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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겜 속 칼잡이-103화 (103/200)

103

“다 죽어가는 시체 놈이!”

헤인리히스가 불타는 도끼를 세게 휘둘렀다.

“의미도 없는 허세를 부리는구나!”

김창은 저 공격을 정면에서 받아내는 무식한 짓을 하지 않았다. 아까라면 몰라도 지금 몸으로 그딴 짓을 했다간 손목이 부러져도 이상할 게 없었으니까.

이 싸움은 오래 끌수록 손해다. 아무리 승천할 자라고 해도 이런 몸으로 싸움을 길게 이어나갈 수는 없다.

그러니 금방 끝낸다. 다행스럽게도 헤인리히스 역시 완전한 상태는 아니었다.

“아까의 그 기세는 다 어디로 간 거냐? 결국 허세였던 거냐? 도망치지 말고 제대로 싸워라!”

헤인리히스의 공격은 도끼질로 끝나지 않았다. 그가 아까 보여줬던 세 가지 권능이 또다시 김창을 위협했다.

넘실거리는 황금의 물결이 바닥을 타고 흐르고 흐려진 하늘에선 창백한 빛이 반짝였다.

김창은 빠르게 쏟아져 오는 황금의 물결을 보고서 후우 하고 숨을 내뱉었다. 그는 칼끝이 아래로 향하게 칼을 늘어트리고는 어깨를 느슨하게 비틀었다.

그리고 대각선으로 크게 칼을 휘둘렀다. 잿빛으로 번쩍이는 칼날은 허공에 기다란 궤적을 그렸고 빛은 반월을 그리며 황금의 물결을 향해 질주했다.

촤아악! 빛의 칼날이 황금의 물결을 반으로 갈라버리며 쉴 새 없이 내달렸다. 자신의 권능 중 하나를 그저 칼질만으로 무력화시키는 걸 본 헤인리히스가 몸을 움찔댔다.

그는 당황하면서도 갈라진 황금의 물결 사이로 달려오는 김창을 보고선 바로 정신을 차렸다. 싸움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자신 역시 치명상을 입긴 했지만 그건 저쪽도 마찬가지일 터.

결국 이 싸움은 누가 먼저 상대에게 유효타를 먹이느냐의 대결이다. 그리고 그런 승부라면 그저 칼질 말고는 할 줄 모르는 칼잡이보다 여러 권능을 다루는 이쪽이 훨씬 더 유리하다!

꽈르릉!

헤인리히스가 쿵 하고 발을 구르자 바닥이 흔들리다 못해 갈라졌다. 빠르게 달리던 김창의 몸이 흔들리는 것과 동시에 하늘에서 벼락이 떨어졌다.

“이만 뒈져라!”

흔들리는 바닥 위에서 금세 자세를 고쳐 잡은 김창은 머리 위로 떨어지는 벼락을 향해 칼을 들었다.

그는 칼날을 비스듬히 기울이더니 벼락이 떨어지는 순간에 휙 하고 칼을 휘둘렀다.

단지 그것뿐이었는데 위에서 아래로 곧게 떨어지던 벼락이 방향을 바꿔 헤인리히스를 향해 날아갔다.

“···뭣?”

검술이 극에 달하면 칼을 살짝 비트는 것만으로 상대의 공격을 흘리거나 오히려 역이용할 수 있다는 말을 들어본 적이 있다.

헤인리히스는 오랜 세월을 살아온 대악마고 그간 여러 영웅을 만나봤으니 그런 기술이 있다는 것 자체는 알고 있다.

하지만 벼락을 튕겨 낸다고? 겨우 칼 한 자루를 가지고? 원래라면 칼날에 벼락이 닿는 순간에 감전됐어야 정상 아닌가?

그런데 저 칼잡이는 대체······.

“크아아악!”

헤인리히스는 자신의 권능에 자신이 당하는 진귀한 경험을 했다. 몸 전체가 찌릿찌릿하고 가죽 타는 냄새가 몽글몽글 올라왔다.

하지만 대악마답게 그러한 일격에 죽지는 않았다.

“이 건방진 놈이! 감히! 감히! 날!”

김창은 달리고 있었다. 헤인리히스가 뭐라고 떠들든 신경 쓰지 않고 달리고 있었다.

그가 가볍게 왼손을 휘두르자 어디선가 칼 한 자루가 날아와 헤인리히스를 향해 날아갔다.

투창이라도 한 것처럼 쏜살같이 날아간 칼을 보고서 헤인리히스가 도끼를 휘둘렀지만 그건 마치 자아를 가진 것처럼 잽싸게 방향을 틀었다.

