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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겜 속 칼잡이-124화 (123/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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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은 당연히 요안니스가 화를 내리라 생각했다. 그러나 그는 손으로 턱을 쓰다듬으며 고개만 끄덕일 뿐이었다.

“하기야··· 듣고 보니 맞는 말이로구나. 지껄이라고 했으나 들어주겠다고 한 적은 없지.”

뭐지? 왜 화를 내지 않지? 기습을 한 건 이쪽인데 당황스러운 것도 이쪽이다.

김창이 가만히 요안니스를 쳐다보자 그가 웃으며 말했다.

“음? 왜, 내가 네 말에 수긍해서 당황스러우냐? 그리 볼 것 없노라. 원래 천 년 전의 법도라는 것은 정정당당한 승부를 위해 만들어진 것인데, 그건 그만큼 기습을 하는 놈이 많았다는 뜻이니라. 승천할 자라는 놈들이 죄 그랬으니 네가 기습을 했다고 해서 그다지 화낼 만한 일은 아니다.”

대체 천 년 전의 승천할 자들은 어떤 싸움을 했단 말인가? 김창이 어이없어하는 가운데 요안니스가 칼을 뽑으며 말했다.

“그러면 인사는 이쯤하고. 승부를 내보도록 할까, 이번 시대의 승천할 자여.”

“그거 듣던 중 반가운 소리로군.”

김창 역시 요안니스와 마주 보며 칼을 뽑았다. 그러자 나머지 칼 한 자루도 주인을 지키겠다는 듯 주변을 빙빙 돌았다.

그걸 본 요안니스가 호오 소리를 내며 말했다.

“아까의 기습도 그랬지만······ 재밌는 기술은 쓰는구나. 그건 어디서 배웠느냐? 승천할 자라면 독학으로 익혔다고 해도 이상할 건 없겠다만.”

숨길 만한 일도 아니었기에 김창은 사실대로 말했다.

“개눈깔이 쓰던 거 보고 베꼈다.”

“···개눈깔? 아, 누구인지 알겠구나. 멀고 먼 별의 바다를 건너온 이방인이자 외눈의 마왕이라 불리던 년. 그리고 감히 내 이름을 훔쳐 권세를 누리던 얼치기들의 부하.”

이 녀석, 암흑 의회에 대해서 알고 있었나? 그런데 왜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지?

김창이 의아해 하는 가운데 요안니스가 이어 말했다.

“왜 내가 그 멍청한 열등종 놈들을 그냥 뒀느냐고? 그거야 간단한 이유지. 신의 권세는 어디서 나오는가? 그 이름에서 나오는 법이다. 신의 이름이 널리 알려지면 알려질수록 신의 권세는 더욱 강력해지는 법이니라. 원래라면 내가 직접 이름을 알려야 할 일이지만 그 멍청한 열등종 놈들이 내 대신 움직여주고 있으니 굳이 죽일 이유가 있느냐?”

“열등종이 어쩌고 하는 놈치고 생각보다 아량이 있으시군? 그놈들이 네 이름에 먹칠을 하면 어쩌려고 그냥 두는 거냐?”

“아량과 자비는 왕족의 자격이니라. 개미에게 과자 부스러기를 기꺼이 내줄 수 있는 것처럼 열등종의 목숨을 살려주는 것도 아주 쉬운 일이지.”

“아, 그러셔? 그런데 내가 듣기로 네가 왕족이라는 걸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던데. 요정들에게 물어봐도 그런 사람이 있었냐고 되묻기만 할 뿐이고.”

줄곧 여유로웠던 요안니스의 얼굴이 구겨졌다.

“멍청한 놈, 모른다고 해서 없게 되는 것은 아니다. 나는 분명 요정왕의 혈통을 이었으나 필요에 따라 사라졌을 뿐이다. 너는 요정 왕가에서 쌍둥이를 불길하게 여기는 것을 아느냐?”

옛날이야기에도 자주 있는 것이다. 쌍둥이가 태어나면 왕국에 불길한 일이 일어나니 둘 중 하나를 죽여버리는 이야기.

