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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겜 속 칼잡이-51화 (5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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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오, 얼치기는 아니었던 모양이지.”

칼레드리온이 다시 몸을 돌렸다. 그가 도낏자루를 크게 휘두르자 거센 바람이 불었다.

불어온 바람에 먼지구름이 걷히고 김창의 모습이 드러났다. 그는 바닥에 한 번 처박혔던 탓에 옷 곳곳이 찢어지긴 했으나 그것 외엔 멀쩡했다.

본래라면 추락한 충격으로 어디 한두 군데 부러졌어도 이상하지 않을 일이었다. 그러나 그는 방금 뭔 일이 있었냐는 듯 손으로 먼지를 툭툭 털어낼 뿐이었다.

그 모습을 보고서 칼레드리온이 스산하게 웃더니 혼자서 고개를 끄덕였다.

“너 칼잡이야. 아까 이 나를 보고 죽일 가치가 있겠다고 했더냐? 그 말을 그대로 돌려주지. 너는 확실히 죽일 가치가 있는 놈이다!”

쿵!

칼레드리온이 거칠게 발을 구르자 바닥이 흔들리고 천장에서 돌조각이 쏟아졌다. 대악마는 손에 든 양날 도끼를 힘껏 휘둘렀다.

김창은 바닥을 박차고 뛰었다. 아무리 뛰어난 칼잡이라고 해도 저만한 공격을 정면에서 받아낼 수는 없다.

그랬다가는 칼날이 부러지거나 손목이 부러졌을 게 분명했다. 김창은 머리 위를 스쳐 지나가는 도끼날을 흘끔 보면서 더욱 빠르게 달렸다.

“쥐새끼 같은 놈!”

칼레드리온은 거대한 덩치를 가졌음에도 재빠른 움직임을 보여주었다. 그가 거대한 양날 도끼를 자유자재로 휘두르며 김창의 접근을 차단했다.

도끼가 한 번 움직일 때마다 바닥이 갈라지고 천장이 무너져 내렸다. 이대로 몇 분만 더 싸우면 지하실 전체가 무너지는 게 아닐까 걱정될 정도로 격정적인 공격이었다.

김창은 머리 위로 떨어지는 돌조각, 그리고 빠르게 갈라지는 바닥을 조심하면서도 빠르게 거리를 좁혔다.

후드득 소리를 내며 떨어지는 돌조각들은 칼질 한 번에 가루가 되어 흩어졌다. 칼레드리온이 바닥의 바위를 걷어차 김창에게 날렸으나 그것 역시 네 조각으로 잘려 사방으로 날아갔을 뿐이었다.

결국 대악마는 김창의 접근을 막지 못했다. 기어코 칼레드리온의 다리 아래까지 달려온 칼잡이는 그대로 칼을 휘둘러 두꺼운 종아리를 크게 베었다.

본래 대악마의 몸은 강철보다 단단해서 어지간한 공격으로는 흠집조차 나지 않았다. 그러나 아무리 단단한 가죽이라도 오러의 힘까지 무시할 수는 없었다.

따끔한 감각과 함께 갈라진 가죽에서 피가 확 하고 튀었다. 덩치가 워낙 큰데다 상처까지 작지 않았으니 피가 세차게 뿜어져 나왔다.

머리부터 대악마의 피를 뒤집어쓴 김창은 퉤 하고 침을 뱉어낸 후에 바로 반대쪽 종아리를 향해 칼을 휘둘렀다.

서걱!

날카로운 소리와 함께 종아리 가죽이 살점과 함께 뭉텅이로 잘려 나갔다. 거대한 고깃덩어리가 툭 소리를 내며 바닥에 떨어졌다.

“으하하! 따끔하구나! 더 날뛰어봐라, 칼잡이야!”

하지만 그런 공격만으로 칼레드리온을 무너트릴 수는 없었다. 그는 양쪽 다리에 큰 상처가 남았음에도 호탕하게 웃으며 양날 도끼를 휘두를 뿐이었다.

