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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겜 속 칼잡이-92화 (9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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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거 마음에 드는군. 보수는 이걸로 받지.”

김창이 새로 얻은 칼을 허리춤에 찼다. 분명 손에 쥐는 순간 저주가 내려야 할 텐데 그의 손에서 요도는 신기할 정도로 얌전했다.

그걸 보고 비아스가 허 하고 혀를 차는 가운데 아라비타스가 말했다.

“어려운 의뢰일 텐데 받아 들여주니 고맙군.”

“별로 어려운 일도 아니야. 대악마라고 목에 칼 안 들어가는 것도 아니고, 그냥 찌르면 다 죽거든.”

고양이 목에 방울 달기라는 말이 있다. 일단 말만 들으면 그럴듯하지만 실제로 하는 건 어려운 일을 말한다.

김창이 방금 한 말도 똑같다. 대악마라고 칼 안 드는 거 아니고 당연히 칼로 찌르면 죽는다.

그런데 그걸 누가 하나? 아라비타스는 질렸다는 듯이 김창을 쳐다봤다.

“···그래, 열심히 하라고.”

“난 돈 받은 만큼 일한다. 걱정일랑 안 해도 돼.”

무심하게 말하는 것이 오히려 자신만만하게 말하는 것보다 더 믿음직스럽다. 아라비타스는 알아서 어련히 잘하겠지 하는 생각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면 이번 일은 믿고 맡기지. 비아스 님, 이만 돌아가실까요?”

“아, 그러지. 이봐, 칼잡이. 그 칼은 위험해. 지금은 아무 이상이 없을지 몰라도 나중엔 어떨지 모르는 거다. 그러니 조심히 쓰라고.”

비아스의 충고에 김창이 작게 웃었다.

“칼이 사람을 휘두르나? 사람이 칼을 휘두르는 거지. 도구에 휘둘릴 정도면 애초에 칼 쥐면 안 되지.”

“어른이 말을 하면 그냥 알겠습니다 하면 되는 거지, 꾸역꾸역 말대꾸······.”

비아스가 불만스러운 듯 투덜댔지만 김창은 신경 쓰지 않았다.

의뢰에 대한 보상은 이제 마무리됐기 때문에 창고 안에 있던 사람들은 모두 바깥으로 나갔다.

두 가주는 더 할 말이 없다면 이만 가보겠다며 자리를 떴고, 두 기수는 김창과 함께 원래 있던 방으로 돌아갔다.

방 안에서 차와 과자를 즐기며 휴식을 취하던 중에 김창이 물었다.

“그래서 개눈깔에 대한 정보는 언제 나오는 거냐?”

“그거라면 한창 조사 중일 거다. 혹시 급한 일이 있다면 먼저 가도 돼. 정보가 나오면 원탁으로 연락을 줄 테니까.”

에리엇의 대답에 김창이 고개를 끄덕였다. 할 일이 없는 상황이라면 차분히 기다리겠으나 지금은 새로운 의뢰를 받은 참이었다.

시간은 금이라고, 여기서 쓸데없이 미적거리고 있을 이유는 없었다. 김창이 자리에서 일어나자 티샬레도 얼른 뒤따랐다.

“넌 왜 일어나?”

“네? 집에 가는 거 아닌가요?”

원탁이 왜 네 집이냐? 김창이 어이없다는 듯 쳐다보자 티샬레가 변명하듯 말했다.

“여기가 딜루키둠의 저택이라면 저도 며칠 더 머무를 텐데, 테네벨레의 저택이라 그러고 있기가 좀 눈치 보여서······.”

하기야 티샬레는 테네벨레 입장에서 손님이니 여기 쭉 머무르는 것도 이상한 일일 것이다. 애초에 아라비타스를 따라서 테네벨레의 저택에 온 것도 아니니까.

“그러냐. 그러면 얼른 가게 따라와.”

“넵!”

에리엇이 말 잘 듣는 강아지처럼 김창의 뒤를 따르는 티샬레를 보며 헛웃음을 흘렸다.

“가문의 마법사에게 부탁해서 원탁으로 가는 차원문을 열어달라고 하지.”

“그래주면 고맙겠군.”

김창과 티샬레는 에리엇의 호의 덕분에 원탁으로 바로 이동할 수 있었다. 원래 테네벨레 가문에서 칼라드까지 가는데 한 달은 걸린다는 걸 생각하면 새삼 차원문 마법이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 조심히 가라고. 외눈의 마왕에 대한 정보가 나오면 곧장 연락하지.”

“그래라.”

김창은 에리엇에게 대충 손을 흔들어주고 차원문을 통과했다. 티샬레도 얼른 그 뒤를 따랐다.

