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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겜 속 칼잡이-75화 (75/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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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생각을 했다고 해서 그 뜻까지 같은 것은 아니다. 한석구와 하이나가 서로를 보며 놀라고 있었지만 그 방향성은 분명 달랐다.

“원탁의 수장이라고 해서 조금 기대했는데, 고작 이게 전부냐?”

“···뭐?”

하이나가 재미없다는 듯 뻗었던 손을 휙 하고 휘둘렀다. 그러자 지금껏 팽팽하게 유지되던 힘의 균형이 급격하게 무너졌다.

한 치도 물러서지 않고 자신의 영역을 단단하게 지키고 있던 한석구의 마력이 갑작스레 커진 하이나의 마력에 밀리기 시작한 것이다.

자신의 마력이 상대의 마력에 잡아먹히는 걸 본 한석구가 큭 하고 신음을 흘렸다. 그건 그의 상식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마탑주도 내 상대가 안 되는데, 이 녀석은 그런 나보다 더 강하다고? 이게 말이 돼?’

분명히 말해서 한석구는 자신이 이 세상에서 가장 강한 마법사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원탁 안에는 랭킹 1위의 흑마법사가 있으니까.

그러니 그는 세상에서 가장 강한 마법사가 아니다. 하지만 두 번째로 강한 마법사라고 생각하긴 했다.

그도 그럴 것이 자신은 플레이어가 아닌가? 플레이어를 이길 수 있는 것은 같은 플레이어뿐이니 이 세상의 주민 중에서 자신보다 강한 마법사가 있으리라고는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물론 마법사를 제외하고선 자신보다 강한 존재가 있을 수도 있겠지만 어쨌건 마법사 중에선 자신이 2등이라고 확신했다.

그런데 하이나라는 저 마법사는 대체 뭔가? 승천할 자가 어쩌고 하는 놈이기에 웬 허세를 그렇게 부리나 했더니 그게 전부 허세가 아니었다고?

한석구가 부득 이를 갈았다.

‘이거 위험할 수도······.’

한석구의 마력이 차지한 영역이 점차 줄어들고 있다. 이대로 가면 끝없이 늘어나는 하이나의 마력에 압사하게 될지도 모른다.

“겨우 이런 힘겨루기에서 밀리다니. 그럼 본격적인 대결로 갈 것도 없겠군. 이만 죽어라, 원탁의 마법사.”

하이나가 주먹을 꽉 쥐자 크게 펼쳐졌던 마력이 이번에는 점 하나로 응축되기 시작했다. 위에서부터 무게로 짓뭉개버리려는 듯 막대한 양의 마력이 한석구의 마력을 짓눌렀다.

쩌저적! 마력으로 만들어진 영역이 충격을 이기지 못하고 갈라지기 시작하더니 곧 날카로운 소리와 함께 깨졌다.

자신의 영역이 부서지는 것과 동시에 마법사 몸에도 강한 타격이 들어왔다. 마력이 흩어지는 충격에 한석구가 쿨럭 피를 토했다.

하이나의 마력은 영역을 파괴한 것에 멈추지 않고 그대로 한석구의 몸을 짓눌러 버리려 했다.

쐐액! 빠르게 날아간 창이 하이나를 노렸다. 동시에 곧게 뻗어나간 칼이 하이나의 손목을 자르려 했다.

“귀찮은 놈들!”

하이나가 손을 한 번 휘두르자 강한 돌풍이 불면서 티샬레의 창과 김창의 몸을 뒤로 날려버렸다.

티샬레가 손을 뻗어 자신의 창을 붙잡고, 뒤로 밀려난 김창이 재빠르게 전투 자세를 잡았다.

그 모습을 본 하이나가 눈을 가늘게 떴다.

“···그래, 너희도 있었지.”

“설마 비겁하다고 욕하진 않겠지?”

