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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겜 속 칼잡이-125화 (124/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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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나 해서 묻는 건데, 이번에 죽여도 또 부활하거나 하진 않겠지?”

김창이 묻자 요안니스가 크게 웃으며 말했다.

“글쎄, 내가 그걸 말해줘야 할 이유가 있느냐?”

“하기야 한 번 더 부활하면 뭐 어때. 그땐 또 죽이면 되는 건데.”

“하하핫! 자신감이 넘치는구나! 그러면 한 번 붙어보자! 만종이 울리고 있느니라!”

요안니스가 뛰었다. 역시나 말도 안 될 정도로 빠른 움직임이었다.

그러나 김창은 바로 반응했다. 요안니스의 공격에 몇 번이나 당하고 나니 이젠 제법 눈에 익은 덕이었다.

두 자루의 칼이 서로를 향해 맹렬히 돌진하다가 어느 지점에서 부딪쳤다. 날카로운 금속음과 함께 불티가 튀는 것과 동시에 칼날이 서로에게서 멀어졌다.

하지만 이별은 잠시였고 두 개의 칼날은 마치 자석이 서로 다른 극을 잡아당기듯 빠르게 맞부딪쳤다.

몇 초도 되지 않는 시간 속에서 칼날은 부딪치고 떨어지기를 수십 번이나 반복했다. 칼날이 만들어내는 거센 바람은 주변의 모든 것을 잘라버릴 듯 날카로웠다.

“더욱 속도를 올려라! 아직 한참 부족하니!”

요안니스의 외침과 함께 그의 모습이 사라졌다. 당황할 만한 일은 아니다. 그저 아주 빠르게 움직여 위치를 바꾼 것뿐일 테니까.

뒤를 잡으려는 걸까? 아니면 왼쪽이나 오른쪽의 사각에서 갑작스럽게 튀어나오려고? 김창은 오래 고민하지 않았다.

위다.

챙! 칼과 칼이 부딪쳤다. 김창은 머리 위로 들었던 칼을 두 손으로 바쳐 힘껏 밀어내더니 공중에서 한 바퀴 회전하는 요안니스를 향해 왼손을 뻗었다.

그대로 바짓자락을 붙잡아 바닥에 내치려는데 요안니스의 반대쪽 발이 왼쪽 손목을 크게 후려쳤다.

자세가 불안정한 공중에서의 공격이었는데도 손목이 저릿할 정도의 충격이 느껴졌다. 김창은 신음을 삼키며 빠르게 칼을 휘둘렀다.

마침 회전하며 바닥에 착지 중이던 요안니스가 왼쪽 손바닥으로 바닥을 밀어냈다. 그리고 오른쪽 발로 칼끝을 툭 하고 쳐냈다.

단지 그것뿐이었는데 칼날이 흔들리고는 경로가 비틀렸다. 결국 애꿎은 허공만 찌른 김창이 빠르게 칼을 회수하자 그 틈에 요안니스가 똑바로 서서 칼자루를 고쳐 잡았다.

탁 하고 바닥 박차는 소리와 함께 요안니스가 거리를 좁혔다. 김창은 자신의 턱 아래까지 밀고 들어온 칼날 때문에 급하게 고개를 흔들어야 했다.

날카로운 칼날이 뺨을 스쳐 지나가고 따끔한 고통이 느껴졌다. 그러나 그는 고작 그 정도에 앓는 소리를 낼 만큼 안온한 인생을 살아오진 않았다.

칼을 내질렀다는 건 다시 회수해야 한다는 소리다. 몰려온 바닷물은 반드시 다시 돌아가야 하는 것처럼.

김창은 요안니스가 칼을 뒤로 빼는 틈을 노려 오히려 안쪽으로 뛰어들었다. 다른 사람이었다면 생각지도 못한 움직임에 움찔했을 테지만 요안니스는 그러지 않았다.

그는 세상에 몇 없는 승천할 자이며 김창과 대등하거나 그 이상의 칼잡이다. 두 사람은 서로의 생각과 움직임을 전부 다 이해할 수 있었다.

하지만 안다고 해서 전부 다 대응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바로 지금처럼.

