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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겜 속 칼잡이-100화 (100/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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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해라고 했으면서 정말 오해를 풀 생각은 있는 겁니까?”

칼을 뽑아 든 김창을 보고서 카룩스는 어이없어했다. 그를 향해서 김창이 말했다.

“어차피 말로 해선 듣지도 않을 거잖아.”

“말로 설득이 안 되면 칼부터 뽑고 보십니까?”

“그럼 뭘 뽑아야 하는데?”

뽑긴 뭘 뽑아? 애초부터 말로 설득할 생각이 없었구만. 카룩스가 흥 하고 콧방귀를 뀌더니 마주 칼을 들었다.

그러자 그의 뒤로 늘어선 수많은 성기사가 일시에 무기를 손에 쥐었다. 그걸 본 이든의 얼굴이 사색이 됐다.

상황 돌아가는 걸 보니 이대로 한 번 붙을 모양인데, 그가 생각하기에 이건 미친 짓이었다.

지금 저기서 대악마를 불러내고 있는 건 분명 마탑의 마법사들일 것이다. 저만한 숫자의 마법사들을 상대하는 건 아무리 성기사라고 해도 위험한 일이다.

당장 마탑의 마법사들을 상대하는 것만으로도 위험 부담이 큰데 지금 저들의 뒤에는 원탁의 이방인들이 있다.

김창을 카룩스가 맡는다고 해도 그건 시간 끌기에 불과할 것이며 그 사이에 한석구가 강력한 마법으로 성기사들을 쓸어버릴 게 분명하다.

게다가 저 뒤에서 의식을 진행하고 있는 흑마법사 역시 원탁의 이방인일 게 분명했다. 말도 안 될 정도로 강대한 마력은 아무나 가질 수 있는 게 아니니까.

“카룩스 경, 잠깐 진정하시지요. 감정적으로 나설 일이 아닙니다.”

이든이 말하자 카룩스가 눈썹을 까딱거렸다.

“제가 뭘 감정적으로 행동했습니까? 저들이 대악마를 불러내려는 걸 막으려는 게 감정적인 행동입니까? 제 상식으로는 이해하기 어렵군요.”

“···물론 그건 정의로운 행동입니다. 하지만 저들은 악마숭배자가 아닙니다. 원탁의 이방인이지요. 지난번에 대악마 칼레드리온을 죽여 이 땅에서 악을 몰아냈던.”

이든의 말에 카룩스가 눈썹을 꿈틀거렸다. 그는 신전의 성기사인 이든이 김창을 변호하는 게 영 마음에 들지 않았다.

“이든 경은 지난번에 원탁에서 극진한 대접을 받았다고 했지요.”

“아, 그런 적이 한 번 있었지요.”

“그때의 경험이 아주 마음에 들었던 모양입니다? 이토록 열렬히 원탁의 변호를 하는 걸 보면. 어쩌면 곧 신전의 성기사에서 원탁의 성기사로 적을 옮길지도 모르겠습니다.”

카룩스의 빈정거리는 말을 듣고서 이든이 탄식했다. 아무리 신전 제일의 성기사라고 해도 결국 치기 어린 애송이일 뿐이었나? 감정에 휩쓸려 멍청한 선택을 내리는 걸 보면······.

“아까부터 말이 많군. 그 누구냐, 이든이라고 했던가? 내가 볼 때 말린다고 말 들을 놈 같지도 않은데 그냥 내버려 둬.”

“아니, 하지만······.”

“재밌군요. 이든 경, 뒤로 물러나시지요. 싸울 마음이 없다면 이만 돌아가도 됩니다.”

김창과 카룩스 사이에 낀 이든이 난처한 얼굴로 고개만 돌리고 있는 가운데 대악마를 불러내는 의식은 여전히 진행 중이었다.

마탑의 마법사들은 정말 악마숭배자가 된 것처럼 열렬히 헤인리히스의 이름을 부르짖고 있었고 김용걸은 그 중심에 서서 엄청난 양의 마력을 휘두르고 있었다.

카룩스는 더는 참지 않겠다는 듯 칼로 김창을 겨누었다. 날카로운 칼끝을 똑바로 바라보던 김창이 한석구에게 말했다.

“우리 둘이서 막아야 할 것 같은데.”

“정말 싸우려고?”

“우리가 싸우기 싫어도 쟤네가 싸우려고 할걸. 그냥 마법이나 시원하게 한 번 날려.”

“쟤네 성기사면 성직자 비슷한 거 아닌가? 그런데 막 공격하고 그래도 되나? 괜히 불경한 짓 했다고 신한테 벌 받는 건······.”

갑자기 뭔 뜬금없는 소리인가? 김창이 어이없다는 듯 쳐다보자 한석구가 변명하듯 말했다.

“아니, 한국에서라면 몰라도 여긴 진짜 신이 있는 세상이잖아. 그러면 정말 신벌을 받을 수도 있는 것 아닌가? 내가 아무리 잘나도 신보다 잘나진 않았을 텐데.”

