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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겜 속 칼잡이-85화 (85/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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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석구는 공식적으로 개눈깔이 원탁을 배신했음을 선언했다. 이제 그녀는 원탁의 일원이 아니며 더는 원탁의 비호를 받지 못한다고도 말했다.

사람들은 개눈깔이 배신했다는 사실에 당황하면서도 한석구의 결정에 열렬한 지지를 보냈다.

그들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원칙은 같은 플레이어끼리는 싸우지 않는다는 것이다. 우리가 남도 아니고 같은 한국인끼리 서로 돕고 살아도 모자랄 판에 싸우긴 왜 싸우나?

원탁이 유지될 수 있는 가장 큰 이유는 바로 그 대원칙 덕분인데 개눈깔은 그걸 깨트렸다. 그런 막돼먹은 놈은 당연히 벌을 받아야 한다.

“일단은 개눈깔을 찾을 때까지 다들 원탁에서 무기한 대기다. 괜히 돌아다니다가 칼 맞을 수도 있으니까.”

한석구의 명령에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부터 어디 가지도 못하고 원탁에 갇혀 있어야 하지만 그래도 그게 목숨을 잃는 것보다는 나으니까.

“그런데 개눈깔은 어디 가서 찾게? 이번에도 미끼 작전 쓴다고 나올 것 같진 않은데.”

김창은 한석구의 집무실에 있었다. 개눈깔을 잡을 방법에 대해 의논하기 위해서였다.

“글쎄···. 걔 지난번에 하는 거 보니까 막 마법 같은 것도 쓰던데. 막상 찾아도 또 도망치면 처음부터 다시 찾아야 하고. 이럴 줄 알았으면 지난번에 찾았을 때 콱 죽였어야 했는데.”

그 말을 하면서 슬쩍 김창을 쳐다보자 그가 큼 하고 헛기침을 했다.

“나도 걔가 그 정도로 강해졌을 줄은 몰랐다. 옛날엔 그냥 칼질만 해도 이길 수 있길래 이번에도 그럴 줄 알았지.”

“딱히 네 탓 하는 거 아니야. 너 혼자 싸운 것도 아니고 나도 같이 있었는데 결국 못 잡았으면 내 잘못도 있는 거지.”

한석구가 차를 한 모금 마신 후에 말했다.

“어쨌건 개눈깔 찾는 건 내가 알아서 해볼게. 저번에 그 마법사한테 부탁하든지, 아니면 마탑의 마법사들 시켜서 찾아내든지 하면 될 테니까.”

“찾으면 바로 불러라. 이번엔 확실하게 죽여줄 테니까.”

“그럴게. 그때까진 쉬면서 컨디션 조절하고 있어.”

김창이 고개를 끄덕이며 방을 나가려다가 문득 말했다.

“그런데 정복자는 안 불러도 되나?”

“걘 영주 업무로 바빠. 그리고 솔직히 말해서 개눈깔 상대하는데 너 하나면 충분하잖아.”

그거야 맞는 말이다. 김창은 승천할 자로서 같은 승천할 자인 하이나를 혼자서 이겼다.

개눈깔이 아무리 강해졌다고 해도 신성을 가지진 않았으니 결국 김창보다는 한 수 아래라는 뜻이었다.

“그러면 이번 일은 나 혼자 하지. 너도 저번에 다쳤으니까.”

한석구는 지난번에 개눈깔에게 큰 상처를 입었다. 물론 그건 사제의 치유 마법 덕분에 금세 아물긴 했지만 그래도 다쳤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았다.

“상처도 다 나았는데 뭘.”

“나 하나면 충분해. 나중에 뭔 정보 나오면 알려줘라.”

김창은 그 말을 끝으로 방을 나갔다. 한석구가 그 뒷모습을 보다가 쩝 소리를 냈다.

한 명에게 너무 무거운 짐을 지우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김창은 정말 혼자서 개눈깔을 죽일 수 있을 만큼 강하니까.

한석구는 일단 개눈깔을 찾는 일에 집중하기로 했다. 바로 마탑으로 날아가 개눈깔을 찾으라고 압박하는 것과 동시에 검은 탑의 마법사에게 도움을 청하기도 했다.

여러 사람이 개눈깔을 찾고 있으니 금방 결과가 나오리라 생각했다. 한석구의 생각대로 개눈깔에 대한 정보는 얼마 지나지 않아서 얻을 수 있었다.

다만 그 정보는 생각지도 못한 방향에서 나왔다.

“개눈깔? 아, 그 외눈의 마왕을 말씀하시는 것이군요?”

개눈깔에 대한 정보는 아무 생각없이 찾아갔던 정원에서 나왔다. 그것도 티샬레의 입에서.

한석구는 떨떠름한 목소리로 말했다.

“개눈깔에 대해서 아나?”