쿵! 김창은 자신과 요안니스 사이의 거리가 너무 좁다는 걸 알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칼을 내지르는 건 불가능한 동작이다.

그래서 그는 재빨리 칼을 뒤집어 칼자루 끝으로 요안니스의 명치를 찔렀다. 철을 덧대 단단히 마감한 칼자루 끝은 승천할 자의 강력한 힘을 받아 공성추와 같은 역할을 했다.

아무리 승천할 자라고 해도 급소를 단련할 수는 없는 법이라 요안니스가 컥 소리를 냈다. 원래라면 그냥 숨이 막히는 정도로 끝났을 테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그가 컥컥 소리와 함께 피를 토해내는 걸 본 김창은 다시 칼자루를 휘둘러 요안니스의 뺨을 세게 후려쳤다.

뼈가 부러졌어도 이상하지 않을 충격이지만 요안니스는 그냥 바닥에 쓰러지는 것에 그쳤다. 김창은 쓰러진 요안니스를 향해 그대로 칼을 내리찍었다.

쿡! 칼은 바닥에 단단히 박히며 먼지구름을 일으켰다. 요안니스는 고귀한 요정 왕족의 체면도 잊고서 바닥을 굴러 도망쳤다.

다시 벌떡 일어난 그가 퉤 하고 침을 뱉더니 씩 웃었다.

“재밌구나! 이번 시대의 승천할 자들 역시 제법이군!”

김창이 칼자루를 고쳐잡고 칼끝으로 요안니스를 겨누었다.

“하지만 너는 내 상대가 되지 못하느니라!”

쿵!

요안니스가 딛고 선 바닥이 갈라지더니 그 몸에서 엄청난 살기가 쏟아져 나왔다. 김창은 저도 모르게 얼굴을 찡그렸다.

저만한 양의 신성을 몸에 지니고 있었다고? 아무리 천 년을 살아온 승천할 자라고 해도 저게 말이 되는······.

쓸데없는 생각을 오래 하고 있을 시간은 없었다. 요안니스가 재빠르게 거리를 좁혔으니까.

그건 단순히 빨리 뛴 것과는 달랐다. 마치 점멸 마법을 쓴 것처럼 뭔가 신비로운 힘을 이용해 거리를 줄여버린 것에 가까웠다.

같은 승천할 자인데 다들 별 신기한 기술을 다 쓰는군. 김창은 불어오는 바람 속에서 섬뜩한 살기를 느꼈다.

멍청한 생각이나 하고 있을 시간은 없다. 김창은 칼자루를 세게 쥐고서 요안니스와 격돌했다.

“큭!”

상처가 생겼다. 요안니스가 감자기 나타났다가 갑자기 사라진 탓이다. 분명 처음에도 빨랐지만 지금은 그보다 더 빨랐다.

엄밀히 말해서 그건 육체의 빠름이 아니었다. 아까도 생각한 것이지만 저 빌어먹을 요정 놈은 마법적인 힘을 다루고 있었다.

귀찮은 놈. 그러면 이쪽도 제대로 싸워줘야겠지. 김창은 내면의 신성을 끌어올렸다. 감각이 민감해지고 육체가 뜨거워졌다.

그는 지금 자신이 인간의 육체를 일시적으로 초월해 반신의 경지에 올랐음을 깨달았다. 이번에도 요안니스는 마법의 힘을 빌려 사라졌지만 그가 어디서 나타날지 정확히 알 수 있었다.

챙! 칼날이 부딪쳤다.

“···호오?”

요안니스는 자신의 공격을 막아낸 김창을 보고서 미간을 좁혔다. 그는 쉬지 않고 공격하면서도 뭔가 깨달은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가······. 너는 벌써 반신의 격에 가까이 다가간 것이냐······.”

김창은 지금까지 많은 강적을 죽였다. 일일이 세기 어려울 정도로 많은 적을.

그러니 그가 가진 신성의 양은 무시할 수 없을 정도로 많으며 또 그 순도 역시 남들에 비해 훨씬 월등하다.

요안니스의 말대로 김창은 반신의 격에 가까웠다. 천 년 전의 승천할 자는 그 사실을 인정했다.

