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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겜 속 칼잡이-63화 (63/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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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체 뭔 소리를······.”

람은 김창이 할 말을 얼른 이해하지 못했다. 방금 뭐라고 했더라? 신성이 어쩌고 한 것 같은데······.

“뭔 소리긴. 널 죽이면 내가 신성을 얻는다. 단지 그뿐인 이야기야.”

“신성?”

모르스의 사도로서 신성이 무엇인지 안다. 그것은 하나의 자격이다. 지고의 위업을 세워 필멸의 껍데기를 벗어던지고 천상의 권좌에 오를 자격.

그러면 저 칼잡이가 왜 신성을 들먹이는가? 이유는 간단했다.

“······너 따위가 승천할 자라고?”

람은 김창의 몸속에 자리 잡은 신성을 볼 수 있었다. 그건 오직 영혼의 시야만으로 볼 수 있는 것인데 놀랍게도 그 양이 제법 많았다.

신성이라는 게 꼭 영웅적인 행위로만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기는 하지만 저 칼잡이가 대체 뭔 수로?

이미 저만한 신성을 가지고 있다면 몇 개의 위업을 더 세우는 것으로 반신의 격에 오를지도 모를 일이다.

그리고 거기서 더 많은 신성을 얻게 된다면······.

“누구 맘대로 끼어들어!”

갑자기 들려온 쩌렁쩌렁한 외침에 람이 잡념에서 깼다. 정복자가 성난 얼굴로 김창을 노려보고 있었다.

“이건 내 싸움이다! 설마 내가 질 것 같아서 끼어든 거냐? 건방진 자식! 내가 우습게 보이냐!”

정복자가 화가 난 건 김창이 멋대로 끼어들었기 때문이다. 그는 아직 싸울 수 있었고 일격을 허용했다고 해도 그건 별로 큰 타격도 아니었다.

성기사인 정복자의 강점은 인간을 초월한 신체 능력에 있다. 그는 무기를 들지 않아도 사람 한 명쯤은 맨손으로 찢어 죽일 수 있다.

또한 창칼에 아무리 찔리더라도 괴물 같은 치유력 덕분에 쉽게 목숨을 잃지 않는다. 거기에 넘치는 신성력의 힘까지 더해지면 그는 말 그대로 죽일 수 없는 불사의 기사가 된다.

“알아. 끝까지 가면 네가 이기겠지.”

정복자는 강하다. 원탁 초기에는 그와 비슷한 수준의 강자들이 몇 있었지만 이제는 확실히 정복자의 아래다.

어째서인가? 그건 정복자가 김창 다음 가는 실전 경험을 갖추면서 기량의 향상을 이끌어냈기 때문이다.

아무리 날카로운 칼이라도 쓰지 않으면 녹스는 법이다. 다른 사람들이 원탁의 비호 아래 방탕한 나날을 보낼 때, 정복자는 한석구의 측근으로서 온갖 어려운 임무를 도맡아 했다.

그 과정에서 수많은 괴물을 죽였고 그때마다 더욱 강해졌다. 본래 그의 신성력은 이 정도가 아니었지만 괴물을 죽임으로써 그 양이 더욱 늘어났다.

그런데도 그가 김창에게 졌던 이유가 무엇인가? 답은 명확하다. 그는 괴물은 잘 죽여도 사람은 죽일 줄 모르기 때문이다.

“만약 네 상대가 괴물이라면 나도 아무 말 하지 않고 양보했을 거다. 그건 네 전문이니까. 그런데 사람이 상대라면 너보다는 내가 나아.”

정복자는 그 말에 반박하지 않았다. 그 역시 아는 사실이니까.

“···하지만 그래도.”

“시간 길게 끌 생각 없다. 이 마을에서 저 사도 놈을 죽이는 게 우리 여행의 목적이냐? 네 원래 목적을 상기해.”

정복자가 입을 꾹 다물고서 뒤로 물러났다. 고깝긴 하지만 억지로 참는 기색이 역력했다.