그러나 그런 이야기는 대개 아이를 죽여야 할 책임자가 양심의 가책을 느껴 몰래 살려주는 경우가 많다.

그러면 요안니스도 그런 경우일까? 그런 거라면 그의 긴 수명도 이해가 되는 일이다.

“뭔 이야기인지 대충 알겠군.”

“네 말을 빌리자면, 구구절절한 설명은 필요 없겠지. 안 그러느냐?”

“잘 알고 있군. 그러면 입은 그만 놀리고 뽑은 칼이나······.”

김창의 말은 끝까지 이어지지 않았다. 갑자기 훅 찔러 들어온 요안니스의 칼이 그의 심장을 노렸기 때문이다.

단련된 반사 신경은 요안니스의 재빠른 움직임에 바로 반응했고 심장이 터지기 전에 공격을 쳐내는데 성공했다.

김창은 눈을 크게 뜨고 요안니스를 쳐다봤다. 요정이 웃었다.

“왜, 너는 기습해도 되고 나는 안 되느냐? 분명 천 년 전의 법도가 왜 생겼는지 설명했던 것 같은데?”

이거 재밌는 놈이네. 김창이 마주 웃으며 칼을 휘둘렀다.

“그래, 네 말이 맞지. 기습하는 게 뭐 나쁜 것도 아니고······.”

챙!

칼과 칼이 부딪쳐 날카로운 금속음이 울렸다. 그러나 그건 한 번에 그치지 않았다.

김창이 가진 칼은 두 자루. 손에 쥐고 있는 것 한 자루, 그리고 혼자 날아다니며 적을 공격하는 칼 한 자루.

김창이 요안니스를 공격하는 것보다 반 박자 느리게 또 다른 칼이 승천할 자를 노렸다.

일부러 공격의 간격을 조정하여 요안니스가 바로 반응할 수 없게 만든 공격이었다.

“아까도 말한 것 같다만.”

챙!

또 다시 울리는 금속음. 김창은 흠 소리를 내며 한 발자국 뒤로 물러났다.

“재밌는 기술을 쓰는구나. 그런데 그거 알고 있느냐? 나는 너의 스승쯤 되는 요정이라는 것을.”

“뭔 개떡 같은 소리야. 고등학교 선생도 나 포기했는데 네가 뭔 내 스승이야?”

고등학교가 뭔데? 요안니스가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말했다.

“네가 쓰는 그 기술, 개눈깔에게서 훔쳐 배운 거라고 했지? 그러면 개눈깔은 그 기술을 어디서 배웠겠느냐?”

김창이 순간 미간을 좁혔다.

“그 기술의 원류는 바로 나다. 그런데 내가 보기에 너는······ 내 제자라고 하기엔 너무나 하찮구나.”

챙! 챙!

금속음이 연달아 울렸다. 하지만 김창은 물론이고 요안니스는 손에 든 칼을 휘두르지 않았다.

그러면 이 금속음은 어디서 울리는 것인가?

“잘 봐라. 칼은 이런 식으로 다루는 거다.”

이미 허공에는 칼 두 자루가 날고 있었다. 김창의 칼은 요안니스가 다루는 두 자루의 칼과 싸우느라 바삐 움직이는 중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요안니스의 등 뒤로 아공간이 열리더니 칼 세 자루가 더 튀어나왔다.

이제 하늘을 나는 칼은 총 다섯 자루. 개눈깔조차 네 자루를 다루는 것에 그쳤는데 저 요정 놈은 그보다 한 자루 더 많이 다룰 수 있다는 건가?

김창은 다섯 자루의 칼이 한 자루의 칼을 쉴 새 없이 몰아붙이는 걸 보고서 오른손의 칼자루를 세게 쥐었다.

잿빛의 오러가 일어나고 칼이 울었다. 요도는 오래 버티지 못한다. 저 칼이 시간을 끌어줄 수 있는 건 겨우 몇 분 남짓.

