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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겜 속 칼잡이-102화 (10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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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야?”

김창은 천천히 닫히고 있는 지옥의 문을 보고서 두 눈을 끔뻑였다. 지금 저 새끼 도망치려는 건가?

이건 정말로 당황스러운 일이었다. 대전이 이후로 칼 한 자루 들고 여러 강적과 싸워봤지만 이런 일은 처음이라 순간 가만히 있고 말았다.

그러나 문이 반쯤 닫혔을 때 김창은 고개를 세차게 흔들며 정신을 차렸다. 카룩스나 로에라는 대악마가 도망치는 걸 보고 안도했겠지만 자신은 아니었다.

“다른 놈은 그냥 보내줘도 넌 안 돼.”

대악마에게 뭔가 원한이 있어서 그런 건 아니다. 솔직히 말해서 다른 놈이라면 상황에 따라서 안 싸우고 그냥 보내줬을 수도 있다.

하지만 대악마는 안 된다. 왜냐하면 저 녀석을 죽이면 신성을 얻을 수 있으니까.

요즘은 게임에서 몬스터 죽이면 경험치 들어오듯 신성을 얻고 있긴 하지만 본래 신성은 그리 쉽게 얻을 수 있는 게 아니다.

그러니 신성은 모을 수 있을 때 모아두는 게 맞다. 게다가 이 세상에는 승천할 자가 넷이나 더 있으니 그들과의 경쟁에서 뒤지지 않기 위해선 지금 여기서 대악마를 죽여야 한다.

“헤인리히스!”

김창이 크게 외치든 말든 헤인리히스는 지옥의 문을 닫고 있었다.

“겁쟁이처럼 도망칠 셈이냐! 대악마라면 당당하게 맞서 싸워라! 설마 겨우 인간 따위가 무섭다는 건 아니겠지?”

싸구려 도발이었지만 확실히 효과는 있었다. 문을 닫고 있던 헤인리히스의 손이 잠깐 멈췄으니까.

“···내가 왜 너 따위와 싸워야 하지?”

“왜 싸워야 하냐고? 오히려 내가 묻겠는데, 그럼 싸울 마음도 없으면서 지상에는 왜 올라온 거냐?”

“그거야 너희가 불렀으니까······.”

자기가 말하고도 그건 너무 궁색한 변명이라 헤인리히스가 크흠 소리를 냈다.

김창이 보기에 헤인리히스는 지금 고민 중이었다. 이대로 도망치면 오랜 세월 동안 이어온 대악마의 위엄이 전부 사라질 테니까.

“도망치려면 도망쳐라. 이제 곧 모든 사람이 너에 대한 소문을 이야기하겠군. 그 무시무시한 대악마가 겨우 인간 하나에게 겁을 먹고 도망쳤다는 소문 말이다.”

헤인리히스가 짐승처럼 으르렁 소리를 냈다. 도발이 효과를 내고 있었다. 김창이 쐐기를 박듯 비웃음 가득한 목소리로 말했다.

“사람들이 악마를 두려워할수록 악마의 힘이 강해진다지? 그러면 넌 곧 대악마 자리에서 내려와야겠군. 인간 하나에게 겁을 먹고 도망친 대악마 따위를 두려워할 사람은 세상에 없을 테니까.”

“감―히! 너 따위가 감히! 입에서 지껄인다고 전부 다 말인 줄 아느냐, 이 건방진 인간 놈!”

헤인리히스가 반쯤 닫았던 지옥의 문을 활짝 열었다. 힘껏 젖혀진 문이 쾅 소리를 냈고 지옥과 현세의 사이에 걸쳐 있던 대악마의 머리가 이쪽으로 불쑥 튀어 나왔다.

“죽음을 원하느냐? 끔찍한 고통을 원해? 오냐, 내 기꺼이 선물하마! 나는 대악마 헤인리히스다!”

도발은 성공적이었다. 도망치려 했던 헤인리히스가 제 발로 죽을 자리를 찾아왔으니까.

