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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겜 속 칼잡이-34화 (34/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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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행관이 머리에 쓴 후드를 뒤로 넘겼다. 각진 턱과 함께 굵은 눈썹이 굉장히 남자다운 생김새였다.

그가 뺨을 씰룩거리면서 부득 이 가는 소리를 냈다.

“지껄인다고 다 말인 줄 아는 모양이구나. 자신 있나? 나는 집행관으로서 전투 마법의 달인이다. 내 장담하는데, 마탑에서 나보다 뛰어난 마법사는 있어도 나보다 잘 싸우는 마법사는 없을 거다.”

아이고, 그러십니까. 김창은 빈정거리려다 참았다. 씹새, 그런 식으로 따지면 세상에 나보다 강한 놈은 있어도 나보다 사람 잘 죽이는 놈은 없을걸.

“자신이야 있지. 너도 자신 있으면 입으로만 지껄이지 말고 덤벼.”

“오냐, 그게 네 소원이라면.”

두 사람 사이에 날카로운 긴장감이 감돌았다. 그건 마치 팽팽하게 당겨진 끈과 같아서 누가 손가락이라도 하나 대면 툭 하고 끊어질 듯한 모양새였다.

김창은 늘 그러듯이 칼자루 위에 손을 올리고 있었고 집행관은 손가락을 구부려 주먹을 쥐었다.

당장 충돌이 일어나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에서 호리호리한 체격의 집행관이 깜짝 놀라 소리쳤다.

“아레스!”

이름을 불린 집행관이 슬쩍 고개를 돌렸지만 쥐었던 주먹을 풀진 않았다. 그가 여전히 한 번 붙을 기세이자 집행관이 또 한 번 소리쳤다.

“그만해, 아레스! 왜 괜한 사람한테 시비냐!”

아레스가 딱딱한 목소리로 답했다.

“토드 님, 이 녀석은 뭔가 숨기고 있어요. 절 한 번 믿어주시지요.”

“하아, 아레스. 네가 지금까지 그 소리를 몇 번 한 줄 아냐? 자그마치 네 번이야. 그리고 우린 지금까지 네 개의 마을을 지나쳐 왔고. 이게 뭔 소리인 줄 알아?”

아레스가 뭐라고 대답하기 전에 토드가 빽 소리를 질렀다.

“네가 마을에 갈 때마다 애꿎은 사람한테 시비를 걸었다는 소리지! 이 망할 놈아, 네가 무슨 진실을 꿰뚫어 볼 수 있는 마법의 눈이라도 가진 줄 알아? 증거도 없이 괜한 시비 좀 그만 걸어!”

마법이나 뭐 그런 걸로 진실을 알아차린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나? 김창은 어이가 없어서 헛웃음을 흘렸다.

그러니까 지금 저 아레스라는 집행관은 별 근거도 없으면서 아무나 범인으로 지목하고 다녔다는 소리다.

만약 토드와 함께 다니지 않았다면 가는 마을마다 애꿎은 사람 한 명씩 죽어 나갔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미안하군. 이 녀석은 아직 집행관으로서 경험이 많지 않다 보니 많이 미숙하고 이런 실수도 자주 해. 마탑에서 몇 년 동안 공부만 하다가 집행관이 되어 바깥으로 나오게 된 녀석들이 종종 그렇지. 내 다시 한번 사과하지. 정말 미안해.”

김창은 걸어오는 시비를 피하지 않는 편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딱히 사람을 죽이는 걸 즐기는 미치광이는 아니다.

사과도 받았겠다 굳이 싸우지 않아도 되는데 저 집행관의 머리를 잘라버려야 할 이유는 없다.

애초에 따지고 보면 김창은 정말 심민우를 숨겨주고 있었고 아레스는 그저 자기 할 일을 하려던 것뿐이지 않나?

“그럴 수도 있지 뭘.”

김창이 선선히 고개를 끄덕였다. 토드는 그걸 보며 살짝 웃다가 아레스의 어깨를 툭 쳤다.

“뭐 해? 나만 사과하나?”

아레스는 정말 하기 싫다는 듯 억지로 고개만 까딱였다. 저러다가 칼 맞아 죽으면 안 억울한가.

꼭 사과를 받고 싶은 건 아니라서 별말은 하지 않았다. 김창이 토드에게 물었다.

“그래서 이젠 어디로 가나?”

“다음 마을까지 가서도 아무런 실마리를 못 찾는다면······. 그러면 다른 방법을 택해야지.”

“다른 방법?”

토드가 손가락을 튕겨 불꽃을 일으켰다가 꺼트렸다.

“악마와 마법사는 서로의 마력으로 이어져 있어. 그러니 악마를 붙잡으면 마법사의 위치도 알 수 있다는 소리야. 어차피 악마도 토벌해야 하니 정 안 되면 그쪽부터 가는 수밖에.”

