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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겜 속 칼잡이-84화 (84/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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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탁을 습격할 때부터 제정신이 아니라고 생각하긴 했지만 이게 대체 뭔 개소린가?

김창은 어이가 없다는 듯 개눈깔을 쳐다봤다. 방금 뭐라고 했더라? 자기가 마왕이라고 했던가?

그건 중2병에 걸려 악마를 불러내려 했던 심민우도 하지 않을 소리요, 또한 진짜 중2인 이정민도 하지 않을 소리다.

개눈깔이 나이가 몇인지는 몰라도 먹을 만큼 먹은 성인일 텐데,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저런 소리를 하는 걸 보면 부끄러움이 뭔지 모르는 모양이다.

“네가 마왕이라고? 그러면 나는 뭐 전설 속의 용사쯤 되나?”

“넌 용사를 하기에는 너무 막돼먹었는데.”

목숨 아까운 줄 모르고 저런 소리를 하는 걸 보면 제정신이 아닌 게 확실하다. 김창은 칼자루를 고쳐잡으며 말했다.

“나한테 지고 나서 정신적으로 충격이 많이 컸나 보지? 그래서 어디 산에 들어가서 수련하다가 머리가 돌아버린 거냐? 그런 거라면 정말 유감인데.”

“머리가 돌아? 설마, 내 정신은 지금 멀쩡하다.”

“멀쩡한 놈이 자기 보고 마왕이 어쩌고 그런 소리를 하냐? 넌 좀 맞아야겠다.”

순간 김창의 모습이 사라졌다. 그걸 본 개눈깔이 하나 남은 눈을 부릅떴다.

챙!

갑작스러운 공격이었건만 개눈깔은 막아냈다. 그 뒤로 쉴 새 없이 이어지는 공격까지 전부 다.

대단한 실력이었지만 김창은 별로 놀라지 않았다. 개눈깔은 원래 랭킹 3위의 강자였고 칼질로는 김창 다음 가는 고수였다.

그러니 기습적인 공격이라고 해서 겨우 이 정도에 쓰러질 만한 실력은 아니었던 것이다.

김창은 개눈깔과 여러 번 칼을 나누고서 몇 발자국 뒤로 물러났다.

“마왕이라더니 전이랑 달라진 게 없구만.”

“···그러는 넌 조금 달라진 것 같군.”

“오, 알아보겠냐. 남은 눈이 하나뿐이라서 못 알아볼 줄 알았는데.”

히죽 웃으며 도발하자 개눈깔의 뺨을 움찔거렸다. 그녀는 상처 입은 왼눈이 욱신거리는지 손으로 안대를 지그시 눌렀다.

잠깐의 틈 사이에 한석구가 말했다.

“이봐, 개눈깔. 이번 일을 벌인 게 정말 너냐?”

개눈깔이 그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한석구, 원탁의 수호자.”

“다시 묻겠는데, 김대걸이랑 허석을 죽인 게 너냐?”

“그래.”

대답은 즉답이었다. 한석구를 속이려 들거나 뭔가 고민하는 기색은 전혀 없었다. 너무나 시원하게 나온 대답에 한석구는 말문이 막혔다.

“···어째서지? 대체 왜 그 두 사람을 죽인 거냐? 김대걸이야 쓰레기 놈이니까 죽였다고 쳐도, 허석은 그럴 이유가 없잖아? 개인적인 원한이 있는 것도 아닐 테고.”

“물론 개인적인 원한 따위는 없다.”

“그럼 왜?”

개눈깔이 히죽 웃더니 주머니에서 목걸이 하나를 꺼냈다. 거기엔 녹색의 수정이 달려 있었는데 그 주변으로 불길한 기운이 감돌고 있었다.

“대전이 초반 때였나? 플레이어를 죽이면 그 힘을 흡수할 수 있다고 믿는 놈들이 있었지.”

“···그래, 있었지. 플레이어를 죽이고 그 심장을 먹으면 힘을 흡수할 수 있다던가? 하지만 그건 전부 다 개소리였잖아.”

