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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겜 속 칼잡이-69화 (69/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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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은 은근한 목소리로 속삭이는 마법사를 쳐다봤다.

“내가 누구를 찾고 있는지도 모르면서 뭘 도와주겠다는 거냐?”

“전 추적 마법의 달인입니다. 누가 어디서 숨어 있든 귀신처럼 찾아내죠.”

마법사가 그런 마법을 왜 익혔는지 모를 일이다. 군 소속 마법사라면 전투의 효율을 위해 수색 마법을 익히기도 한다지만 이 마법사는 마탑 출신이니 그런 것도 아닐 텐데.

“추적 마법은 왜 배웠지?”

“집 나간 마누라 찾으려고 배웠습니다. 아직 못 찾았어요.”

그러면 추적 마법의 달인이 아니잖아. 김창이 미심쩍은 눈으로 마법사를 쳐다봤다.

“그걸 쓰면 상대가 누구든 바로 찾아낼 수 있나?”

“웬만해서는요. 저보다 강한 마법사가 아니라면 제 추적 마법으로부터 벗어날 수는 없습니다.”

그러면 안 되겠는데. 김창이 잘은 몰라도 이 마법사가 하이나보다 강해 보이진 않았으니까.

그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아쉽게도 네 도움은 받을 수 없겠군. 내가 찾는 건 너보다 강한 마법사야.”

“마법사요? 그러면 제가 또 도움을 드릴 수 있겠군요.”

지금까지 도움이 된 게 하나도 없는데 뭘 자꾸 도와주겠다는 건가? 김창이 어이없다는 듯 마법사를 쳐다봤다.

아무래도 그는 어떤 식으로든 김창에게 도움을 주고 싶은 모양이었다. 하기야 그 덕분에 다시 탑에 돌아갈 수 있게 됐으니 고마움을 느낄 만도 했다.

김창은 일단 말부터 들어보기로 했다.

“어떻게 날 돕겠다는 거냐?”

“저는 마법사 사회에서 제법 인맥이 있습니다. 제 자랑은 아니지만 저보다 강한 마법사는 그 숫자가 그리 많지 않습니다. 그러니 제 도움이 있으면 금방 찾을 수 있지 않겠습니까?”

김창이 마법사를 가만히 쳐다봤다. 별로 안 강해 보이는데······.

애초에 이만한 숫자가 한데 모여 있는데 이정민 하나를 못 당해서 탑에서 쫓겨난 걸 보면 그 수준을 짐작할 만하다.

마탑주 정도 된다면 강하다고 자만해도 되지만 이깟 마법사 놈이 자기가 제법 강하다고 말하니 우스운 일이다.

하지만 그런 말은 굳이 하지 않았다. 김창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래서?”

“일단 그 마법사의 이름부터 알 수 있을까요?”

김창이 비웃음 비슷한 걸 만들며 말했다.

“하이나.”

“하이나? 어디서 많이 들어본 이름인데······.”

그야 많이 들어봤겠지. 이 세상에 몇 없는 승천할 자인데. 김창이 혼자서 실실 웃고 있으니 마법사의 얼굴이 갑작스레 창백해졌다.

“···하이나? 설마 제가 아는 그 하이나인가요?”

“네가 아는 하이나가 누구인지는 몰라도 내가 아는 하이나는 하나뿐인데.”

“이럴 수가······. 대마법사 하이나라면 확실히 제 추적 마법이 통하지 않을 만도 하군요.”

“그래서 그 하이나도 네가 자랑하는 마법사 인맥으로 찾아낼 수 있나?”

김창으로선 반쯤 비꼬듯 한 말이었는데 마법사는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거야 물론이죠. 애초에 제 인맥을 동원하고 말 것도 없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하이나가 어디 사는지는 세상 모두가 다 아는걸요.”

