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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겜 속 칼잡이-37화 (37/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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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선생님!”

소리치며 달려오는 건 심민우다. 악마가 죽은 게 기뻤는지 늘 심약해 보이던 그의 얼굴이 훨씬 밝다.

“정말 대단합니다! 그 실력에 대해선 익히 들었지만 정말 악마를 죽일 줄이야!”

김창은 어깨를 으쓱였다.

“별거 아니었어.”

“하기야 김 선생님은 이미 아카온도 죽인 적이 있으니까요. 이 정도로 강한 분인데 왜 그 이름이 널리 알려지지 않았을까요?”

그거야 내가 내 명성을 올리는 일에 별 관심이 없었으니까. 김창은 굳이 그 말을 하진 않았다.

“악마도 죽였으니 이제 돌아가자. 정산할 것도 있으니까.”

“아, 보수 말이죠. 그거라면 걱정하지 마세요. 마탑에서 생활하면서 제법 많이 벌었거든요. 저기 그런데······.”

혼니르의 육신은 재가 되어 완전히 흩어졌다. 염소 머리에 달린 뿔까지 완전히 재가 되어 흩날리는 걸 보던 김창이 무심히 대답했다.

“왜, 궁금한 거 있나.”

“그, 아까 혼니르가 그러더군요. 제가 잘못 들은 게 아니라면, 분명 김 선생님을 보고 승천할 자라고······.”

심민우는 사실 혼니르를 지옥으로 돌려보내기만 할 생각이었다. 왜냐하면 성기사나 사제의 도움 없이는 악마를 완전히 소멸시킬 수 없으니까.

그런데 김창은 혼자서 혼니르를 완전히 죽였다. 설마 그가 성기사였던 걸까? 하지만 신앙심이라고는 전혀 보이질 않는데.

그 의문을 해결해줄 수 있는 것은 혼니르가 남긴 마지막 말이었다. 그는 이 무시무시한 칼잡이를 승천할 자라고 불렀다.

“그런 말을 하긴 했지.”

“그러면 이대로 여러 위업을 달성하다 보면 언젠가 신이 된다는···?”

“되겠냐.”

“네? 하지만 혼니르가······.”

“날 봐라.”

김창이 손가락으로 자신을 가리켰다.

“날 보라고. 내가 신성해 보이나? 승천하여 만인의 우러름을 받을 만한 사람으로 보여?”

확실히 신성하진 않다. 그의 몸에는 악마를 베고 찌르면서 생긴 오물이 잔뜩 묻어 있었다.

또한 그는 돈을 받으면 누구든 죽여주는 칼잡이다. 그건 엄밀히 말해서 그리 떳떳한 일은 아니었다.

만약 그가 약자들을 위해 칼을 든 영웅이라면 약간의 살인도 용납될 수 있겠으나 김창은 그저 돈을 위해 사람을 죽일 뿐이다.

그러니 그는 신성하지 않다. 하지만······ 세상엔 선한 신만 있는 건 아니지 않은가?

심민우는 그 생각을 억지로 목구멍 뒤로 삼켰다. 그건 지껄이기에 너무 무례한 발언이며 또한 제 목숨을 위협할 수 있는 소리다.

“신성이라는 건 아무것도 아니야. 그냥 좀 더 신비하게 반짝이는 빛에 불과해. 신이 될 자격이 고작 그딴 거라면 하늘 위에서 거만 떠는 저 잘난 놈들도 실은 별거 아니라는 소리겠지.”

김창이 무심하게 말하자 심민우도 더 말하지 않았다.

“가자. 여긴 짐승 냄새가 너무 고약해.”

심민우가 고개를 끄덕이며 김창의 뒤를 따랐다. 그들은 올 때 그랬던 것처럼 길을 찾아주는 빛의 화살에 의지해 출구까지 나갔다.

한참 걸어서 출구에 도착하니 끔찍한 모습으로 죽은 시체 두 구의 모습이 눈에 밝혔다.

“저, 김 선생님. 부탁 한 가지만 해도 될까요?”

“뭔데.”

“···집행관들의 시체를 가져가도 되겠습니까? 마탑에 돌려주고 올게요.”