이거 운이 나쁘면 가서 또 만나겠는데. 김창이 흠 소리를 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귀한 시간 잡아먹어서 미안하군. 그 마법사를 꼭 찾길 바라지.”

“고맙군. 자, 아레스. 다음 마을로 가자. 혹시나 해서 말하는데 다음 마을에서도 이딴 짓을 하면 넌 집행관 자격 박탈이야!”

두 명의 집행관은 마을에 들렸는데 쉬지도 않고 바로 출발할 모양이었다. 하기야 마탑의 마법사가 악마를 소환하고 도망치기까지 했으니 서두르지 않으면 이미 큰 문제가 더 큰 문제로 불어날 수 있었다.

새삼 심민우 한 명 때문에 여러 사람이 고생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김창은 쯧 하고 혀를 차며 점차 멀어져 가는 집행관들의 뒷모습을 가만히 쳐다봤다.

이제 저들이 떠났으니 당장은 마탑의 위협에서 벗어났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하는 걸 보니 나중에 또 만나게 될 것 같긴 한데 그때 일은 그때 생각하면 되겠지.

일단은 심민우를 만나서 지금의 상황에 대해서 알려야 하는데······.

“···많이 늦는데.”

분명 시간이 꽤 지났을 텐데 심민우는 아직 돌아올 생각을 하지 않고 있다. 집행관들이 있을 때 돌아왔으면 일이 귀찮아졌을 테니 그건 다행인 일이지만 지금은 또 너무 늦지 않나?

여관에서 보급하고 오겠다더니 설마 잠이라도 자고 있으려고······. 김창이 이 망할 마법사를 만나면 한 대 때려줘야겠다고 생각하며 한 걸음 움직일 때였다.

“휴, 드디어 완전히 마을을 떠났군요. 까딱 잘못했으면 여기서 붙잡힐 뻔했습니다.”

웬 노인 하나가 다가왔다. 이 사람은 또 뭐야 하는 눈으로 쳐다보는데 갑자기 얼굴이 싹 바뀌었다.

심민우였다.

“···뭐냐, 그건? 마법이야?”

“제가 닌자 같은 변장술의 달인도 아니고 당연히 마법이죠.”

“그런 마법도 있나? 별 이상한 것만 배웠군.”

“전 싸우는 것 빼곤 다 잘합니다.”

심민우는 확실히 재능이 있긴 한 것 같은데 그 재능이 이상한 방향으로 뻗어나간 것 같다.

하는 걸 보니 어둠의 불꽃이니 피의 화살이니 하는 걸 참 좋아할 것 같은데 그런 건 또 왜 안 배웠는지 모를 일이다.

“집행관이 찾아온 걸 본 모양이지? 그래서 마법으로 변장한 채 숨어 있었고.”

“정확해요. 저 멀리 집행관의 망토가 보이기에 가슴이 어찌나 철렁했는지······. 지금은 다 떠났으니 괜찮지만요.”

“보급은?”

이제 원래 몸으로 돌아온 심민우가 어깨를 한 번 으쓱였다.

“문제없습니다. 그런데 혹시 집행관들과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 알 수 있을까요?”

김창은 집행관들과 나누었던 대화를 간략하게 전해주었다. 심민우가 음 소리를 내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거 곤란하군요. 그들이 절 찾을 수 있을 것 같진 않으니 악마한테 갈 텐데, 그러면 결국 거기서 만날지도 몰라요.”

“근데 걔네는 뭘 믿고 자기들끼리 악마를 찾으러 가는 거냐? 겨우 두 명이 악마를 잡을 수 있나?”

나야 혼자서도 충분하지만 그 사람들은 아닐 텐데.

“마탑에서 토드와 아레스를 보냈죠? 그들은 집행관 중에서도 정말 강합니다. 두 사람은 마법사인 동시에 유능한 사냥꾼이기도 하죠.”

“그 둘이서 악마를 죽일 수 있다면 그냥 먼저 가게 두는 게 낫지 않냐. 그러면 걔네가 알아서 악마도 처리해줄 텐데.”

“제가 김 선생님께 도와달라고 한 건 제 손으로 악마를 죽여야 하기 때문이에요. 그래야만 나도 할 말이 생길 테니까.”

“네가 싼 똥은 네가 치우겠다는 건가? 그래서 마탑의 용서를 받으려고?”

심민우가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제가 악마를 죽인다고 해서 마탑이 절 용서하진 않을 겁니다. 전 이미 확실한 잘못을 저질렀으니까요. 하지만 악마를 죽이면 원탁의 보호를 받을 수는 있겠죠. 의장님은 어쨌거나 플레이어의 편이고 일단 문제만 해결해두면 절 내치진 않을 거예요.”

한석구는 왕이나 귀족 따위가 플레이어를 처벌하는 걸 끔찍하게 싫어하는 사람이다. 그가 사고 친 플레이어게 현상금을 거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이건 우리 문제니까 알아서 해결하겠다는 걸 보여주려고.