“알다마다요. 사악한 힘을 받아들여 타락한 자가 아닙니까? 버려진 옛 성인 아딘을 근거지로 삼아 세력을 불리고 있다던데요. 듣기로는 자신을 영혼 약탈자라고 칭하더군요.”

“아니, 개눈깔에 대해서 알고 있었다고? 그리고 걔가 진짜 마왕이야?”

티샬레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럼 가짜 마왕도 있나요? 사악한 힘을 다루고 자신만의 세력을 거느리고 있으니 그게 마왕 아닙니까?”

하기야 그 말이 맞다. 사악한 힘을 다루고 많은 부하를 거느리고 있으면 그게 마왕이다.

한석구가 뭔가 허탈함을 느끼면서 말했다.

“너 개눈깔에 대해서 알고 있었으면서 왜 말 안 했어? 우리가 지금 걔 찾아다니고 있는 거 몰랐어?”

티샬레가 당황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몰랐습니다. 아무도 저한테 말을 안 했잖아요? 저는 지금까지 줄곧 정원 안에만 있었고 며칠 동안 여긴 아무도 찾아오지 않았어요. 그러니 원탁 안에서 무슨 일이 있더라도 제가 알 방법이 없지요.”

한석구는 지금까지 자신이 했던 노력이 바보짓처럼 느껴졌다. 등잔 밑이 어둡다더니, 가장 가까운 곳에 단서가 있었는데 이걸 몰랐네.

“그런데 너 그 정보는 어디서 들은 거냐? 개눈깔에 대한 거 말이야.”

“저는 통신 마법을 통해 제 가문과 주기적으로 연락을 취하고 있습니다. 외눈의 마왕에 대한 정보도 그런 식으로 얻은 겁니다. 제가 듣기로 테네벨레 가문에서 토벌대를 보냈다고 하던데요. 아, 테네벨레는 일곱 요정 대가문 중 하나······.”

거기까지 들은 한석구가 갑작스레 소리를 질렀다.

“토벌대를 보내? 누구 맘대로!”

“네? 아니, 일곱 요정 대가문은 단명종의 수호자로서 그들을 지켜야 할 의무가······.”

“의무고 나발이고! 플레이어는 오직 플레이어만이 처벌할 수 있다는 거 모르나? 걔네가 뭔데 감히 개눈깔을 토벌하러 가?”

아무리 개눈깔이 원탁에서 추방됐다고 해도 그녀가 플레이어라는 건 변하지 않는다. 그러니 그녀를 벌할 수 있는 건 여전히 같은 플레이어뿐이었다.

한석구의 눈에서 불꽃이 튀는 걸 본 티샬레는 머리가 지끈거렸다. 저 미친놈, 설마 테네벨레의 토벌대까지 싹 다 죽여버리는 건 아니겠지······.

“걔네 지금 어디 있어!”

티샬레가 목을 움츠리며 말했다.

“지금쯤이면 아마 토벌을 시작했을 겁니다.”

“미친 새끼들. 누구 마음대로 토벌을 시작해? 아딘 성이라고 했지? 나도 거기 어딘지 아는데 마침 잘 됐군. 씹새, 다 뒈졌다.”

다 뒈졌다는 건 대체 누구를 보고 하는 말일까? 분명 마왕을 보고 하는 말이겠지? 티샬레는 제발 자기 생각이 맞길 빌었다.

한석구가 성큼성큼 걸어서 정원을 나가는 걸 본 티샬레는 남몰래 한숨을 내뱉었다.

“김창도 미친놈이지만 가만 보면 쟤도 만만치 않은 것 같은데······.”

다행히도 그 욕은 한석구의 귀에 들리지 않았다. 그는 화가 잔뜩 난 채로 김창의 방을 찾아가는 중이었다.

“김창!”

크게 소리치며 문을 열자 김창이 얼굴을 찡그리며 말했다.

“너는 노크도 할 줄 모르냐?”

“노크하고 있을 시간 없어. 빨리 가자. 아딘 성으로 가야 해.”

“거긴 또 왜?”

“개눈깔 거기 있대.”

“그걸 먼저 말했어야지.”

김창이 얼른 칼을 챙겨서 따라 나왔다. 한석구가 말했다

“개눈깔 걔 무슨 중2병 걸려서 헛소리하는 게 아니라 진짜 마왕된 거라더라.”

“누가 그러던데?”

“티샬레가. 지금 요정 대가문에서 토벌대 보냈대. 하여튼 씹새끼들, 개눈깔이 플레이어인 거 뻔히 알면서 그딴 짓을 해?”

개눈깔 그냥 두면 사람 죽이고 다니니까 일단 토벌대 보내는 게 맞지 않나? 김창이 뭔 이상한 소리를 하냐는 듯 쳐다봤지만 한석구는 무시했다.

“차원문 열었다. 얼른 가서 싹 다 조져버리자고.”