김창은 왜 그래야 하냐고 묻지 않았다. 그는 그저 시체를 물끄러미 보다가 아레스의 것을 들어 올렸을 뿐이다.

“차원문 열어.”

“감사합니다! 토드 집행관의 시체는 제가 들게요. 그러면 마탑으로 가는 차원문을 바로······.”

“아니, 마탑 말고 원탁으로 가.”

“네? 거긴 왜······.”

김창이 차분히 설명했다.

“넌 아직 마탑에 쫓기는 몸이다. 그런 상태에서 널 쫓던 집행관들의 시체를 들고 가면 무슨 일이 벌어지겠냐. 내 장담하는데 그럼 시체 몇 구 정도 더 치워야 할 거다.”

“······제 시체요?”

“네 시체 말고. 마법사들의 시체.”

“아니, 그······.”

심민우는 당황하면서도 그 말이 옳다고 여겼다. 아직 마탑이 자길 쫓고 있을 텐데 거기를 바로 가봤자 소란만 일어날 뿐이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죠?”

“원탁으로 가서 사정을 말하고 도움을 청해야지.”

“확실히 그게 낫겠군요. 그러면 원탁으로 가는 차원문을 열겠습니다.”

심민우가 고개를 끄덕이며 바닥에 그리던 마법진을 수정했다. 몇 가지 단어를 고쳐 적는 걸로 목적지를 바꿀 수 있는 모양이었다.

그 모습을 가만히 보던 김창은 요새 들어 원탁에 너무 자주 들리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 귀찮은 일 생기는 게 싫어서 일부러 거리를 두고 있었는데 이젠 뭔 일이 생길 때마다 드나들고 있으니 원.

“자, 차원문을 열었습니다! 가시죠!”

힘차게 소리치는 심민우를 보며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두 사람과 두 구의 시체가 차원문을 통과했다.

* * *

요즘 한석구는 집무실에서 멍하니 하늘을 보고 있었다. 창문 너머에서 유유히 흘러가는 구름이 지친 심신을 달래주었다.

원탁이라는 거대한 조직을 운영하는 건 제법 힘든 일이다. 원래 대학에서 네다섯 명 데리고 조장 노릇을 하는 것도 힘든 법인데 수백 명을 데리고 하는 건 또 얼마나 힘들겠나.

게다가 조별 과제 조장은 말 안 듣는 새끼 이름이라도 빼버리면 그만이지, 원탁의 의장은 말 안 듣는 놈을 제명하기도 어렵다.

그랬다간 원탁의 통제에서 벗어난 놈들이 제멋대로 날뛸 게 분명한데 어떻게 그러나?

대학에서 공부 안 하고 멋대로 설치는 놈은 제 인생만 망하지만 여기서 멋대로 설치는 놈은 남까지 망하게 해버린다.

어떤 히어로 영화에서 그랬다. 큰 힘에는 큰 책임이 따른다고. 한석구는 그 말에 통감했다.

문제는 여기 끌려온 놈들이 큰 힘은 가졌는데 큰 책임은 가지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 대사에는 약간의 수정이 필요했다.

큰 힘에는 큰 통제가 따른다.

한석구는 자신에게 플레이어들을 통제하고 이끌어야 할 의무가 있음을 알았다. 누군가는 그건 그냥 독재자의 변명 아니냐고 할 테지만 절대 아니었다.

순수한 의도로 한 일에 어찌 악의적인 모욕을 주나? 그건 통제에 반발하는 무뢰한들이나 지껄이는 헛소리일 뿐이다.

남들은 몰라도 한석구 자신은 분명히 그렇게 생각했다.

“요샌 원탁을 탈퇴하겠다니 뭔 이상한 소리를 지껄이는 놈이 없어서 다행이야. 갑자기 웬 악마숭배자가 됐다거나 사고 치고 도망쳐 오는 놈도 없어서 다행이고······.”

원탁의 운영은 이제 안정적이다. 이게 전부 의장인 자신의 헌신적인 노력 덕분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이젠 조직 운영에 반발할 놈도 없고 어디서 사고치고 올 놈도 없으니 나도 좀 느긋하게 살아도 되지 않을까······.