콰직! 결국 헤인리히스의 얼굴까지 날아간 칼이 뼈 가면의 눈구멍 속으로 쏙 들어가더니 그 안의 왼쪽 눈을 찔렀다.

새하얀 가면 위로 검은색 피가 줄줄 흘렀다. 잠깐 새에 왼쪽 눈을 잃어버린 헤인리히스가 발광하며 도끼를 휘둘렀다.

“죽여버리겠다! 널 죽여버리겠어!”

세 가지 권능 중 두 가지는 무력화됐다. 그러면 남은 것은 꺼지지 않는 불꽃 하나뿐. 그리고 그 불꽃은 저 도끼로부터 나오는 힘이었다.

어느새 헤인리히스의 발치까지 달려간 김창은 자신을 향해 날아오는 도끼날을 보았다. 원래라면 쳐내거나 피해야 했지만 그는 둘 다 하지 않았다.

그는 속으로 숫자를 세며 가만히 있다가 도끼날이 지면에 가까울 정도로 낮게 다가오는 순간에 훌쩍 바닥을 박차고 뛰었다.

잠깐 도끼날 위에 올라탔다가 그걸 발판 삼아 더 위로 뛰었다. 공중에서 한 바퀴 회전하면서 칼자루를 역수로 잡아 흡 소리와 함께 헤인리히스의 얼굴을 향해 내던졌다.

쐐액! 승천할 자의 괴력이 담긴 칼은 빠르게 날아가 대악마의 하나 남은 눈까지 터트려 버렸다.

순식간에 양 눈을 전부 잃어버린 헤인리히스가 끔찍한 비명을 내질렀다. 그 여파인지 얼굴을 가리고 있던 염소 뼈 가면이 쩌적 소리를 내더니 양쪽으로 갈라져 바닥에 툭 떨어졌다.

가면이 벗겨지고 드러난 헤인리히스의 얼굴은 끔찍했다. 그건 가죽이 전부 벗겨져서 새빨간 근육이 그대로 드러난 형태를 하고 있었는데 김창이 보기에 누가 얼굴을 반으로 자른 것만 같았다.

“칼! 돌아와!”

헤인리히스의 왼쪽 시야를 빼앗고 그 주변을 빙빙 돌아다니며 얼굴이나 몸을 쿡쿡 찌르고 있던 칼이 주인의 부름에 얼른 날아왔다.

김창은 아래로 추락하면서 칼을 손에 잡았고 그걸 헤인리히스의 몸에 콱 꽂았다. 콰드득 소리가 나는 건 두꺼운 갈비뼈를 모두 부수면서 떨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헤인리히스의 몸에 길게 상처를 남긴 김창은 칼자루를 손에 잡고서 공중에 대롱대롱 매달려 있었다.

그는 칼자루를 세게 잡은 채로 헤인리히스의 몸을 발로 차서 공중에서 반 바퀴 회전해 칼날 위에 올라섰다.

그리고는 칼날 위에서 퉁퉁 뛰더니 그걸 발판 삼아 다시 위쪽으로 휙 하고 뛰었다. 순식간에 헤인리히스의 어깨 위로 올라간 그가 또다시 외쳤다.

“칼!”

이번에는 오른쪽 눈에 박혀 있던 칼이 김창의 손으로 돌아왔다. 그는 칼자루를 세게 쥐고서 헤인리히스의 두꺼운 목을 콱 찔렀다.

“크아아악!”

혈관이 잘리고 그 안에서 세차게 검은색 피가 쏟아져 나왔는데 그걸 온몸으로 뒤집어 쓰는 건 별로 유쾌한 경험이 아니었다.

김창은 입안에 들어온 피를 퉤 하고 뱉어낸 후에 목덜미에 박은 칼을 더욱 힘껏 밀어 넣더니 칼자루를 반 바퀴 돌렸다.

콰드득 소리가 나는 것만 봐도 그 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알 수 있었다. 헤인리히스가 울컥 하고 거대한 핏덩어리를 뱉어내는 것과 동시에 크게 소리쳤다.

“나는 헤인리히스! 지옥의 대악마다! 내가 겨우 네깟 놈에게 죽을 것 같으냐? 이 내가 너에게 죽을 것 같아!”

씹새, 안 죽으면 어쩔 건데. 김창이 싸늘하게 웃는 순간이었다.

“나는 영원히 꺼지지 않는 불꽃의 주인이로다!”

화르륵! 헤인리히스의 발끝에서부터 거센 불길이 치솟더니 곧 몸 전체를 휘감았다.