“히야, 잠깐 떠나 있었을 뿐인데 정말 오랜만에 온 것 같네요. 역시 집 떠나면 고생이라니까.”

그러니까 여기가 왜 네 집인데. 김창이 쳐다봤지만 티샬레는 싱글싱글 웃고 있을 뿐이었다.

나름대로 원탁 생활이 마음에 들었나? 어쩌면 이 요정은 기수보다 정원수에 어울릴지도 모르겠다.

“가자, 할 일 많아.”

“혹시 바로 대악마 토벌에 나설 건가요?”

“시간 질질 끌 거 있나? 후딱 끝내고 쉬어야지.”

티샬레는 혹시 자기도 데려가는 건 아니겠지 하고 걱정했다. 그녀는 요정 기수지만 세상의 안위 따위는 별 관심 없다.

“내 눈치 보지 마라. 넌 안 데리고 갈 거니까.”

“그거 듣던 중 반가운 소리군요!”

“넌 승천할 자하고도 싸웠으면서 뭘 대악마 따위한테 겁을 먹고 있는 거냐?”

“···미안한데 보통은 대악마랑 싸우면 목숨을 걸어야 하거든요?”

그런가? 김창이 혼자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복도를 걸었다.

“너는 이만 가봐. 석구한테 말은 내가 할 테니.”

“그럴게요. 얼른 정원에 돌아가서 심신의 안정을 취했으면 하네요.”

티샬레가 행여나 붙잡을까 얼른 자리를 떴다. 김창은 작게 웃다가 한석구의 집무실로 향했다.

“석구 안에 있냐.”

“음? 너 벌써 돌아왔어?”

노크 소리에 문을 연 한석구가 김창의 얼굴을 보고서 허어 소리를 냈다.

“동네 마실 다녀오는 것도 아니고 몇 시간도 아니고 금방 돌아오냐. 그래서, 개눈깔에 대한 정보는 좀 알아냈어?”

“그건 시간 좀 걸린다기에 나중에 따로 연락 보내라고 했다. 그것보다 다른 일 하나 물어왔다.”

“거기 가서 또 일 받아왔다고? 너 요정 애들 싫어하는 거 아니었나?”

“난 공짜 일을 싫어하는 거지 요정을 싫어한 게 아니야. 걔네가 돈 주면 일 안 받을 이유가 뭐야?”

한석구가 웃으며 어깨를 으쓱였다.

“참 한결 같은 놈이야. 그래서 뭔 의뢰 받아왔는데?”

“지난번에 만네르헤임과 거래한 거 기억나지?”

“아, 그 대악마? 분명 다른 대악마 죽여달라는 의뢰였던가? 그런데 그게 왜?”

“아라비타스인가 하는 놈이 만네르헤임을 죽이라기에 그건 안 된다고 했지. 대신 돈 주면 다른 대악마 둘 먼저 죽이고 마지막에 만네르헤임도 죽여주기로 했어.”

“···일 한 번 하고 돈은 두 배로 받는 셈이네. 그래서?”

“돈 받았으니까 일해야지.”

“그러면 민우 부를까? 지난번처럼 또 악마 불러내서 만네르헤임과 대화를 해야······.”

“그럴 필요 없어. 그냥 마탑으로 차원문 열어봐.”

“거긴 또 왜?”

“대악마 죽여야 할 거 아니야.”

대악마 죽이는 거랑 마탑이랑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한석구는 의아했지만 별 말은 하지 않고 시키는 대로 차원문을 열었다.

김창이 손가락을 까딱거렸다.

“너도 같이 가자. 마탑주한테 용건 있어.”

“그 아저씨는 또 왜? 하여튼 네 생각은 도통 이해할 수가 없어. 이런 말하긴 좀 그런데, 미친놈이라 그런가?”

너만 하겠냐? 김창이 쏘아붙이려다가 참았다. 그는 한석구와 함께 차원문을 통과해 마탑으로 향했다.

“여긴 또 왜 이렇게 조용해?”

차원문을 지나 도착한 마탑은 지나칠 정도로 조용했다. 그럴 만도 했다. 넓은 홀에 있는 마법사들 전부는 지난번에 한석구가 마탑에 와서 뭔 짓을 했는지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으니까.

그들이 고양이를 만난 쥐처럼 조용히 한석구를 쳐다보고만 있자 그가 말했다.

“뭘 멀뚱히 쳐다보고 있어? 가서 사장 나오라고 해.”

마법사 하나가 얼른 마탑주를 부르러 달려갔다. 달리는 속도를 보면 아마 마법이라도 쓴 게 아닐까 생각됐다.

한석구가 가만히 기다리고 있으니 마탑주가 금세 나타났다. 그의 얼굴은 침착했지만 자세히 보니 얼굴에는 식은땀 한 방울이 흐르고 있었다.