“여긴 나 같은 놈도 신 후보 할 수 있는 세상이라 괜찮아. 신이라는 작자들 별거 없으니까 그냥 마법이나 날려.”

뭔 소리래? 한석구가 미간을 찡그릴 때였다. 카룩스와 성기사들이 더는 기다리지 않겠다는 듯 전진을 시작했다.

신의 기사답게 흰 갑옷을 착용한 성기사들이 묵직한 발걸음으로 제단을 향해 돌격했다. 이제는 신벌이 어쩌고 같은 웃기지도 않는 소리를 할 때가 아니었다.

한석구가 돌격하는 성기사들을 보며 반사적으로 보호막을 만들어냈다. 두꺼운 보호막은 기병의 돌격도 막을 수 있을 만한 강도였지만 신성력을 두르고 몸으로 부딪쳐 오는 성기사들의 돌격은 그 이상으로 강력했다.

쨍그랑 소리가 나면서 보호막이 깨지자 한석구의 안색이 변했다. 그는 신벌 따위를 신경 쓸 상황이 아니라는 걸 본능적으로 깨달았다.

제대로 싸우지 않으면 이쪽이 위험하다. 한석구가 빠르게 손을 휘둘러 마법을 난사했다.

형형색색으로 반짝이는 마법이 허공을 날다가 아래로 급강하하며 성기사들을 노렸다. 그러자 선두에 선 카룩스가 칼을 크게 휘두르며 외쳤다.

“방패!”

성기사들이 일시에 움직여 머리 위로 방패를 들어올렸다. 그러자 방패에서 빛이 반짝이더니 곧 더 큰 방패의 형상을 이루었다.

쿠웅! 여러 마법이 빛의 방패를 두들겼으나 성기사들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그들은 한석구의 공격이 끝나자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다시 진격을 시작했다.

“저 새끼들······.”

성기사들은 확실히 어중이떠중이들과 달랐다. 그들은 잘 훈련됐으며 강인한 육체와 넘치는 신성력을 가지고 있었다.

그 숫자가 수십 명이니 아무리 한석구라고 해도 긴장할 만한 적이었다. 심지어 저들의 대장인 카룩스는 어지간한 플레이어 이상으로 강하니 결코 방심해서는 안 됐다.

“마법사부터 처치해라!”

카룩스의 명령에 성기사들이 한석구를 향해 돌격했다. 쯧 하고 혀를 찬 한석구는 마법을 날려 성기사들을 공격했다.

그러나 수십 명의 성기사들이 뿜어내는 신성력은 한석구의 마법을 막아낼 만큼 강력했고 진격은 조금씩 이루어지고 있었다.

물론 아무리 성기사들의 숫자가 많다고 해도 그들이 한석구의 상대가 되진 않았다. 원래라면 몇 번 공격을 막아내다가 더 강력한 일격에 힘없이 무너져 내렸어야 했다.

그러나 성기사들에겐 카룩스라는 구심점이 있었다. 신전 제일의 기사라 불리는 카룩스의 활약으로 성기사들은 한석구의 공격을 버텨낼 수 있었다.

“야, 김창! 저 새끼 좀 어떻게 해봐!”

한석구가 소리치자 김창이 움직였다. 재빨리 거리를 좁힌 그가 카룩스를 향해 칼을 휘두르자 쨍 하는 소리와 함께 불티가 튀었다.

“막아?”

“···그러면 이 정도도 못 막을 줄 알았습니까?”

“잘 막아라. 목 날아간다.”

챙! 챙! 김창이 칼을 휘두르자 카룩스가 바로 방어했다. 처음에는 그럭저럭 따라갈 만했는데 점차 속도가 빨라지더니 이제는 거의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까지 올라갔다.

카룩스는 공격을 보고 막는 게 아니라 그냥 감에 의존해서 칼을 휘둘러야 했다. 김창의 말대로 잘 막지 않으면 목이 날아갈 만한 상황이었다.

“어쭈, 잘 막네?”

“큭!”

카룩스가 신음을 흘리는 가운데 이든이 외쳤다.

“제가 돕지요, 카룩스 경!”

아까 말다툼을 했다고 해서 카룩스를 김창 손에 죽게 둘 수는 없었다. 그랬다가는 정말 돌이킬 수 없는 상황이 될 테니까.

이든은 성기사들에게 한석구를 상대하라고 명령한 뒤에 자신은 김창을 향해 달려들었다.

“싸움도 홀짝이 맞아야겠지.”

김창이 고개를 까딱거리자 허리춤의 칼 한 자루가 스르륵 뽑혀 나와 이든에게 날아갔다.

저번에는 이런 재주가 없었는데? 이든이 당황하면서도 자신을 향해 날아오는 칼을 받아쳤다. 손목이 찌르르 울리고 손가락이 떨리는 걸 보니 저 칼은 김창 본인만큼은 아니어도 웬만한 강자보다 강했다.