“그건 개소리가 아니었어.”

“뭐?”

개눈깔이 목걸이의 수정을 꽉 쥐었다.

“개소리가 아니었다고. 심장을 먹는다고 힘을 흡수할 수는 없지만 영혼을 먹으면 힘을 흡수할 수 있지. 바로 이런 식으로.”

손아귀에 붙잡힌 수정에서 끔찍한 비명이 들렸다. 영혼의 절규라는 말이 어울릴 정도로 처절한 비명이 울리고 나서 수정 속에서 연녹색의 빛이 빠져나왔다.

그건 그대로 개눈깔의 입 안으로 들어갔고 그녀는 그걸 꿀꺽 삼켰다. 그러자 하나 남은 눈에서 초록색 안광이 번쩍였다.

“왜 김대걸과 허석을 습격했냐고 물었던가? 그거야 간단하지. 힘을 흡수하고 더 강해지기 위해서다.”

“그건 나한테 복수하기 위해서인가?”

김창이 불쑥 묻자 개눈깔이 비웃음을 흘렸다.

“복수? 너 따위에게? 내가 왜?”

“···뭐?”

“내가 너한테 복수하기 위해서 이런 짓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나? 그거 자의식 과잉인데.”

개눈깔이 히죽 웃으며 말하는 게 영 마음에 들지 않았다. 김창이 칼자루를 매만지고 있을 때 그녀가 이어 말했다.

“물론 언젠가 널 죽이긴 하겠지. 하지만 그건 이 세상을 정복하는 과정에서 일어나는 충돌일 뿐, 개인적인 복수는 아니다.”

“···이 세상을 정복해? 진짜 돌았나?”

“돌긴? 난 멀쩡하다. 그리고 아까 말했잖아. 나는 마왕이라고. 마왕이라면 당연히 이 세상을 지배해야지.”

저거 만화를 너무 많이 봤나? 마왕이 어쩌고 하는 건 지옥의 대악마가 할 소리지, 다 큰 어른이 할 만한 소리는 아니다.

김창이 어이가 없다는 듯 웃자 개눈깔이 말했다.

“원래라면 충분히 영혼을 흡수한 후에 너희와 붙을 생각이었는데, 지금은 어쩔 수 없나.”

김창이 말했다.

“영혼을 흡수하는 힘은 어디서 얻은 거지? 너는 칼잡이지, 흑마법사가 아니잖아.”

“그걸 내가 왜 알려줘야 하지?”

새끼, 같은 칼잡이로서 좀 알려주면 어디가 덧나나. 김창이 쯧 하고 혀를 찼다.

“하기야 어디서 알았든 그게 뭐 중요한가. 진짜 중요한 건 넌 여기서 죽는다는 사실 하나뿐인데.”

“날 한 번 이겼다고 너무 기고만장한 거 아닌가?”

“한 번 이겼는데 두 번은 못 이길까.”

김창이 바닥을 박차고 뛰었다. 개눈깔도 곧장 방어 자세를 잡았다가 흠칫 놀랐다.

발을 움직이려는데 꿈쩍도 하지 않았다. 아래를 내려다보니 어느새 다리가 전부 얼어붙어 있었다.

어느새? 이런 재주를 부릴 만한 사람이라면 한 명 말고는 없다.

“이 비겁한!”

“비겁하긴, 새끼야. 자기보다 약한 놈들만 괴롭히는 건 안 비겁하고?”

한석구가 히죽 웃으며 손을 휘둘렀다. 그러자 하늘 위에서 불꽃의 비가 떨어졌다.

개눈깔은 하나 남은 눈을 한 바퀴 굴렸다. 정면에는 김창, 머리 위에는 불꽃의 비. 어딜 우선 해야 할지는 명확했다.

“나는 이 세상을 지배할 마왕이요, 또한 영혼 약탈자이노라! 너희 따위가 날 죽일 수 있을 것 같아!”