“······원탁의 대마법사.”

“그 대마법사라는 말은 빼지. 내가 이번에 진짜 대마법사를 만나본 참이라.”

한석구는 그냥 한 말이었지만 마탑주 로에라는 당황했다. 그가 크흠 헛기침을 하더니 입만 움직여 작게 속삭였다.

“···제기랄, 오늘은 또 왜 온 건가? 물건이라면 납기 맞춰서 잘 보내주고 있잖아?”

“누가 뭐래요? 오늘은 그거 때문에 온 거 아니니까 긴장할 거 없어.”

“그러면 무슨 일로 왔나?”

“그건 이 친구한테 물어보시고.”

로에라가 멀뚱히 선 김창을 쳐다봤다. 그는 사실 이 칼잡이에 대해서 잘 아는 게 없었다. 하지만 원탁의 이방인들이 전부 다 괴물이라는 걸 생각하면 절대 함부로 대할 상대가 아니라는 것만은 알았다.

“그쪽은?”

“김창.”

“나는 로에라 시날레아일세. 뭐 이름이야 이미 알겠지만. 그래서 뭐 때문에 왔나?”

“마탑의 마법사는 여기 있는 게 전부인가?”

뜬금없는 질문에 로에라가 잠깐 고민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밤샘 연구 때문에 자고 있는 마법사 몇 명을 제외하면 이게 전부요.”

“몇 명 정도야 상관없나.”

김창이 혼자 중얼거리더니 마법사들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들은 한석구가 또 무슨 개짓거리를 하러 왔는지 걱정하는 얼굴을 하고 있었는데 김창이 그쪽을 보자 흠칫 놀랐다.

“내가 지금부터 몇 가지 질문을 할 건데, 다들 성실히 대답해주면 고맙겠군.”

나직한 목소리에는 힘이 있었다. 감히 거스를 수 없는 힘이.

그게 자기도 모르게 흘러나온 신성의 위압감인지, 아니면 그냥 사람 많이 썰어 죽여서 살기가 나온 건지 모르겠지만 모두를 압도한다는 것만은 확실했다.

홀 안의 모든 마법사가 김창의 말을 경청했다.

“내가 소환 마법에 일가견이 있다, 거수.”

뭔 뜬금없는 질문인가 했지만 일단 몇 명이 손을 들었다.

“내가 흑마법에 관심이 있다, 거수.”

이건 또 뭔? 이런 질문에 손을 들 사람은 없었기에 모두가 가만히 있자 김창이 말했다.

“없어?”

있을 리가 있나? 마법사들이 수군대는데 김창이 중얼거렸다.

“있어야 될 건데······.”

그 말을 들은 마법사 몇 명이 바로 손을 들었다. 사실 별 관심은 없었지만 방금 저 말을 듣고 나니 갑작스레 관심이 생겼다.

“내가 악마에 흥미가 있다, 거수.”

자꾸 뭔 이상한 질문만 하는 거지? 마법사들 몇 명이 일단 살기 위해서 손을 들긴 했는데 그걸 본 로에라가 참다못해 물었다.

“아니, 아까부터 뭔 질문을 하는 건가? 흑마법은 왜 묻고 악마는 또 왜 물어?”

김창은 손을 든 마법사들을 한데 모으고 나서 로에라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대악마에 대해서 아나?”

“···알지. 그런데 그건 왜?”

“내 알기로 대악마는 지옥을 벗어나 이 땅을 지배할 기회만을 호시탐탐 노리고 있다던데, 맞나?”

“맞소만.”

“그리고 대악마는 지옥을 벗어나 이 땅 위에 현현하기 위해 사람들의 영혼을 착취한다고 하던데, 맞나?”

“그것도 맞는데······.”

“만약 대악마가 이 땅에 현현한다면 수많은 사람이 죽는다는 것도 맞나?”

“···맞소.”

로에라가 점점 더 영문을 모르겠다는 얼굴이 되자 김창이 말했다.

“그러니 내가 대악마를 죽이겠다. 이제 대충 알겠지?”

로에라가 멍한 얼굴로 대답했다.

“···모르겠는데?”

김창이 한심하다는 얼굴로 쳐다봤다. 이걸 이해 못 해?

“대악마를 불러내라. 내가 죽일 테니까.”

“이게 뭔 개소리야? 우리가 왜 대악마를 불러내야 하는 거요? 만약 싫다면?”

김창이 손가락을 까딱거렸다. 그러자 허리에 찬 두 자루의 칼 중 하나가 칼집에서 튀어나와 로에라를 똑바로 겨누었다.

저게 뭐지? 저주라도 걸린 건가? 로에라가 식은땀을 흘리는 가운데, 김창이 침착한 목소리로 말했다.

“싫으면 안 될 텐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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