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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겜 속 칼잡이-46화 (46/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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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켁!”

김창이 아이의 멱살을 붙잡아 위로 들어 올렸다. 아이는 목이 졸린 듯 연신 켁켁 소리를 내며 발을 흔들었지만 그 억센 손아귀에서 벗어날 수는 없었다.

“케윽, 켁!”

김창은 무심한 눈으로 아이의 얼굴을 쳐다봤다. 잘 먹지 못해 광대뼈가 도드라진 더러운 얼굴에는 두려움이 가득했다.

멱살을 붙잡힌 채로 버둥거리고 있던 아이는 불길한 미래를 떠올리고 있었다.

혹시나 이대로 바닥에 내던져져 머리가 깨져 죽지 않을까? 아니면 단단한 주먹에 맞고 얼굴이 짓뭉개지진 않을까?

그도 아니면 목을 졸려 구멍이라는 구멍에서 온갖 오물을 쏟아내며 죽게 되진 않을까?

어느 것이든 끔찍하다. 아이는 살기 위해 발버둥 쳤으나 어디로도 도망칠 수 없었다. 아이는 그제야 자신이 지금까지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 깨달았다.

자신이 속여서 데려온 사람들도 똑같은 감정을 느꼈을 것이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

“죽는 게 두렵나?”

아이가 물기로 젖은 얼굴을 세차게 끄덕였다.

“사, 살려······ 켁!”

“그러면 이딴 짓은 하지 말았어야지.”

“살려주세요, 살려주세요, 제발······.”

“내가 아까 말했지, 죽이진 않는다고.”

죽이지 않는다고 말하는데 전혀 안심이 되지 않았다. 저 말은 어쨌거나 죽이지만 않는다는 소리 아닌가?

어쩌면 저 무시무시한 칼잡이가 다리의 힘줄을 전부 끊어버릴지도 모른다. 그도 아니면 두 눈을 뽑아버릴지도 모르고.

그런 짓을 하더라도 정말 죽이진 않았으니 제 말을 어긴 것은 아닌 셈이다. 그리고 저 칼잡이라면 어떤 짓을 하더라도 이상하지 않았다.

상상할수록 아이의 두려움과 흐느낌은 더욱 커졌다.

“난 공짜 일은 안 해. 원래라면 아이고 뭐고 그냥 목 잘라 죽였어야 했는데 안 그러는 건 너 죽여달라고 돈 받은 게 없어서야. 그러니까 살려줄 때 내 물음에 성실히 대답해.”

아이는 대답하지 않고서 흐느끼기만 했다. 김창이 나직이 말했다.

“아니면 내가 널 매달아서 매질이라도 해야 하나? 몇 대 때리면 죽을 것 같아서 그러긴 싫은데.”

아이는 여전히 대답이 없었다. 빈민가 출신에 건달들과 붙어먹는 놈이길래 제법 강단이 있는 줄 알았더니 역시 애는 애인 모양이었다.

“대답하기 싫나? 그러면 몇 군데 부러트리면 대답할 마음이 들까?”

뼈를 분지르겠다고? 아이의 얼굴이 사색이 됐다.

“대, 대답할게요! 대답할 테니까 제발 살려주세요!”

김창이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혹시 매장결사에 대해서 아나?”

“매, 매장결사요? 그게 뭐죠?”

모르나? 하기야 이런 아이가 매장결사에 대해서 알고 있으면 그게 더 이상한 일이다. 김창은 고개를 끄덕이며 다른 걸 물었다.

“그러면 혹시 영주가 요즘 들어서 뭔가 이상한 짓을 하거나 그러진 않았나?”

“영주님이요···? 그게······.”

아이가 잠깐 생각하다가 목소리를 낮추며 말했다.

“요즘 들어서 영주님의 거처에 수상쩍은 놈들이 자주 드나든다는 이야기가 있어요. 전부 검은색 망토로 몸을 가리고 다니는데 멀리서 보기만 해도 아주 기분 나쁜 놈들이라고 했어요.”

혹시 그 녀석들이 매장결사의 일원이 아닐까? 정황상 그게 맞아 보이지만 아직 확신하기엔 일렀다.

김창이 다시 물었다.

“그거 말고는?”

“요즘 들어서 영주님이 소나 돼지 따위를 많이 사들인대요. 설마 그 많은 고기를 혼자서 다 먹는 것도 아닐 텐데 왜 그러는 걸까요? 연회라도 열려는 걸까요?”

“또.”

“···음, 자고 일어나면 사람이 한둘씩 사라진다고 하던데요. 근데 그건 이 도시에서 자주 일어나는 일이니까 별로 특이한 건 아닌가?”

이걸로는 부족하다. 영주가 갑자기 미쳐서 사술을 부리거나 한다면 그것만큼 확실한 증거가 없겠지만 그런 일이 있었다면 진작 마탑이나 신전에서 나섰을 것이다.

