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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겜 속 칼잡이-19화 (19/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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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건에는 하자가 있어도 일 처리까지 그러진 않길 바라네. 내 의뢰를 제대로 수행해달라는 소리야.”

남작은 날지도 못하고 마법도 걸려 있지 않은 칼 다섯 자루를 사는데 황금을 쓰게 됐으니 입맛이 쓰다 못해 이가 갈렸다.

하지만 감히 김창에게 화를 낼 수는 없으니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고작해야 의뢰에 대해 한마디 하는 것뿐이다.

“받은 만큼 일하지 않으면 그건 사기꾼이지. 내가 사기꾼으로 보이나?”

아니, 사기라면 이미 한 번 쳤잖아? 남작은 그 말을 목구멍 뒤로 삼켰다.

“······그래, 부탁하지.”

“일이라면 지금 바로 시작하지. 광산의 위치나 말해.”

“바로 가겠다고? 방금 막 전투를 치른 참이잖나. 좀 쉬다 가지 않고? 게다가 비까지 오는데······.”

“광산 위치.”

자기가 가겠다는데 굳이 말릴 이유는 없다. 남작이 쩝 소리를 낸 후에 광산의 위치를 설명했다.

그리 멀진 않았다. 말을 타고 달리면 몇 시간 내로 도착할 수 있지 않을까. 초행이라 길을 헤맬 걸 생각하면 지금 가야 딱 맞을 듯했다.

설명을 가만히 듣고 있던 김창은 마지막으로 위치를 확인한 뒤 그대로 몸을 돌려 천막 입구로 향했다.

그 망설임 없는 태도에 남작이 당황했다.

“잠깐만.”

“또 왜?”

남작은 잠깐 고민하다가 말했다.

“선금 같은 건 안 받아도 되나? 내가 만약 돈을 안 주면?”

“그럼 곤란하겠지.”

곤란해? 역시 아무리 플레이어라도 한 영지를 상대로는 어쩔 수 없는 법인가? 하기야 성문을 걸어 잠그고 안에 숨어버리면 얼마나 잘난 놈이든 어쩔 도리가 없겠지.

설마 혼자서 성문을 때려 부수고 오기라도 하려고······.

“시체를 아주 많이 치워야 할 테니까. 게다가 그건 공짜 일이잖나. 그러니 곤란하지.”

“······조심해서 다녀오게. 보수라면 내 분명히 마련해두지.”

김창은 대답하지 않고 몸을 돌려 천막을 나섰다. 뒤에서 남작이 한숨을 내쉬는 소리가 들렸다.

바깥으로 나오자 병사들의 시선이 쏟아졌는데 그들은 김창과 눈이 마주치자 화들짝 놀라며 고개를 돌렸다.

괜히 사람 겁주는 취미는 없기에 그는 곧장 그 자리를 떠났다. 등 뒤에서 수군거리는 소리가 났지만 무시했다.

“내 말 좀 데려가지.”

야영지 구석에 있는 마구간에서 자기 말을 데리고 나온 김창은 그대로 광산으로 향했다. 슬쩍 하늘을 보니 내리는 비가 금방 그칠 것 같진 않았다.

말발굽이 질척거리는 진창 위를 세게 후려쳤다. 찰박찰박하는 소리가 빗소리에 묻혀 빠르게 흩어졌다.

쏟아지는 비가 찼다. 시야는 흐릿하고 불어오는 바람과 함께 빗방울이 얼굴을 찰싹 때리는데도 묵묵히 말을 몰았다.

내리는 빗속에서 저 멀리 흔들리는 불빛이 보였다. 지금은 작은 촛불 정도의 크기였지만 점점 다가갈수록 그 크기는 더욱 커졌다.

횃불일까? 아마 동굴 안을 밝히는 빛이 바깥까지 새어 나온 것이리라. 김창은 말 고삐를 세게 흔들었다.

히이잉! 말 울음소리가 크게 울렸다.

“고생했다.”

조금 더 달려서 김창은 동굴 입구에 도착했다. 빗줄기는 아까보다 약해져 있었지만 아직 그칠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

습격하기 딱 좋은 날씨였다.