김창은 자신을 향해 날아오는 공격을 피하며 반 바퀴를 크게 빙 돌았다. 그리곤 바닥에 떨어진 천장의 잔해를 밟고서 크게 도약했다.

때마침 날아온 양날 도끼의 날이 그를 노리고 있었다. 횡으로 움직이는 도끼는 그대로 허리를 잘라 토막을 내주겠다는 듯 흉흉한 기세를 뿜어냈다.

그러나 김창은 당황하지 않았다. 그는 서커스라도 하는 것처럼 공중에서 몸을 휙 하고 틀더니 그대로 도끼날 위에 착지했다.

그리고는 다시 한번 뛰어서 도낏자루 위를 달렸다. 칼레드리온이 으르렁 소리를 내며 도낏자루를 세게 흔들었으나 김창은 이미 하늘로 뛰어오른 후였다.

너무 날뛴 탓에 천장이 반쯤 무너져 내려 지상의 모습이 보였다. 어디선가 쏟아져 들어오는 햇살에 칼레드리온이 눈을 찡그릴 때였다.

휘리릭!

뭔가 강하게 회전하는 소리와 함께 벼락같은 일격이 대악마의 몸 위를 크게 훑고 지나갔다.

오른쪽 어깨에서 왼쪽 배까지, 길게 뻗은 상처가 방금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려주고 있었다.

칼레드리온은 눈을 굴려 김창의 움직임을 쫓았다. 바닥에 착지한 칼잡이는 다시 재빠르게 움직이며 바닥을 박차고 벽을 밟아 공중으로 도약했다.

요정도 아니고 겨우 인간 따위가 어찌 저런 움직임을? 칼레드리온은 당황하면서도 손을 멈추지 않았다.

그가 누런색 눈을 빛내며 왼손을 뻗었다. 순간 사악한 기운이 손아귀에 모였다가 일시에 터져나갔다.

쿠웅! 공기를 빠르게 내달리는 마력은 그 자체로 하나의 마법이었다. 김창은 공중으로 뛰어올랐다가 자신의 몸을 강하게 때리는 마력에 밀려 바닥으로 추락했다.

아까 그랬던 것처럼 바닥이 부서지고 먼지구름이 일렁였다. 그 안에서 오직 잿빛 칼날만이 빛나고 있었으니 칼잡이는 아직 죽지 않았다.

“뒈져라!”

위에서 아래로 크게 휘두른 양날 도끼가 바닥을 부쉈다. 이미 부서질 대로 부서져 있던 바닥은 그 충격을 이기지 못하고 크게 뒤틀렸다.

어찌나 강력한 일격이었는지 저 멀리서 성기사들과 싸우고 있던 매장결사의 마법사들 역시 순간적으로 몸을 비틀거릴 정도였다.

우레와 같은 굉음이 울리고 기어코 천장이 완전히 무너져 내렸다. 칼레드리온은 자기 머리 위로 떨어지는 돌조각을 신경질적으로 쳐냈다.

“아직 죽지 않은 거 안다! 덤벼라! 덤벼서 네 강함을 증명해!”

그 말에 응답하듯 시야의 끄트머리에서 무언가 쏜살같이 질주했다. 잿빛의 칼날이 번쩍이더니 그대로 손가락 세 개가 잘려 나갔다.

쿵 소리를 내며 떨어지는 고깃덩어리를 보면서 칼레드리온이 양날 도끼를 휘둘렀다. 빛살과 함께 오른쪽 손목의 힘줄이 끊어졌다.

덜렁거리는 손목으로는 그 거대한 양날 도끼를 쥐고 있을 수 없었다. 칼레드리온이 김창을 향해 무기를 던지고는 누런 눈을 빛냈다.

“칼잡이야! 눈이 있으면 봐라! 네 상대가 누구인지!”

쿵!