“하지만 부족해. 그저 닥치는 대로 뭔가를 죽이기만 한 놈은 진정한 반신이 될 수 없노라.”

우우웅!

요안니스의 몸 주변으로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저 귀쟁이 새끼가 또 뭔 짓을 하려고? 김창은 망설이지 않고 요안니스를 향해 뛰었다.

뭘 하려는 건지 몰라도 하기 전에 죽이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김창은 충분히 거리를 좁힌 후에 칼집에 칼을 꽂았다.

바닥을 단단히 딛고, 칼자루를 세게 쥐고선 어깨를 뽑아낼 듯 강하게 칼을 잡아당겼다.

소리조차 죽이는 일격이 요안니스는 물론이고 공간 자체를 절단하려 들었다. 아까는 다섯 개의 칼이 목숨을 희생하여 지켜줬지만 이번에는 그럴 수 없을 것이다.

김창은 승리를 확신했다. 천 년을 살아온 요정도 칼 맞으면 꼼짝 못 한다고 생각하면서.

그러나 아니었다.

“······반신의 격은 이미 내가 천 년 전에 도달한 영역이다, 이 천둥벌거숭이 같은 놈아!”

바람이 분다. 아주 거친 바람이.

김창은 문득 그런 생각을 했다. 먼 옛날에 사람들이 신을 믿었던 것은 사람이 어쩔 수 없는 자연을 두려워했기 때문이라던가?

확실히 세상을 환히 밝혀주는 태양이나 넓고 넓은 바다, 광활한 대지와 저 멀리 떨어진 하늘 따위를 사람이 어찌할 수는 없으니 신으로 숭배할 만한 일이긴 하다.

사실 태양은 신이 아니라 저 멀리 떨어진 우주 속의 항성일 뿐이며 바다는 그저 짠물이 가득한 거대한 호수일 뿐이기에 사람들의 소원을 들어줄 만한 힘은 없다.

그러나 인간은 자신의 능력을 넘어서는 일에 두려움을 느끼는 법이고 나약한 존재는 신앙을 통해 안도를 느끼려 한다.

현대인이 보기엔 우스운 일이지만 그 시절엔 어쩔 수 없는 일일 것이다. 그 어떤 인간도 모든 걸 쓸어버리는 거대한 바람을 정면에서 막아낼 수는 없을 테니까.

그러니 위대한 자연은 신으로 숭배될 자격이 있다. 인간은 자신보다 우월한 존재를 섬기는 법이니까.

그럼 만약 누군가가 스스로 자연재해와 같은 일을 벌일 수 있다면 그는 신인가?

칼질 한 번으로 모든 걸 잘라버리고 그 어떤 무거운 물건도 손쉽게 날려버리며 가볍게 하늘을 날기도 한다면 그를 무엇이라 불러야 하는가?

“반신······.”

요안니스가 웃었다. 그는 이미 천 년도 전에 반신의 경지에 오른 자였다. 그의 몸 전체에서 바람이 일어나고 칼날 주변으로는 거친 바람이 회오리치고 있었다.

그는 정말 바람이 된 것처럼 두 발이 공중에 뜬 채였다. 등 뒤에선 바람으로 이루어진 한 쌍의 날개가 있었는데 그걸 제대로 볼 수 있는 것은 같은 승천할 자뿐이었다.

“반쪽짜리 반신아! 반신은 신의 반쪽이니 너는 반의 반신이라고 불러야겠구나! 과연 너 따위가 날 죽일 수 있을 것 같으냐!”

요안니스가 칼을 휘둘렀다. 김창과 제법 거리가 떨어져 있는 상태였는데 칼을 휘두르자 바람이 불더니 땅 위에 커다란 상처가 생겼다.

김창이 눈을 부릅뜨더니 칼을 들어 공격을 막아냈다. 바람의 칼날은 그의 몸을 뒤쪽으로 크게 밀어냈다.

억지로 두 발로 버티고 서는데 머리카락이 살랑거렸다. 그게 공격의 전조라는 걸 바로 알아차렸지만 어쩔 도리가 없었다.

마치 먼 옛날의 사람들이 폭풍이 몰아닥칠 걸 알아도 어쩔 도리가 없었던 것처럼.