“토벌대는 왜 조져? 걔네가 개눈깔 죽일 실력은 없어도 따까리들은 맡아줄 수 있을 텐데. 그러면 나는 개눈깔만 상대하면 되는 거 아닌가.”

“어쨌건 개눈깔 못 건드리게는 해야지. 그게 걔네 위하는 일이야.”

“하긴 그런가. 토벌대가 덤벼봤자 개눈깔한테 영혼만 상납하는 꼴이 될 테니까. 그럼 나는 갈 테니까 넌 여기 있어라. 금방 끝내고 올게.”

“정말 혼자 가려고?”

“환자 데리고 다닐 만큼 매정하진 않다. 집이나 잘 지키고 있어.”

한석구는 어쩔 수 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원탁에 남았다.

혼자서 차원문을 통과한 김창은 주변을 한 번 둘러봤다. 오랫동안 버려진 곳답게 분위기가 상당히 스산했다.

어쩌면 마왕의 힘 때문일지도 몰랐다. 개눈깔은 이제 별 이상한 힘을 다 쓸 수 있는 것 같았으니까.

“물러서지 마라! 우리는 위대한 테네벨레 가문의 전사! 결코 물러서지 않는다!”

우렁찬 함성과 병장기 부딪치는 소리를 들으니 이미 성안에서는 전투가 벌어지고 있는 모양이었다.

김창은 뚜벅뚜벅 걸어서 무너진 성벽의 잔해 위로 올라갔다. 그 위에서 보니 수십 명의 흑요정 전사들이 기괴하게 생긴 괴물들과 싸우는 중이었다.

흑요정의 숫자는 적었지만 밀리는 느낌은 없었다. 하기야 그들은 인간보다 몇 배는 더 강한 종족이니 숫자로만 전력을 따지는 건 의미가 없었다.

“밀어붙여라! 밀어붙여!”

흑요정 전사들은 수적 열세에도 불구하고 선전하고 있었다. 이 정도면 거의 승기를 잡은 듯 보여서 김창도 굳이 끼어들지 않고 뒤에서 관망하고 있었다.

괴물들은 아무래도 상관없고 개눈깔만 죽이면 되니 굳이 이런 곳에서 힘 뺄 이유가 없었다.

“더 안쪽으로 들어간다! 모두 돌격··· 커억!”

힘차게 무기를 휘두르며 전사들을 지휘하던 흑요정의 몸이 갑자기 뒤로 날아갔다. 다른 뭔가에 맞은 것도 아닌데 뒤로 홱 날아가는 모습이 기이했다.

“이 더러운 흑요정 놈들······. 여기가 감히 어디라고 기어들어 오느냐?”

스산한 목소리의 주인공은 허공에서 갑자기 나타났다. 마법사답게 로브를 입은 그가 손을 휘두르자 흑요정 대여섯 명이 휙 날아갔다.

“놈! 사악한 술법을 쓰는구나! 너는 테네벨레의 기수인 이 내가 상대해주마!”

방금 뒤로 날아갔던 흑요정 전사 하나가 얼른 달려왔다. 불의의 일격에 당한 것치고 상처 하나 없어 보이는 게 역시 기수다운 강함이었다.

“호오, 네가 테네벨레의 기수냐? 그러면 나도 내가 누구인지 밝혀야겠군. 나는 외눈의 마왕을 섬기는 자이자 또한 흑마법의 탐구자이니라. 내 이름은 사르칸이다. 네 이름은 뭐냐, 기수야.”

이름을 묻자 테네벨레의 기수가 전투 자세를 잡으며 말했다.

“나는 어머니 나무의 자손이자 밤하늘의 수호자이며 또한 테네벨레의 기수이니 그 이름은 에리엇이다! 나는 테네벨레의 기수로서 외눈의 마왕의 수족인 사르칸에게 정정당당한 결투를 신청한다!”

“흐흐, 흑마법사에게 정정당당한 결투라? 좋다, 나는 그런 것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지만 어쨌건 네 결투 신청은 받아주도록 하지. 그러면 결투에는 입회인이 있어야 하는 법. 누가 좋을까······.”

씨발, 뭔 염병할 짓거리지? 저 두 사람의 대화를 지켜보던 김창은 어이가 없어졌다. 다들 할 일도 없나? 그냥 싸우면 그만이지 결투가 어쩌고 뭔······.

참다못한 김창이 자리를 박차고 뛰어나갔다.

“음? 이 녀석은 누구······ 켁.”

사르칸이 멍한 얼굴로 김창을 쳐다봤다. 빛이 한 번 번쩍이더니 그 머리가 그대로 바닥으로 떨어졌다.

“······음?”

테네벨레의 기수인 에리엇도 멍한 얼굴로 김창을 쳐다봤다. 아니, 이 인간 놈은 누군데 갑자기······.

“뭘 야려.”

김창이 휙 하고 칼을 휘둘러 피를 털어냈다. 에리엇이 보기에 그 눈은 확실히 미친놈의 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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