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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겜 속 칼잡이-17화 (17/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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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전쟁이 나면 가장 기뻐할 사람이 누구인가? 용병이다.

용병이란 원래 돈만 주면 상단 호위부터 괴물 퇴치까지 온갖 일들을 다 하지만 역시 본업은 전쟁에서 활약하는 것이다.

전쟁이라는 건 위험하지만 그만큼 많은 돈을 벌 수 있다. 상황에 따라선 약탈로 부가적인 수입을 올릴 수 있으니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용병들에게 전쟁은 상당히 매력적인 사건이었다.

그러니 그들은 오늘도 싸운다. 목숨을 걸고서.

“몰아붙여! 밀리면 다 죽는다!”

“이 병신아! 뭘 얼 타고 있어! 저쪽으로 붙어!”

“도망치는 새낀 뭐야! 망치로 대가리 깨줄까! 처맞기 싫으면 가―서―싸―워!”

온갖 시끄러운 소리가 귀를 때린다. 뜨거운 열기와 흙먼지 때문에 숨쉬기가 괴로울 정도다.

하지만 그 누구도 이러한 환경에 불만을 가지지 않는다. 그도 그럴 게 여긴 전장이니까.

“오른쪽 뚫었다! 저쪽으로 다 붙어! 그대로 돌격한다!”

“붙어! 붙어!”

“저 새끼들 다 조져!”

죽으면 모든 걸 잃지만 살면 많은 걸 얻을 수 있다. 걸어야 할 건 오직 자기 목숨뿐이니 이만큼 매력적인 도박이 또 어디 있겠나?

야심과 욕심이 넘치는 용병들이 위험을 무릅쓰고 불나방처럼 전장에 모여드는 이유가 바로 그것이다.

돈, 결국 돈.

반짝이는 금화가 세상의 전부는 아니라지만 거의 전부라는 걸 그들은 알고 있다.

그리고 그건 김창도 마찬가지였다.

“크악!”

“컥!”

“도망쳐! 도망··· 켁!”

김창은 칼 한 자루를 들고 병사들을 상대하고 있었다.

그가 이 전쟁에 용병으로 낀 건 이틀 전의 일이었다. 악마 아카온을 죽인 뒤 원탁을 떠나 일거리를 찾다가 여기까지 왔다.

물론 한석구는 김창이 곧장 원탁을 떠나는 걸 탐탁지 않아 했다.

대악마인지 뭔지 하는 놈들이 곧 모습을 드러낼지도 모르는데 우리끼리 힘을 합쳐야 하는 게 아니냐? 너도 혼자 다니다가 놈들에게 당할지도 모르지 않느냐? 그러니 괜히 떠나지 말고 여기서 지내라.

대충 그런 말로 설득하려 했지만 김창에겐 먹히지 않았다.

우리는 대체 뭔 놈의 우리? 내가 왜 걔네랑 우리 소리를 들어야 하나? 난 원탁 소속도 아닌데.

그리고 정말 대악마가 두렵다면 원탁에 꼭꼭 숨을 게 아니라 직접 찾아다니며 그 배에 칼침이라도 놔줘야 하는 거 아닌가?

맞기 전에 때리면 맞을 일도 없는데 대체 뭐 하러······.

“저 새끼부터 족쳐!”

“혼자야! 다 같이 공격하면 죽일 수 있어!”

혼자 이런저런 생각에 빠져있는데 여러 명의 병사가 달려들었다. 김창은 병사의 가슴에 꽂았던 칼을 힘껏 뽑았다.

병사가 실 끊어진 인형처럼 쓰러지는 것과 동시에 진창을 박차고 뛰었다. 아까도 말했지만 맞기 전에 때리면 맞을 일도 없다.

칼날이 번쩍이면 머리가 하나씩 허공을 날았다. 김창은 빠르게 칼을 휘둘러 병사 셋을 순식간에 죽였다.

“저 새끼 뭐야!”

“도망쳐! 우리 상대가 아니야!”

그는 나머지 두 명의 병사는 그냥 보내줬다. 불쌍해서 살려주려는 게 아니라 진심으로 싸울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김창은 지금 플레이어로서 이 전쟁에 참여한 게 아니다. 정체를 숨기고 일반 용병으로서 싸우고 있는 것뿐이었다.

그러니 제 실력을 전부 보여줄 수는 없었다. 그랬다간 플레이어가 전장에 숨어들었단 걸 눈치챈 적 쪽에서 플레이어 용병을 고용할 테니까.

안 그래도 얼마 전에 박대호와 이장우를 죽인 탓에 한석구에게 잔소리를 들은 참이 아닌가. 이번에 고용된 플레이어 용병이 누구든 또 반쯤 죽여두면 귀찮은 일이 생길 게 뻔하다.

그걸 막기 위해서라도 너무 열심히 해선 안 된다. 물론 허석이 그랬던 것처럼 태업할 이유도 없지만.

