나 강한지 순위를 매기는 건데, 난 거기서 5위쯤 됐거든? 그게 뭔 뜻인지 아냐?”

“······5번째로 강하다는 소리인가?”

“아니, 사람을 5번째로 잘 죽인다는 소리야. 그러니까 이런 짓거리도 가능한 거지.”

“그게 뭔 씹······.”

김창은 작게 웃었다.

“근데 내 생각엔 이젠 한 3위쯤은 되는 것 같아. 네 생각은 어떠냐.”

“그딴 거 알 게 뭐야! 덤벼! 마을 사람들의 복수를 하겠다!”

그렇게 말하면 내가 마을 사람들을 학살한 괴물쯤 되는 것 같지 않나. 김창은 어이가 없었지만 지적하진 않았다.

그저 칼을 비스듬히 겨누고 남자를 쳐다봤을 뿐이다.

“천천히 들어와.”

“건방진 놈!”

남자가 낫을 꽉 쥐었다. 물론 그가 김창을 이길 수 없다는 건 여기 있는 두 사람 모두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낫을 휘두르지 않았다. 들고 있던 걸 김창에게 던졌을 뿐.

“···무기를 버려?”

항복할 셈인가? 그럴 거면 좀 더 공손하게 무기를 버렸어야지. 김창은 날아오는 낫을 가볍게 쳐낸 후에 한 발자국 전진했다.

“케샤 케일라!”

이런 씹, 뭐? 김창은 순간 더 빨리 뛰어야 한다는 걸 알았다. 저 빌어먹을 주문을 왜 또 여기서 듣게 됐는지 모르겠지만 저 남자가 괴물로 변신하게 둘 수는 없었다.

안 그래도 공짜 일이라 짜증나는데 일거리를 늘려야 해? 그럴 순 없지.

“아샤 툼!”

기어코 주문을 끝까지 외웠다. 내가 너무 느렸나? 김창이 칼자루를 고쳐잡으며 남자를 노려봤다.

변신하나? 이장우가 그랬던 것처럼 괴물로?

아니었다. 하지만 다행스럽진 않았다. 더 끔찍한 일이었으니까.

“끄억, 끄으으윽!”

남자가 컥컥 소리를 내며 자기 목을 부여잡았다. 과식한 탓에 욕지기가 치민 거라면 다행이었을 텐데 그게 아니었다.

남자는 뭔가를 게워내려는 것처럼 연신 꺽꺽 소리를 냈다. 대체 그 안에 뭐가 들었는지 식도에서 꽉 막혀 나오는 건 없었다.

구멍은 작고 나와야 할 것은 크다. 그러면 어찌 해야 하는가? 구멍을 찢는 것이다.

“우에에엑!”

입이 찢기고 머리가 갈라진다. 사람의 입에선 결코 나와서 안 될 것이 억지로 거대한 몸을 비집고 나오고 있었다.

처음에는 감싸진 박쥐의 날개였고 그다음에는 섬뜩하게 빛나는 외눈이었다. 남자의 몸은 부풀대로 부푼 풍선이 그러하듯 결국 터져나가고 말았다.

그리고 그 안에서 새로운 생명이 나타났다.

염소의 머리, 거인의 몸, 뱀의 꼬리, 박쥐의 날개, 섬뜩한 외눈.

그건 진짜 악마였다. 단순히 게임 속에서 종족이 악마로 설정된 괴물 따위가 아니라 원래부터 이 세상에서 살던 불가해한 존재.

그 존재가 바로 지금 여기에 나타났다. 하지만 왜? 고작 인간 따위의 부탁을 들어주려 직접 강림할 것 같진 않은데.

“너구나.”

생긴 건 이상하게 생겨도 말은 똑바로 했다. 악마는 섬뜩한 외눈을 빛내며 김창을 똑바로 쳐다봤다.

“내 사도를 죽인 녀석이. 게다가 이번엔 내 하수인들까지 학살했겠다.”

사도라고 한다면 이장우를 말하는 것일까? 하기야 플레이어를 하수인으로 삼았으니 사도라고 부를 만했다.

“하수인의 부름에 따라 내가 직접 강림하는 일은 흔치 않다. 그래야 할 가치가 없으니까. 하지만······ 너는 그럴 만한 가치가 있을 것 같구나.”

외눈이 김창의 몸을 쓱 훑었다. 기분 나쁜 새끼. 김창이 퉤 하고 침을 뱉었다.

“내 사도가 죽었으니 새로운 사도를 들여야겠지. 너, 건방진 칼잡이야. 너에겐 두 가지 선택지가 있다. 내 손에 죽고 사도로서 다시 태어나거나, 아니면 내 손을 잡고 사도로서 다시 태어나거나.”

뭔 개소리야. 김창은 턱을 까딱거리며 물었다.

“너 뭐야?”

“나를 모르느냐? 나는 냉혹한 집행관이자 심연에서 번뜩이는 외눈의 감시자, 또한 전쟁과 죽음의 인도자이니 그 이름은······.”

“너도 칼로 찌르면 죽을까?”

“······뭐라?”

김창은 저 악마 새끼가 뭐라 하든 별 관심이 없었다.

“한 번 해봐야지.”

칼 한 자루로 어디까지 죽일 수 있을지 확인해볼 좋은 기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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