“기다리게 했군. 사과하지.”

김창이 칼을 비스듬히 눕힌 채로 람을 겨누었다.

“그럼 시작할까.”

바닥을 박차고 뛰어나간 김창의 몸이 마치 화살처럼 곧게 나아갔다. 그 속도가 워낙 빨라서 거리를 좁히는 건 아주 잠깐이었다.

람은 재빨리 새로운 사슬을 만들어내 김창을 향해 날렸다. 차르륵 소리를 내며 날아간 두 줄의 사슬이 뱀처럼 움직이며 칼잡이를 사로잡으려 했다.

그러나 칼을 한 번 휘두를 때마다 사슬은 힘없이 잘려 나갔다. 사슬이 신성력으로 만들어졌으며 그 단단함은 강철에 비할 정도라는 걸 생각하면 어이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람은 그런 일에 일일이 당황하지 않았다. 상대는 다른 누구도 아니고 승천할 자가 아닌가? 저 정도도 못 한다면 승천할 자격은 없는 셈이지······.

“쥐새끼처럼 잽싸군!”

람은 쉬지 않고 사슬을 날렸다. 그게 의미가 없다는 걸 알면서도 더 빠르게 공격을 시도했다.

하늘에서 불티가 튀고 잘려 나간 사슬이 재가 되어 바람을 타고 흩날렸다. 람의 공격은 김창의 움직임을 잠깐 제한할 수는 있었지만 영영 막을 수는 없었다.

기어코 거리를 좁힌 김창이 머리 위로 칼을 들어 힘껏 내리치려 할 때였다.

챙!

분명 머리를 갈랐어야 할 칼이 무언가에 막혔다. 자세히 보니 그건 검은색 사슬이었다. 뱀처럼 흐물거리기만 하던 사슬이 이젠 곧게 서서 마치 막대처럼 단단해져 있었다.

저런 식으로 쓸 수도 있었나? 김창이 감탄하는 사이에 람이 반대쪽 손을 휘둘렀다.

“잡았다!”

람은 오른손으로는 칼을 막고, 왼손으로는 사슬을 날려 칼을 붙잡았다. 확실히 김창의 움직임을 봉쇄하긴 했지만 저래선 자기도 공격할 방법이 없지 않나?

김창이 눈썹을 까딱거리는 사이에 람이 쿵 하고 발을 굴렀다.

“솟아라!”

쿠구궁! 땅이 흔들리더니 갑자기 사방에서 거대한 사슬이 치솟았다. 그건 사슬이라기보다는 어떤 거대한 괴물의 촉수 같아서 상당한 위압감이 느껴졌다.

머리 위로 늘어진 거대한 그림자에 김창조차 흠칫 놀랄 정도였다. 칼을 붙잡힌 상태에서 머리 위로 저만한 사슬이 떨어진다면?

그러면 온몸이 짓눌려 형체조차 알아볼 수 없는 지저분한 시체가 되고 말 것이다. 그러면 이제 어찌 해야 하나?

답은 간단했다. 김창은 칼을 버렸다.

“···음?”

칼을 꽉 붙잡고 있던 사슬이 갑작스레 느슨해지자 람이 멍청한 소리를 냈다. 김창은 그런 그의 얼굴에 주먹을 꽂아주었다.

“큭!”

람은 바보가 아니다. 갑작스러운 상황 변화에 언제까지고 멍청하게 있지만은 않는다. 그는 김창이 칼을 버렸다는 걸 알았고, 주먹이 날아온다는 것도 알았다.

그러나 완벽하게 대처하진 못했다. 둔탁한 타격음과 함께 람의 얼굴이 홱 돌아갔다. 입 안이 찢어져서 찝찔한 맛이 느껴졌다.

김창이 말했다.

“왜, 칼잡이라고 칼싸움 말고는 할 줄 모르는 줄 알았나?”

람이 으르렁대는 목소리로 외쳤다.

“···감히!”

