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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겜 속 칼잡이-119화 (118/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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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성?”

한석구가 눈을 깜빡이다가 말했다.

“걔가 칼라드에 있었나? 그런데 왜 얼굴 한 번 본 적 없지?”

“나야 가끔이라도 원탁에 나오고 그러지만 걘 안 그러니까. 내가 듣기로 요즘 도박장에서 산다던데.”

랭커라는 놈이 일은 안 하고 도박장? 한석구가 얼굴을 찡그렸다.

그는 유능한 인재가 일 안 하고 노는 걸 못 참는 성격이다. 지금까지야 원탁의 영향력이 칼라드를 지배하는데 그쳤지만 이젠 덩치가 훨씬 더 커진 만큼 일할 사람도 더 필요했다.

그러니 랭킹 2위나 되는 인재가 놀고먹는 건 그냥 두고 볼 수 없다. 데려와서 아무 직책이나 주고 굴려 먹어야지.

“걔 어디 있어?”

“아마 지금도 도박장에 있을걸? 그래서 도박장이 어디냐면······.”

하오성이 도박장의 위치를 상세히 설명했다. 가만히 고개를 끄덕이며 도박장의 위치를 머릿속으로 그려보던 한석구가 문득 물었다.

“그런데 넌 도박장이 거기 있는 걸 어떻게 알아? 너 도박하냐?”

한석구가 째려보자 하오성이 펄쩍 뛰며 고개를 흔들었다.

“내가 도박을 왜 해? 차라리 그 돈으로 술이나 마시지, 왜 돈을 땅을 버리겠냐고. 도박장 위치를 아는 건 황금성 걔랑 술 마시다가 이야기 들은 것뿐이야. 같이 가자고 하던데 난 바로 거절했고.”

사람 죽이고 다니는 암살자치고 건전한 친구로군. 한석구가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면 나 잠깐 나갔다 올 테니까 넌 가서 쉬어라. 밤샘 작업해서 많이 졸릴 텐데.”

하오성이 하암 소리를 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귀족들을 암살하는 건 별로 어려운 일이 아니지만 여기저기 이동하느라 제법 체력을 썼다.

한석구는 그와 함께 방을 나섰고 곧 다른 방향으로 갈라졌다. 혼자 복도를 걷던 중에 모퉁이를 돌자 인기척이 느껴졌다.

“한석구?”

들려오는 목소리에 얼굴을 확인하니 김창이었다. 한석구가 반색했다.

“안 그래도 너한테 할 말 있었는데 마침 딱 만났네. 어디 갔다 온 거야?”

“심심해서 산책 좀 갔다 왔는데. 그런데 날 찾았다고? 왜?”

“정확히 말해서 내가 찾은 건 아니고 티샬레가 찾은 거긴 한데, 뭐 그게 중요한 건 아니니까. 요즘 많이 심심하지? 일거리 있는데 갈래?”

“티샬레가 날? 설마 자기 죽여달라고 부른 건 아닐 테고. 일이라는 건 또 뭔데?”

한석구는 아까 티샬레에게 들었던 이야기를 설명했다. 승천할 자가 나타났다는 이야기, 그가 딜루키둠 가문을 습격했다는 이야기, 그리고 일곱 요정 대가문이 반으로 갈라져 내전을 벌이고 있다는 이야기까지.

잠자코 이야기를 듣던 김창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 승천할 자라는 놈은 내가 찾던 녀석 같군. 에리엇한테 조사를 요청했는데 결과가 나오기 전에 그쪽에서 먼저 나타나 주다니, 이것 참 고마운 일이야.”

김창은 이번에 나타난 승천할 자가 진짜 요안니스라고 확신했다. 한석구의 말대로라면 습격자가 혼자서 딜루키둠 가문을 압도했다는 건데, 그건 승천할 자 정도의 실력자가 아니면 불가능한 일이다.

‘이번엔 사기 매물이 아닌 것 같군.’

게다가 딜루키둠을 습격한 승천할 자는 요정이었다. 요안니스 역시 요정일 가능성이 크니 전후 사정을 생각하면 그가 바로 천 년 전의 승천할 자일 가능성이 컸다.

김창은 흐뭇하게 웃으며 칼자루를 손으로 매만졌다. 그게 칼 뽑기 전에 하는 버릇임을 아는 한석구가 미간을 좁혔다가 말했다.

“그래서, 갈 거야?”

“가야지. 내가 언제 이런 일에 빠지는 거 봤나?”

“하기야······. 티샬레가 너 꼭 좀 데려와 달라더라. 애초에 습격자가 정말 승천할 자라면 너 말고 상대할 사람이 없기도 하고.”

“그러면 바로 출발하나? 짐 챙겨서 오면 돼?”

“아니, 아직 안 돼. 아무리 그래도 내전인데 우리 둘만 덜렁 갈 순 없지. 원래 이런 건 정성이 중요한 거거든? 정말 우리 둘만으로 충분해도 저쪽에선 기분 상할 수가 있다고. 그러니 적어도 세 명은 가야지.”

두 명이나 세 명이나 원군으로는 똑같이 적은 거 아닌가? 그리고 상대 기분 상하는 거야 싸우는 모습만 한 번 보여주면 다 해결될 텐데 뭘.

김창이 생각하는 사이에 한석구가 다시 걸음을 옮기며 말했다.

“잘됐다. 지금 한 명 더 데리러 가는 길이거든? 너도 같이 가자. 나 혼자 가면 말 안 듣는 놈 끌고 어려운데 너랑 같이 가면 좀 더 쉽게 데려올 수 있겠지.”

원탁의 랭커 중에는 정복자나 하오성처럼 한석구의 말을 잘 듣는 사람도 있지만 대부분은 말을 더럽게 들어먹지 않는다.

애초에 랭킹 2위라는 놈이 업무는 안 보고 대낮부터 도박장이나 들락거리는 것부터가 한석구를 무시하는 행위다.

아무리 한석구가 강해도 랭킹 2위를 이길 정도는 아니었으므로 지금까진 그냥 뒀는데 이젠 김창이라는 든든한 무력이 생겼으니 그러지 않기로 했다.

김창으로서도 한 명을 더 데려와야 조금이라도 빨리 전장으로 갈 수 있으니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두 사람은 곧장 도박장으로 향했다. 한석구는 하오성의 설명을 더듬어 가며 도박장을 찾아 움직였다.

“칼라드에 도박장이 있는 걸 내가 왜 몰랐나 했더니······.”

도박이라는 건 딱히 떳떳한 취미가 아니기에 보통 도박장도 숨겨져 있는 법이다.

칼라드의 도박장 역시 그랬다. 보통 사람이라면 쓸데없이 돌아다니지 않을 으슥한 길 구석에 가게를 숨겨두고 운영 중이었는데 정문에는 인상 험악한 남자 둘이 있었다.

아무래도 귀찮은 손님을 쫓아내는 역할인 듯했는데 그들은 자신의 역할에 충실했다. 그것도 쓸데없이.

“넌 뭐냐? 여긴 아무나 오는 곳이 아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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