휙!

개눈깔의 칼날이 녹색으로 빛나더니 횡으로 길게 움직였다. 처음에는 오러인가 했는데 그게 아니라 뭔가 다른 힘인 것 같았다.

칼날끼리 부딪치자 강한 힘이 김창을 뒤로 밀어냈다. 생각지 못한 반격에 그가 한 발자국 뒤로 물러나는 것과 동시에 개눈깔이 칼로 바닥을 내리찍었다.

쿵!

커다란 굉음과 함께 먼지구름이 솟아올랐다. 그 안에서 뭔가 터지는 소리가 여러 번 나더니 거센 바람과 함께 먼지구름이 걷혔다.

개눈깔은 이미 자리에서 사라지고 없었다. 도망친 건가? 설마 그랬을 리는 없다는 걸 김창은 알고 있었다.

재빠른 발걸음 소리가 귀를 어지럽혔다. 김창은 곧장 뒤로 몸을 돌렸고 크게 소리쳤다.

“한석구!”

“알아!”

개눈깔은 김창을 무시하고 곧장 한석구를 향해 달리고 있었다. 원래 게임에서도 뒤쪽의 딜러부터 잡는 게 상식이니 개눈깔 역시 그리했다.

한석구는 무시무시한 속도로 달려오는 개눈깔을 보며 입술을 세게 깨물었다. 그가 양손을 휘둘러 마법을 난사했다.

쾅! 콰쾅! 굉음이 연신 울렸으나 개눈깔은 멀쩡했다. 그녀는 머리 위로 떨어지는 마법을 이리저리 피하며 한석구를 향해 곧장 달렸다.

저 새끼 원래 저렇게 빨랐나? 저 정도면 하오성과 비슷한 수준인 것 같은데······. 한석구가 미간을 좁히자 개눈깔이 이쪽을 향해 칼을 겨누었다.

“그딴 마법에 맞을 줄 알고.”

“그럼 새끼야, 이건 어때?”

“뭔 마법을 쓰던 소용······. 컥!”

빠르게 달리던 개눈깔이 갑작스레 솟아난 벽에 얼굴을 부딪쳤다. 워낙 빨리 달리고 있던 탓에 얼굴에 가해진 충격이 생각보다 컸다.

물론 숙련된 칼잡이답게 충격을 얼른 털어냈지만 한석구는 그 잠깐의 틈을 놓치지 않았다.

차르륵! 마력으로 이루어진 사슬이 솟아나 개눈깔의 사지를 붙잡았다. 그건 진짜 강철로 만든 사슬 이상으로 튼튼해서 어지간해선 끊어낼 수 없었다.

“잘 잡고 있어. 일격에 끝낼 테니까.”

뒤쪽에서 김창이 달려오고 있었다. 그가 머리 위로 칼을 들었다가 힘껏 내리치려 하자 개눈깔이 버럭 소리쳤다.

“내가 말했지!”

쿵!

갑작스럽게 일어난 힘의 폭발. 그 여파로 사슬이 모두 끊어지고 달려오던 김창까지 뒤로 날아갔다.

한석구가 이게 대체 뭔 일이냐는 듯 눈을 동그랗게 떴다. 폭발의 중앙에는 형형하게 눈을 빛낸 개눈깔이 있었다.

“옛날의 나와는 다르다고! 내가 그저 아무 생각도 없이 원탁에 싸움을 건 줄 알았나!”

개눈깔의 말은 거짓이 아니었다. 그녀는 원래부터 강하긴 했지만 저런 재주를 부릴 줄은 몰랐다.

그도 그럴 게 그녀는 성기사도 아니고 그냥 칼잡이일 뿐이니까. 어쩌면 영혼 약탈자라는 직업으로 2차 전직을 해버린 게 아닐까?

여기가 진짜 게임도 아니고 설마 그러려고······.

“너희는 이제 내 상대가 안 돼!”

개눈깔이 벌컥 소리를 지르며 한석구를 향해 달렸다.