“너의 고통은 죽어서도 끝이 아닐 것이다! 내 손수 네 영혼을 고문해주마! 하루에도 수십 번씩 죽음의 고통을 느끼게 해주지!”

지옥의 문에서 완전히 몸을 꺼낸 헤인리히스는 과연 컸다. 덩치로 따지자면 같은 대악마인 칼레드리온과 비슷할 정도로 컸다.

그러나 그 위압감을 따지자면 칼레드리온보다 훨씬 더 강렬했다.

저번에 지상에 현현한 칼레드리온은 완전한 상태가 아니었다던가? 사실상 그건 대악마가 아니라 반쪽짜리에 불과하다고 했었지.

확실히 그 말이 맞았다. 지옥의 밑바닥에서 기어 올라온 헤인리히스의 강함은 단신으로 나라 하나쯤은 멸망시킬 수 있을 정도였으니까.

저런 것과 정면에서 맞설 수 있는 것은 승천할 자 정도 외에는 없다. 김창은 확신했다. 저건 강하다.

“그러면 신성도 많이 주겠지.”

그거면 됐다. 지금 그에게 있어서 중요한 건 그것 외엔 없었다. 김창이 숨을 크게 들이쉬었가 내뱉으며 소리쳤다.

“싸―우―자!”

신성을 가진 승천할 자의 외침은 하나의 마법과 같았다. 전장에 있던 모두의 시선이 순간 김창에게 모였다가 흩어졌다.

심지어 헤인리히스조차 강제적으로 김창을 쳐다보게 됐다. 대악마는 자신의 시선이 일순간 인간 따위에게 고정됐다는 것에 화가 났다.

얼굴에 염소의 머리뼈 가면을 쓴 거인은 불타는 도끼 한 자루를 불러내며 마주 고함쳤다.

“죽음을 원한다면, 내 기꺼이!”

쿵쿵! 대악마가 땅을 박차고 달리자 지진이라도 난 것처럼 커다란 진동이 일었다.

모두가 균형을 잃고서 비틀거리는 가운데 오직 김창만이 똑바로 서서 헤인리히스의 돌격을 정면에서 맞섰다.

“죽어라!”

부웅! 헤인리히스가 휘두른 도끼가 크게 공기를 갈랐다. 김창은 공격을 피할 수도 있었지만 그러지 않았다.

그는 잿빛으로 반짝이는 칼날을 휘둘러 정면에서 공격을 받아냈다. 칼과 도끼가 부딪친 충격으로 거대한 돌풍이 일었고 바닥이 흔들렸다.

헤인리히스는 인간의 몸으로 자신의 공격을 받아낸 김창을 보고서 으르렁 소리를 냈다. 원래라면 말도 안 되는 일이지만 내면에 신성이 깃든 자라면 불가능한 재주가 아니었다.

대악마는 오른손으로 도끼를 크게 휘둘렀지만 그건 애꿎은 바닥만 가를 뿐이었다. 헤인리히스가 바닥에 박힌 도끼를 빼내는 틈을 노려 김창이 대악마의 품 안쪽으로 달렸다.

빠르게 거리를 좁히는 김창을 보면서 헤인리히스가 왼쪽 손을 휘둘러 사악한 기운을 뿜어냈다.

그건 마법이 아니지만 어지간한 마법 이상으로 강력한 파괴력을 자랑했다. 바닥이 뒤틀리는 듯하다가 곧 폭발하며 사방으로 돌조각을 흩뿌렸다.

“쥐새끼 같은 놈!”

헤인리히스는 김창이 고작 그런 공격으로 죽었을 리는 없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는 다시 도끼를 휘둘러 먼지구름을 걷어낸 후에 사악한 기운을 수십 조각으로 쪼개 한 번에 사출했다.

과연 대악마의 생각대로 김창은 죽지 않았다. 그는 헤인리히스의 주변을 빠르게 반 바퀴 달리면서 뒤쪽으로 돌아가려 하고 있었다.