“저기 누구 오는데?”

“뭐? 이 날씨에 누가 와?”

“헤르디인가 하는 그 인간 놈 아니야?”

“용병대 대장 말인가? 칼 든 거 보니 맞는 것 같은데. 근데 칼은 또 왜 뽑고······.”

동굴 입구에서 비를 피하고 있던 난쟁이들은 빗속에서 나타난 남자가 왜 칼을 뽑았는지 곧 알게 되었다.

빗소리가 시야를 흐리게 한 탓일까. 아니면 거리감을 엉망으로 만든 탓일까. 그들은 어느새 다가온 김창과의 거리를 잘못 가늠했다.

“어?”

습격자는 너무 빨리 다가왔다. 그리고 그가 휘두르는 칼은 그것보다 더 빨랐다.

동굴 안으로 들어온 김창이 칼을 휘두르고 난쟁이의 머리 하나가 날아가자 나머지 난쟁이들은 그제야 상황을 파악했다.

“씹, 뭐야! 습격이다!”

“빌! 너는 안쪽으로 들어가서 전사들을 불러! 여긴 우리가 막고 있는다!”

“상대는 하나야! 충분히 막을 만해!”

다들 그렇게 생각하지. 머리가 날아가기 전까지는.

김창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서 묵묵히 자기 할 일을 했다. 머리를 자르고 배를 찌르는 일.

난쟁이들은 모두 튼튼한 몸을 가지고 있었지만 결국 한낱 살가죽일 뿐이라 그게 강철로부터 목숨을 지켜주진 않았다.

그들이 곡괭이를 아무리 휘둘러도 그게 김창의 몸에 닿을 일은 없었다. 가끔 칼에 닿을 땐 있었는데 그러면 곧 자루가 잘리고 경악하는 얼굴이 반으로 갈라졌다.

싸움이랄 것도 없는 다툼은 그리 길지 않았다. 순식간에 난쟁이 셋을 죽인 김창은 조용히 말을 데리고 안쪽으로 돌아왔다.

“넌 여기서 기다려.”

비도 내리는데 말을 바깥에서 기다리게 하는 건 너무한 일이다. 김창은 말의 목덜미를 한 번 쓸어주고선 안쪽으로 움직였다.

“저 녀석이다! 저 녀석을 잡아!”

전사들을 부르러 안쪽으로 도망쳤던 난쟁이가 김창을 보고서 소리를 질렀다. 그가 데리고 온 난쟁이 전사들은 여섯 명이었는데 모두 무장하고 있었다.

무장만 봐도 어중이떠중이 용병들과 질적으로 다르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기름을 먹여 광택이 흐르는 갑옷은 분명 난쟁이 장인이 만든 것이리라.

그들은 짧은 다리를 재개 놀리며 각자 무기를 든 채 달려왔다. 마치 성난 황소가 돌격하는 듯한 묵직함이었다.

김창은 가만히 서서 그들이 달려오는 걸 보다가 칼로 바닥을 휙 긁었다. 돌가루와 함께 흙이 확 튀면서 제일 선두에 선 난쟁이의 눈을 찔렀다.

“윽!”

아무리 뛰어난 전사라도 눈을 단련할 수는 없지 않나. 난쟁이 전사가 반사적으로 눈을 감는 순간 칼날이 번쩍였다.

반달을 그리며 움직인 칼날은 날아간 머리가 바닥으로 떨어지기도 전에 다음 먹잇감을 향해 움직였다.

“놈!”

두 명의 난쟁이 전사가 동시에 달려들었다. 김창은 그들이 휘두르는 전투 도끼를 칼로 몇 번 받아내다가 한 명의 손을 잘랐다.

“어?”

자기 손이 없어진 걸 보고 당황하던 얼굴이 곧 허공을 날았다. 다른 난쟁이 전사가 덤벼들자 김창은 칼을 위에서 아래로 크게 휘둘렀다.

난쟁이 전사는 도끼로 공격을 막으려 했지만 자루 중간 부분이 잘리고 그대로 얼굴도 썰렸다.