그러니 매장결사에 대한 정보를 얻으려면 좀 더 부지런히 돌아다녀야 할 듯했다. 김창은 흠 소리를 내며 오른손을 휙 털었다.

그러자 멱살을 붙잡혔던 아이의 몸이 공중을 날아서 벽에 부딪혔다. 별로 세게 던지지는 않았으니 등과 엉덩이가 조금 얼얼하고 말 것이다.

김창은 끙끙 앓고 있는 아이를 향해 말했다.

“잠깐 나갔다 올 건데, 그 사이에 이 건달 놈들 다 치워. 그리고 잠자리도 마련해두고.”

“네, 네?”

“내 말이 어려웠나? 저 건달 새끼들 다 치우고 잠자리 깔아두라고.”

“아니, 그걸 제가 왜······.”

“여기 여관이라며. 아니면 나한테 거짓말한 거냐?”

아니, 여기 여관 아닌 거 뻔히 알면서 뭔 개소리야. 아이는 욕이 나오려는 걸 억지로 참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준비해두겠습니다. 조심히 다녀오세요.”

“그래.”

김창이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이며 바깥으로 나갔다. 뒤에서 아이가 욕을 했지만 무시했다.

그는 정보 수집을 위해서 사람들이 많이 모일 만한 곳을 찾아다녔다. 워낙 도시의 치안 수준이 엉망이라 그때마다 괜한 시비에 휘말릴 때도 있었지만 몇 명 정도 손을 봐주고 나니 잠잠해졌다.

“수상한 놈들? 이 도시에 사는 놈들 태반이 수상쩍지······.”

“마법사? 여기엔 마법사 같은 거 없어. 자기가 마법사라고 거짓말하는 사기꾼들은 많아도.”

“매장결사가 뭔지는 모르겠는데 일단 이거 하나 사는 게 어때? 이건 악한 저주로부터 몸을 지켜주는 목걸이인데······.”

두 시간 정도 도시를 돌아다니며 정보 수집을 했는데 별 도움이 될 만한 건 없었다. 그만큼 돌아다녔는데도 별 정보가 나오지 않는다는 건 매장결사가 제 정체를 철저하게 숨기고 있다는 소리였다.

아마 오늘 안에 매장결사에 대한 단서를 찾긴 어려울 것 같았다. 하지만 너무 조급할 필요는 없었다.

김창의 목적은 대악마를 죽이는 것이니 매장결사를 찾지 못하더라도 어쨌거나 대악마가 이 세상에 강림하기만 하면 그만이었다.

생각해보니 굳이 매장결사를 찾을 필요도 없는 거 아닌가? 그럼 그냥 그때까지 기다릴까. 김창은 그런 생각을 하며 어느 술집으로 들어갔다.

“어서 옵쇼!”

우중충한 도시라고 해도 술집만은 그렇지 않았다. 하기야 이런 곳인 만큼 술집이 가장 왁자지껄한 건 당연한 일일지도 몰랐다.

김창은 일단 갈증이 나는 목부터 축일 겸 식당 주인에게 맥주 한 잔과 간단한 안주를 시켰다.

오늘은 더 찾아봤자 나올 것도 없어 보이니 그냥 술이나 좀 마시고 쉴 생각이었다.

“맥주랑 안주 나왔습니다! 맛있게 드십쇼!”

종업원이 꾸벅 인사를 한 뒤에 술을 더 달라고 소리치는 사람들에게 달려갔다. 김창은 시원한 맥주 한 모금을 마시고 잘 익은 소시지를 한 입 베어 물었다.

짭짤하면서도 육즙이 넘치는 게 제법 맛있었다. 이 식당이 왜 인기가 있는지 알 것 같았다.

원래 이 세상의 음식은 맛이 개 같은 법인데 여기는 술은 물론이고 음식도 훌륭했다. 덕분에 오랜만에 만족스러운 식사를 마칠 수 있었다.

김창은 맥주잔을 비우고서 무심한 눈으로 술집 안을 둘러보았다. 이곳은 우중충한 도시 안에서 유일하게 활기가 넘쳤다.

그 안에 있는 것은 온갖 군상이다.

한가한 한량과 혈기 넘치는 건달, 술에 찌든 주정뱅이, 고된 노동을 마치고 온 농부, 큰돈을 잃은 도박꾼, 수상쩍은 물건을 파는 사기꾼, 바쁘게 뛰어다니는 여급, 그녀를 희롱하는 무뢰배.

그리고 또한 검은 머리카락의 여자.

마지막 그건 이 술집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 존재였다. 이물이라고 해도 될 정도로 이질적이었다.

그건 마치 장르가 다른 그림 안에 들어간 인물처럼 혼자만 동떨어진 느낌이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이질적인 느낌 그대로 주변에 녹아들어 있었다.

자신을 잃지 않으면서 집단 속에 숨어있는 것은 흔치 않은 재주였다. 그러면서 은근한 미소까지 짓고 있으니 확실히 범상치 않았다.