난 모르는데? 하이나가 그 정도로 유명했나? 그녀가 어디 사는지 사람들이 다 알 정도로? 정말로 그런 거라면 대단한 사생활 침해인데.

김창이 멍청한 생각을 하고 있을 때 마법사가 말을 이었다.

“하이나는 오산트 섬의 주인이자 여왕입니다. 세상에 그녀를 모르는 사람은 없을걸요. 적어도 마법사 중에선. 오산트 섬은 온갖 마법사들이 모여드니까요.”

김창은 하이나가 어딘가에 숨어 살고 있을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던 모양이다. 원래 저 정도 되는 고수라면 신비주의 컨셉을 잡고 은거하는 게 보통 아닌가?

게다가 말 들어보니 제법 오래 산 것 같은데 그 정도 되는 짬이 아직도 현장 뛰고 있으면 후배들도 눈치가 보이지 않겠나······.

‘하기야 생각해보면 숨어 살 이유가 없긴 하네. 저만큼 강하면 자기 맘대로 뭐든 할 수 있을 텐데 굳이······.’

승천할 자 정도 되는 존재라면 아주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을 테니 숨어 살 이유가 없긴 하다.

당장 한석구만 해도 원탁을 이끌며 칼라드에서 실질적인 영주 노릇을 하고 있지 않은가. 다른 세상에서 온 한석구조차 그럴진대 원래 이 세상의 주민이었던 하이나라고 다를 리는 없다.

“왜 자기 집 주소 안 가르쳐주나 했더니, 그게 당연히 알고 있으리라 생각해서 그런 거였네······.”

김창은 자신이 잠시나마 하이나를 오해했단 사실에 헛기침을 했다. 어쨌건 찾아가서 죽이겠다는 마음은 변하지 않았다.

“그래서 그 오산트 섬이라는 데는 어디야? 칼라드에서 많이 머나? 애초에 차원문 마법 쓰고 갈 테니 거리는 상관없을 테지만.”

“오산트 섬에는 차원문을 열 수 없습니다. 하이나의 마법 때문이죠.”

그러면 배 타고 직접 가야 한다는 소리다. 하여튼 귀찮은 놈. 김창이 쯧 하고 혀를 차자 마법사가 말했다.

“칼라드에서 오산트 섬까지 가려면 제법 시간이 걸릴 겁니다. 아무래도 일단 항구까지 가야 할 테니까요. 물론 항구까지 차원문 마법으로 간다면 시간을 많이 단축할 수 있겠죠. 가까운 항구 도시에서 오산트까진 또 얼마 안 걸리거든요.”

그러면 일단 칼라드에 들렀다가 심민우의 도움으로 항구 도시까지 이동하면 될 터였다. 거기서부터는 배를 타고 이동해야 할 거고.

김창이 고개를 끄덕이자 이정민이 말했다.

“저 오산트 섬 어디 있는 줄 알아요. 제가 있던 곳이 거기거든요.”

대체 어딜 싸돌아다니다가 하이나한테 붙잡혔나 했더니 거기 있었나? 김창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러면 오산트 섬 위치는 너한테 물어보면 되겠고. 자, 문제 다 해결됐군. 차원문 다 열었지? 그럼 원탁으로 가자.”

일이 잘 풀리는 느낌이다. 김창의 말에 정복자와 이정민이 고개를 끄덕였다.

“제가 도움이 됐다니 정말 기쁩니다. 다음에 또 이 탑에 들려주시죠. 그땐 극진히 대접할 테니까요.”

“그래, 너희도 사람 조금만 죽이고 건강히 잘 지내라.”

보통 그럴 땐 사람 죽이지 말라고 해야 하는 거 아닌가? 정복자가 어이없다는 듯 쳐다봤지만 김창은 대꾸하지 않았다.

하기야 개가 똥을 끊지, 자칭 선량한 흑마법사들이 사람 죽이지 말라고 안 죽일 리는 없다.