그 전에 요안니스를 처리하지 못하면 자신은 이제부터 다섯 자루의 칼과 요안니스를 한 번에 상대해야 한다.

아무리 그라도 그건 좀 무리한 일이다.

“남의 것을 베끼기만 하는 놈들의 문제가 저것이니라. 베낄 줄은 아는데, 거기서 더 나아갈 줄은 모르지. 내가 너였다면 칼 한 자루가 아니라 그보다 더 많이 다룰 수 있도록 노력했을 것이니라.”

밉살스럽게 지껄이는 요안니스를 무시하며 김창이 질주했다. 잿빛의 칼날이 번뜩였다.

“그럼 못난 제자 놈의 실력 좀 볼까?”

요안니스도 마주 뛰었다. 요정답게 뛰어난 각력과 날렵한 몸놀림을 가진 그는 마치 바람처럼 움직였다.

김창 역시 승천할 자가 되면서 상당히 빠른 속도로 움직일 수 있었는데, 요안니스는 그보다 훨씬 더 빨랐다.

당연한 일이었다. 두 사람이 가진 신성의 총량이 같다고 할 때, 인간보다는 요정의 육체가 훨씬 더 뛰어날 테니까.

‘어, 이거······.’

김창이 지금까지 싸워본 승천할 자는 하이나 하나가 전부다. 그녀는 오랜 세월을 산 승천할 자였지만 결국 인간이었고 본질이 마법사였기에 육체 능력이 뛰어나진 않았다.

자신과 똑같이 칼을 들고 싸우는 승천할 자는 요안니스가 처음이었다. 당연히 육체 능력에 있어서 자신을 압도하는 상대 역시 처음이고.

‘···너무 빠른데.’

요안니스의 칼은 변화무쌍했다. 기본적으로 빠르고 폭발적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항상 폭풍과 같은 기세를 유지하는 건 아니었다.

때로는 흐르는 물처럼 유연했고 때로는 몰아치는 파도처럼 거칠었다. 보통 검술이라는 건 자기 손에 맞는 한 가지를 배우는 법인데 요안니스는 아니었다.

그는 여러 종류의 검술을 다뤘고 그 모든 걸 달인의 수준이었다. 차라리 계속 공격적으로 몰아붙였다면 오히려 상대하기 쉬웠을 텐데, 요안니스는 때로는 일부러 틈을 내주면서 반격을 유도했다.

단적으로 말해서 요안니스는 싸우는 법을 알았다. 어떻게 해야 자신이 유리하게 싸울 수 있는지, 어떻게 해야 상대의 약점을 끌어낼 수 있는지, 그 모든 걸 본능적으로 알고 적절한 상황에 적절한 판단을 내렸다.

요정이라는 종족이 가지는 우월함, 그리고 천 년도 넘는 시간 동안 쌓이고 쌓인 경험, 그 모든 것이 요안니스를 압도적인 강자로 만들어주었다.

김창은 인정했다. 나도 칼질에 제법 재능이 있는 편이지만, 아무리 그래도 천 년의 시간을 이길 수는 없다고.

“하하! 네 칼도 더는 버티지 못하고 나가 떨어졌구나! 그러면 이제 여섯 개의 칼날을 받아낼 준비는 되었느냐!”

요안니스의 말대로 김창의 요도는 칼 다섯 개의 공격을 버티지 못하고 땅으로 추락했다.

요도답게 칼날이 나간 곳은 없었으나 더 싸울 힘은 없는지 바닥에 꽂힌 채로 몸을 부르르 떨고 있는 게 보였다.

이제 김창은 요안니스가 부리는 칼 다섯 개와 그의 손에 들린 칼 한 자루를 동시에 상대해야 했다.

이미 개눈깔을 상대로 여러 개의 칼과 싸워본 적은 있지만 그때와 지금은 상황이 확연히 달랐다.

‘이쪽이 훨씬 더 강하군.’

개눈깔이 다루던 네 자루의 칼은 마치 사람이 휘두르는 것처럼 움직였다. 하지만 그 정도 공격이야 혼자서 충분히 받아낼 수 있어서 한 자루씩 빠르게 처치하는 식으로 대응했다.