한석구가 그런 생각을 하며 하늘 위를 흘러가는 구름의 숫자를 세고 있을 때였다.

쿵!

“어이.”

집무실 한가운데에 갑자기 열린 차원문. 그리고 그 안에서 시체를 들고 걸어 나오는 김창의 모습.

한석구는 저도 모르게 말했다.

“이런 씨발.”

“얼굴 보자마자 욕이냐.”

“씨발······. 지금 네 모습을 봐라. 욕이 안 나오게 생겼냐? 사람 죽였으면 어디 묻고 올 것이지 그건 또 여기 왜 들고 오는데?”

그는 김창이 원탁에 자주 들러주길 바라지만 이딴 식으로 오는 건 조금도 바라지 않았다. 미친놈, 사람 많이 죽이더니 정신 나갔나? 저걸 왜 들고 와?

“내가 죽인 거 아니야.”

“그럼 누가 죽였는데?”

“악마.”

“이런 씹, 뭐?”

“자세한 건 제가 설명을 해드리죠······.”

김창의 뒤에서 나온 건 심민우였다. 언제나처럼 심약한 얼굴을 하고 있었는데 그도 김창처럼 시체 하나를 질질 끌고 나타났다.

“환장하겠네······.”

“의장님, 진정하시고 제 이야기를 좀 들어주세요.”

“그래, 한 번 지껄여봐.”

심민우는 한석구의 눈치를 보다가 뭔 일이 있었는지 말했다. 그 이야기를 끝까지 들은 후에 한석구가 문득 말했다.

“돌았니?”

“···네?”

“돌았냐고. 악마가 무슨 동네 개새끼야? 호기심 때문에 악마를 소환해? 거기다 그게 그냥 잡놈도 아니고 지옥의 여덟 기수 중 하나? 민우야, 너 지금 나 화병 나서 뒈지라고 이러는 거냐?”

“아, 아니요······. 그게 아니라······.”

“그래, 그게 아니겠지. 근데 어쩌냐? 나는 화병 나서 죽겠는데. 그딴 짓을 저질렀으면 어디 멀리 숨어서 영영 나타나지나 말지, 뭔 낯짝으로 여기에 얼굴 들이미니? 사고는 네가 치고 수습은 내가 해야 해?”

화가 난 한석구의 몸에서 흘러나오는 마력이 심민우의 몸을 압박했다. 같은 마법사라고 해도, 그리고 심민우가 제법 재능 있는 축에 속한다고 해도, 두 사람의 실력 차는 확연했다.

김창은 심민우의 몸이 덜덜 떨리는 걸 보다가 말했다.

“수습은 이미 내가 다 했다. 너보고 뒷수습해달라고 찾아온 거 아니야.”

“···뭐?”

“이미 악마 처리했다고. 그리고 그 악마 놈은 일하기 싫어서 지옥에서 도망친 놈이라 다른 사고도 안 쳤어.”

“그럼 네가 들고 온 그 시체는 뭔데?”

“마탑의 집행관. 괜히 악마한테 깝죽거리다가 죽은 놈들이지. 우리가 찾아온 건 이 녀석들 때문이야.”

마탑의 집행관? 한석구가 미간을 좁히자 김창이 간단히 설명했다.

“···그러니까 민우가 마탑에 잡혀가지 않도록 손을 써달라고?”

이야기를 다 들은 한석구의 얼굴에 더욱 짙은 주름이 생겼다.

“그래. 아무리 마탑이라도 원탁의 수장인 네 말을 무시하긴 어렵겠지. 이번 일로 집행관이 둘이나 죽긴 했지만 그거야 원탁에서 적절한 보상을 하면······.”

“보상을 왜 해?”

“뭐?”

한석구가 눈을 부라리며 말했다.

“보상을 왜 하냐고. 얘네 임무는 원래 민우를 쫓는 거였지? 근데 자기들이 멋대로 악마한테 덤볐다가 뒈진 거 아냐? 근데 원탁이 보상을 왜 해?”

이 새낀 또 뭔 헛소리야? 어쨌거나 집행관들이 죽은 건 심민우의 잘못 때문인데 그걸 그냥 힘으로 뭉개겠다는 건가?