그러면 여기서 싹 다 죽이고 가야 할까? 정복자는 고민스러웠다.

“간다.”

고민하는 사이에 김창이 차원문을 통과했다. 정복자와 이정민도 얼른 그 뒤를 따랐다.

마법사의 차원문은 심민우의 것만큼 안정적이진 않아서 통과하고 나니 약한 현기증이 느껴졌다.

정복자는 얼굴을 찡그리고 있는 김창을 향해 물었다.

“쟤네 그냥 둬도 되나? 나쁜 놈들이잖아.”

“내가 장담하는데, 마탑에 연락해두면 걔네가 차원문 열고 찾아가서 하루 만에 쑥대밭으로 만들걸. 걔네 마탑에 복수가 어쩌고 하는 것치고 실력 보니 상대도 안 되겠더구만.”

그런가? 정복자가 방에 돌아가면 마탑에 연락을 보내야겠다고 생각했다.

“와, 여기가 원탁인가요?”

이정민은 원탁의 거대한 규모를 보고서 깜짝 놀란 듯 입을 헤 벌리고 있었다. 마치 서울에 처음 온 촌뜨기처럼 행동하는 걸 보고서 정복자가 작게 웃었다.

그가 이정민의 어깨에 손을 올리며 말했다.

“인마, 이 정도로 놀라면 어떡해? 여긴 입구고 안에 들어가면 더 깜짝 놀랄걸. 여기가 어지간한 영주궁보다 더 크고 넓어. 시설도 별게 다 있고. 아, 맞아. 너도 방 하나 내줘야겠다. 일단 석구한테 보고부터 하고······.”

세 사람은 복도를 걸었다. 걷다 보니 여러 사람과 마주쳤고 모두 처음 보는 얼굴인 이정민에게 반응을 보였다.

“어라? 그 꼬맹이는 누구야?”

“정민이. 나쁜 마법사한테 붙잡혀 있던 거 이번에 구해왔어.”

“뭐야, 중학생인 것 같은데 플레이어야? 부모님 계정 썼나?”

“그렇다던데.”

“참 별놈이네. 내가 어릴 때 야동 본다고 부모님 주민번호 쓴 적은 있어도 게임 하려고 그런 적은 없는데······.”

지나가는 사람마다 누구냐고 묻는 통에 이정민은 약간 움츠러들었다. 그럴 때마다 정복자가 괜찮다고 어깨를 두드려주는 덕에 겨우 정신을 다잡을 수 있었다.

“어라, 복자 오빠? 이제 돌아왔어요?”

걷다 보니 마주친 사람 중에 접수원 아가씨인 서수민도 있었다. 그녀가 정복자를 향해 인사하다가 이정민을 발견하고 어머 소리를 냈다.

“웬 꼬마?”

“원탁 뉴비야. 자세한 건 나중에 설명하고. 석구는? 집무실에 있어?”

“의장님은 지금 정원에 가셨어요. 요즘 꽃 가꾸는 게 취미라던가?”

그 우락부락한 덩치로 꽃 가꾸기를 하고 있을 건 상상하니 조금 우습다. 김창이 픽 웃는 사이에 서수민이 그들을 스쳐 지나갔다.

“저 바빠서 먼저 가요. 꼬마야, 나중에 인사하자!”

서수민이 손을 흔들자 이정민도 어색하게 손을 흔들었다.

“그러면 일단 정원으로 갈까.”

정복자를 선두로 나머지 두 사람이 뒤를 따랐다. 그들은 곧 정원에 도착했고 잘 가꿔진 수목과 마주했다.

물론 그건 한석구가 아니라 정원사가 가꾼 것이었다. 한석구가 하는 거라곤 기껏해야 화단에 꽃 몇 송이 가꾸는 게 전부일 테니까.

“저기 있군.”

한석구는 물뿌리개를 들고 화단에 물을 주고 있었다. 정복자가 그쪽을 향해 성큼 다가갔다.