헤인리히스가 날린 암흑 조각은 마치 유도 기능이라도 달린 것처럼 김창을 추적해서 날아갔다.

그건 시위를 화살처럼 재빨랐지만 김창은 그보다 훨씬 더 빨랐다. 어둠 조각이 그가 달린 자리에 흔적을 남기듯 바닥에 하나씩 꽂혔다.

결국 어떤 것도 김창의 몸에 상처를 남기지 못했지만 헤인리히스는 신경 쓰지 않았다. 그는 애초에 그게 맞을 거라고 생각조차 하지 않았으니까.

“너는 나를 이길 수 없다! 절대로!”

염소 뼈 가면의 눈구멍에서 황금색 빛이 번쩍였다. 그건 타락한 황금의 빛이었다. 사람을 탐욕에 물들게 하고 욕심이 지나쳐 결국 제 손으로 목을 조르게 만드는 저주의 눈빛이었다.

헤인리히스가 쿵 하고 발을 굴렀다. 순간 그 주변으로 황금색 빛이 번쩍이더니 둥근 원이 나타났다.

“나는 들끓는 황금을 뿌리는 자이자!”

원을 따라서 바닥이 갈라지더니 용암이 치솟았다. 아니, 그건 용암이 아니라 사람을 녹여버릴 수 있을 만큼 뜨겁게 끓어오른 황금이었다.

분명 찬란하게 빛나는 황금이었건만 그걸 보고서 아름답다고 여기는 사람은 없었다. 당연한 일이다. 그 어떤 탐욕적인 인간도 뜨거운 황금 속에서 녹아내려 죽길 바라진 않을 테니까.

그건 김창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머리 위까지 치솟은 황금의 물결이 그대로 아래로 쏟아지는 걸 보고 눈을 크게 떴다.

“창백한 벼락을 휘두르는 자이며!”

꽈르릉 소리와 함께 머리 위로 눈이 멀 정도로 강렬한 빛이 반짝였다. 일직선으로 곧게 쏘아져 내린 벼락 탓에 주변 공기가 뜨겁게 달아올랐다. 만약 누군가 숨을 삼켰다면 그 열기에 기도가 익어버렸을지도 모른다.

벼락이 으레 그러하듯 헤인리히스가 떨어트린 창백한 빛도 눈 깜짝할 새에 지상에 처박혔다.

“또한 꺼지지 않는 영원의 불꽃을 휘두르는 자다!”

벼락 때문에 달궈진 공기의 열기가 아직 식지도 않았는데 헤인리히스가 휘두른 불꽃의 도끼가 다시 한번 주변을 태웠다.

위에서 아래로 크게 휘두른 도끼는 그대로 바닥을 박살 냈고 그 열기는 주변의 모든 것을 불살랐다.

타고 남은 재조차 다시 타오르는 열기 속에서 대악마는 울부짖듯 외쳤다.

“말해봐라! 내가 이래도 널 두려워해서 도망친다고 생각하느냐! 어서 말―해!”

헤인리히스가 크게 소리치자 공기가 떨렸다. 씩씩거리며 소리를 지른 그는 대답을 기다렸으나 아무 소리도 들려오지 않았다.

하기야 그럴 것이다. 아무리 신성을 가진 존재라고 해도 그런 공격을 전부 받아낼 수는 없다.

만약 김창이 마법사였다면 점멸 마법을 쓰거나 수십 겹의 보호막을 만드는 것으로 목숨을 건졌을 수도 있다.

하지만 칼잡이에게 그런 재주는 없다. 칼 한 자루만 믿고 설치는 그들은 물리적인 공격에는 강해도 마법적인 공격에 어쩔 도리가 없기 때문이다.

헤인리히스는 한바탕 힘을 쏟아내고 나니 기분이 나아졌다. 결국 별것도 아닌 게 목소리만 컸군.

이럴 줄 알았으면 굳이 추한 모습 보여줄 것도 없이 그냥 싸워도 됐겠는데. 헤인리히스는 자신의 추태가 생각나서 다시 기분이 나빠졌다.