머리 위로 떴던 거대한 사슬들이 그대로 낙하했다. 저 거대한 사슬이 머리를 박살 낼 때까지 남은 시간은 그리 많지 않았다.

점차 가까워지는 사슬의 그림자를 보면서 김창은 몸을 날렸다. 공격 범위 바깥이 아니라, 람을 향해서.

“이 미친놈!”

이 상황에서까지 싸우겠다고? 미친 게 아닌가? 이러면 자신 역시 공격의 영향은 받겠지만 그 결과가 동귀어진이라면 그게 대체 뭔 의미가 있나?

저 칼잡이가 설마 자기 목숨을 내버려서까지 마을 사람들을 지킬 만큼 정의감 넘치는 놈처럼 보이지도 않는데······.

“저지하라!”

람은 입술을 깨물면서 양손에서 사슬을 발사했다. 날아간 사슬이 김창의 사지를 붙잡으려 했지만 둘 다 그 손에 붙잡혔다.

김창은 위에서 거대한 사슬이 떨어지든 말든 신경 쓰지 않고 양손으로 사슬을 붙잡아 람을 이쪽으로 힘껏 잡아당겼다.

“같이 죽기라도 할 셈이냐? 하, 죽음의 사도인 내가 죽음을 두려워할 것 같으냐!”

머리 위로 거대한 사슬이 떨어지기까지 1초. 람은 양손의 사슬을 거두고 김창을 향해 달려갔다.

그 누구도 다가오는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가운데, 두 사람이 격돌했다. 힘껏 휘두른 주먹에 람의 얼굴이 돌아갔고 연이어 날아온 발차기에 몸이 뒤로 넘어졌다.

그러면서 람은 다시 양손의 사슬을 날려 양쪽에서 김창의 몸을 후려쳤다. 보통 사람이라면 뼈가 다 부러졌어도 이상하지 않을 타격이었다.

그러나 김창은 얼굴만 약간 찡그렸을 뿐 신음 한 번 흘리지 않았다. 그 말도 안 되는 반응에 람이 질렸다는 듯 얼굴을 흔들 때였다.

바람이 불었다. 불온한 바람이.

“···설마.”

람은 어느새 김창의 손에 칼이 들려있는 걸 봤다. 분명 아까 스스로 버렸는데? 잠깐만, 그럼 이 위치는······.

“나랑 같이 죽으려고 돌진한 게 아니라 칼을 주우려고······.”

무슨 생각인지 알겠지만 그래서 더 황당했다. 무기가 없으면 싸울 수 없지만 지금 이 상황에서 무기가 생긴다고 뭐가 달라지나?

저 칼 한 자루 가지고 뭘 할 수 있다고? 설마 정복자처럼 자기 무기를 던져서 공격하려는 건 아닐 텐데.

람이 헛웃음을 흘리며 재빨리 사슬이 떨어지는 범위에서 벗어날 때였다.

김창이 하늘을 향해 칼을 휘둘렀다.

“···뭐?”

하늘에서 잿빛이 흩날렸다. 그건 수십 조각으로 잘려 흩어진 사슬의 재기도 했으며 또한 그걸 갈라버린 잿빛의 칼날이 남긴 흔적이기도 했다.

너무 많은 재가 흩뿌려져 하늘이 흐러졌을 때, 람은 저도 모르게 깨달았다. 온다, 죽음이 온다.

“오러라고······?”

승천할 자라면 당연히 갖춰야 할 재주다. 하지만 아무리 오러를 다룰 수 있다고 해도 저 거대한 사슬을······.

“잘 봐라.”

김창이 자세를 낮추고 오러가 담긴 칼날로 람을 겨누었다.

“사람은 이렇게 죽이는 거다.”

람은 더는 당황하고 있지 않았다. 그는 지금껏 아끼고 있던 모든 신성력을 짜냈다.

쿠구궁! 바닥이 떨리며 거기서 사슬이 솟아올랐다. 이번엔 고작 사슬 서너 개 불러내는 정도가 아니었다.