김창은 쓰러지는 몸을 발로 세게 걷어차서 뒤로 날려 보냈다. 뒤쪽에서 기회를 엿보던 다른 난쟁이 전사가 날아오는 동족의 몸에 부딪혀 바닥에 쓰러졌다.

그들이 일어나기 전에 머리를 짓밟고 목덜미에 칼을 찔러주고는 바로 다음 공격에 대비했다.

등 뒤에서 마지막 남은 난쟁이 전사가 칼을 휘두르고 있다는 건 진작 알았다. 김창은 몸을 살짝 움직여 가볍게 공격을 피한 뒤에 칼자루를 휘둘러 난쟁이 전사의 얼굴을 때려 부쉈다.

“크악!”

피와 함께 누런 이가 공중에서 빙글빙글 도는 사이에 묵직한 주먹이 이미 엉망이 된 얼굴에 또 한 번 꽂혔다.

난쟁이 전사의 입술이 찢어지고 벌어진 입에선 피와 함께 걸쭉한 침이 줄줄 흘렀다. 김창은 바닥에 쓰러지려는 그의 멱살을 손으로 꽉 잡았다.

“네 주인은 어디 있나.”

“주, 주인······?”

“그래, 네 가문의 주인. 아신카 가(家)의 주인 말이야.”

난쟁이 전사가 뭔가 말하려는 듯 입을 우물거렸다.

퉤.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렸건만 정작 나온 건 피 섞인 침이었다.

“너, 너 같으면 말하겠냐. 씨, 씹새야······.”

하기야 나 같아도 말 안 하겠군. 김창은 고개를 끄덕이며 난쟁이 전사의 목숨을 거두었다.

아까 그 입구의 난쟁이는 또 어디 도망갔는지 보이지 않았다. 김창은 뚜벅뚜벅 동굴 안을 걸었다.

안쪽으로 들어가니 채굴을 위한 장비들이나 광석 따위를 가득 담은 수레가 보였다. 난쟁이들은 보이지 않았는데 정말 없는 게 아니라 어디에 숨어 있었다.

모습은 숨길 수 있어도 인기척까지 숨길 수는 없는 법이다. 김창은 어디에 난쟁이들이 숨었는지 알았지만 신경 쓰지 않았다.

저들은 갑자기 나타난 칼잡이가 자신들을 학살하리라 걱정할 테지만 그건 확실히 기우였다.

내가 왜 그래야 하나? 김창은 돈 받은 만큼 확실히 일하지만 그건 반대로 말해서 딱 받은 만큼만 한다는 소리였다.

남작이 요구한 건 아신카 가의 주인을 죽이는 것이지 광산 안의 난쟁이들을 몰살하는 게 아니었다.

그러니 저들이 먼저 덤비지 않는 이상 굳이 죽일 이유는 없는 것이다. 물론 먼저 덤빈 적 없는 난쟁이들을 동굴 입구에서 좀 죽이긴 했지만.

“전사들은 더 없는 건가?”

아무래도 싸움은 용병들에게 맡기고 아신카 가문은 채굴에만 전념할 생각인 듯했다. 그래도 전사 여섯 명은 너무 적지 않나?

하기야 정 위험할 땐 광부들을 무장시키면 될 일이니 가문의 전사들을 너무 부르진 않은 모양이었다.

김창은 혼자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갱도 안을 걸었다. 숙련된 광부들이 만든 길은 생각보다 넓었다.

걷고 또 걷다 보니 광장 비슷한 게 나왔다. 여기가 휴식 공간인가? 하지만 아무도 없어서 그런지 너무 어두운데.

그런 생각을 하며 고개를 두리번거리는 순간 인기척이 느껴졌다.

“불청객이 왔군.”

어둠 속에 누군가 있었다. 키가 작은 걸 보니 난쟁이였다.

이 새낀 왜 어둠 속에서 가오 잡고 있는 거지. 김창이 말했다.

“불 좀 키고 살지 그러냐. 불 없으면 내가 좀 붙여주랴?”

화르륵!

