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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겜 속 칼잡이-126화 (125/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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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요안니스는 눈이 시릴 정도로 창백한 빛을 뿜어내고 있는 김창을 보고서 두 눈을 크게 떴다.

그 짧은 새에 보고 배웠다고? 그게 말이 되는 일인가? 게다가 저건 단순히 보고 배운 수준이 아니라 그걸 변형시켜 자신의 것으로 만든······.

“너!”

요안니스는 참을 수 없는 분노에 휩싸였다. 자신은 어째서 화가 났는가? 저 건방진 열등종 놈이 자신의 기술을 훔쳐서?

아니다, 그런 게 아니다. 김창은 자신과 같은 승천할 자이니 시간만 있었다면 언젠가는 자신과 같은 경지에 올랐을 것이다.

그러면 대체 왜? 요안니스는 인정하기 싫은 사실을 인정해야 했다.

이것은 열등감이다. 자신은 길고 긴 세월 끝에 완성한 기술을 저 열등종은 단 몇 분만에 익혔다는 것에 대한 열등감.

“감히, 감히!”

요안니스가 벌컥 화를 내는 걸 보면서 김창은 호흡을 가다듬었다. 전류가 몸을 타고 흐르는 감각이 선명하게 느껴졌다.

‘운이 좋았군.’

김창은 겉으론 담담한 척하고 있지만 실은 안도의 한숨을 내뱉고 있었다.

지금껏 강적들을 많이 만나봤지만 요안니스는 그 격이 달랐다. 요정 기수나 대악마 따위는 말할 것도 없고 승천할 자인 하이나조차 요안니스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요안니스는 무려 반신의 격에 이른 존재가 아닌가? 칼질 한 번으로 바람을 일으키고 대지를 갈라버리는 놈을 대체 뭔 수로 이기나?

김창이 아무리 잘났어도 결국에는 인간이다. 할 수 있는 일과 할 수 없는 명확히 구별된다.

그러니 엄밀히 말해서 요안니스의 기술을 한 번 보고 훔치는 것은 할 수 없는 일임이 분명했다.

그건 단순히 칼질이 어쩌고 하는 영역의 문제가 아니다. 가지고 있는 신성의 양이 얼마나 많은가, 그리고 그 신성을 얼마나 잘 다루는가의 문제니까.

그런데도 김창이 한 번에 요안니스의 기술을 베낄 수 있었던 건 게임 속에도 그와 비슷한 스킬이 있었기 때문이다.

‘아마 이름이 원소 부여였던가?’

게임 속 칼잡이는 순수한 물리 딜러기 때문에 물리 피해 면역이나 속성 피해 약점인 적에게 타격을 줄 방법이 전무하다.

그래서 그런 적이 나왔을 때 칼잡이가 병풍이 되는 걸 방지하기 위해 존재하는 스킬이 바로 원소 부여다.

이름 그대로 불 속성이나 물 속성 따위를 무기에 부여해서 일시적으로 적에게 속성 피해를 줄 수 있다.

단지 그것 말고는 부가적인 효과가 없기에 특정한 적을 상대할 때 말고는 쓸 일이 없는 스킬이지만 지금 이 순간에는 그게 김창의 목숨을 살렸다.

‘바람이나 벼락의 화신이 되는 것도 조금 억지를 부리자면 원소 부여와 다를 게 없으니까······.’

김창이 아주 짧은 시간에 요안니스의 기술을 베낄 수 있었던 것은 신성을 사용하여 게임 속 스킬인 원소 부여를 익혔기 때문이다.

원래라면 그저 칼에 원소 피해를 부여하는 것에 그쳤겠지만 지금은 스킬 효과를 비틀어 화신이 되는 것 자체로 확장했다.

어떻게 보면 게임 속 캐릭터기에 가능한 편법이었다. 만약 요안니스가 이 사실을 알았다면 억울해서 팔짝 뛰었을지도 모른다.

그런 말도 안 되는 이유로 기술을 도둑맞은 것도 억울한데 재능과는 아무 상관도 없는 일에 심한 열등감까지 느끼지 않았나?

“시간 없는데 빨리 끝내지.”

김창이 한 발자국 움직일 때마다 틱틱 소리가 나며 푸른 불씨가 튀었다. 마치 의인화된 벼락이 움직이는 듯한 모습에 요안니스가 얼굴을 잔뜩 구겼다.

‘저 녀석은 일시적으로 반신의 경지에 올랐다. 내 기술을 베꼈다고 해도 저걸 완벽하게 다루지는 못할 터. 분명 시간제한이 있으렷다······.’

화신으로 변하는 것은 요안니스가 고안해낸 기술이다. 당연히 그 기술에 대한 정보는 그가 제일 잘 알고 있었다.

왜 승천할 자가 아니라 반신의 경지에 오른 자만이 화신으로 변할 수 있는가? 그건 승천할 자가 아무리 강하더라도 신은 아니기 때문이다.