“그 녀석 불러와! 걔가 아니면 상대가 안 돼!”

“제가 가서 불러오겠습니다!”

도망치면서 병사 둘이 지껄이는 소리가 들렸다. 그 녀석이라니? 뭐 대단한 전사라도 있는 모양이지?

김창은 병사들이 뭘 하는지 가만히 지켜봤다. 속된 말로 양학만 하는 것도 지루하니 이제 좀 붙어볼 만한 상대가 나오길 빌었다.

“기습해!”

“죽여!”

그러는 사이에도 적들의 공격은 이어졌다. 어중간하게 강한 모습을 보여줬더니 적들의 도전 욕구를 자극했던 모양이다.

물론 김창은 그들에게 도전의 대가를 치르게 해주었다.

그런 식으로 열 명쯤 더 죽였을 때일까. 병사들 사이로 망토를 두르고 후드를 뒤집어쓴 누군가가 보였다.

체형은 호리호리하고 손에는 칼 한 자루를 들었다. 그런데 자세히 보니 등 뒤에 칼 네 자루를 더 메고 있었다.

저 새끼 뭐야? 칼 장수라도 되나? 김창이 미간을 좁히고 있으니 저쪽에서 목소리가 날아왔다.

“네가 그 칼잡이냐?”

칼잡이라고 해서 김창을 알아본 건 아니었다. 그냥 칼 들었으니까 그리 부르는 것뿐이다.

김창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넌 뭐 칼 장수냐? 뭔 칼을 그만큼 들었어?”

“그거야 네가 알 거 없고. 이름이 뭐냐?”

김창은 자기 이름을 말하려다가 입을 다물었다. 여기서 본명을 말하면 들키지 않겠나.

“그냥 칼잡이.”

“무명의 검사인가. 그래, 그것도 낭만 있지. 그럼 내 소개를 하마. 나는 헥시온의 아샤다.”

“그래, 아샤. 곧 뒈질 놈. 칼 뽑아. 붙어보자고.”

“···자신감이 넘치는군.”

아샤가 머리에 쓰고 있던 후드를 뒤로 넘겼다. 그러자 잘생긴 얼굴과 함께 길쭉한 귀가 드러났다.

“···요정?”

돈을 처발라서 종족을 바꾼 산자이 같은 가짜 요정이 아니라 원래부터 이 세상에 살던 진짜 요정이다.

확실히 분위기나 그런 게 다르긴 한데 생각한 것만큼 고귀함은 느껴지지 않았다. 본래 요정이라고 하면 고결하고 귀족적인 느낌이 아닌가.

그런데 아샤는 달랐다. 몸에서 느껴지는 날카로운 살기와 몇 번이나 사선을 넘어온 죽음의 냄새가 코끝에 진동하고 있다.

한눈에 보고 알았다. 저 새낀 이쪽과 동류다.

“그래, 요정이지. 하지만 그게 문제가 되나?”

“아니, 없지. 그래서 덤빌 거냐?”

“물론.”

아샤가 칼자루를 세게 쥐더니 곧 좌우로 잡아당겼다. 그러자 쩍 소리와 함께 칼이 반으로 갈라졌다.

저건 또 뭔? 칼을 쪼개서 쓸 것 같으면 처음부터 두 자루로 만들지 왜 저딴······.

“간다, 칼잡이! 나는 헥시온의 아샤! 또한 마법검의 주인이다!”

마법검이라는 말은 허언이 아니었다. 아샤가 두 자루의 칼을 휘두르자 등 뒤에 메여 있던 네 자루의 칼이 허공으로 떠올랐으니까.

그리고 그 네 자루의 칼은 마치 화살처럼 날아가 김창을 공격했다. 물론 그 칼들이 뭔가 의지를 가지고 휘둘러진 건 아니고 그냥 벌레떼처럼 주변에서 윙윙 거릴 뿐이었다.

“내 공격을 받아라!”

하지만 그것만으로도 확실히 위협적이었다. 그냥 쿡쿡 찌르는 정도라고 해도 무려 네 자루나 되는 칼이 주변에서 공격하고 있다.

거기에 정면에서 아샤가 공격하고 있으니 그 모든 공격을 받아내는 건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다.

김창은 문득 무협 소설을 떠올렸다. 저거 원래 아주 고수나 할 수 있는 건데 여기선 그냥 마법검 하나만 있으면 할 수 있으니 참 우스운 일 아닌가.

그래도 뭐 진짜 고수가 보여주는 절기는 아니라서 못 당할 정도는 아니었다.

챙!

칼끼리 부딪치더니 하늘을 날던 칼 한 자루가 아래로 고꾸라졌다. 허공에서 불티가 몇 번 반짝일 때마다 칼이 맥없이 떨어지는 일이 반복됐다.

김창은 순식간에 하늘을 나는 칼 네 자루를 모두 제압하고 아샤에게 달려들었다. 잘생긴 얼굴이 딱딱하게 굳은 게 보였다.