그 말과 동시에 여러 개의 횃불이 확 하고 타올랐다. 주변이 환해지며 난쟁이의 모습이 제대로 보였다.

그는 등을 돌리고 있었는데 딱 벌어진 어깨와 두꺼운 허벅지만 봐도 얼마나 단련된 전사인지 알 수 있었다.

길게 길러 땋은 머리칼이 회색인 걸 보면 나이가 제법 있을 듯했다. 또한 그 몸에서는 불꽃의 냄새가 났다.

매캐한, 뭔가를 태운 듯한 냄새······. 그러면서도 아주 폭력적인 무언가.

“불? 그거라면 있지. 난쟁이와 불은 떼려야 뗄 수 없는 사이니까 말이야.”

마법인가? 난쟁이 중에도 마법을 부리는 놈이 있다고 듣긴 했지만 그리 흔치는 않을 텐데.

김창이 중얼거리는 사이에 난쟁이가 말했다.

“내 전사들을 제법 죽였던데. 그러면서도 무자비한 살육은 벌이지 않더군. 무익한 살생은 하지 않는 성격인가?”

“그냥 돈 받은 만큼만 일하는 것뿐인데.”

으하하. 난쟁이가 웃었다.

“돌레아 남작이 보냈겠지? 가서 날 죽이라고 말이야. 너 혼자 보낸 걸 보니 상당한 실력자인 모양이군. 실제로도 내 전사들을 단신으로 죽이기도 했고.”

“그래서?”

“그 멍청한 남작 놈은 내가 황금에 눈이 멀어 이 광산을 빼앗았다고 생각하고 있겠지. 하기야 생각이란 게 없고 멀리 보지 못하는 놈이니 당연한 일이겠지만.”

“그럼 아닌가? 황금 말고 이 광산에 뭐가 있지?”

난쟁이의 등이 들썩거렸다. 웃는 듯한 모양새였다.

“유물.”

유물? 강력한 힘을 가진 고대의 물건 말인가? 그게 이 안에 있었다면 이게 실은 광산이 아니라 유적이었다는 걸까.

“그깟 황금으로 감히 살 수도 없는 것이지. 그건 형체가 없으나 분명히 존재한다. 나는 그걸 찾아서 오래 헤맸고 드디어 그 노력의 결실을 맺을 수 있었지. 그래, 이제 나는 끝을 본 거야. 내 몸과 영혼을 태워 진정 불꽃으로 화하노니······.”

뭔 소리야. 김창이 얼굴을 찡그리는 것과 동시에 난쟁이가 홱 하고 몸을 돌렸다.

뒷모습과 마찬가지로 노련한 전사의 모습이 보였다. 목은 두껍고 두 팔은 단단하다. 마치 거목 같은 모습이지만 정말 눈길을 잡아끄는 건 따로 있다.

눈이다. 타오르는 횃불 사이에서도 더욱 환하게 빛나는 황금색 눈. 마치 뱀의 눈깔을 가져다 붙인 듯한 저 눈.

“내 이름은 테레모 아신카. 화톳불의 수호자이자 또한 불 뿜는 자의 청지기다. 반갑다, 불청객아. 내 주인께서 네 영혼을 원하신다.”

저 새끼 저거 제정신인 게 맞나? 눈이 아주 맛이 갔는데. 김창은 버릇처럼 칼자루 위에 손을 올렸다.

“네 주인이 누군데? 악마냐?”

테레모가 수염을 흔들며 웃었다.

“악마? 그깟 버러지 같은 놈들을 섬길 바에는 그냥 혀 깨물고 죽지. 내 주인은 그보다 더 위대한 분이시다.”

“그럼 뭐 대악마냐? 아니면 마왕이라도 되나?”

“아니, 그딴 게 아니다.”

그 목소리는 이질적이었다. 테레모의 목으로 말하는데 그의 목소리가 아닌 듯했다. 마치 누군가 그 성대를 뺏어 억지로 말하는 것만 같다.

뱀의 것을 닮은 황금색 눈이 쭉 찢어지며 말했다.

“용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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