한석구는 반사적으로 마법을 썼으나 이번에는 아까와 같은 꼼수가 통하지 않았다. 개눈깔은 그럴 줄 알았다는 듯 바닥에서 솟은 벽을 칼로 잘라버렸다.

김창이 뒤에서 쫓아오고 있었지만 개눈깔이 한 발자국 더 빨랐다. 휙 하고 휘두른 칼날이 한석구가 만든 보호막을 가르고 가슴을 크게 베었다.

“큭!”

한석구는 얼굴을 잔뜩 찡그렸다. 칼이라면 옛날에 자경단 노릇 하던 때 몇 번 맞아보긴 했는데 오랜만에 맞아보니 훨씬 더 아픈 것 같았다.

순간 심민우에게 참 몹쓸 짓을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씨발, 이거 진짜 욕 나올 만큼 아프네······.

“죽어라, 한석구! 죽어서 네 영혼을 바쳐!”

가슴팍에서 피가 줄줄 새는데도 한석구는 집중력을 잃지 않았다. 그는 자신을 향해 달려오는 개눈깔을 향해 마법을 퍼부었다.

물론 그게 아무 소용이 없다는 건 알았다. 정말 마왕이 되기라도 한 건지 개눈깔의 움직임은 전보다 훨씬 더 재빨라져 있었으니까.

하지만 괜찮다. 이쪽은 혼자가 아니니까.

“죽는 건 너다.”

김창은 개눈깔의 사각에서 튀어나왔다. 완벽한 공격이었고 피할 길은 보이지 않았다.

개눈깔 역시 그렇게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녀의 얼굴에 당황스러움은 없었다. 그 감정은 오히려 김창이 느껴야 했다.

왜냐하면 칼을 휘두르는 순간 그녀의 몸이 연기로 변해 흩어졌으니까.

“···이게 뭔?”

개눈깔이 마법사였다면 스킬이라도 쓴 건가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녀는 칼잡이고, 애초에 칼잡이의 스킬 중에는 저런 게 없었다.

그러면 마법 아이템이라도 사용한 걸까? 하지만 한석구의 반응을 보니 그런 것도 아닌 모양이었다.

“너 진짜 2차 전직이라도 한 거냐? 방금 그건······.”

연기로 변해 흩어졌던 개눈깔이 다시 나타났다. 그녀가 오만한 얼굴 그대로 말했다.

“뭘 놀라지? 마왕이라면 이 정도는 해야 하는 것 아닌가?”

“그래···. 확실히 마왕이라면 그 정도는 해야지······.”

김창과 한석구도 이제는 인정해야 했다. 어쩌면 개눈깔은 정말 마왕이 됐을지도 모르겠다고.

“너희와 더 놀아주기엔 시간이 없군. 원래라면 저 얼치기 놈이라도 죽이고 가야 하겠으나 이번엔 특별히 살려주겠다. 하지만 다음에 만나면 너희 모두 죽은 목숨일 것이다.”

개눈깔은 천천히 뒤로 물러나더니 곧 어둠과 하나가 되어 사라졌다. 저건 마법사는 물론이고 그 어떤 직업에도 없는 스킬이었다.

김창은 그 모습을 가만히 보다가 억울함을 느꼈다. 누구는 신성을 모아도 스킬 하나 쓰는 게 전부인데 쟨 마왕이 되더니 마법까지 쓸 수 있게 됐나?

이럴 줄 알았으면 나도 마왕이나 할 걸 그랬네. 김창이 혼자 중얼거리다가 한석구를 쳐다보며 말했다.

“괜찮냐?”

“당연히 괜찮지······라고 허세라도 부리고 싶은데, 그러기엔 존나 아프네. 그래도 죽을 정도는 아니야.”

김창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이제 어쩔 거냐?”

“어쩌긴 뭘 어째.”

한석구가 대답했다.

“자기가 마왕이라며? 그럼 애들 모아서 레이드 한 판 달려줘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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