성난 마력이 날뛰며 사방을 향해 질주했다. 지옥에서 올라온 마력은 이 땅의 모든 걸 죽이겠다는 듯 부딪치는 모든 걸 가루로 만들었다.

김창은 허리를 갈라버리려고 하는 마력을 피하려고 바닥을 한 바퀴 굴렀다. 그리고 다시 몸을 일으키는데 쩌렁쩌렁한 목소리가 귀를 때렸다.

“귀가 있으면 들어라! 이 내가 누구인지!”

갈라진 바닥에서 지옥의 어둠이 기어 올라왔다. 그건 여러 개의 손으로 변하더니 살아있는 생물처럼 바닥을 더듬으며 제 주인의 적을 붙잡으려 했다.

김창은 칼을 휘둘러 검은색 손들을 전부 잘랐으나 그건 잠깐 흩어졌다가 다시 제 모습을 갖출 뿐이었다.

“나는 칼레드리온이다! 지옥의 공작이며 또한 수많은 영혼을 수확한 도살자! 널 죽이기 전에 묻겠다, 칼잡이야! 네 이름은 뭐냐!”

그걸 뭐 지금 와서 묻고 있나? 물을 거면 처음부터 물을 것이지. 하기야 곧 뒈질 놈이니 자기를 죽일 사람의 이름이 궁금하긴 하겠지.

김창은 칼자루를 고쳐 쥐며 대답했다.

“김창.”

“참으로 개 같은 이름이구나! 그래, 칼잡이야! 이 내가 지옥의 공작이 가진 진정한 힘을 보여주마!”

칼레드리온이 멀쩡한 왼손으로 자신의 심장을 찔렀다. 이건 또 뭐 하는 짓거리인가?

갑작스러운 행동에 김창이 눈을 가늘게 뜨고 쳐다보자 콰직 소리와 함께 심장이 짓뭉개졌다.

이길 것 같지 않으니 일부러 죽어서 지옥으로 도망칠 셈인가? 설마 대악마라는 놈이 그러려고.

하지만 혹시 모르니 지금이라도 목을 잘라야 하는 거 아닌가······.

그런 생각을 하며 칼레드리온을 향해 한 걸음 움직일 때였다.

“기뻐해라! 내가 이 모습을 보이는 건 같은 대악마가 적일 때 말고는 없으니!”

화르륵!

갑작스럽게 불길이 치솟았다. 그것은 녹색으로 빛났으나 생명의 싱그러움이나 경외감 따위는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마치 더러운 오물을 뿌려 만든 것 같은 짙은 녹색의 불꽃은 칼레드리온의 몸을 타고 올라가 살과 가죽, 뼈와 피, 그리고 장기까지 모든 걸 탐욕스럽게 삼켰다.

불꽃이 대악마를 잡아먹고 그 기세를 더욱 키워갔다. 타오르는 불길 속에서 대악마는 불꽃의 화신처럼 보였다.

“날 봐라! 나는 유황불의 지배자다!”

유황불의 지배자라는 말은 과연 허세가 아니었다. 저 뜨거운 불길은 감히 아무나 흉내 낼 수 있는 게 아니었으니까.

김창은 이제 이 싸움의 끝이 다가왔음을 깨달았다. 칼날에 맺힌 잿빛의 오러가 성난 듯 일렁였다.

그는 이젠 누더기 거인이 아니라 불꽃 거인으로 변해버린 칼레드리온을 가만히 보면서 칼을 아래로 내렸다.

대악마의 위용에 놀라 싸움을 포기하려는 듯한 모습이지만 손에 쥐고 있는 칼날은 사납게 떨리고 있었다.

“뒈져라, 칼잡이야!”

불꽃의 거인이 함성을 지르며 양손을 휘둘렀다. 성난 불꽃이 빠르게 회전하며 김창을 향해 날아갔다.

그 열기가 어찌나 뜨거웠는지 숨을 쉬기 위해 입을 여는 것만으로도 기도에 손상이 갈 정도였다.

