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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겜 속 칼잡이-68화 (68/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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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우리 친구는 이름이 뭐지?”

정복자가 묻자 소년이 떨리는 목소리로 답했다.

“이정민이요······.”

“나이는?”

“열다섯이요.”

이거 진짜 중2였네. 김창이 어이없다는 듯 허 하고 웃는데 정복자가 말했다.

“열다섯? 중학생이네? 야, 인마. 이거 청소년 이용 불가인 거 몰라? 게임을 하려면 다른 걸 하던가 왜 이런 똥겜을 해? 요즘 재밌는 게임 많잖아.”

보통 어른이라면 학생이 뭔 게임이냐고, 그 시간에 공부나 하라고 말할 테지만 정복자는 그러지 않았다.

당장 자신만 해도 새벽에 게임 하다가 여기 끌려왔는데 뭔 자격으로 그런 소리를 하나? 애초에 게임 하는 게 무슨 죄도 아닌데 잘난 듯 굴 이유가 없다.

이정민이 정복자의 눈치를 슬쩍 보더니 말했다.

“그게, 용돈 좀 벌려고······.”

“용돈? 이 게임 하는 거랑 용돈 버는 거랑 뭔 상관이야?”

“이 게임 쌀먹 되잖아요. 용돈 가지곤 사고 싶은 거 다 못 사니까 어디서 돈 벌긴 해야 하는데, 중학생은 알바 안 시켜주니까 대신 이거 하는 거죠. 이건 집에서 하는 거니까 누구 눈치 볼 필요도 없고······.”

정복자는 어이가 없어서 헛웃음을 터트렸다. 이 자식 이거 그냥 게임 좋아하는 놈인 줄로만 알았더니 이게 대체 뭔가?

사고 싶은 게 있는데 알바는 못 하니까 쌀먹을 한다고? 이게 보통 중학생이 할 만한 발상인가?

그래도 자기보다 약한 애들 삥 뜯어다 뭘 사진 않으니 잘했다고 칭찬해줘야 할까? 남 인생은 안 망치고 자기 인생만 망치고 있으니 다행인 일이라고 해야 하나?

‘어른들이 요즘 애들이 어쩌고 할 땐 그렇게 듣기 싫었는데, 내가 하게 될 줄은 몰랐네. 하여튼 요즘 애들은······.’

정복자가 자신을 멀뚱히 쳐다보고 있는 이정민을 향해 한숨을 내뱉었다. 가만히 있던 김창이 말했다.

“말하는 걸 보니 얘는 산자이랑 말이 잘 통하겠네.”

정복자가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말라고 눈을 흘겼지만 김창은 신경 쓰지 않았다. 이정민이 물었다.

“산자이가 누구죠?”

“있어, 작업장 돌리다가 끌려온 짝퉁 요정 놈.”

나름 자세한 설명이었지만 이정민은 얼른 알아듣지 못했다. 세상에 짝퉁 요정 같은 것도 있나? 그가 멍청하게 눈을 깜빡일 때였다.

“일단 내려가면서 이야기하자.”

세 사람은 탑의 1층을 향해 내려갔다. 한 층을 지날 때마다 온갖 강력해 보이는 괴물의 시체가 즐비한 걸 보고서 이정민이 힉 소리를 냈다.

“저, 저거··· 형들이 다 죽인 건가요?”

“내가 죽인 건 아니고 쟤가.”

김창이 턱짓으로 정복자를 가리켰다. 그 널찍한 등을 보던 이정민이 멍하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정민아? 너 왜 원탁 가입 안 했어?”

문득 날아온 질문에 이정민이 어어 소리를 냈다. 그가 멍청한 목소리로 물었다.

“원탁? 그게 뭐죠···?”

“아니, 원탁이 뭔지도 몰라? 그러면 너 우리가 누구인 줄 알고 따라가는 거야? 우리가 너 납치해서 어디 팔아버리면 어쩌려고?”

그 말을 듣자 이정민은 덜컥 겁이 났다. 생각해보니 자신은 이 사람들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르질 않나?

분명 자기를 구해주긴 했지만 그게 꼭 선의 때문이라고 생각하긴 어렵다. 다들 생긴 것만 봐도 나쁜 짓 제법 했을 것 같은데 정말 이대로 어디 팔아버리는 건······.

“야, 애 겁먹잖아. 그런 소리는 왜 해?”

김창이 핀잔을 주자 정복자가 어깨를 으쓱였다.

“그냥 한 소리야. 그러니까 너무 겁먹을 거 없다, 정민아. 우리가 무슨 인간 사냥꾼도 아니고 사람 잡아다 어디 팔고 그런 짓 안 해.”

이정민이 안도한 듯 고개를 끄덕이자 김창이 말했다.

“그래. 우리가 돈 받고 사람 죽이긴 해도 그런 짓은 안 해.”

이정민의 얼굴이 다시 창백해졌다.

“···너나 애 겁먹게 그런 소리 하지 마.”