“한 놈도 남겨두지 말고 전부 죽여야겠군······.”

원래 소문이라는 건 전할 사람이 없으면 묻히는 법이다. 지금 여기엔 자신의 추태를 본 놈들이 너무 많으니 싹 다 죽여서 입을 다물게 만들어야 했다.

헤인리히스가 후 하고 숨을 내뱉으며 불타는 도끼를 머리 위로 들어 올릴 때였다.

“재주는 다 부렸나?”

순간 몸이 떨렸다. 살아 있다고? 내가 환청을 들은 게 아니라 정말 살아있다고?

그럴 수가 있나? 물론 끓어오르는 황금 속에서 살아남을 수는 있다, 떨어지는 벼락을 맞고도 살아남을 수는 있다, 타오르는 불꽃의 열기를 이겨내고 살아남을 수는 있다.

하지만 그 세 가지를 모두 맞고서 살아남을 수는 없다. 인간이라면 그럴 수 없다. 인간을 초월한 승천할 자라고 하더라도 그럴 수는······.

“내가 지금까지 너무 좆밥들이랑만 싸우긴 한 모양이야. 설마 시작부터 날 이렇게 몰아세울 놈이 있다곤 생각조차 못 해봐서······.”

불꽃의 연기를 뚫고 나타난 김창의 모습은 빈말로도 멀쩡하다고 할 수 없었다.

그가 한 발자국 걸을 때마다 굳은 황금 부스러기가 후드득 떨어졌고 입은 옷은 거적이나 다름없을 정도로 너저분해졌다.

헤인리히스가 생각한 것처럼 승천할 자라고 해도 그 공격을 모두 맞고서 멀쩡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김창은 살아있었다. 멀쩡하진 않아도 살아있었다. 그리고 헤인리히스는 그게 뭘 의미하는지 알았다.

살아만 있다면 저쪽은 나를 죽일 수 있다.

“고맙다. 덕분에 한 수 배웠다. 그러면 나도 뭐 하나 보여주마.”

김창의 칼자루 위에 손을 올렸다. 아깐 분명 칼을 뽑고 있었는데 지금은 칼집에 꽂혀 있었다.

뭘 하려고? 헤인리히스가 본능적으로 위기를 감지하고 한 발자국 뒤로 물러날 때였다.

달칵. 칼자루에서 칼 뽑히는 소리와 함께 빛이 내달렸다.

“이런······.”

마법의 정의는 무엇일까. 세상엔 많은 마법사가 있고 그 숫자만큼 많은 이야기가 있지만 결국 마법의 정의난 단 한 가지로 귀결된다.

가능한 일이라면 그건 마법이 아니다. 하지만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면 그게 무엇이든 간에 그건 이미 마법이다.

“···말도 안 되는.”

그러니 공간을 접어버리듯 공간을 무시하는 저 공격은 분명 마법의 경지에 도달한 일격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헤인리히스는 인정했다. 저 칼잡이는 강하다. 과연 대악마를 죽일 수 있을 만한 실력자다.

“싸움은, 싸움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고함과 함께 헤인리히스의 상처에서 검은색 피가 왈칵 솟구쳤다. 거리를 무시하고 날아간 참격은 대악마의 어깨에서 반대쪽 허리까지 긴 상처를 남겼지만 결국 숨통을 끊는 데는 실패했다.

본래 승천할 자 하이나조차 죽일 수 있는 일격이지만 헤인리히스의 공격에 너무 얻어맞은 탓에 위력이 줄고 말았다.

“씨발.”

김창이 퉤 하고 피 섞인 침을 뱉어냈다. 그가 칼자루를 세게 고쳐 쥐며 말했다.

“신성을 대체 얼마나 주려고 안 뒈지는 거야. 덤벼, 씹새야.”

헤인리히스는 엉망이 된 꼴로 자신에게 뚜벅뚜벅 걸어오는 김창을 보고서 순간 두려움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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