김창은 그 여자를 가만히 쳐다봤다. 저쪽에서도 이쪽을 봤다. 시선이 마주치자 여자가 움직였다.

“나한테 용건 있나?”

나직한 물음에 여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용건이라면 있지. 동석해도 되겠느냐?”

김창이 고개를 저었다.

“개수작 부리지 말고 할 말 있으면 해라.”

여자가 잠깐 침묵했다가 말했다.

“···이방인은 어디서나 티가 나지. 그들의 몸에선 항상 다른 냄새가 나니까. 여기 사람은 아닌 것 같은데, 어디서 왔느냐?”

“알 거 없다.”

“···너무 쌀쌀맞군. 그러면 다른 걸 묻지.”

안 된다고 말하려는데 여자가 은근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매장결사에 대해서는 왜 묻고 다니는 것이냐?”

날카로운 살기가 목을 찔렀다. 이토록 선명하고 알기 쉬운 살기는 정말 오랜만에 느껴봤다.

다른 사람이었다면 짙은 살기에 목이 짓눌렸을 것이나 김창은 아니었다. 그가 천천히 칼자루 위에 손을 올리며 말했다.

“왜 묻고 다니겠냐.”

“···우리의 의식을 막으려고 그러는 거겠지. 이방인아, 네가 아무리 발버둥 친다고 해도 결과는 변하지 않는다. 이건 이미 정해진 결과야. 그러니까 얌전히 돌아가라. 돌아가서 네 목숨이나 보전해.”

“아까부터 너만 묻는데 나도 뭐 하나 물어보자. 너도 그 매장결사인가 하는 조직의 일원이냐?”

여자의 눈에서 초록색 빛이 반짝였다. 그건 자세히는 몰라도 뭔가 마법적 조화임이 분명했다.

“맞다면 뭘 어쩔 셈이지?”

“어쩌긴 뭘 어째.”

여자가 큭큭 웃었다.

“싱거운 놈. 그래, 잘 생각했다. 이대로 이 도시를 떠나라. 그리고 다시는 우리의 일에 신경 쓰지 마. 그게 널 위한 일이다.”

경고를 마친 여자가 몸을 돌렸다. 김창은 그 모습을 보면서 맥주잔을 만지작거렸다.

“그러면 나는 이만 가보도록 하··· 끄악!”

꽝!

묵직한 타격음과 함께 여자가 바닥으로 쓰러졌다. 갑작스럽게 벌어진 일에 모두의 시선이 한곳으로 모였다.

김창은 힘껏 후려친 탓에 찌그러진 놋쇠 잔을 테이블 위에 내려두며 말했다.

“이럴 거다, 새끼야.”

하여튼 웃기는 놈이다. 지금까지 잘 숨어있었으면 그대로 영영 숨어있을 것이지, 대체 뭔 자신감으로 모습을 드러내나?

웬 여행자가 매장결사에 대해 묻고 다니니 위기감이라도 느꼈나? 그랬으면 좀 더 철저하게 준비하고 왔어야지.

이런 멍청한 놈들이 모여서 대악마를 불러내겠다고 하고 있으니 웃음만 나올 뿐이다. 하긴 멍청한 놈들이니까 대악마를 숭배하고 있지.

김창은 쯧 하고 혀를 찬 뒤에 자신을 쳐다보는 사람들을 향해 말했다.

“뭘 봐. 납치하는 거 맞으니까 다들 안심하고 하던 일 마저 해.”

대체 뭘 안심하라는 소리인가? 사람들은 어리둥절하다가도 곧 고개를 돌려 마시던 술이나 마저 마셨다.

술 마시다가 싸움 나는 건 자주 있는 일인데 술잔으로 머리 후려치는 게 뭐 대수라고.

호엔에서 이런 일은 자주 있진 않아도 아주 없진 않았다. 그 덕분에 김창은 별 소란 없이 여자를 들쳐메고 나올 수 있었다.

누가 봐도 수상쩍은 모습으로 길을 걷고 있는데 사람들이 흘끔 쳐다보기만 할 뿐 뭐라고 하진 않았다.

하기야 허리춤에 칼을 차고 어깨에는 여자를 들쳐메고 다니는 미친놈에게 누가 감히 말을 걸겠느냐마는.

김창은 그대로 아이가 있던 집으로 돌아갔다. 길거리를 보니 기절한 건달들이 바닥에 널브러져 있었다.

치우랬더니 잘 치워놨네.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이며 문을 열자 아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오, 오셨어요? 시키신 대로 해놨······.”

아이가 김창의 모습을 보고 눈을 크게 떴다.

“세상에, 뭔 짓을 한 건가요!”

“보면 모르냐.”

당연히 보면 아니까 물어보는 것 아닌가? 아이가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설마 죽인 건 아니죠?”

“안 죽였어.”

참 다행이다. 사람 죽인 다음에 여기 데려와서 자신보고 뒤처리하라고 했으면 그건 참 곤란한 일이었을 테니까.

아이가 안심하는 사이에 김창이 덧붙였다.

“아직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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