아무리 원탁이라도 그건 좀······.

“그리고 씹, 마탑 따위가 뭔데 감히 우리 애를 벌하려고 들어? 난 민우가 잘했다고 생각은 안 한다. 근데 벌을 받아야 하면 여기서 받아야지, 마탑이 왜 나서? 걔네가 뭐 돼? 마법 좀 잘 쓰면 그래도 돼? 그러면 씨발 내가 걔네보다 훨씬 센데 가서 난리 쳐도 되겠네?”

저 미친놈. 그저 원탁에 관련된 일이라고 하면 눈 뒤집혀서 말도 안 되는 개소리도 아무렇지 않게 지껄인다.

그래서 뭐 직접 쳐들어가려고? 우리 애 괴롭히지 말라고 으름장이라도 놓고 올 셈인가?

“돌았냐?”

“돌긴? 돈 건 마탑이지? 민우야, 차원문 열어라. 내가 가서 좀 따져야겠다. 걱정하지 마, 인마. 형이 다 해결해줄게.”

심민우가 화들짝 놀랐다.

“아니, 아무리 그래도······.”

“괜찮아, 걱정하지 말고 열어. 아니다, 내가 직접 열지 뭐. 나도 마탑 몇 번 가봤거든.”

심민우가 지시에 불응하자 한석구는 기어코 직접 차원문을 열었다. 그리고 다짜고짜 마탑에 쳐들어가는 걸 본 심민우의 얼굴이 사색이 됐다.

김창은 새삼스럽지도 않다는 듯 어깨를 한 번 으쓱이고 차원문을 통과했다. 심민우도 허겁지겁 뒤를 따랐다.

“당신 누구야!”

신성한 배움의 학당, 또한 자라나는 신비의 터전. 뭇 마법사들이 선망하는 이 우아한 공간에서 신경질적인 목소리가 울렸다.

홀에 모여 열정적으로 떠들고 있던 마법사들의 시선이 한곳으로 모였고 마력이 소용돌이치기 시작했다.

누구도 불청객을 환영하지 않았다. 공간을 찢고 나타난 한 명의 마법사는 자신을 향해 쏟아지는 수많은 시선에 전혀 아랑곳하지 않았다.

“내가 누구냐고?”

한석구가 손가락을 까딱하자 가까이 있던 마법사 하나가 보이지 않는 힘에 밀려 벽으로 날아갔다.

쿵 소리를 난 후에 기절한 마법사의 몸이 벽 아래로 주르륵 미끄러졌다.

“존나 센 마법사.”

김창은 저게 뭐 대단한 일인지 별 감흥이 없었지만 마탑의 마법사들은 달랐다. 저만한 위력의 마법을 그냥 손가락 한 번 까딱이는 것만으로?

어이없는 자기소개가 허세는 아니었던 모양이다. 몇몇 마법사들은 서로 눈치를 보다가 곧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리 강한 마법사라도 이 숫자를 무시할 수는 없다. 약간의 손실이 있더라도 일단 제압하기만 하면 그만이다.

눈짓만으로 신호를 재던 마법사들이 일시에 마법을 날렸다. 형형색색으로 반짝이는 빛이 마법사들의 손끝을 떠나 침입자를 죽이려 달려들 때였다.

“쓸데없는 짓 하지 말고.”

폭풍이 불었다. 그건 강대한 마력으로 이루어진 폭풍이었으며 모든 걸 쓸어버리는 난폭한 침략자기도 했다.

마법사들의 손끝을 떠나 공중을 질주하던 여러 마법이 폭풍에 휘말려 형체를 유지하지 못하고 마력으로 화해 흩어졌다.

저게 가능한 일인가? 마법사들이 당황하는 것과 동시에 그 몸이 강한 타격을 받아 뒤로 날아갔다.

단지 몇 초. 손가락 몇 번 휘두르고 마력 조금 짜냈을 뿐인 그 몇 초 사이에 전투는 끝났다.

“삼 초 주지.”

한석구가 눈알을 부라렸다.

“여기 사장 나오라고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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