저 불꽃이 얼마나 지독한지 잘 알고 있었기에 김창은 얼른 아래로 뛰어내렸다. 옆구리에 박아놨던 칼도 회수해서 아래로 내려오니 이제 헤인리히스의 거대한 불의 거인이 되어 있었다.

“날 죽여봐라! 나는 황금이자 벼락이요, 또한 영원의 불꽃이니라! 너, 건방진 칼잡이야! 네가 영원의 불꽃을 죽일 수 있을 것 같으냐!”

불의 거인이 뜨거운 안광을 빛냈다. 분명 양 눈을 다 찔렀으니 아무것도 볼 수 없어야 할 텐데 타오르는 불꽃 속에서 눈이 재생된 모양이었다.

그러면 헤인리히스가 말하는 영원의 불꽃이란 결코 꺼지지 않는 생명력을 말하는 것일 터다. 아무리 베고 또 베어도 절대 꺼지지 않고 스러지지 않는 영원 그 자체.

“그럼 네가 뭐 불사신이라도 됐다는 거냐?”

“불사신? 그래! 그 말이 정확하다! 나는 불사이자 불멸의 존재다! 천상에서 거들먹거리는 저 승천자가 이 땅에 직접 강림하는 게 아닌 이상 나를 죽일 수 있는 것은 없다! 이것은 확언이며 또한 단언이다!”

헤인리히스의 목소리에는 자신감이 넘쳤다. 김창은 그걸 보며 칼집에 칼을 꽂았다.

“내가 하나 가르쳐줄까.”

“뭘 말이냐?”

김창은 바로 대답하는 대신에 칼자루를 잡고서 자세를 낮췄다. 뭘 하려는 건지 바로 알아챈 헤인리히스가 코웃음을 날렸다.

“이 멍청한 놈! 내가 아까 당했던 공격에 또 당할 줄 아느냐? 분명 그건 강력한 공격이지만 불멸의 존재를 죽일 수는 없다!”

김창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는 그저 칼자루를 쥐고 당겼을 뿐이다.

달칵 소리가 나고 다시 달칵. 빠르게 뽑혔던 칼이 어느새 다시 칼집에 꽂혀 있었다.

헤인리히스는 그걸 보고서 으하하 하고 웃었다. 저 칼잡이 놈, 허세는 있는 대로 부렸으면서 결국 아무것도 아닌······.

아니어야 하는데······?

헤인리히스는 어째서인지 자신의 시야가 기우뚱하는 걸 느꼈다. 아니, 시야가 기우는 게 아니었다. 이건 자신의 몸이 기울고 있는 것이었다.

하지만 어째서? 나는 불멸이요 또한 영원이거늘······.

쿵.

불의 거인의 몸이 반으로 잘려 아래로 떨어졌다.

“세상에 칼로 찌르면 안 죽는 게 어딨어, 새끼야.”

김창이 무심하게 말하자 헤인리히스는 자신의 몸이 싸늘하게 식는 걸 느꼈다. 이런 식으로, 겨우 이런 식으로 내가 죽는다고······.

불의 거인의 몸에서 열기가 떠나갔다. 시간이 지나자 그건 거대한 잿더미로 변했고 곧 불어오는 바람을 타고서 날아갔다.

싸움은 그걸로 끝이었다. 승천할 자가 지옥의 대악마를 죽였다.

“후······.”

김창은 내면에 깃드는 막대한 양의 신성을 느꼈다. 이미 만신창이가 됐던 몸도 새롭게 들어온 신성의 힘 덕분에 상처가 빠르게 아물고 있었다.

이 정도면 이제 칼에 찔려도 침 바르면 낫는 수준이 아닐까? 김창이 두 눈을 감고 새로 얻은 신성의 황홀함을 만끽하고 있을 때, 주변에서는 커다란 소란이 일어났다.

“키에엑!”

“도망! 도망!”

제 주인이 죽은 걸 본 괴물들이 허겁지겁 지옥의 문을 향해 도망치기 시작했다. 애초에 김김용걸과 한석구의 존재 때문에 시간이 지날수록 불리해지는 싸움이었는데 대악마까지 죽어버렸으니 더는 싸울 필요가 없었다.

다른 사람들은 굳이 도망치는 적들을 뒤쫓지 않았다. 성기사로서 모든 악을 멸해야 할 의무가 있는 카룩스조차도.

그는 이 싸움에서 너무 많이 지치고 말았다.

“이야, 정말 혼자서 대악마 죽였네. 이거 게임이었으면 보스 솔킬이라고 인증 올리고 그래야 할 일 아닌가?”