화신으로 변하는 것은 자연을 신으로 모시는 원시적 신앙에 그 근간을 두고 있다. 당연히 반쪽짜리 신이라도 되지 않는 한은 그 부하를 감당할 수가 없다.

지금 김창은 일시적으로 반신의 경지에 올라 화신으로 변하였으나 그걸 오랫동안 유지할 수는 없다.

일찌감치 반신의 격에 오른 자신조차 화신 상태를 길게 유지할 수 없는데 반의 반신 따위가 그게 가능하려고.

그러니 요안니스가 이 싸움에서 이길 방법은 명확하다. 그저 버티기만 하면 된다. 굳이 목숨을 걸고 싸워줄 필요도 없고 그냥 시간만 끌면서 버티면 된다.

그러면 김창의 변신이 먼저 풀릴 것이고 그땐 어린아이 손목 비틀듯 간단히 그 목숨을 취하면 다 끝날 일이다.

“그래서야 의미가 없지······.”

머리로는 알고 있다. 어떻게 하면 이길 수 있을지 명확히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러기 싫었다. 그런 식으로 이기는 것에 대체 뭔 의미가 있나? 싸움이라는 것은 숭고한 것이다.

그게 동네 왈짜들의 싸움이 아니라 승천할 자들의 싸움이라면 더더욱.

그러니 정면에서 쳐부숴야 했다. 진정한 신이 되기 위해선.

“덤벼라! 변신이 풀리기 전에 날 쓰러트려 봐라!”

쾅!

돌풍이 일어났다. 요안니스의 모습이 순식간에 사라졌지만 김창은 그의 모습을 찾아낼 수 있었다.

아주 짧은 몇 분의 시간 동안일 뿐이지만, 김창은 이제 요안니스와 동등한 수준에 도달해 있었다.

요안니스가 할 수 있는 일이라면 김창도 할 수 있다. 그리고 반대로 김창이 할 수 있는 일이라면 요안니스도 할 수 있다.

두 사람은 지금 거울의 비친 것처럼 서로 똑같은 경지에 올라 있었다. 단지 다른 점이 있다면 서로 변신한 모습이 다르다는 것뿐.

하지만 어느 쪽이든 서로를 죽일 수 있다는 점에서 근본적으로 다르지는 않다.

“하핫! 이번에야말로 신이 되기 위해 천 년을 기다렸건만 결국 헛짓거리였을지도 모르겠구나! 설마 너 같은 놈이 있을 줄은 생각지도 못했노라!”

거친 바람이 불며 주변의 모든 것을 엉망진창으로 난도질했다. 요안니스의 공격은 단순한 칼질이 아니라 자연재해로서의 폭풍 그 자체였다.

거대한 바위가 거센 바람을 이기지 못해 공중으로 떠올랐다가 금세 가루가 되어 흩날렸다.

수십 년 동안 대지에 단단히 뿌리를 박고 살던 나무 역시 폭풍에 휘말려 부러지고 갈라졌다.

폭풍이 어찌나 강력했는지 양 군대는 더는 싸움을 이어나갈 수 없었다. 멀리 떨어져 있는데도 불구하고 거센 회오리가 몸을 끌어당겨 자칫 잘못하면 저 안에 휘말릴 것만 같았다.

양쪽의 총사령관들은 천 년의 시간을 넘어 돌아온 승천할 자의 강함에 깜짝 놀라 재빠르게 군대를 물렸다.

요정 전사들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지만 자연재해에 휘말려 죽길 바라진 않았다. 그런 것에 휘말려 죽는다면 그야말로 개죽음이 아닌가?

“시간제한이 다가오고 있다! 더 발버둥 쳐라! 날 죽여봐!”

요안니스의 외침에 김창도 내면의 신성을 끌어올렸다. 그의 몸에서 빛이 발하더니 이젠 전신이 푸르게 빛나기 시작했다.

그는 이 순간 자신의 벼락 그 자체가 됐다는 걸 알았다. 한 발자국 움직이는 순간, 그는 벼락이 되어 쏘아져 나갔다.

꽈르릉!

칼을 휘둘렀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그가 휘두른 것은 벼락 그 자체였다. 자신이 한 일인데도 스스로 깜짝 놀랄 만한 일이었다.

칼질 한 번 했는데 벼락이 친다고? 겨우 반신의 격에 올랐을 뿐인데 이런 짓을 할 수 있다면 진짜 신은 대체 뭘 할 수 있다는 건가?

폭풍 속에서 연신 벼락이 떨어졌다. 거대한 회오리는 이미 전장 전체를 집어삼켰고 아무도 그 주변으로 접근할 수 없었다.

그 안에서 연달아 떨어지는 벼락은 마치 세상의 종말을 경고하는 듯한 모습이었다.