“···놈 감히!”

아샤가 양손에 든 칼을 빠르게 휘둘렀다. 인간보다 신체 능력이 뛰어난 요정답게 더욱 빠르고 위력적인 공격이었다.

거센 바람의 움직임을 검술로 흉내 낸다면 딱 이런 느낌일까. 빠름의 극한을 추구하는 듯한 연격이 쉴 새 없이 이어졌다.

확실히 칼 한 자루만 가지고 막아내기엔 벅찬 공격이었다. 김창은 자기 어깨에 생긴 작은 상처를 보고서 가볍게 휘파람을 불었다.

새끼 좀 치네.

“건방진···!”

그게 아샤의 화를 자극한 모양이다. 공격은 더욱 거세졌고 그럴 때마다 허공에서 불티가 튀었다.

공격을 막고 있는 것이다. 이토록 빠른 공격을, 숙련된 요정 전사 외에는 할 수도 없는 이 공격을, 인간 따위가 막고 있다.

아샤는 거기서부터 뭔가 잘못됐음을 느꼈다.

“이 정도면 어중간한 플레이어 정돈 제압할 수 있겠는데.”

김창이 중얼거리는 말을 듣고서 아샤는 뭔가 섬뜩함을 느꼈다. 잠깐만, 이 새끼 설마?

“···너?”

“눈치 빠른데.”

아샤는 도망치지 않았다. 그럴 수 없었으니까.

“마법으로 칼 날리는 것 말곤 뭐 없냐? 그럼 더 놀아줄 수가 없겠는데.”

아샤는 관절을 쭉 늘리며 아슬아슬한 동작으로 김창을 압박했다. 요정답게 유연한 몸에서 나오는 위력적인 공격이었다.

허공에서 불티가 튀고 쨍한 금속음이 쉴 새 없이 울렸다. 주변의 다른 병사들은 싸우던 것도 잊고 그 화려한 대결을 지켜봤다.

누가 이기고 누가 죽을 것인가? 결과는 정해졌다.

서걱!

칼을 든 왼손이 날아갔다. 아샤는 비명을 지르지 않도록 노력하며 오른손을 내질렀다. 이번엔 어깨까지 날아갔다.

“케···흑······.”

비틀거리던 몸 위로 칼날이 스쳐 지나갔다. 대각으로 휙 그어진 선을 따라서 아샤의 상반신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확 하고 튀는 피가 뜨끈했다. 김창은 입 안에 들어온 피를 침과 함께 뱉어냈다.

“씨···발······. 이럴 줄 알았으면······ 가문에······.”

아샤가 뭔가 말하려 했지만 끝까지 이어지지 않았다.

찰박. 질척거리는 진창 위로 요정의 몸이 떨어졌다.

뿌우우!

“퇴각! 퇴각해라!”

“퇴각해!”

아샤가 죽는 것과 동시에 퇴각 신호가 울렸다. 때마침 내리는 비가 김창에 몸에 묻은 오물들을 씻어내렸다.

시원하네. 차가운 비를 몸으로 맞으며 도망치는 병사들을 보고 있던 그는 아샤가 손에 꼭 쥐고 있는 마법검으로 시선을 옮겼다.

“이거 뭔지는 몰라도 가져가면 값 좀 쳐줄 것 같은데.”

무려 마법이 걸린 검이다. 쪼개면 두 자루로 쓸 수 있고 심지어 칼 네 자루를 조종할 수도 있다.

김창이 마법에 대한 지식이 없어도 이런 게 제법 귀한 물건이라는 걸 알았다. 챙겨가야지.

그가 주섬주섬 바닥에 떨어진 칼들을 챙길 때였다.

“이봐, 거기 칼잡이.”

이 싸가지 없는 목소리는 또 뭐지. 김창이 고개를 돌리자 거기엔 얍삽하게 생긴 사내가 있었다.

“넌 또 뭐냐?”

“···천한 것이라 그런지 말하는 것도 천박하군. 나는 돌레아 남작의 비서다.”

“그래서?”

“남작님이 네 무용에 감탄하여 널 좀 보자고 하시는군. 이건 다시 없을 영광이니 기쁜 마음으로 따라오도록.”

플레이어인 걸 밝히지 않고 싸웠더니 별 이상한 놈이 다 꼬였다. 김창은 그 얍삽한 얼굴에 꿀밤이라도 한 대 놔줄까 하다가 그냥 따라가기로 했다.

비서는 재수 없어도 남작은 인격자일지도 모르지 않나? 그리고 헛소리를 한다면 그때 가서 주먹을 날려주면 될 일이다.

“그래서 뭐 때문에 날 불렀는데.”

“널 치하하기 위해서지. 네 출신이 천하긴 하나 무용만큼은 대단하니 남작님께서 널 부하로 삼아주시기로 했다. 어때, 감동적이지?”

미쳤나? 김창은 어쩌면 고용주를 죽여야 할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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