“내가 뭘?”

정복자가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가 이정민을 향해 물었다.

“그래서 너, 원탁이 뭔지 몰라서 지금껏 가입 안 했던 거야?”

“네. 저는 게임 속에 끌려올 때 외딴 섬에 떨어져서요. 줄곧 거기서 머물렀던 탓에 바깥 이야기는 잘 몰라요.”

“섬? 이 게임에 있는 섬은 그냥 배경 아닌가? 바다에 들어갈 수는 있어도 애초에 섬까지는 못 가잖아.”

“아, 그거 맵뚫 버그 쓰면 맵 바깥까지 나갈 수 있어요. 제가 심심해서 그거 쓰다가 여기 끌려온 거라 저 혼자만 섬에 떨어진 것 같은데요.”

이 새끼 진짜 별걸 다 하네. 정복자가 하여튼 요즘 애들은··· 하고 중얼거리다가 말했다.

“어쨌건 원탁에 대해서 설명해줄 테니까 너도 이번에 가입해라. 거기 가입하면 뭐가 좋냐면······.”

정복자는 이정민을 붙잡고 마치 보험 판매원처럼 원탁에 가입하면 좋은 점을 열렬히 설명했다.

아직 나이가 어리고 판단력이 약한 이정민이 닳고 닳은 영업직 출신인 정복자의 말솜씨로부터 벗어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몇 분 설명하지도 않았는데 이정민은 당장 원탁에 가입하겠다고 말했다. 그 모습을 보며 정복자가 흐뭇하게 웃었다.

“가면 석구가 좋아하겠는데. 원래 플레이어는 줄기만 하고 늘지는 않는 법인데, 생각지도 못하게 한 명이 더 늘었으니까······.”

확실히 그럴 터다. 망겜은 원래 뉴비가 없는 법이고, 고인물은 뉴비가 생기면 열렬히 환영하는 법이니까.

물론 쌀먹까지 하던 이정민을 뉴비라고 보긴 어렵지만 어쨌건 원탁 입장에선 새내기가 아닌가.

“다 내려왔군.”

드디어 1층까지 내려온 김창이 탑의 문을 열었다. 그 안에 있으면서 시간이 제법 흘렀을 테지만 세상은 아직 밤이었다.

“당신들은······.”

마법사가 탑에서 나오는 김창 일행을 보고서 두 눈을 크게 떴다. 그가 얼른 달려와 말했다.

“그 플레이어 놈을 무찌른 겁니까? 이제 이 탑에는 평화가 돌아온 건가요?”

“그래. 안에 들어가면 청소 좀 해라. 괴물 놈들 시체가 많으니까.”

“정말 감사합니다! 덕분에 우리의 보금자리를 되찾았군요! 이걸로 연구를 이어나갈 수 있게 됐습니다! 대체 어떻게 감사를 드려야 할지······.”

선물로 뭘 줘야 할지 모를 때는 그냥 현찰을 주는 게 제일이다. 보답으로 뭘 줘야 할지 모를 때도 마찬가지다.

김창은 돈 있는 대로 다 가져오라고 말하려다가 문득 생각을 바꿨다.

“혹시 차원문 열 줄 아나?”

“차원문이요? 네, 물론 압니다. 어디로 가시려고요?”

“칼라드.”

“원탁이 있는 곳이군요. 알겠습니다. 곧장 열지요.”

마법사가 차원문을 열러 떠났다. 그 모습을 보던 정복자가 웃으며 말했다.

“머리 좀 썼는데? 덕분에 걸어갈 필요가 없어졌군.”

“확실히 파티에 마법사가 하나 있긴 해야 해. 우리 같은 놈들은 뭔가를 잘 죽이긴 해도 이런 데선 별 쓸모가 없으니 말이야.”

김창의 말에 정복자도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두 사람은 차원문이 열릴 때까지 잠깐 대기하며 잡담을 나누었다. 심민우라면 금방 열었을 테지만 저 마법사는 차원문 마법에 별 소질이 없는지 제법 시간이 걸렸다.

“······그래서 넌 이제부터 어쩔 거냐?”

“어쩌긴? 가서 팔자에도 없는 영주 노릇 해야지. 물론 영지 관리는 내가 하는 게 아니고 다른 사람이 하겠지만. 이거야 원, 이게 바지사장이랑 다를 게 뭐야?”

뭐가 다르긴? 원래 뭔 일 터지면 바지사장이 다 뒤집어쓰지만 정복자는 아닐 거라는 점이 다르다.

누가 감히 플레이어에게 죄를 묻겠는가? 만약 영지에 역병이 돌아서 영지민이 전부 죽더라도 그건 정복자의 책임이 될 수 없다.

그의 강함이 곧 죄에 대한 면죄부가 될 테니까.

“그러는 넌? 이제 뭘 할 거야?”