“승리라는 것은 압도적이어야 한다. 그래야만 의미가 있지. 너희 세 명이 한 번에 덤비고서 날 이기지 못한다면 그것만큼 압도적인 승리가 어디 있겠느냐? 오히려 바라던 바다. 덤벼라!”

하이나가 두 눈을 부릅뜨며 손을 휘두르자 주변에 떨어진 돌덩이들이 덜덜 떨리며 공중으로 떠올랐다.

그리곤 김창 일행을 향해 곧장 날아갔다. 하나만 맞아도 뼈가 부러질 만한 공격이었지만 별 의미는 없었다.

쿵! 정신을 차린 한석구가 날린 마법에 돌덩이는 전부 공중에서 요격됐다. 그가 입가에 묻은 피를 손등으로 훔치며 말했다.

“···뒤는 내가 봐줄 테니까 가서 저년 좀 패봐.”

“그러지.”

“맡겨만 주세요!”

김창과 티샬레가 빠르게 튀어 나가는 것과 동시에 하이나의 공격이 시작됐다. 여기가 실내라는 것도 잊었는지 전부 다 화려하고 강력한 공격들뿐이었다.

하이나의 마법은 빠르고 위협적이었다. 불꽃이며 바람, 얼음에 바위까지 솟으며 김창과 티샬레의 접근을 효과적으로 차단했다.

분명 김창과 티샬레뿐만이었다면 제대로 된 접근도 하지 못하고 마법이나 쳐내고 있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그들의 뒤에는 한석구가 있었다. 비록 하이나에게 밀렸다고 해도 그게 그의 실력을 얕잡아 볼 이유가 되진 않았다.

아까의 복수를 하려는 것인지 한석구는 입술을 질끈 깨물고서 마법을 난사했다. 그럴 때마다 공중이며 바닥에서 굉음이 울리고 빛이 터져 나갔다.

과연 그 장면은 게임의 트레일러로 써도 될 만큼 화려했다. 두 마법사의 대결은 물론이고 쏟아지는 마법의 파편을 피해 뛰어다니는 칼잡이와 요정 전사의 모습은 또 어떠한가.

확실히 저런 걸로 영상을 만들었다면 이 게임도 망겜 소리는 안 들었을지도 모른다.

김창은 혼자서 픽 웃으며 칼자루를 세게 쥐었다. 어쨌건 지금 해야 할 일은 정해져 있었다.

“쥐새끼 같은 놈!”

분명 사각에서 파고들었는데 하이나는 바로 알아차렸다. 어쩌면 저건 승천할 자로서 신체가 반신에 가까워지면서 얻은 초인적인 감각일지도 몰랐다.

육감이라고 하던가? 때때로 김창 역시 그런 걸 느낄 때가 있으니 과한 추측은 아닐 터다.

자신의 목을 노리는 칼날을 보면서 하이나가 바로 마법을 사용했다. 이미 한석구와 마법 대결을 벌이고 있으면서 저럴 정신이 있나?

김창이 감탄하면서도 칼날을 뻗는 걸 멈추지 않았다. 애초에 멈출 이유가 없었다. 하이나가 공격을 미리 알고 방어하면 뭘 하나? 결국 막지 못하면 아무 의미가 없는 것을.

“···뭣?”

쨍그랑! 김창의 칼날은 보호막을 부수고 그대로 전진했다. 하이나는 자기 지척까지 다가온 칼날을 보고서 재빠르게 다음 마법을 사용했다.

점멸 마법. 순간적으로 거리를 벌리는 마법.

“이쪽으로 올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그곳에도 이미 티샬레가 기다리고 있었다. 한석구나 하이나보단 실력이 확연히 떨어지지만 그녀 역시 엄연한 마법사.

마력의 흐름을 읽어 상대가 어디서 나타날지 추측하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게다가 상대가 다급한 상황에서 쓴 마법이라면 더더욱.

“딜루키둠과 어머니 나무의 이름으로, 죽어라!”