“기뻐해라, 반의 반신아! 너는 나의 진정함 힘을 본 첫 번째 승천할 자로다! 만약 얌전히 죽는다면 신이 된 후에 너를 되살려 내 사도로 삼아주겠노라!”

쉭!

바람의 칼날이 연달아 대지를 질주했다. 그 공격은 피아의 구별이 없어서 김창이 있는 곳만 공격하는 게 아니라 주변에서 싸우고 있는 요정 전사들까지 잘려 나갔다.

공격의 여파로 대지가 갈라지고 먼지구름이 크게 피어올랐다. 칼질 몇 번으로 지형이 바뀔 정도의 위력이었다.

설마 자신들까지 공격할 줄은 몰랐던 요정 전사들은 다급히 도망쳤고 황망한 눈으로 요안니스를 쳐다봤다.

저게 승천할 자의 진정한 힘이란 말인가? 저 정도 힘이라면 요정왕을 갈아치우는 것도 불가능한 일은 아닐 터다······.

“모두 물러나라! 너희가 상대할 적이 아니다!”

싸움을 지켜보고 있던 비아스는 입술을 세게 깨물었다. 방금 공격으로 김창이 크게 다쳤으리라는 건 보지 않아도 알 수 있는 일이었다.

그는 먼지구름 뒤에 가려진 김창을 흘끔 보고선 칼자루를 세게 쥐었다. 당연히 이길 수 없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도망칠 수는 없다.

승산 없는 싸움이라면 적어도 부하들의 목숨이라도 살려서 보내야······.

“너는 또 누구냐? 너 따위가 감히 내 상대가 되리라 생각하느냐? 가서 네 부하들에게 무의미한 싸움은 그만두라고 말하거라. 너희 역시 내 왕국의 백성. 나는 무익한 살육은 그만하려 하느니라.”

요안니스의 거만한 목소리를 들으며 비아스가 칼을 머리 위로 들었다. 그리고 힘껏 소리치며 말했다.

“요정왕을 위하여! 테네벨레 가문 만―세!”

의미 없는 돌격임을 안다. 개죽음이라는 것도 안다. 그러나 그는 멈출 수 없었다. 원탁의 이방인들은 굳이 낄 필요도 없는 싸움에 목숨을 걸고 참여했다. 어쩌면 김창은 죽었을지도 모른다.

자신의 결정 때문에 일어난 일이다. 그러니 결코 도망칠 수는 없다.

“멍청한 놈이로고. 하지만 죽는 게 소원이라면 못 들어줄 것도 없지.”

요안니스가 바람을 일으켰다. 칼을 휘두를 필요도 없다는 듯 그저 손가락을 가볍게 휙 휘두를 뿐이었다.

그러나 그 위력은 무시무시했다. 빠르게 회전하는 바람이 직선으로 질주했다. 비아스는 자신이 폭풍을 향해 돌진하는 기사가 된 기분이었다.

의미 없는 짓이라는 건 알지만, 그래도 도망칠 수는······.

“테네벨레 만······.”

꽈르릉!

외침은 커다란 굉음에 묻혔다. 또한 시야는 창백한 빛에 의해 가려졌다.

비아스는 순간 눈이 멀고 귀가 먹어 아무것도 보고 들을 수 없었다. 청력은 금방 돌아오지 않았으나 창백한 빛은 순식간에 사라졌기에 뭔 일이 일어난 것인지 바로 볼 수는 있었다.

그는 먹먹한 귀로 한 남자의 말을 들었다.

“이렇게 하는 거 맞나?”

거기엔 벼락의 화신이 있었다. 파지직 소리를 내며 불티가 튀어 오르고 있는 칼을 든 남자가 있었다.

비아스는 그가 누구인지 알고 있었다. 김창이다.

“아까 뭐랬더라? 네가 내 스승쯤 되는 놈이라고 했나? 처음엔 뭔 개소리인가 했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맞는 소리야. 덕분에 잘 배웠다. 그럼 스승님, 제자 놈 인사나 받아라.”

김창이 벼락을 두른 칼로 요안니스를 겨누며 말했다.

“참고로 나는 고등학교 때 선생 때렸다가 정학 먹은 적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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