저 정도 열기의 불꽃을 만들어낼 수 있는 건 아마 불꽃숨결을 내뿜는 용 말고는 없을 것이다.

그리고 저것에 정면으로 맞설 수 있는 존재 역시 용 외에는 없으리라. 그 어떤 칼잡이도 칼 한 자루만으로 불꽃을 가를 수는 없을 테니까······.

“끝났군······.”

칼레드리온은 이글거리는 불꽃을 보며 자신의 승리를 확신했다. 이번 싸움으로 생각보다 힘을 많이 쓰긴 했지만 그거야 지상에서 영혼을 수확해서 채우면 그만이다.

아마 지옥에선 지금쯤 자신이 자리를 비운 걸 알고 다른 대악마들이 영지를 약탈하러 달려들고 있으리라.

하지만 상관없다. 지상에서 그들보다 훨씬 더 쉽고 빠르게 영혼을 수확할 수 있게 됐으니 그깟 영지 따위 털리는 게 뭐 대수라고······.

“그런데 이 머저리 같은 놈들은 왜 아직도······.”

칼레드리온은 고개를 돌려 성기사들과 싸우고 있는 매장결사를 쳐다봤다. 숫자로 따지면 거의 열 배 정도 차이나는데 어째서인지 매장결사 쪽이 고전하고 있는 중이었다.

성기사들은 용감하게 싸우며 마법사들을 하나둘씩 처리하고 있었는데 가만히 두면 자기 수족을 들어줄 놈들이 전부 죽겠다고 생각했다.

쯧 하고 혀를 찬 칼레드리온이 손을 뻗어 불꽃을 날리려던 순간이었다.

잿빛이 번쩍였다.

“크아아악!”

불길이 갈라지고 그 안에서 튀어나온 칼날이 칼레드리온의 왼쪽 다리를 크게 베었다. 분명 두꺼운 가죽과 단단한 뼈로 이루어져 있을 다리가 너무나도 쉽게 잘려 나갔다.

이게 대체 무슨? 칼레드리온이 어떤 반응을 보이기도 전에 오른쪽 다리 역시 힘줄이 끊어져 그 거대한 몸이 균형을 잃고 쓰러졌다.

칼레드리온은 바닥으로 쓰러지면서도 김창을 향해 손을 휘둘렀다. 타오르는 유황불이 그를 향해 날아갔으나 반으로 갈라져 힘없이 흩어질 뿐이었다.

쿵! 결국 바닥에 머리를 처박은 칼레드리온이 믿을 수 없다는 듯 중얼거렸다.

“이게, 이게 대체 뭐냐? 대체 어떻게 칼 한 자루로 불꽃을······.”

“잘.”

김창이 칼을 한 번 휘두르자 칼레드리온의 몸을 감싸고 있던 불꽃이 잡초를 베어낸 것처럼 휙 하고 날아갔다.

그는 열기가 느껴지지 않는 것처럼 거인의 몸 위로 올라왔다.

“왜, 뒈질 때 되니까 생각이 많아지냐.”

칼레드리온은 넋이 나간 것처럼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이건 말이 안 돼······. 신성, 천상의 개새끼들이 내린 진짜 신성이라도 가진 게 아니고서야······. 어찌 인간 따위가 감히 나를?”

“신성이라면 나도 있는데.”

대악마가 김창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다가 소스라치게 놀랐다. 그는 본능적으로 저 칼잡이의 내면 속에 신성이 잠들어 있음을 깨달았다.

“너 같은 천박한 놈이 어찌 신성을? 대체 그걸 어디서 난 거냐?”

“길 가다가 주웠다.”

“뭐? 그게 뭔 개소리냐! 신성이 무슨 개똥도 아니고 길 가다가 줍긴 뭘 주워! 똑바로 설명해라, 이 개자식아!”

김창이 칼을 거꾸로 쥐었다.

“싫어.”

칼이 대악마의 심장을 찔렀다.

그 순간 김창은 내면의 신성이 커지는 걸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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