칼날을 피해서 도망쳤더니 이번에는 창날이다. 하이나가 칫 하고 혀를 차며 한 손은 티샬레를 향해서, 다른 한 손은 한석구를 향해서 뻗었다.

강한 힘에 의해 티샬레가 뒤로 날아가고 열 개도 넘는 마법이 일시에 한석구를 향해 질주했다.

그러나 그걸로는 충분하지 않았다. 마법사의 손은 마법을 토해내는 총구다. 이론적으로 손이 많을수록 더 많은 마법을 쏠 수 있다.

그런 상황에서 한 손을 티샬레에게 써버렸으니 필연적으로 한석구를 상대할 화력은 줄어들고 만다.

“크윽!”

마법과 마법이 부딪혀 절반 이상이 사라졌으나 나머지는 여전히 쏟아지고 있었다. 하이나는 다급히 마력으로 몸을 보호했으나 충격으로부터 완전히 벗어날 수는 없었다.

“···이 빌어먹을 자식이!”

옷 곳곳이 찢어지고 얼굴 주변에 얕은 상처가 생겼다. 그만한 공격에 겨우 그 정도만 상처만 입은 게 과연 대마법사다웠다.

“새끼야, 욕하면서 째려보면 어쩔 건데?”

한석구가 이죽거리면서 마법을 난사하자 하이나도 대응에 나섰다. 또다시 공중에서 빛의 폭발이 연달아 일어났고 그 충격으로 영주궁 전체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이런 상황이면 마법사들도 뭔 일이 있나 궁금해서라도 한 번 와볼 것 같은데 어째서인지 아무도 안으로 들어오지 않았다.

이유는 몰라도 김창 일행으로선 다행인 일이었다.

“양쪽에서 협공하죠!”

티샬레의 외침에 김창이 달렸다. 하이나도 당연히 귀가 있으므로 그 외침을 들었다. 자신에게 두 사람이 달려온다는 것도 알았다.

하지만 지금 정면에는 한석구가 있었다. 지금 가장 위협적인 적은 누구인가? 칼잡이인가? 요정 전사? 아니면 마법사?

“너희부터 죽여주마, 이 쥐새끼 놈들아!”

쿠구궁!

하이나가 쿵 하고 발을 구르자 바닥에서 거대한 벽이 솟아올랐다. 갑작스레 솟아오른 벽이 한석구의 마법을 전부 막아버렸고 하이나는 좌우를 향해 손을 뻗었다.

“나는 스물하나의 마법을 바꾸고!”

티샬레를 향해 빛이 날아갔다. 그건 이름 붙은 마법이 아니라 그냥 엄청나게 많은 양의 마력을 응축해서 쏘아낸 것에 불과했다.

“여덟 마법을 창조했으며!”

그러나 요정 하나를 죽이기엔 충분했다. 아니, 과했다.

“하나의 비전을 휘두르는 자다!”

티샬레가 다급히 보호막을 만들었지만 그건 별 효과가 없었다. 그녀의 몸이 멀리 날아가 벽에 부딪혔다.

요정 전사가 쓰러진 것을 보고서 하이나가 김창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 눈이 마치 야수의 것처럼 흉흉했다.

“또한 승천할 자이니라!”

다른 하나의 마법은 김창을 노렸다. 하이나는 자신의 마력을 짜내 날린 공격이 저 건방진 칼잡이를 찢어버릴 것을 기대했다.

순간 칼이 울었다.

“미안한데.”

서걱!

잿빛의 칼날이 빛을 잘랐다. 좌우로 갈라진 빛은 머리 잃은 뱀처럼 발광하다가 곧 흩어져 사라졌다.

칼날은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칼자루를 쥐고 있는 칼잡이는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달리고 또 달려서 순식간에 하이나와의 거리를 좁혔다.

“그건 나도 마찬가지야.”