“어이, 석구.”

“···음?”

갑작스러운 부름에 고개를 돌린 한석구가 눈을 크게 떴다가 곧 가늘게 좁혔다.

“너······. 내가 김창 데려오라고 보낸 지가 언젠데 이제 돌아와? 어디서 뭐 했어?”

“뭐하긴? 데려오라고 해서 데려왔잖아.”

한석구가 정복자 뒤쪽에 선 김창을 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데려오긴 했네. 그런데 왜 이렇게 오래 걸렸냐고.”

“아, 그거 말인데 이야기하자면 길다. 그것보다 원탁에 식구가 한 명 더 늘었어.”

“뭐? 이미 플레이어들 원탁에 다 가입했는데 그게 뭔 소리······.”

한석구가 처음 보는 얼굴을 발견하고서 미간을 좁혔다.

“···진짜라고?”

“그래, 뭔 일이 있었냐면······.”

정복자가 지금까지 있었던 일을 간략하게 설명했다. 신전에서 있었던 시비를 설명하면 신전을 불태우니 어쩌고 할 것 같아서 그 일은 대충 뭉개버렸다.

그리고 검은 탑에서 있었던 일을 이야기하면서 정복자는 한석구의 눈치를 슬쩍 봤다.

한석구는 플레이어가 이상한 짓 하고 돌아다니는 걸 아주 싫어한다. 왜냐하면 괜히 설치고 다녔다가 칼 맞고 죽는 놈들이 많으니까.

그래서 이번에 이정민의 일도 어쩌면 화를 낼지 몰랐다. 정복자가 약간 걱정하면서 이야기를 끝냈는데 한석구가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정민이라고 했나? 너 아주 고생했구나. 이제 여기 왔으니까 다 괜찮아. 오면서 여기 형들 다 봤지? 우리 존나 센 형들이거든? 이젠 너 아무도 못 건드리니까 맘 푹 놔. 이야, 설마 이런 식으로 식구가 하나 더 늘 줄은 몰랐네. 정민아, 뭐 갖고 싶은 거 있어? 형이 처음 만난 기념으로 하나 사줄게.”

이정민에게 살갑게 구는 것을 보니 그가 이상한 짓 하고 다닌 것보다 새로운 식구가 생긴 게 더 기쁜 모양이었다.

정복자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있을 때 김창이 말했다.

“난 얼굴 비췄으니 이제 가봐도 되나? 할 일이 있어서.”

“또 무슨 할 일? 너도 이제 슬슬 정착할 때도 됐는데 어딜 자꾸 싸돌아다녀?”

“나 바빠. 누구 하나 죽이러 가야 해.”

살벌한 소리를 아무렇지 않게 하는 게 우습다. 정복자가 헛웃음을 흘리고 있을 때 한석구가 끙 소리를 내며 말했다.

“또 누굴 죽이러 가는데?”

“하이나.”

정복자는 순간 아차 소리를 냈다. 한석구가 또 화를 낼까 봐 신전 이야기는 물론이요 하이나에 대한 것도 말 안 했는데 김창이 멍청하게 그 이야기를 해버리지 않았나.

이러면 분명······.

“걔가 누군데?”

“아, 그런 애가 있어. 김창이랑 현피 뜨기로 한 앤데, 별건 아니야.”

정복자가 다급히 수습하자 김창도 눈치껏 입을 다물었다. 다행이다. 이러면 한석구가 화낼 일도 없겠지.

정복자가 안도하고 있을 때, 갑자기 이정민이 말했다.

“저 납치해서 갑옷에 처넣은 나쁜 마법사요.”

하여튼 애새끼 저거, 눈치껏 입 좀 닥치고 있으면 안 되나? 정복자가 아이고 하고 신음을 흘렸다.

한석구의 두 눈에 분노가 깃들었다.

“돌았나? 어떤 씹새가 감히 우리 애를 건드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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