“일단 원탁에 돌아가야지. 딱히 네가 이번 여정에서 별 도움이 되진 않았지만 어쨌건 날 도우려고 했던 건 사실이니까. 그러니까 나도 네 체면 한 번 봐줘야지.”

“···참 말 띠껍게 잘해. 그래서, 그 뒤에는? 너 원탁에 영영 머물 거 아니잖아.”

“물론 아니지. 적당히 석구 놈 말 들어주다가 몰래 튈 거다.”

“어디로 가려고?”

김창이 뭘 당연한 걸 묻느냐는 듯 대답했다.

“현피 신청했는데 저 새끼가 집 주소 안 알려주고 튀었잖아. 그러니 내가 직접 찾아가서 머리채 잡고 끌고 나와야지.”

그러니까 하이나를 찾아내서 기어코 죽이겠다는 소리다. 정복자가 웃음기 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자신 있나?”

“붙어봐야 알 일이지.”

“그러다 죽으면? 꼭 그 마법사랑 싸울 이유가 있나? 건드리지 않고 그냥 두면 아무 일도 없을 것 같은데 굳이 벌집을 들쑤셔야 할 이유가 있느냐고.”

물론 하이나는 플레이어인 이장민을 건드리긴 했다. 하지만 그건 이장민이 원탁에 가입하지 않고 혼자 돌아다녀서 표적이 된 것뿐이다.

다른 플레이어들처럼 원탁에 몸을 의탁하면 승천할 자든 뭐든 제깟 게 어떻게 감히 플레이어를 건드리겠는가?

“벌집을 안 건드린다고 벌이 사람을 안 쏘진 않지. 더군다나 수정구가 하이나에 대해 경고하지 않았던가? 그러니 걘 언젠가 사람을 쏠 거야. 그러니 미리 벌집 좀 부수겠다는데 그게 문제가 되나?”

“네가 무슨 용사 같은 거였다면 나도 그 말에 동의했을 거야. 그런데 아니잖아. 차라리 돈을 받고 걔를 죽이러 가는 거라면 이해하겠지만, 이번엔 굳이 왜? 신성 때문에? 그게 목숨보다 중요한가? 넌 죽음이 두렵지 않은 거냐?”

김창은 강하다. 대악마를 혼자서 무찌를 정도니까.

하지만 만약 하이나가 대악마보다 더 강하다면? 심지어 김창보다도 더 강하다면? 그러면 죽음은 피할 수 없는 필연적인 운명이 된다.

그게 두렵지 않을 수 있나? 다가올 죽음이 두렵지 않아? 사람이라면 그럴 수 없다, 사람이라면······.

“사람은 원래 죽어.”

말이야 맞는 말이지만 이건 또 뭔······. 정복자가 아연한 얼굴로 쳐다보자 김창이 말을 이었다.

“죽으면 어쩌냐고? 그러면 그냥 죽는 거지 뭘 어째. 어쩌면 죽으면 로그아웃이 돼서 현실로 돌아가는 걸지도 모르잖아. 물론 돌아가봤자 별로 좋을 건 없겠지만.”

가벼운 말투와 다르게 그 목소리는 묵직했다. 정복자는 김창의 고요한 두 눈을 보고서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았다.

자신은 지금까지 돈 받고 사람 죽여주는 이 칼잡이가 남의 목숨을 우습게 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건 착각이었다. 김창은 남의 목숨을 우습게 아는 게 아니다. 그저 자신의 목숨조차 저울에 올려 무게를 맞추고 있을 뿐이다.

그는 언제나 누군가를 죽일 때 제 목숨을 저울에 올려 균형을 유지한다. 지나칠 정도로 균형에 집착하기에 오히려 무게의 경중이 사라지고 말았다.

정복자는 잠깐 입을 다물었다가 나직이 말했다.

“···조심히 갔다 오라는 말 외에는 해줄 게 없네.”

“징그럽게 왜 그러냐? 그냥 욕이나 한 번 박아.”

그 말에 정복자가 웃었다.

“씹새, 얼른 꺼져.”

그 말에 김창도 웃었다. 두 사람의 대화를 가만히 듣고 있던 이정민이 왜 저러는지 몰라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을 때였다.

누군가 뚜벅뚜벅 다가왔다.

“저기······.”

고개를 돌려보니 마법사였다. 아마 차원문이 완성된 모양이었다.

“끝났나? 이제 가면 돼? 혹시 우릴 엿 먹이려고 이상한 곳으로 연 건 아니겠지.”

“제 목숨을 걸고 그런 일은 없습니다. 애초에 제가 왜 그래야 합니까?”

김창이 어깨를 으쓱였다.

“하긴. 그러면 갈까?”

“아, 그 전에 한 가지 말씀드릴게······.”

또 뭐? 김창이 눈썹을 까딱이자 마법사가 은근한 목소리로 말했다.

“아까 듣자 하니 누굴 찾으시는 것 같던데요. 그럼 제가 거기에 대해 도움을 좀 드릴 수 있을 것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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