마치 개미굴을 들쑤신 것처럼 수없이 많은 사슬이 한꺼번에 땅을 뚫고 올라왔다. 그것은 모두가 살아있는 생명체처럼 움직였으며 또한 하나의 목적만을 위해 움직이는 군체였다.

감히 눈으로 셀 수도 없을 정도로 많은 사슬이 일시에 김창을 공격했다. 너무나 빽빽하게 들어차서 서로가 서로에게 부딪힐 정도였다.

그만한 사슬을 한꺼번에 불러낸 람은 허억허억 소리를 내며 거친 숨을 내뱉었다. 됐다, 아무리 승천할 자라도 이만한 공격에선······.

“이게······.”

빛이 번쩍인다.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횡으로 곧게 나아간 빛의 선이 사슬들의 허리를 일격에 잘랐다.

허리가 잘려 나간 사슬들은 허공을 날면서도 다시 김창을 노렸다. 하늘을 빙빙 돌다가 다시 방향을 되찾아 김창을 향해 쏜살처럼 날아갔다.

그러나 결과는 똑같았다. 감히 눈으로 좇을 수도 없을 정도로 빠르게 휘두르는 칼날에 의해 사슬들이 갈려 나갔다.

때마침 불어온 바람이 무수히 많이 쏟아지는 재를 한곳으로 몰아냈다. 그건 이제 재의 구름이 되어 람의 얼굴에 확 몰아쳤다.

람은 우두커니 서서 재의 구름 너머를 쳐다봤다. 온통 회색만이 가득한 구름 속에서 똑같은 잿빛이지만 홀로 빛나는 것이 있었다.

칼날이 섬뜩했다. 람은 저걸 보고서 자신의 운명을 직감했다.

“나는 모르스의 사도로서 언제나 죽기 위해 살아왔다······.”

자신은 죽는다. 오늘 여기서 확실하게.

“···덤벼라, 승천할 자! 나는 오늘 여기서 영광된 죽음을 맞이하리라!”

람이 바닥을 드러낸 신성력을 억지로 짜내 사슬 하나를 만들어냈다. 그리고 그걸 딱딱하게 굳혀 휘둘렀다.

잿빛의 칼날이 사슬은 물론이고 그 어깨까지 잘라 버렸다. 람은 빙글빙글 돌아가는 자신의 어깨를 보며 만족했다.

“과연 영광된 죽음이로다······.”

뭔 염병할 소리야. 김창이 그 몸을 대각선으로 갈랐다. 피가 확 하고 튀더니 람의 몸이 털썩 스러졌다.

“음.”

김창은 람을 쓰러트리고서 눈을 감았다. 자신의 내면 속에 있는 신성이 제법 늘어난 걸 느꼈다.

굳이 시험해보지 않아도 자신의 육체가 얼마나 더 강해졌는지 충분히 알 수 있었다.

“그런데 너무 많은데.”

신성이 늘어난 건 기쁘다. 하지만 생각한 것보다 많은 양이라서 뭔가 이상함이 느껴졌다.

람은 분명 강하고 신성을 줄 만한 적이다. 하지만 특출나게 강하냐고 하면 그건 또 아니었다.

모르스의 사도치고 할 줄 아는 건 그냥 사슬 날리는 것뿐인데 그 정도 수준의 적을 죽인 것치고 너무 많은 대가를 받았다.

모르스의 사도니까 특별히 더 값을 더 쳐줬나? 그런 거라면 이제부터 신전을 습격하고 다녀야 할지도 모르겠는데······.

김창이 쓸데없는 생각을 하고 있을 때였다. 죽은 줄 알았던 람이 억지로 입을 열었다.

“승천할 자야, 모르스께서 널 지켜보신다······.”

뭔 뜬금없는 소리인가? 김창이 람을 가만히 쳐다보다가 말했다.

“뒈지기 싫으면 쳐다보지 말라고 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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