“···그 힘도 대악마에게 받은 겁니까?”

카룩스가 억눌린 목소리로 말하는 것과 달리 김창은 여유가 넘치는 목소리로 말했다.

“개눈깔 죽이고 베낀 거야.”

“개눈깔?”

“외눈의 마왕 모르나?”

“당신이 외눈의 마왕을 죽였다고요? 그럴 리가?”

“왜, 대악마 불러내려는 놈이 나쁜 놈 죽이고 다니니까 이상한가?”

“그거야 당연하지요!”

카룩스가 크게 칼을 휘둘러 김창의 칼을 밀어냈다. 그리고 몇 발자국 뒤로 물러나서 칼자루를 세게 쥐었는데, 카룩스는 애초에 순수한 칼싸움으로는 자신이 이길 수 없다는 걸 알았다.

그래서 그는 칼날에 자신의 신성력을 모두 담았다. 싸워야 할 적이 남아있는데 이런 식으로 신성력을 전부 소모하는 건 위험한 일이지만 당장은 대악마보다 김창이 더 위험한 적이었다.

그러니 지금 여기서 죽인다. 카룩스가 신성력을 모두 짜내 거대한 빛의 검을 만들어냈다. 마치 전설 속에 나오는 용사와 같은 자태를 본 김창이 호오 소리를 냈다.

그는 이런 식의 정면 대결을 싫어하지 않았다. 그가 도발을 받아주겠다는 듯 칼을 칼자루에 꽂고 자세를 낮췄다.

꽉 찬 긴장감 속에서 두 명이 서로를 향해 격돌했다. 칼과 칼이 서로 부딪치는 순간이었다.

“아사 하이오! 세 하이오! 지옥을 다스리는 네 주인 중 하나! 악몽의 주인이여! 대악마 헤인리히스! 이 땅에 강림하라―!”

꽈르릉! 김용걸의 외침과 함께 갑작스레 거대한 벼락이 떨어졌다. 하늘에서 떨어진 창백한 빛은 많은 제물이 올려져 있던 제단을 박살 냈고 그 충격으로 김용걸이 뒤로 휙 날아갔다.

귀를 찢을 듯한 커다란 굉음에 모두의 시선이 제단 쪽으로 향했다. 혼자서 김창의 칼과 싸우고 있던 이든이 깜짝 놀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이럴 수가······.”

제단이 부서지고 그 위에 거대한 지옥의 문이 나타났다. 끼이익 소리가 나며 지옥의 문이 열리자 그 안에서 셀 수 없이 많은 괴물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대악마를 불러내기 위한 의식은 성공적이었다. 문제는 너무 성공적이었다는 사실이다.

“야, 저거 왜 저래? 지난번에 칼레드리온 불러낼 때 보니까 저 정도까진 아니던데.”

김창이 바닥에 쓰러져 있는 카룩스를 쳐다봤다. 그는 지금 만신창이가 된 상태긴 하지만 아직 숨이 붙어있긴 했다.

칼과 칼이 부딪칠 때 김창의 칼날이 약간 흔들린 탓에 카룩스는 목숨을 잃지 않을 수 있었다.

만약 그 시점에 벼락이 떨어지지 않았다면 김창의 칼도 흔들리지 않았을 것이고 카룩스도 그대로 목숨을 잃었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보면 카룩스는 대악마 덕분에 목숨을 구한 셈이었다. 그는 인정하지 않겠지만.

“···이 멍청한 칼잡이 같으니라고. 왜 저러냐고요? 당신네 흑마법사가 너무 유능해서 그런 거 아닙니까. 매장결사 놈들을 한 무더기로 갖다 놔도 저 흑마법사 하나만큼 안 될 텐데, 거기에 마탑의 마법사들까지 힘을 보탰으니 의식이 너무 크게 성공한 겁니다.”

“너무 크게 성공했다는 게 뭔 소리야.”

“원래라면 헤인리히스 하나만 이 땅에 강림했어야 합니다. 칼레드리온이 그랬듯이 본래보다 훨씬 약화 된 상태로. 그러나 지금은 아니에요. 저기 지옥의 문이 열린 게 보이죠? 저 흑마법사는 헤인리히스만 부른 게 아니라 지옥과 통하는 문 자체를 불러내 버린 겁니다. 이러면 헤인리히스가 본래의 힘을 모두 가진 채로 이 땅에 현현할 것이며 또한 지옥의 군세를 모두 이끌고 나올 겁니다.”

“짧게 이야기해.”

카룩스가 쿨럭쿨럭 기침을 하다가 피를 한 움큼 토해냈다. 그가 자포자기한 것처럼 혼자 픽 웃더니 씹어뱉듯 말했다.

“그러니까, 우리 다 좆됐다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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