그러나 요안니스의 것은 달랐다.

개눈깔의 칼은 그녀의 실력을 완벽히 복사하지 못했고 기껏해야 실력 있는 기사 수준이었지만 요안니스의 칼은 웬만한 요정 기수 정도의 수준이었다.

아무리 김창이 요정 기수를 한 손으로 가지고 놀 수 있는 실력자라고 해도, 그 숫자가 다섯 명이나 되면 거기서부턴 이야기가 조금 달라진다.

심지어 요정 기수만 상대해야 하는 게 아니라 승천할 자까지 상대해야 하지 않나?

김창은 자기 몸에 생겨나는 상처들을 보면서 쯧 하고 혀를 찼다. 한 번 나가떨어진 요도가 다시 힘을 회복해서 돌아오려면 몇 분은 걸린다.

그때까지 버틴다고 해서 뾰족한 수가 생기는 것도 아니니 여기서 끝장을 봐야 했다. 싸움을 오래 끌어봤자 불리한 건 자신이니까.

결정을 내린 김창은 빠르게 뒤로 물러났다. 그걸 도망치는 것이라고 생각한 요안니스가 바로 따라붙었지만 칼을 칼집에 꽂는 모습을 보고서 잠깐 주춤했다.

“뭐냐? 설마 이대로 항복이라도 하려는 건······.”

“당연히 아니지, 등신아.”

요안니스는 김창이 칼자루를 잡는 순간 자신의 모든 감각이 위험을 경고하는 걸 느꼈다.

착각했다. 저 열등종은 도망치려는 것도 아니고 항복하려는 것도 아니다. 그저 필살의 일격을 날리려는 것뿐······.

“······늦었나!”

요안니스가 다섯 자루의 칼을 날려 보내고 자신은 뒤로 훌쩍 물러나는 순간이었다.

소리조차 잘라버리는 날카로운 빛이 일직선으로 질주했다.

그것은 승천할 자가 만들어낸 별조차 베어내는 단 한 번의 칼질. 어중간한 마법이나 칼질 따위로는 절대 받아낼 수 없으며 오로지 그와 같은 수준의 일격으로만 상쇄할 수 있는 죽음의 칼날이다.

그럼 요안니스는 그 공격을 받아낼 수 있을 것인가? 다섯 자루의 칼을 다루는 천 년 전의 승천할 자는 과연?

“···하핫! 대단하군! 방금 그 일격은 뭐냐! 남의 것이나 베끼고 다니는 얼치기인 줄 알았더니 이런 비장의 한 수를 숨기고 있을 줄이야!”

김창은 크게 웃는 소리를 듣고서 얼굴을 구겼다. 놀랍게도 요안니스는 멀쩡했다. 공격을 제대로 받아낸 것 같지도 않은데 대체 뭔 수로?

“재밌군! 그 한 번의 일격으로 나는 다섯 번의 죽음을 경험했노라! 하핫, 이번 시대의 승천할 자는 다 너와 같은 수준인 것이냐? 그러면 이 나도 긴장이라는 것을 해야겠구나!”

요안니스의 말을 들으니 정답을 알 것 같았다. 아까까지 하늘을 날던 다섯 자루의 칼이 모두 바스라져 바닥에 떨어져 있었다.

저 칼들은 단지 공격용으로만 쓰이는 게 아니라 요안니스가 치명적인 일격을 받을 때를 대비한 보험이기도 한 모양이었다.

단 한 번의 발도로 목숨 다섯 개를 날려버렸으니 이것도 수확이라면 수확이라고 해야 할까?

염병, 그럴 리가.

“덤벼라, 칼잡이야! 죽음의 시간이다!”

원래 게임에서 이것만 죽이면 끝일 줄 알았는데 갑자기 2차전이 나오는 보스만큼 악질인 게 없다.

김창은 속으로 씨발 하고 중얼거리며 칼자루를 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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