그런 사람인 만큼 심민우가 일단 잘못을 수습하고 돌아오면 마탑으로부터 지켜주긴 할 것이다. 대신에 원탁의 보호이자 감시를 받으며 살아야겠지만.

“그래서 네가 직접 문제를 수습했다는 증거가 필요한 거군.”

“그런 겁니다. 악마의 머리라도 하나 들고 가야 저도 말발이 좀 서지 않겠어요?”

그러면 집행관들이 악마를 죽일 때까지 기다렸다가 몇 대 때려주고 그 머리만 가져오면 되지 않나.

김창은 그런 생각을 했지만 그건 확실히 양아치 짓이다. 정 악마의 목이 필요하다면 그런 방법도 쓰긴 해야겠지만······.

“일단은 가면서 생각하죠. 정 안 되면 정체를 숨기고 접근하는 방법도 있으니까요.”

김창이 고개를 끄덕였다. 두 사람은 마을에서 간단히 휴식을 취한 뒤에 다시 출발했다.

심민우는 자신과 악마는 서로의 위치를 알 수 있기 때문에 집행관들보다 더 정확하고 빠른 길로 안내할 수 있다고 했다.

어쩌면 늦게 출발했음에도 먼저 악마를 찾아낼 수 있을지도 모른다. 둘은 마법으로 작은 강 하나를 건너 며칠을 달렸다.

“악마의 기운이 점점 더 강해지고 있어요. 아마 오늘 안에 도착할 수 있을 겁니다.”

며칠 동안 노숙을 반복한 탓에 심민우의 모습은 엉망이었다. 잠자리가 불편한지 눈은 퀭하고 머리는 부스스했다.

하기야 안락한 삶이 보장된 마탑에서 몇 년을 살았을 텐데 이런 여행은 제법 고행일 것이다. 그런데도 그다지 불평이 없는 걸 보면 신기하긴 했다.

“악마는 어디냐?”

“저쪽인 것 같군요.”

두 사람은 산속으로 들어갔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악마는 지금까지 아무 일도 벌이지 않고 조용히 있었는데 어쩌면 이곳에 숨어 뭔가를 꾸미고 있을지도 몰랐다.

바람 부는 소리와 새 지저귀는 소리, 물 흐르는 소리, 사람을 보고 도망치는 산짐승 소리.

산속은 악마가 숨어 있다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조용했다. 원래 이쪽으로 사람이 잘 다니질 않는지 지금까지 누굴 마주치지도 않았다.

“거의 다 왔어요. 이 정도 왔으면 악마도 제 접근을 눈치챘을 겁니다.”

자신을 소환한 마법사가 기어코 자길 쫓아온 걸 보고서 악마는 무슨 생각을 할까. 자기를 귀찮게 하는 놈을 죽여버리자고 생각할까, 아니면 그 집요함을 칭찬할까.

“잠깐···.”

한참 걷던 중에 김창이 바닥을 내려봤다. 습기 때문에 축축한 땅바닥에는 말발굽이 여러 개 찍혀 있었다.

말발굽이 이어지는 걸 보면 이쪽과 같은 방향으로 움직인 사람이 있었다. 심지어 지나간 말은 두 마리였는데 제법 급하게 움직인 게 보였다.

“이거?”

심민우도 말발굽이 찍힌 걸 보고 바로 눈치챘다.

“집행관들이 먼저 도착한 모양이지. 말발굽 찍힌 걸 보면 얼마 전에 지나간 거야. 싸우고 있다면 큰 소리가 났을 텐데 조용한 걸 보니 아직 악마한테 도착한 건 아닌가 보군.”

“그런 것 같네요. 아마 곧 마주치게 될 것 같습니다.”

“변장할 거냐?”

심민우가 잠깐 고민하다가 고개를 저었다.

“토드 집행관은 제법 말이 통하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합리적인 사람이기도 하죠. 사정을 말하고 힘을 합치자고 하면 들어줄 겁니다. 아레스 집행관이 좀 걸리긴 하지만······.”

“그러면 그러자고.”

둘은 서둘러 악마가 있는 곳으로 향했다. 심민우는 악마가 동굴 안에 있을 거라고 했다. 그리 멀지 않은 곳에 동굴 입구가 보였다.

거기엔 뭔가 있었다. 악마가 침입자를 제거하려고 보초라도 세운 건가? 김창이 눈을 가늘게 떴다가 곧 얼굴을 찡그렸다.

“뭐야, 이건 또?”

입구에 있는 건 사람이었다. 정확히 말해서 자기 내장에 목이 졸려 죽은 사람.

그리고 그들은 아는 얼굴이었다.

“이 새끼들은 왜 먼저 와서 먼저 뒈져 있는 거냐?”

집행관 토드와 아레스. 두 사람이 혀를 길게 내뺀 채로 고개를 떨구고 있었다. 마치 이런 모습을 보여주어 면목이 없다는 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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