기록조차 희미한 신화 시대의 싸움이 이랬을까? 아직 지상에 신이 존재하던 시절, 매일 같이 신이 자신의 추종자들과 함게 다른 신과 싸우던 그 시절엔 이런 광경이 흔했을지도 모른다.

김창은 그 시절에 살아본 적도 없고, 애초에 이 세상 사람도 아니지만 그때의 모습이 눈에 선한 듯 느껴졌다.

‘더, 좀 더 할 수 있다······.’

그는 지금 생전 느껴본 적 없는 고양감을 느끼고 있었다. 비록 일시적인 반신에 불과하지만 자신이 칼질 한 번으로 벼락을 일으킬 수 있다는 건 변하지 않는 사실이었다.

‘좀 더 신성을 모으면······.’

이번 싸움에서 이기면 요안니스의 신성을 흡수해 반신의 경지에 도달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면 자신은 승천할 자들끼리의 경쟁에서 훨씬 더 유리한 고지를 점할 수 있으리라.

그러기 위해선 이겨야 한다. 요안니스를 죽이고 그의 신성을 뺏어야 한다.

하지만 시간이 부족하다. 김창은 자신의 몸에서 점점 벼락의 힘이 빠져나가고 있다는 걸 느꼈다.

벼락 그 자체가 되어 눈으로 좇을 수 없을 만큼 빠르게 움직이던 몸이 점차 느려지고 있었다.

지금도 충분히 빨랐지만 바람의 화신이 된 요안니스를 상대할 정도는 아니다. 그와 같은 수준에서 싸우기 위해선 벼락의 화신이 되어야만 했다.

그러나 자꾸만 흘러나가는 힘을 막을 수는 없다. 손으로 물을 한 움큼 떠도 손가락 사이로 줄줄 새는 걸 막을 수 없는 것처럼.

한 번 더 변신하는 것은 무리다. 그러면 이대로 끝인가? 나는 이대로 죽는 것인가?

“너!”

거친 폭풍 속을 뚫고서 쩌렁쩌렁한 외침이 들려왔다. 소리가 나는 쪽으로 고개를 드니 거기엔 요안니스가 있었다.

“칼을 들어라! 고개를 숙이지 마라! 전력을 다해서 나에게 부딪치란 말이다!”

거칠게 몰아치던 바람이 점점 잦아들고 한 점에 모이기 시작했다. 자유분방하게 날뛰는 바람을 억지로 압축하여 칼끝에 모은 요안니스가 어깨를 뒤로 뺐다.

탄력이 넘치는 어깨 근육은 잔뜩 긴장했다가 다시 튕기듯 쏘아져 나갈 것이다. 어깨에서 손까지, 그 끝에 매달린 칼은 신의 징벌을 대지 위에 새기리라.

“당당하게 싸워라! 벼락의 화신으로서, 내 적수로서, 내가 죽일 만한 가치가 있는 적이라는 걸 증명하거라!”

요안니스는 이대로 김창의 화신 상태가 풀리기를 기다리기만 해도 승리를 손에 거머쥘 수 있었다.

일시적이긴 해도 반신의 경지에 오르고 화신으로 변할 수 있을 만큼 강력한 승천할 자를 손쉽게 죽이고 그 신성을 흡수할 수 있는 기회가 찾아왔다.

그는 신이 되기 위해 천 년을 기다려왔고 이번 시대엔 분명 그 기회가 찾아왔다. 신좌라는 달콤한 과실은 요안니스를 유혹하듯 멀지 않은 곳에 맺혀 있다.

손을 뻗어 따기만 하면 될 일인데, 자신은 과연 그럴 것인가?

“아니! 고난 없는 과실엔 가치가 없다! 칼을 들어라! 나를 겨눠! 마지막 승부다!”

요안니스는 그러지 않았다. 승리가 멀지 않은 곳에 있음에도 일부러 승부를 택했다.

말 그대로 건곤일척의 승부. 굳이 하지 않아도 됨에도 불구하고 기어코 던진 승부수,

“네가 굳이 그걸 원한다면, 내 기꺼이.”

김창은 천 년의 시간을 넘어온 요정의 승부를 받아들였다. 그의 몸을 휘감고 있던 벼락의 힘은 사라졌지만 칼 한 자루를 감쌀 정도는 아직 남았다.

“그럼!”

바람이 분다. 죽음의 바람이.

“승부다!”

그 누구도 막을 수 없는 거센 바람이 대지를 부수며 성난 황소처럼 질주했다. 그 끝에 있는 것은 점차 몰락해가는 벼락의 화신.

그의 몸에서 창백하게 반짝이던 빛은 점차 사라져갔고 이제 남은 건 칼날에 맺힌 약간의 벼락뿐이다.

그러나 그조차 금세 자취를 감추었다. 칼집 속에 갇힌 벼락은 당장 자신을 꺼내달라는 듯 거칠게 울부짖었다.

“끝을 보자.”

벼락이 쳤다. 성난 폭풍조차 잠재워버릴 굉음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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