김용걸이 장난스럽게 말하며 시체 군단을 다시 돌려보냈다. 한석구가 말을 받았다.

“쟤 이제 완전 괴물이야. 원탁 바깥에서 뭘 하고 다녔는지는 몰라도······.”

“뭐 어쨌건 일이 다 끝났으니 된 거지. 자, 그러면 이제 다들 집에 돌아갈까? 내가 보니 다들 지친 것 같은데.”

김용걸의 말대로 마법사들과 성기사들은 몹시 지친 얼굴이었다. 초인인 김용걸과 한석구의 도움 덕분에 아무도 죽지 않고 끝나긴 했지만 다친 사람들도 분명 있었다.

대악마의 현현도 막았겠다, 김용걸의 말대로 이젠 집에 돌아가서 쉬면 될 일이었지만 카룩스는 뭔가 할 말이 있는 듯 입을 우물거리고 있었다.

그걸 본 한석구가 말했다.

“또 왜? 무슨 할 말이라도 있으신가?”

잠깐 고민하던 카룩스가 무겁게 입을 열었다.

“···덕분에 헤인리히스를 처치할 수 있었습니다. 이건 확실히 감사할 만한 일입니다.”

“감사 인사하려고? 그런 거 됐어. 애초에 우리 때문에 생긴 일인데 뭘.”

“여러분의 활약에는 정말 감사드립니다. 하지만······.”

“하지만 뭐?”

카룩스가 후 하고 한숨을 내쉬더니 말했다.

“이번 일에 대해서 누군가 책임을 져야 할 겁니다. 결과가 좋았다고 해서 모든 죄가 용서될 수 있는 건 아니지요. 심지어 이번 일은 까딱 잘못했으면 대륙 전체가 큰 위험에 빠질 뻔했습니다. 누군가 책임을 지지 않는다면 반발이 심할 겁니다.”

한석구가 허 소리를 내며 삐딱하게 고개를 기울였다.

“그래서 우리 원탁에게 책임을 묻겠다? 자신 있나? 자기 발언을 감당할 자신이 있느냐고.”

카룩스는 한석구의 마법을 두 눈으로 똑똑히 봤다. 자신 있느냐고 묻는다면······.

“······꼭 원탁이 책임을 져야 하는 건 아니죠. 따지고 보면 대악마를 불러낸 건 마탑이 아닙니까?”

그 말에 로에라가 화들짝 놀랐다. 제기랄, 기어코 우리한테 책임을 묻겠다는 건가? 하기야 원탁보다는 마탑이 훨씬 더 만만할 테니.

“그러니까 원탁은 무서우니 못 건드리겠고, 마탑은 만만하니 덤터기를 씌우겠다는 건가? 성기사가 할 법한 발언은 아니군.”

한석구가 이죽거렸으나 카룩스는 무덤덤했다.

“이건 원탁을 위한 일이기도 합니다. 아무리 원탁이라도 대륙 전체를 상대할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하기야 그것도 맞지. 한석구는 원탁에 대한 애정이 남다른 사람이지만 그 역량을 과대평가하진 않았다.

대륙 전역과 전쟁을 하게 된다면 랭커들은 살아남을 수 있다. 하지만 그 밑의 애들은? 거기까지 전부 챙길 수는 없다.

“확실히 맞는 말이긴 하군. 그러면······.”

한석구의 말을 듣고서 로에라의 얼굴이 흐려졌다. 저 씹새, 결국 마탑을 버리려는 건가? 사냥 끝난 뒤에 개를 삶아 먹는 것도 아니고 이게 대체 뭔······.

“잠깐, 내가 하나 이해가 안 가는 게 있는데.”

갑작스레 말한 건 김용걸이었다. 카룩스가 그를 쳐다봤다.

“뭐 말입니까?”

“내가 잘은 몰라도 댁이 원탁이 무서워서 함부로 못 건든다는 건 알겠어. 그러면 마탑도 건드리면 안 되는 거 아닌가?”

“그게 무슨 소리······.”

김용걸이 흠 소리를 내며 팔짱을 꼈다.

“마탑, 그거 우리 원탁이 인수했는데. 그래서 내가 마탑주 하기로 했는데 혹시 불만 있나? 아니면 뭐 기어코 원탁이랑 드잡이질이라도 할 셈인가?”

뭔 소리야? 댁이 언제 마탑 인수했는데? 눈 뜨고 마탑주 자리를 빼앗긴 로에라가 당황해서 입을 쩍 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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