하이나는 과연 실력 있는 마법사였다. 보통 이럴 땐 당황해서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죽는 경우가 많은데 어떻게든 마법을 쓰려고 했으니까.

휙! 먼저 뻗은 오른손이 잘려 나갔다. 그 뒤에는 왼손이었다.

두 개의 손이 공중에서 빙글빙글 도는 것이 하이나의 눈동자에 비쳤다. 그녀의 보라색 눈은 이미 사라져 버린 자신의 무기를 보고 있었다.

“얌전히 내 신성이 되어라.”

김창이 칼을 휘두르자 하이나는 감히 저항할 생각을 하지 못했다. 날카로운 칼날이 대각선으로 그 몸 위를 훑고 지나갔고 실밥이 터진 봉제 인형처럼 안에서 피가 확 하고 튀었다.

얼굴에 하이나의 피를 잔뜩 뒤집어쓴 김창은 퉤 하고 침을 뱉어냈다. 개 같은 맛이었다.

“크흐······.”

분명 치명상이었을 텐데 하이나는 아직 움직이고 있었다. 김창은 별로 새삼스럽게 여기지도 않았다.

지금까지 그가 죽인 적들은 전부 죽기 전에 이런저런 궁상을 떨다 갔으니까. 그러니 하이나 역시 그러지 말라는 법은 없었다.

“그래, 죽기 전에 뭔 개소리를 지껄이나 한 번 들어나 보자.”

김창이 칼로 바닥을 짚고 거기에 비스듬히 몸을 기댔다. 여유가 넘치는 그 모습에 하이나가 피 섞인 기침을 토해냈다.

“크흐흐······.”

“뭘 자꾸 쪼개고 있어?”

이거 설마 이미 죽었는데 그냥 웃는 소리만 내고 있는 건가? 원래 사람이 죽으면 사후경직 때문에 움직이는 경우가 있다곤 하지만 웃는 소리를 낸다는 건 들어본 적 없는데······.

“크흐흑, 크흐흐흐!”

얼씨구, 이젠 아주 발작까지 하고 있다. 김창이 미간을 좁히며 일단 저 머리부터 잘라버려야 하나 고민하고 있을 때였다.

“아, 확실히 세 명은 버겁군. 저 요정은 별거 아니었지만 너희 둘은 확실히 성가셨다.”

이 새끼 안 죽었네? 창백한 시체가 멀쩡히 말하는 걸 보니 뭔가 기분이 이상하다. 김창은 역시 머리를 잘라야겠다고 생각하며 머리 위로 칼을 들었다.

“너희는 분명 대마법사 하이나를 이겼다. 인정하지. 그러면 이제 놀이는 그만하고 진짜 싸움을 시작할까?”

“다 죽어가는 시체 놈이 뭔 개소리야? 네가 무슨 리치도 아니고 그 상태에서 뭘 어째······.”

마법의 본질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불가해한 기적이다. 눈으로 보고 그 원리를 따지면서도 결국에는 그 근원에는 도달하지 못한다.

김창은 마법에 대해 잘 모르지만 한 가지는 알았다. 이해할 수 있다면, 그건 이미 마법이 아니라고.

달리 말해서 이해할 수 없다면, 그건 이미 마법이다.

바로 지금처럼.

“이것이야말로 나만이 지닌 비전. 대마법사 하이나는 도달하지 못했지만 승천할 자 하이나는 도달한 지고의 경지.”

세상이 어둡다. 신이 실수록 검은색 잉크를 쏟아부은 것처럼 온통 검은색이다. 그러나 그건 어둠이 아니었다. 그저 검은색일 뿐이다.

실제로 김창은 하이나의 모습을 똑똑히 볼 수 있었다. 공중에 뜬 채로 고고히 이쪽을 내려다보고 있는 승천할 자를.

“승천할 자야, 내 ‘별’에 온 것을 환영한다. 그러면 이제 진짜 싸움을 시작해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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